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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32화 (133/200)

76장: 강자의 억지

실크로 상단 콜론 백작령 지점.

지점장 바비코는 지점장 비서인 포르네와 함께 한창 서류 작업에 몰두해 있었다.

“테이블 가격은?”

“12실버요.”

“오? 고작 테이블 주제에 가격이 꽤 나가네?”

4인 가족의 한 달 생활비로 대략 4실버가 소요된다.

즉, 4인 가족 세 달 치 생활비를 지점에 테이블 하나 들여오는 데 쓴 셈.

“일부러 최상급으로 주문했죠. 너무 갔나요?”

“아냐, 잘했어. 그리고 오늘은 더 비싼 걸로 주문해.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도 사치 한번 제대로 부려 보자고.”

“그거야 쉽죠. 안 그래도 직원들이 벼르고 있거든요. 이번 기회에 지점 가구들을 죄다 삐까뻔쩍한 것들로 갈아 보자고요.”

“그래, 질러. 어차피 하루 넘기기도 힘들 테지만, 뭐 어때? 깡그리 다 질러 버려.”

그때였다.

콰장창창~!!

밖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깨지고 박살 나는 소리였다.

여기에 죄다 때려 부수니 뭐니 하는 고함들까지.

“오늘은 조금 늦었네요.”

“그러게. 낮잠들이라도 자고 왔나?”

그러나 전혀 당황하지 않는 바비코와 포르네였다.

당황은커녕 자리에서 일어나 보지조차 않고 있었다.

덜컥.

“지점장님.”

“오늘은 어디?”

“그론 파네요. 오늘은 넷이 왔습니다.”

비단 바비코와 포르네만이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직원 역시 마찬가지.

지난번과 같은 다급함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심드렁하게 이어 가는 상황 보고가 전부였다.

“알겠어. 괜히 휩쓸렸다가 다치지 말고 경비대 올 때까지 그냥 다 부수게 놔둬. 아, 그리고 상황 봐 가면서 비싼 집기들 좀 슬쩍슬쩍 밀어 주고. 때려 부수기 편하게.”

“네, 지점장님.”

보고를 마친 직원은 곧바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지점장실을 빠져나갔다.

상황에 대한 보고와 지시는 이게 끝이었다.

바깥에서는 지점이 깡패들에 의해 박살 나는 중임에도 말이다.

벌써 보름 넘게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이 상황에 무덤덤해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막으려고 해 봤자 괜한 인명피해만 발생할 뿐이었으니까.

그냥 영지 경비대가 올 때까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는 편이 나았다.

“경비대 오는 데까지 대충 30분쯤 걸리려나?”

“글쎄요, 오기는 할까요? 요즘 점점 늦어지는 걸 봐서는 어쩌면 오늘쯤은 안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하긴, 그럴지도. 뭐, 그러면 깡패들이 먼저 제풀에 지쳐서 물러가겠지.”

단, 경비대 또한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직접 막아서다 괜히 다치는 것보다는 좀 낫다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경비대가 온다고 해 봤자 깽판 친 깡패들을 연행해 가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밖의 깡패들은 어차피 잔챙이에 불과했다.

저들 좀 며칠 구속된다고 해서 딱히 달라질 것은 없었다.

물론 영주가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강력 대응이 가능했다.

지금 난리 치고 있는 깡패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저들의 우두머리인 카누와 그론, 나아가 사주한 보나파우스 상단과 드로파 상단의 지점장들까지 깡그리 잡아 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런 양아치 짓거리 따위, 두 번 다시는 꿈도 꾸지 못하도록 만들 수도 있었다.

영주가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콜론 백작은 이 마음을 먹지 않았다.

그는 그저 방관 중이었다.

비록 동부나 서부의 영주들처럼 되려 실크로 상단을 핍박하지는 않는다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방관이나 핍박이나 결국 실크로 상단이 입는 피해의 총량은 비슷했으니까.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였다.

콜론 백작이 다시 간을 보기 시작했다는 것.

두 왕자의 수작에 1왕녀의 경제적 근간인 실크로 상단이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자 레나 쪽으로 한 발짝 다가섰던 중립 귀족들이 슬쩍 간을 보기 시작했다.

왕녀의 한계에 대한 의구심이 다시금 고개를 치켜든 것이다.

“자, 밖에는 신경 끄고 얼른 어제 손해 집계부터 마무리 짓자. 얼른 보고 마치고 오늘 것도 정리 들어가야지.”

“후우, 역시나 오늘도 날밤 까야겠죠?”

“까야지, 별수 있나? 소리 들리잖아, 오늘도 화끈하게들 때려 부수는 거. 대신 이 짓거리도 며칠 안 남았어. 조금만 더 힘내자고.”

* * *

“마침 콰레디 바이퍼 백작도 계셨네요.”

레나가 지난 대화 이후 근 20여 일 만에 다시 두 왕자를 찾아왔다.

이들은 찾기 편하게 1왕자 궁에 모여 있는 상태였다.

또, 두 왕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콰레디 바이퍼 백작, 바이퍼 백작가의 현 주인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왕자님께 보고드릴 것이 있어 찾아뵀습니다. 급한 것은 아니니 제가 자리를 비켜 드리겠습니다. 편히들 대화 나누시지요.”

“그럴 필요 없어요. 어차피 백작과도 관련된 이야기를 할 참이니 자리하셔도 좋습니다.”

사실 레나는 바이퍼 백작의 위치를 미리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 타이밍에 1왕자 궁을 찾아온 그녀였다.

오늘 주제에 바이퍼 백작가 역시 깊게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저도 말씀입니까?”

끄덕.

“왕녀님께서 그러시다면야.”

이로써 4자 대면의 자리가 만들어졌다.

현 사태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4자들의 자리였다.

“전에 우리 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자신 있게 박차고 나가지 않았나? 왜, 그때와는 생각이 달라진 모양이지?”

그러자 시작부터 비아냥거리는 크리스토퍼 1왕자였다.

“하긴, 그럴 만도 해. 그러기에 경고했었잖아? 앞으로 더 재미있어질 거라고.”

그의 비아냥이 마냥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확실히 상황이 더 재미있어지기는 했다.

아티팩트 건으로 인해 실크로 상단은 근본적인 신뢰성마저 상실할 위기에 처했으니까.

“그럴 리가? 내 생각은 그대로야. 두 사람이 내건 조건은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어.”

“하, 아직도 기고만장한 걸 보면, 상황 파악이 덜 됐구나.”

“아니, 그 반대지. 상황 파악이 끝났으니까 이렇게 찾아온 거야. 예고했던 대로 둘한테 내 답을 주려고.”

단, 그 재미가 꼭 왕자들 쪽으로만 향하라는 법은 없었다.

레나 또한 지금부터 그 재미를 느껴 볼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일전에 예고했던 그녀의 답변부터였다.

“갚아.”

“뭐?”

“이번에 우리가 받은 피해 전부 갚으라고. 이게 내 답이야.”

툭.

레나가 들고 온 서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어 갔다.

“지난 20여 일간 실크로 상단이 입은 피해가 다해서 6만 골드가량이고, 곡물 거래 중단 때문에 발생한 북부의 피해가 대략 7만 골드가량이더라고. 피해액의 정확한 수치와 그 근거는 서류에 상세하게 정리해 뒀으니까 참고하고.”

“하…….”

대략 13만 골드의 피해액.

얼핏 듣기로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고작 20여 일 만에 발생한 피해액치고는 지나치게 컸으니까.

이베리아에서의 승리 이후 바이퍼 왕국으로부터 받은 돈이 170만 골드였다.

이 중 포로에 대한 몸값을 제외한 순수 전쟁 배상금은 70만 골드였고 말이다.

즉, 고작 20여 일 수작을 부린 결과가 전쟁 피해의 1/5 상당이라는 것이다.

“네가 기고만장한 게 아니라 아예 미쳤구나. 뭐? 13만 골드? 이거야 원, 어이가 없으려니.”

“말했잖아, 피해 근거는 서류에 상세하게 적혀 있다고. 보고 나면 대충 납득될 거야.”

“애초에 수치를 납득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닐 텐데요, 누님? 저희는 이걸 누님의 선전 포고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13만 골드가 합당하냐 아니냐는 이 시점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설령 1쿠퍼를 요구했다 해도 어차피 순순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터.

중요한 것은 레나가 이들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고 정면 대응을 선언했다는 점이었다.

“선전 포고라면 두 사람 쪽에서 먼저 했던 거 아니었어?”

“그럴 리가요. 저희는 흉작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뿐이라고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럼 이번 아티팩트 건은? 그것도 흉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벌인 거야? 그런 건가요, 바이퍼 백작?”

레나가 화살을 바이퍼 백작에게로 돌렸다.

실크로 상단 아티팩트 강탈에 관한 건이었다.

이것이 그를 이 자리에 남겨 둔 이유이기도 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왕녀님. 그 사건과 제가 무슨 관련이라도?”

“정말 모르시는 건가요? 습격 현장에 마법의 흔적들이 진하게 남겨져 있다던데. 개중에는 4서클 급도 심심찮게 섞여 있다 하고요.”

“글쎄요, 그게 어쨌다는 것인지 저는 도통…….”

“하필이면 습격이 일어난 시각, 그 장소 인근을 바이퍼 백작가의 마법 부대가 지나고 있지 않았나요?”

“그렇기야 하지요. 하지만 그건 저희 상단이 맡은 아티팩트를 안전하게 이송하려는 목적이었을 뿐입니다. 실크로 상단의 사례도 그렇고, 요즘 세상이 워낙 흉흉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결국 바이퍼 가문은 이 일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저희 가문이 실크로 상단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이겠습니까? 오해십니다, 왕녀님.”

당연히 백작은 극구 부인했다.

단, 입가에 띤 비릿한 미소는 조금도 지우지 않은 채로.

그러자 두 왕자 또한 바이퍼 백작을 거들고 나섰다.

“억울하면 증거를 들고 와라. 괜히 무고한 백작한테 뒤집어씌울 궁리나 하지 말고.”

“형님 말이 맞습니다. 이렇게 억지 부리는 모습, 평소의 누님답지 못하십니다.”

“억지라……. 지금 내가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 같아?”

“그럼 이게 뭐라는 거냐? 그럴듯한 명분이나 증거 하나 없이 이렇게 떼나 써 대는 게 억지가 아니라면 말이야.”

두 왕자의 말이 영 틀린 것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레나는 지금 억지를 부리는 것일지도 몰랐다.

레나가 쥐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심증일 뿐, 물증이라고는 전무했으니까.

두 왕자의 명분을 무너뜨릴 만한 어떤 정당성 같은 것도 지니지 못한 상태이고 말이다.

“그래, 두 사람 말이 맞아. 나 지금 억지 부리고 있어.”

심지어 레나도 알고 있었다.

본인이 억지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나아가 그것을 두 왕자 앞에서 대놓고 인정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어쩌지, 내 억지는 이제 시작인데?”

“뭐?”

“다들 내가 언제까지고 증거나 명분 따위를 챙길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대체 이유가 뭐야? 그동안 그렇게 해 와서? 그거야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렇게 한 거잖아. 그때는 왕녀라는 한계를 무시할 만큼 내 힘이 충분치 못했으니까.”

“무슨……?”

“하지만 이제는 내가 그럴 수 있을 만한 힘을 갖췄어. 그러면 두 사람도 여기에 맞춰서 행동을 달리해야 하는 거 아닌가? 명분 같은 거나 들이밀면서 나를 건드릴 게 아니라. 또, 설령 나를 건드린다 하더라도 적당한 선은 지켰어야 했고. 내가 진짜 억지를 부리는 일은 발생하지 않도록 말이야.”

명분이니 정당성이니 하는 것들, 이제 다 필요 없었다.

그런 것들 따위 없이 시작해도 무방했다.

힘으로 끝낸 뒤 하나 만들면 그만이었으니까.

대륙에서 제국이 항상 그들의 정의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적어도 슈라우드 왕국 내에서라면 이제는 레나에게도 충분히 가능한 방식이었다.

단지, 그간 레나의 행보와 왕녀라는 한계가 모두의 판단을 살짝 흐리게 만들고 있었을 뿐.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고, 안 지켰네? 행동을 달리하기는커녕 지켜야 할 선조차 지키지 않았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간단해. 보여 줄게, 두 사람이 무슨 짓을 한 건지. 그리고 지금 내가 진짜 억지를 부리면 어떻게 되는지까지.”

그래서 제대로 보여 줄 작정이었다.

레나가 가진 힘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왕녀라는 한계 따위, 더는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는 사실 역시도.

“사네.”

덜컥.

“예, 왕녀님.”

레나의 부름에 문이 열리며 사네가 들어왔다.

이 순간을 위해 밖에서 대기 중이던 그였다.

“시작해.”

“명을 받듭니다.”

그리고 시작되었다.

힘을 가진 자의 진짜 억지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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