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38화 (139/200)

79장: 유인

“서부군과 그리핀 군단이 카디즈 군도로 출항했다고?”

“그렇습니다, 폐하. 닷새쯤 후에는 도착할 것입니다. 그 뒤로도 폐하께서 계획하신 대로 문제없이 흘러갈 듯합니다. 어딘손이 약탈품들을 군도 곳곳에 분산시켜 뒀다고 합니다.”

어딘손 토르웨이의 어이없는 줄행랑 직후 보름 성 일대에서는 학살이 벌어졌다.

사기충천한 슈라우드 서부군의 허둥대는 해적들에 대한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이 그림은 따지고 보면 너무나도 당연했다.

애초에 각양각색의 해적들이 대군을 만들어 내륙 깊숙이 침투해 들어오는 것부터가 심히 괴상한 일이었다.

침투로도 모자라 공성까지 벌여 가며 성을 점령하는 것은 더더욱 말이 되지 않았고 말이다.

이 괴상하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가능케 만든 것은 오로지 어딘손의 압도적인 힘, 그뿐이었다.

따라서 이 힘이 없는 이상 해적들은 군대도 뭣도 아니었다.

당연히 잘 조직된 서부군의 단합력을 버텨 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보름 성 전투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서부군은 이 기세를 몰아 대반격의 레이스를 펼쳤다.

선봉에 선 라이오넬 라인하트를 뒤따라 파죽지세로 해적 잔당들을 휩쓸어 나갔다.

그리하여 빼앗겼던 다섯 개 성 전부를 되찾았다.

나아가 해적들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사라센 항구마저 수복함으로써 내륙에 침투했던 해적들을 싹 다 몰아내는 쾌거를 이룩했다.

심지어 여기까지의 과정을 전부 그리핀 군단 도착 직전에 마무리 짓고야 말았다.

그야말로 폭풍을 방불케 하는 위력과 속도를 자랑한 것이다.

다만, 이로써 모든 상황이 종결됐다고 볼 수는 없었다.

해적들의 내륙 침투부터 이를 몰아낸 것까지가 전반전이라면, 아직 후반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후반전이 펼쳐질 장소는 대륙이 아닌 카디즈 군도였다.

즉, 후반전의 주된 내용은 슈라우드의 반격인 셈이었다.

이를 위해 슈라우드 서부군과 그리핀 군단이 출항을 마친 상태였다.

단, 이 원정이 단순히 복수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이유만으로 원정을 감행할 만큼 서부의 상황은 녹록지 못했다.

특히 식량 사정이 최악에 가까웠다.

해적들이 곡물을 집중적으로 약탈해 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원정은 복수보다는 살기 위해 떠나는 원정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가서 약탈당한 곡물들을 무조건 되찾아와야만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어딘손이 용케 계획대로 움직여 주었습니다.”

“그게 어디 계획대로 움직인 거라고 할 수 있나? 분명 라이오넬과는 대적하지 말라고 했거늘, 주제도 모르고 날뛰다 천성적인 비열함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건진 것이지.”

“하지만 폐하께서는 그자의 그 비열함마저도 예측하지 않으셨습니까?”

이 모든 것은 황제 아이단의 계략이자 첫 번째 카드였다.

어딘손의 슈라우드 침략부터 곡물 집중 약탈 및 카디즈 군도 이송까지 전부다.

그리고 이 첫 번째 카드는 마지막까지 제 쓰임을 다하고 있었다.

라이오넬과 그리핀 군단을 카디즈 군도 깊숙한 곳까지 유인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으며, 실제로 이들은 현재 카디즈 군도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비록 이 과정에서 자칫 삐끗할 뻔하기는 했으나,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는 문제없는 상태였다.

전체적인 흐름은 여전히 아이단의 통제하에 있는 것이다.

“그저 단순한 예측이었을 뿐이니까. 어쨌든 그건 됐고, 다스 백작과 나머지 인원들은?”

“만반의 준비를 끝낸 채 대기 중에 있습니다. 모두 폐하의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좋아, 그럼 시행하도록. 한 치의 실수도 없이, 깔끔하게.”

* * *

“카오오오~!!”

카오는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화살들을 거들떠보지조차 않았다.

어차피 이 높이까지 닿는 것도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반도 못 미쳐 바다로 힘없이 떨어져 내릴 뿐이었다.

물론 마나가 실려 이 높이까지 닿는 화살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화살들 역시 말로는 똑같았다.

카오의 날갯짓이 일으키는 바람 앞에서는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이에 카오는 포효를 통해 선포했다.

이 바다 위 하늘 역시 자신의 영역이라고 말이다.

“그리핀이 포효한다!!”

“X발! 이번에는 어디야? 어디냐고!!”

“제발, 제발 이 배만은…….”

카오의 포효는 커다란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상은 카오의 날개 아래 놓인 해적들.

포효를 접한 해적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욕을 뱉기도 하고, 제발 자신들의 배만큼은 아니게 해 달라고 빌기도 했다.

그리고 이 다양한 반응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공포였다.

해적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공포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리핀의 포효 뒤에 이어질 어떤 재앙에 대한 짙은 두려움.

쐐애애액~

“오, 온다!!”

강하가 시작됐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내리꽂히는 카오였다.

그리고 그런 카오의 등 위에서 이내 모습을 드러냈다.

해적들을 부들부들 떨게 만드는 공포의 근원이.

“라이오넬 라인하트다!!”

카디즈 군도 도착 이후 고작 보름이었다.

고작 보름 만에 나는 카디즈 군도 해적들의 트라우마로 자리매김한 상태였다.

“우리 배야! 저 악마가 우리 배를 찍었어!!”

“아아, 안 돼…….”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부터 내가 펼칠 일련의 행동들 때문이었다.

휘이이잉~

우선 강하하는 카오의 등을 박찼다.

그러고는 먹잇감으로 선택한 배를 향해 일직선으로 쏘아져 나갔다.

여기에는 기준 같은 것이 따로 없었다.

그저 다른 배보다 좀 더 가까이 있기에 선택받았을 뿐.

그렇기에 해적들이 더더욱 좌절하는 것이기도 했다.

지이잉!

구구구구.

먹잇감을 향한 쇄도 다음 순서는 본격적인 사냥이었다.

쇄도하는 상태에서 여정을 꺼내 들었다.

데파이 스토스와 타로쉬핸드의 보강을 통해 이제는 완벽으로 거듭난, 단지 이름만 예전 그대로일 뿐인 여정이었다.

이런 여정에 오러 블레이드와 정령력을 한가득 실었다.

그리고 내리쳤다.

쿠콰과과과과~!!

먹잇감은 단숨에 박살이 났다.

오러 블레이드에 갈라지고 정령력에 짓뭉개졌다.

그리하여 침몰하고 말았다.

해적 150명 정도가 탑승 중인 대형 함선이 검격 단 한 방에 말이다.

이래서였다.

이렇게 한 방에 함선을 박살 내고 침몰시켜 버리니 해적들에게 트라우마로 자리매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이 압도적 무용이 한 번에 그치는 것도 아니었다.

“카오오~”

휘릭~

툭.

어느새 카오가 다가와 있었다.

이에 무너져 내리는 갑판을 박차고 다시 카오의 등 위로 올라탔다.

그러고는 곧장 옆에 있는 또 다른 해적선으로 향했다.

잠시 후.

콰과과광~!

쿠과과과~!

쿠구구구~!

카디즈 해상에 일정한 선율이 울려 퍼졌다.

해적선들이 연속적으로 침몰하며 내는 크고 장엄한 선율이었다.

슈라우드 군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해적들에게는 최악의 재앙으로 작용하는 선율이기도 했다.

“카오오오~!!”

여기에 마무리로 다시 한번 카오의 포효까지.

이로써 오늘 해전 역시 지난 보름간 그래 왔듯 대승으로 마무리되었다.

“우오오오~!”

“라이오넬 경!!”

“라이! 라이! 라이! 라이!”

승리 뒤 주둔지로 복귀하는 나에 대한 슈라우드 군의 반응은 앞선 그것과 달랐다.

공포에 질려 덜덜 떨던 해적들의 그것과는 정반대였다.

미친 듯 환호하고 내 애칭을 연호하는 병사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두 달이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내가 서부와 카디즈 군도에서 세운 업적이라면 그러고도 남음이 있었다.

내 등을 쫓으며 이들은 압도적인 승리의 함성만을 질러 왔으니까.

나아가 이런 병사들의 추앙은 자연스레 그 위로까지 강한 영향을 미쳤다.

“왔는가, 라이오넬? 오늘도 정말 고생 많았네.”

“또 나와 계셨습니까, 각하? 매번 이리 과하게 맞이해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데, 그 위는 그냥 적당한 수준의 위가 아니었다.

적당함이란 것을 한참 뛰어넘었다.

무려 최고 수뇌부, 그중에서도 정점인 최고사령관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현재 서부군의 최고사령관 샤코 그레이엄 후작이 직접 막사 밖으로 나와 나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서부의 영웅을 맞이하는 일인데, 그래서야 쓰겠나? 그랬다가는 저기 1만에 달하는 자네의 추종자들에게 무슨 짓을 당할지 몰라. 물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도 하고.”

“그래도 각하께서 매번 이렇게까지 해 주시는 건 제가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어허, 이 사람아, 고작 이런 환대 따위에 부담을 느껴서야 쓰나? 자네가 우리 서부에만 국한된 영웅도 아니고, 동부를 제외한 왕국 전체의 영웅이나 다름없는데 이 정도쯤은 즐길 줄도 알아야지. 난 그만둘 생각 없으니, 자네가 익숙해지게.”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단순히 맞이하는 것만이 아니라 태도마저 극히 우호적인 샤코였다.

물론 샤코의 이런 환대가 병사들의 추앙처럼 단순한 것일 리는 만무했다.

연승을 제외하고도 여러 가지 이유에 기인하고 있었다.

우선 나와 그리핀 군단의 원정 참여 그 자체였다.

우리가 이곳 카디즈 군도까지 원정을 떠나오는 건 원래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서부의 다급한 사정과 샤코의 간절한 부탁을 특별히 고려한 것이다.

따라서 샤코는 현재 정치·군사적으로 나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었다.

또, 원정군은 지금 서부가 향후 몇 년간 평안해질 토대를 마련하고 있었다.

카디즈 군도의 구석구석을 들쑤시며 눈에 띄는 배라는 배는 죄다 침몰시키는 중이었다.

동시에 군도 곳곳에 분산된 물자들을 빠르게 확보 중이기도 했다.

비단 슈라우드가 약탈당했던 것만이 아니라 해적들이 원래 지니고 있던 것까지 탈탈 털어서.

어디에 어떻게 숨겨 두든 결국 상공에서 훤히 내려다보는 카오의 눈을 피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샤코는 서부의 변경백인 동시에 노련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이미 대세가 기울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이 사실을 직접 인정하기까지 한 상태였다.

이런 그가 과거의 대립 관계를 이유로 나에게 불편함을 드러낸다?

그건 초짜 정치인도 하지 않을 멍청한 짓거리였다.

되려 더더욱 친밀하고 친근하게 접근한다면 모를까.

지금 샤코가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이런 현실적인 이유가 기반이 되어 서부와 그레이엄 후작가는 완전히 우리 쪽으로 돌아선 상황이었다.

그런 만큼 나를 향한 극히 우호적인 태도가 이상할 것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나도 당연한 태도라고 볼 수 있었다.

“그나저나 어딘손에 관한 정보는 오늘도 들어온 게 따로 없습니까?”

“그렇네. 쥐새끼도 이런 쥐새끼가 따로 없어. 본인 영역을 이만큼 들쑤셨으면, 한 번쯤은 머리를 내밀 때도 됐는데 말이야.”

지난 보름간 군도 전체를 터는 과정에서 군도의 주인임을 자청하는 어딘손은 코빼기조차 비치지 않았다.

머리를 콕 박은 채 군도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는 그였다.

아예 행적 자체를 드러내지 않으니, 이것이 단순히 나에게 겁먹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것인지 파악이 어려웠다.

“그래도 덕분에 빼앗겼던 것은 이자까지 쳐서 되찾지 않았나? 또, 자네가 버티고 있는 이상 앞으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은 벌일 생각조차 못 할 테고.”

“그렇다면 다행이기는 합니다만…….”

샤코의 말마따나 현 상황만 놓고 보면 분명 나쁠 것은 없었다.

적어도 카디즈 군도 원정 관련해서는 모든 것이 최상의 흐름으로 풀려 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현 상황에 어떤 개입이 존재하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이 개입의 목표 역시 아직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한 상태였다.

마냥 마음을 놓기에는 찝찝함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웅~ 우웅~ 우웅~

그러던 중이었다.

내 가슴 부근에서 갑작스러운 마나의 진동이 느껴졌다.

“……!!”

이는 내가 아는 진동이었다.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진동인 것이다.

나아가 한 가지 더, 짐작이 현실화하고 있음을 알리는 진동이기도 했다.

굉장히 다급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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