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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39화 (140/200)

80장: 두 번째 카드

라이오넬이 카오를 타고 카디즈 군도를 휘젓고 다니던 그 시각, 레나는 어쩐지 꺼림칙한 보고를 받았다.

보고자는 실크로 상단의 부단주 매튜, 보고 내용은 나로움 후작가의 동태에 관한 것이었다.

보고에 따르면 나로움 후작가의 병력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움직임이 분주하고, 사들이는 보급품의 양도 예년보다 상당량 증가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만 가지고 꺼림칙함을 논하기에는 다소 섣부른 면이 있었다.

지금은 통상적인 대규모 훈련 기간이었고, 그런 만큼 전체적으로 분주한 것은 당연했다.

또, 훈련의 규모를 평소보다 키운 것이라면 보급품의 양이 증가한 사실도 수긍 가능했다.

때마침 나라가 전체적으로 어지러운 상황이었다.

혹시 모를 만약의 경우에 대비코자 훈련 규모를 키운 것이라고 하면 딱히 반박 거리도 없을 터였다.

다만, 어쩐지 시기가 미묘하기는 했다.

하필이면 그리핀 군단이 카디즈 군도로 원정을 떠나 있는 시기였다.

아무리 통상적인 범주 내라지만 타이밍이 꺼림칙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어딘손의 행동도 어딘지 개운치 못했다.

서부 내륙을 초토화하다시피 한 그였다.

이건 대놓고 전쟁을 벌이자는 것이나 마찬가지.

한데, 그래 놓고는 한 차례 패하자마자 뒤도 안 돌아본 채로 줄행랑을 쳤다.

라이오넬에게 거대한 벽을 느꼈기 때문이라 해도, 이는 과한 면이 없지 않았다.

물론, 아직은 추측의 영역에 지나지 않았다.

심증을 굳힐 만한 무언가는 도출되지 않고 있었다.

실크로 상단은 동부와 나로움 후작령에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만큼 질 좋은 정보의 적시 획득은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확보하는 보급품의 양이 증가했다는 사실 역시 확률 높은 추정일 뿐,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특정하지 못했다.

시기의 미묘함과 어딘손의 개운치 못한 행보도 마찬가지였다.

미묘하고 개운치 못하다 해서 라이오넬과 그리핀 군단이 가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레나는 국왕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이런 그녀가 서부의 고난을 모른 척한다면 추후의 결과는 심히 바람직하지 못할 터.

혹시 무슨 납득할 만한 이유라도 있으면 몰랐다.

하나, 쥐고 있는 이유라고는 고작해야 추측뿐이었다.

물증은커녕 심증조차 굳히기 어려운 단순 추측 말이다.

납득할 만한 이유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결국, 레나는 이들을 보낼 수밖에 없던 입장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로튼, 당분간 왕도를 떠나 있는 게 어때?”

“저더러 왕도를 떠나 있으라고요?”

대신 이 꺼림칙함을 가벼이 넘길 생각은 없었다.

하여 친동생인 2왕자 드로튼을 찾아왔다.

그리고 이런 현 상황에 대한 설명과 함께 당분간 떠나 있을 것을 제안한 참이었다.

“말 그대로야. 확실한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좀 꺼림칙해서. 혹시 모르니 안전을 위해 잠시 떠나 있는 게 어떨까 싶은데.”

“…….”

그런데 이를 접한 드로튼의 반응은 좋지 못했다.

표정을 확연히 굳힌 그였다.

이어지는 발언 역시 마찬가지였다.

“꼭 이렇게까지 하셔야겠습니까?”

“로튼?”

“어차피 누님이 다 가져가신 상태 아닙니까? 그날 대전회의 이후로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이 지내고 있는 접니다. 이런 저를 굳이 왕도 밖으로 쫓아내기까지 해야겠느냐 이 말입니다.”

레나가 계승권 경쟁을 공식 선언했던 그 날의 대전회의.

썬더 실크와 에릭스 브란부르크를 통해 시작과 동시에 선두로 치고 나갔던 그 날 이후, 드로튼은 사실상 투명인간 취급을 받게 됐다.

정계의 누구도 그를 거들떠보지조차 않게 된 것이다.

물론, 이를 레나가 빼앗아 갔다고 보는 것은 분명 어폐가 있었다.

원래부터 투명인간 취급을 받아 오던 드로튼이었다.

그랬던 그가 잠시나마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레나 덕분이었다.

오로지 레나의 친남동생이라는 사실 하나, 이 사실 말고는 그에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성적으로 따지고 보면 레나를 탓할 이유가 전무한 것이다.

“오해하지 마, 로튼. 난 널 쫓아내려는 게 아니라 지켜 주려는 거야.”

“지켜 준다고요? 예전이라면 누님 그 말씀에 속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이미 절 한번 배신한 누님입니다. 두 번이라고 못할 리 없지요.”

하지만 드로튼은 감정에 깊게 매몰된 상태였다.

그는 현재 자신의 처지를 오로지 레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레나의 배신 때문에 다시금 투명인간이 됐다 여기는 것이다.

하여 레나의 진심을 받아들일 생각 같은 건 눈곱만큼도 없는 모습이었다.

“또,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다면, 저에게 가라고 할 것이 아니라 누님이 가셨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절 짓밟고 홀로 나아가셨던 그때처럼.”

“난 가지 않는 게 아니라, 못 가는 거야. 지금 같이 혼란한 시기에 의심만으로 자리를 비웠다가는 세력 전체가 흔들릴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드로튼에게 밝힌 그대로였다.

아무리 위험하다 한들 레나는 함부로 왕도를 비울 수 없는 입장이었다.

레나가 한 세력의 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와 그녀 세력의 와해를 노리는 음흉한 손길이 곳곳에 도사리는 실정이었다.

이런 시기일수록 리더로서 더더욱 굳건하게 중심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국왕이라는 최고의 명분과 정통성이 자리 잡고 있는 이곳 왕도에서 말이다.

“정 그렇다면 차라리 제게 대리를 맡기고 떠나세요. 따지고 보면 그게 누님 안전도 챙기고 세력도 챙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아닙니까?”

“하아, 로튼…….”

“왜요,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까? 당연히 그러시겠지요. 동생인 저에게조차 양보할 생각이 조금도 없는 누님이니까요. 이리 나오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드로튼은 이미 제대로 삐딱선을 탄 뒤였다.

이런 드로튼에게는 어떤 설득도 먹히지 않을 터.

당장은 더 얘기해 봐야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갈게. 이 일은 마음 좀 가라앉히고 차분한 상태에서 다시 얘기하자.”

“그럴 필요 없습니다. 다시 얘기해서 뭐 합니까? 어차피 저나 누님이나 서로 바뀌는 것도 없을 텐데. 이 얘기 때문이라면 더는 찾아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공사가 다망하실 텐데 괜한 시간 낭비는 마셔야죠.”

안타깝지만 짧은 시간 안에 해결될 문제 같지도 않았다.

“……갈게.”

정말 오랜만에 열렸던 남매간 대화의 장.

이것은 이렇듯 어떠한 소득도, 진전도 없이 금세 다시 닫히고 말았다.

그저 서로의 틀어진 관계, 정확히는 한 쪽이 일방적으로 토라진 관계만을 재확인한 채로.

* * *

슈라우드 왕궁 국왕 집무실.

슈라우드 왕궁 내에서도 최심처라 할 수 있는 이 집무실 앞에 일단의 무리가 서 있었다.

“왕자님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은 이쪽으로.”

1왕자 크리스토퍼와 그의 호위기사들로 이루어진 무리였다.

크리스토퍼가 국왕을 알현코자 집무실에 방문한 것이다.

지금은 집무실 앞에서 간단한 검색 절차를 거치는 중이었고 말이다.

“그럼 다녀올 테니, 잠시들 기다리도록.”

물론 크리스토퍼는 그 대상에서 제외였다.

곧장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는 그였다.

이에 근위기사가 남겨진 이들을 대기실 쪽으로 안내하며 절차를 이어 갔다.

“차례차례 병장기를 풀러 이곳에 놔주시오. 왕자님께서 알현을 마치신 후 돌려드리겠소.”

근위기사의 안내에 따라 1왕자의 호위기사들이 허리에 찬 검을 풀었다.

그런 뒤 순서대로 거치대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

그리고 여기까지의 과정 전체를 유심히 지켜보는 인물이 있었다.

이 인물의 이름은 클로렐라.

국왕 집무실에 배치된 하녀였다.

즉, 일개 하녀가 무슨 정보원이라도 되는 양 매의 눈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클로렐라가 어떤 특출난 능력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많고 많은 평범한 하녀 중 하나에 불과했다.

단지, 그녀의 이력이 특이할 뿐이었다.

그녀는 원래 이곳이 아닌 1왕녀 궁에 소속돼 있던 하녀였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은근슬쩍 국왕 쪽으로 소속을 옮긴 상태였고 말이다.

‘어라??’

그때였다.

이런 그녀의 눈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저 폼멜……?’

호위기사들이 풀어놓은 검 중 한 자루였다.

이 검의 자루 끝에 부착돼 있는 폼멜이 클로렐라의 눈에 확 하고 들어왔다.

폼멜에 새겨져 있는 문양이 너무나도 익숙했던 것이다.

아니, 익숙하다기보다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문양이었다.

‘누워 있는 두 대의 화살. 틀림없어. 그때 봤던 그 검이야.’

클로렐라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기억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과거 레나를 따라갔던 황도 아카데미에서였다.

당시 클로렐라는 레나와 함께 학장실로 갔다가, 그곳에서 비밀통로를 통해 웬 저택으로 끌려가게 됐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목격했던 것들은 그녀의 기억 속에 또렷하게 각인된 상태였다.

특히 라이오넬 못지않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던 한 인물에 대한 것은 더더욱.

그래서였다.

사실 집중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 식별조차 어려운 아주 자그마한 문양에 클로렐라가 두 눈을 번쩍 뜬 것은.

‘얼굴이 다르기는 한데, 그런 것쯤이야 조작 못 할 것도 없을 테고.’

검의 주인은 그녀 기억 속의 그 얼굴이 아니었다.

하나, 그 정도야 얼마든지 조작 가능할 것으로 판단됐다.

더욱이 1왕자의 호위기사 자격으로 입궁한 상태였다.

입궁 과정에서의 확인 역시 어떤 식으로든 넘기기가 가능했을 터였다.

‘빨리 알려야 해.’

클로렐라는 확신했다.

무언가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쩌면 왕국 전체를 발칵 뒤집을지도 모르는 커다란 일이 말이다.

* * *

“언제쯤 결정 내리실 생각입니까?”

기본적인 인사 직후 곧장 무슨 일인지를 묻는 오브리가 국왕.

이런 국왕에게 크리스토퍼가 건넨 첫마디는 반문이었다.

“결정 내리다니? 무엇을?”

“정말 모르시는 겁니까, 아니면 끝까지 모르는 척하시는 겁니까?”

“뜬금없이 찾아와서는 대관절 무슨 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것이냐?”

“하아, 후계자 문제 말입니다. 대체 언제까지 지켜보기만 하실 것인지 묻는 겁니다. 아바마마의 그 우유부단함 때문에 왕국 전체가 흔들리는 꼴이 안 보이십니까?”

반문인 동시에 힐난이기도 했다.

왕국을 극도로 어지럽게 만드는 후계자 문제에 관한 힐난.

1왕자와 3왕자의 양자 구도 때부터 따지기 시작하면 20년도 넘은 문제였다.

벌써 20년 넘게 왕국을 어지럽히는 분열의 씨앗으로 작용해 온 것이다.

“그냥 처음부터 저를 후계자로 정하셨으면 간단했을 문제입니다. 적장자라는 정통성에 동부라는 세력까지, 모든 면에서 저보다 다음 대 국왕에 적합한 인물은 없었으니까요.”

“……정말 그리 생각하느냐?”

“예, 분명 그리 생각합니다. 저보다 나은 계승권자가 있기나 합니까? 길리언이야 어차피 말할 것도 없고, 레나요? 뭐, 세간의 평가가 후하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래서요? 평가가 후하다고 해서 그 녀석의 성별이 바뀌기라도 합니까? 아니요, 그 녀석은 결국 계집에 불과해요. 저보다 나을 수가 없단 말입니다.”

특히 레나가 부상한 이후로는 완전히 최고조에 달했다.

나라 전체가 동서남북으로 분열돼 극한의 대립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 점이 너무나도 안타까운 크리스토퍼였다.

후계자가 처음부터 그로 확정된 상태였다면 겪지 않았을 혼란이고 분열이었으니까.

적어도 크리스토퍼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또, 그놈의 우유부단함이 아바마마 본인에게 불러온 결과를 좀 보십시오. 솔직히 슈라우드 역사에서 아바마마보다 허약한 국왕이 존재하기는 했습니까?”

“왕자님……!!”

함께 자리하고 있던 카이트 쉬르더 후작이 기겁하며 끼어들었다.

근위기사단장인 그가 도중에 끼어들 만큼 지금 크리스토퍼의 언사는 심각했다.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토퍼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사실이지 않습니까? 지금 아바마마는 이름만 국왕이지 실제로는 허수아비나 다름없어요. 왕국의 동서남북, 심지어 중부까지 어디 하나 아바마마의 입김이 닿는 곳이 없단 말입니다.”

“…….”

“이런 데도 심각함을 못 느끼십니까? 이게 다 아바마마의 우유부단함이 자초한 일인데도? 아니면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시는 겁니까?”

“…….”

이는 질문이라고 볼 수 없었다.

수위 측정 자체가 불가한 힐난의 연속이었다.

당연히 이에 대한 답변 역시 존재할 리 만무했다.

나올 수 있는 거라고는 오직 침묵뿐이었다.

마찬가지로 측정이 불가한, 끔찍하리만치 무거운 침묵 말이다.

“그래…….”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짧지만 영겁과도 같았던 침묵의 시간이 지난 뒤, 이윽고 오브리가 국왕의 입이 열렸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이냐?”

그리고 물었다.

끔찍했던 침묵만큼이나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간단합니다.”

이에 크리스토퍼는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답변을 내놓았다.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하고 자신만만한 태도로.

“왕위를 넘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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