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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40화 (141/200)

80장: 두 번째 카드(2)

또다시 이어진 침묵.

다만, 이번 것은 매우 짧았다.

아무래도 오브리가 국왕 입장에서는 확인이 필요했을 터.

혹여나 본인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에 대한 확인 말이다.

“……뭘 넘겨?”

“왕위요. 저에게 왕위를 넘기시란 말입니다.”

잘못 듣지 않았다.

국왕은 제대로 들었다.

크리스토퍼는 지금 아버지인 오브리가 국왕을 종용하고 있었다.

권좌를 그에게 내놓으라고.

“네가 완전히 미친 모양이구나, 크리스토퍼.”

“미치다니요? 전 지극히 정상입니다, 아바마마.”

“아비에게 와서 왕위를 내놓으라는 자식놈이 정상이라는 거냐?”

“아바마마가 조금만 덜 우유부단했더라면, 조금만 더 국왕다우셨다면 제가 이러는 게 미친 짓이었겠지요. 하지만 아버지는 지나치게 우유부단하고, 또 전혀 국왕답지 못하셨습니다. 전 지금 아바마마의 무능함 때문에 비뚤어진 왕국을 바로잡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크리스토퍼, 너 정말…….”

오브리가 국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쯤 되면 더 이상 대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네가 지금 하는 행동의 의미를 모르지는 않겠지?”

“설마요.”

이는 명백한 반역이었다.

그리고 반역에 대한 처벌은 최소가 참형이었다.

아무리 국왕의 첫째 아들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존재치 않았다.

“후작.”

“예, 전하.”

이 자리에는 소드마스터인 카이트 쉬르더가 함께하고 있었다.

감히 크리스토퍼와 그 휘하 세력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규격 외의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쉬르더 후작이라면 확실히 무섭기는 하지요. 하지만 제가 후작의 존재를 빤히 알면서 그냥 왔겠습니까? 아무런 대책도 없이?”

하지만 오늘 크리스토퍼의 행보는 단순한 떼쓰기나 칭얼거림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근위기사단장인 카이트 쉬르더의 존재는 당연히 계산에 들어 있었다.

그에 대한 대책 역시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시작한다!”

크리스토퍼의 신호 직후였다.

“크악!”

“커헉!”

“감히…… 커걱!”

콰광!!

두두두두.

집무실 밖에서 갑작스러운 소란과 함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러고는 문이 박살 나며 일단의 병력이 쏟아져 들어왔다.

크리스토퍼의 호위기사들이었다.

밖에서 대기 중이던 그들이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순식간에 안으로 진입한 것이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제게 왕위를 넘기세요, 아바마마.”

이것이 1왕자 크리스토퍼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 선택과 함께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슈라우드 전체를 뒤덮을 거대한 참화의 불꽃이.

* * *

“드로튼 왕자님께 가신 일은…….”

왕녀궁에 돌아온 레나.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사네가 그녀를 맞이해 주었다.

절레절레.

그런 사네를 향해 레나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잘 안 되신 모양이군요.”

“처음부터 각오는 했지만, 역시 쉽지가 않네요.”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왕녀님. 언젠가 풀 기회가 올 겁니다. 그래도 두 분은 친남매지간이시지 않습니까?”

“그랬으면 좋겠네요.”

방금 만나고 온 2왕자 드로튼 때문이었다.

그의 토라짐은 쉬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레나가 대권 도전을 공식화하던 시점부터 예견된 일이기는 했다.

하여 나름의 각오도 했던 레나였다.

그러나 예견하고 각오했다 하여 만사형통은 아니었다.

그렇게 했음에도 영 마음이 편치 못했다.

한때는 왕궁 내에서 유일하게 서로 의지가 되어 주던 친남매지간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시간만이 유일한 해법일 듯싶었다.

“혹시 매튜에게 추가로 들어온 소식이 있나요?”

“아직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 그 시간이 넉넉지 못할 것 같다는 점이 문제였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어쩐지 꺼림칙했다.

해서 매튜가 보내올 동부의 소식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일단 그곳의 동태를 확실히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상황의 확실한 파악 및 그에 맞는 대응이 가능할 터였다.

“왕녀님, 클로렐라예요.”

“클로렐라? 들어와.”

그때, 클로렐라가 레나를 찾아왔다.

유모 줄리아를 비롯하여 레나가 가장 신뢰하는 하녀였다.

그렇기에 왕궁 내에서 가장 중요한 오브리가 국왕의 곁에 붙여 둔 하녀이기도 했다.

그런 클로렐라가 일과시간 중에 찾아온 것이다.

사람을 보내온 것도 아니고, 그녀가 직접.

“큰일 났어요, 왕녀님.”

“큰일?”

“그자가 나타났어요. 그자, 제국의 브루노 다스 백작이요.”

“브루노 다스?? 찬찬히 다시 얘기해 봐. 브루노 다스가 나타났다니?”

“여느 때처럼 국왕 전하 집무실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1왕자님이 갑자기 알현을 오셨어요. 그래서 왕자님은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시고, 나머지 호위기사들은 대기실에 머무는데, 그중에 브루노 다스 백작이 끼어 있더라고요.”

클로렐라가 들고 온 것은 그 다급한 목소리만큼이나 심각한 소식이었다.

이 왕궁 내에 제국의 소드마스터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당연히 공식적인 입궁일 리 만무했다.

크리스토퍼의 호위기사로 끼어 있다는 것도 그렇고, 애초에 브루노 다스의 방문 소식을 제국으로부터 전달받은 바 없었으니까.

“얼굴이 다르긴 한데, 그자가 확실해요. 왕녀님도 아시잖아요, 제가 그날 황도의 비밀저택에서 봤던 것들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거. 오늘 그자의 검 폼멜에 새겨진 문양이 그날 봤던 것과 분명히 일치했어요.”

“그래, 알지. 그래서 상황은?”

“제가 떠나기 전까지는 잠잠했어요. 하지만 평소 왕래도 없던 1왕자님이 뜬금없이 전하를 알현한다는 것도 그렇고, 변장까지 한 브루노 다스 백작도 그렇고, 아무래도 금방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아서…….”

이로써 확실해졌다.

갑자기 해적들이 날뛰고, 동부의 동태가 심상치 않았던 일련의 상황은 전부 우연이 아니었다.

슈라우드를 뒤엎기 위한 황제의 계략이었다.

라이오넬과 그리핀 군단을 카디즈 군도로 끌어들여 힘의 공백을 만든다.

이 공백의 틈에 왕궁을 뒤집어 오브리가 국왕과 왕족들을 확보한다.

그런 뒤 동부군을 움직여 왕도를 점령한다.

왕궁과 왕도가 점령된 뒤에는 라이오넬과 그리핀 군단이 어찌해 볼 여지 자체가 없을 터였다.

“정말 잘했어, 클로렐라. 그리고 고마워. 덕분에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있게 됐어.”

따로따로 떨어져 있던 정보들이 클로렐라 덕분에 하나로 연결되었다.

그리하여 하나의 거대한 계략으로써 레나에게 파악되었다.

“지금은 심각한 비상상황입니다. 우리도 이에 맞춰 곧바로 대응에 들어갑니다.”

단, 파악되었다고 끝은 아니었으며, 그 위험성은 여전했다.

아직 레나는 황제가 쳐둔 그물망 안에 위치한 상태였다.

따라서 지금부터의 대응이 중요했다.

순간순간의 결정에 따라 그물망 안에 완전히 갇히고 말지 무사히 빠져나갈지가 결정될 터였다.

“우선 당장 아바마마의 집무실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아바마마와 쉬르더 후작, 그리고 근위기사들과 합류하는 게 1차 목표입니다.”

오브리가 국왕 확보는 중요했다.

장기전 돌입 시 그의 확보 여부에 따라 승패가 갈릴 수도 있었다.

또, 소드마스터 하나와 소드마스터 둘의 차이는 지대했다.

국왕을 지키는 카이트 쉬르더와 레나를 호위하는 에릭스가 힘을 합친다면 웬만한 난관쯤은 하등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기에 근위기사단의 서포트까지 더해진다면 사실상 군단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리고 아바마마만 알고 계실 집무실 비밀통로를 통해 왕궁 밖으로 빠져나갑니다. 그런 뒤 우선 왕도 수비군과 합류하되, 상황이 여의치 않다 싶으면 북부 라인하트 영지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병력을 모으며 그리핀 군단을 기다린 뒤, 확실하게 1왕자의 반란을 제압합니다.”

1왕자와 동부가 움직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제국이 개입한 상황이었다.

왕도 수비군만으로는 역부족일 가능성이 컸다.

왕도를 내주는 경우 역시 가정해야 했으며, 이 경우 대안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남부 이베리아 영지와 북부 라인하트 영지.

다만, 그리핀 군단이 자리를 비운 상황이니만큼 현재는 후자를 선택함이 옳았다.

북부라면 바르코스 후작의 전폭적인 지원도 기대할 수 있을 테고 말이다.

“그리고 줄리아, 클로렐라. 하녀들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 사실을 로튼과 길리언에게도 전해 줘. 지금 당장 궁을 빠져나가라고.”

“예, 왕녀님.”

레나의 지시에 따라 곧장 움직임에 나서는 줄리아와 클로렐라.

이것으로 순식간에 대응 계획 마련이 완료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계획의 실행뿐이었다.

“자, 그럼 모두 곧장 계획대로……. 아, 그 전에 잠시.”

다만 계획에 따라 집무실로 출발하기 전, 한 가지 반드시 거쳐야 할 절차가 있었다.

이를 위해 레나가 품에서 아티팩트를 하나 꺼내 들었다.

꾸욱.

그러고는 아티팩트 중앙의 버튼을 꾹 눌렀다.

나지막한 한마디를 읊조리며.

“빨리 와 줘요, 라이.”

* * *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제게 왕위를 넘기세요, 아바마마.”

국왕 집무실 안으로 침입한 10명의 기사들.

이 기사들을 등 뒤에 두고는 재차 으름장을 놓는 크리스토퍼였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고작 그 인원으로 뭘 어쩌겠다는 것이냐?”

이에 오브리가 국왕은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오히려 어이없다는 기색마저 드러내는 그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국왕의 말마따나 크리스토퍼 측의 인원은 고작 10명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덜컥.

우르르.

반면 국왕 측 인원은 무려 그 5배였다.

집무실 옆에서 대기 중이던 50명의 기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이렇듯 단순 머릿수에서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한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국왕의 기사는 50명 전부 왕실 근위기사들이었다.

슈라우드 왕국 내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이들 말이다.

“어쩌자고 이런 무도한 짓을 벌이시는 겁니까, 왕자님? 그것도 이리 무모하게…….”

무엇보다 소드마스터인 카이트 쉬르더 후작이 있었다.

50명의 근위기사에 한 명의 소드마스터.

최소 1,000단위 밑으로는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전력이었다.

“무모하다니요?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제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왔겠느냐고.”

하지만 크리스토퍼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역으로 포위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임에도 그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마저 띠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 부탁하오.”

끄덕.

비릿한 여유로움과 함께 한 발자국 옆으로 물러난 크리스토퍼.

이렇게 그가 품은 여유로움의 근원이 바통을 이어받게 됐다.

그러자 이 근원은 곧장 카이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소, 쉬르더 후작.”

근원 역시 크리스토퍼와 마찬가지였다.

쉬르더 후작의 정체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껏 여유로움을 머금은 상태였다.

흘러나오는 목소리에서 위기감 같은 것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정체조차 불분명한 자의 인사를 받아 줄 이유가 있나?”

“아아,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정체를 밝히지 못함은 양해 바라오. 그리고 너무 박하게 굴지는 말아 주시구려. 후작과 한 번쯤 마주하기를 고대하던 참이니.”

지극히 당연한 여유였다.

단지 정체를 밝힐 수 없을 뿐, 그 또한 카이트와 같은 소드마스터였으니까.

아니, 같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근원, 브루노 다스의 힘은 검술만이 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자가 나와? 꿈도 크군. 정 그러고 싶거든 앞에 있는 기사들부터 뚫고 오도록.”

“그렇소? 하면 어쩔 수 없지. 직접 보여 주는 수밖에.”

이런 브루노 다스의 앞을 근위기사들이 막아섰다.

몹시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었다.

물론, 오브리가 국왕 측에.

파앗.

브루노가 일직선으로 짓쳐 들기 시작했다.

지이잉!

“헙……!”

촤라락~!!

그리고 보여 주었다.

피어오른 오러 블레이드와 일검에 쓰러지는 세 명의 근위기사들로.

“소드마스터……!!”

이로써 증명되었다.

브루노는 카이트를 마주할 자격이 충분했다.

“저자는 내가 맡는다! 나머지는 전하를 철통 경호하도록.”

소드마스터의 상대는 소드마스터뿐.

결국, 카이트가 상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그가 계속해서 짓쳐 드는 브루노를 마주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지이잉!

콰가가각!!

그렇게 두 소드마스터의 검이 맞붙었다.

두 오러 블레이드가 본격적인 힘 대결에 돌입한 것이다.

“어떻게, 내가 후작을 마주할 자격 정도는 되는 모양이구려.”

“기고만장하군. 고작 나를 끌어낸 것만으로 끝이라 생각하는 건가?”

카이트가 국왕의 곁을 비운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못했다.

근위기사단장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됐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래도 아직 최악이라거나 절박한 상황이라고 볼 정도는 아니었다.

그를 대신하여 나머지 근위기사들이 철통같이 국왕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작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 쪽에는 그렇소.”

“……??”

“우리 쪽에는 나만 있는 게 아니거든.”

지이이잉!

하지만 이내 최악이 되고 말았다.

두 번째 소드마스터의 등장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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