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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30화 (131/200)

74장: 앙숙의 연합(2)

슈라우드 중동부 콜론 백작령 실크로 상단 지점.

이곳은 중립이지만 최근 1왕녀 쪽에 한 발 가까워진 것으로 평가되는 영지였다.

덕분에 실크로 상단 지점이 세워졌으며, 영지 내에서 그 세를 빠르게 불려 가는 중이었다.

당연히 실크로 상단 콜론 지부의 지점장인 바비코 또한 바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동부와 서부에 설립된 지점들은 요즘 엉망진창이라죠?”

바비코가 밀렸던 서류 작업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이었다.

지점장 비서인 포로네가 질문을 던져 왔다.

최근 실크로 상단 지점들이 겪는 수난에 관한 질문이었다.

“그렇다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진다더라고. 기존 상단들이 손잡고 미친놈처럼 깽판을 쳐 대니 이건 뭐 버틸 수가 없다더구만. 사실상 지점 폐쇄나 다름없는 상태라던데?”

여기서 기존 상단이라 함은 볼 것도 없었다.

1왕자와 3왕자 측 상단들이었다.

이들이 짝짜꿍하여 매일같이 실크로 상단에 깽판을 쳐 대는 것이다.

물론 실크로 상단이라고 하여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았다.

영지에 정식으로 신고도 하고, 무력을 동원하여 방어도 해 봤다.

그러나 죄다 허튼짓에 불과했다.

신고에 대해 영지는 묵묵부답이었다.

차라리 묵묵부답이면 다행일 지경이었다.

영지가 직접 나서서 실크로 상단의 영업 자체를 정지시켜 버리기도 했다.

되려 피해자인 실크로 상단에 난동죄를 뒤집어씌워 가면서 말이다.

이 지경이니 무력을 동원한 경우는 굳이 말로 할 필요도 없었다.

“후우, 요즘 소식만 들으면 진짜 식겁한다니까요. 저 원래 동부 드라단 지점에 배정되기로 했었잖아요. 그때 드라단 지점으로 갔으면 지금쯤……, 어휴.”

“그런 너를 여기로 데리고 온 게 나인 건 잊지 않았겠지?”

“네네, 그럼요. 아주 그냥 뼛속에 새겨 두고 있습지요. 지점장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소인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그럼 그럼. 잊지 말아야지. 그렇고말고.”

이곳 콜론 영지는 동부와 지리적으로 가깝긴 해도 결국 중부에 속해 있었다.

덕분이었다.

만약 여기가 동부나 서부에 속해 있었다면 이리 가벼운 농담이나 주고받는 것은 불가능했을 터.

아마 지금쯤 한창 난장판 속을 구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나저나 얼른 이 난리 통이 수습돼야 할 텐데. 매튜 부단주님이 언제쯤 본격적으로 움직이실지…….”

쾅! 콰당! 쿠당탕!

“뭐, 뭐야?”

그때였다.

밖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깨지고 박살 나는 소리였다.

여기에 이런저런 고함들까지.

덜컥!

“지점장님! 빨리 나와 보셔야겠습니다!”

때마침 직원 하나가 지점장실로 달려 들어왔다.

“뭔데? 무슨 일인데?”

“지금 조라가 조직원들 이끌고 와서 행패를 부리고 있습니다!”

“카누 파의 조라 부장? 그자가 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아주 그냥 죄다 박살 낼 기세예요! 얼른요!”

그렇게 직원의 재촉을 받은 바비코가 얼른 밖으로 나갔다.

“누구 마음대로 여기서 장사하래? 앙?”

“다 부숴!”

“쓸어버려!”

그러자 바비코의 눈에도 들어왔다.

말 그대로 지점을 다 부수고 쓸어버리는 깡패들의 모습이.

이에 잠시 멍해졌던 정신을 부여잡고 얼른 잘 아는 인물에게로 향했다.

“조라 부장, 대체 왜 이러는 거요?”

“아, 있었구려 지점장.”

그의 이름은 조라.

그론 파와 콜론 영지를 양분하고 있는 건달조직 카누 파의 행동대장이었다.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닙니까? 내가 여기 지점장인데. 그보다 말 좀 해 주시오. 대체 왜 이러는 거요?”

“별거 있겠소? 이 바닥 생리가 다 그런 것을. 콜론 영지에서 장사하려면 우리 카누 파에 성의 표시를 제대로 해라, 뭐 대충 이런 뜻이지.”

“그게 무슨 말이오? 내가 분명 일주일 전에도 카누 대장이랑 식사도 하고, 술도 먹고, 이래저래 할 만한 것들은 다 했는데? 조라 부장도 그 자리에 같이 있지 않았습니까?”

이 바닥 생리 같은 거 바비코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가 상인 생활 몇 년 차인데, 그런 기본적인 것 하나 모르겠는가?

또, 아는 데에서만 그치지도 않았다.

직접 실천에 옮겼다.

충분한 성의 표시를 한 것이다.

그것도 여러 차례, 꾹꾹 눌러 담아서.

“아, 글쎄 그런 건 난 무식해서 잘 모르겠고.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이오. 그러니 다치기 싫으면 저리 비키시오.”

“아니, 조라 부장. 그러지 말고 일단 대화로…….”

“쓰읍! 대화는 카누 형님이랑 하고, 일단 비키라니까? 진짜 다치고 싶소?”

“아…….”

“뭐 해? 일들 안 할 거야? 돌아가서 줄빠따 한번 돌려? 다 때려 부수라니까!”

쾅! 콰지직! 쿠당탕! 콰광!

이러면 바비코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죄다 때려 부수는 걸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그나마 직원들이라도 다치지 않게 멀찍이 떨어뜨려 놓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

이 상황에 대해 짐작 가는 바가 없지는 않았다.

콜론 영지에는 1왕자 측 보나파우스 상단의 지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 지점장이 카누와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

벌써 10년 넘게 콜론 영지에서 함께해 온 것이다.

바비코가 아무리 구워삶으려 해도 당장은 극복하기 어려운 커넥션이었다.

이는 비단 여기 콜론 지점과 바비코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생인 실크로 상단이 가지는 본질적인 한계라고 봐야 했다.

어쨌든 이 난장판은 영지 경비대가 온 뒤에야 가까스로 정리되었다.

물론 지점은 이미 초토화된 상태였지만.

더욱이 이게 다가 아니었다.

콰장창창!!

“지점장님, 지금 그론 파 깡패들이 행패를 부리고 있습니다!”

바로 다음 날, 난장판은 또다시 벌어졌다.

이번 깽판의 주체는 3왕자 측 드로파 상단과 손잡은 그론 파였고 말이다.

“하아…….”

바비코는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 * *

“두 사람 사이가 이렇게 좋은 줄은 미처 몰랐네.”

레나가 마주 앉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합만 놓고 따지면 이런 앙숙이 또 없는 그런 조합이었다.

벌써 10년 넘게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그런 사람들이었으니까.

한데, 그런 두 사람이 지금은 한마음 한뜻으로 한 곳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마치 우애 좋은 형제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왕녀 따위가 날뛰니 별수 있나? 일단은 왕궁의 기강부터 바로잡고 봐야지. 그러게 얌전히 제국으로 시집이나 갔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 아니냐.”

한 사람의 정체는 그의 어휘 선택에서 곧바로 알 수 있었다.

크리스토퍼 1왕자.

천박하고 오만한 천성을 어휘에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인간은 슈라우드 왕궁 내에 크리스토퍼, 단 한 사람뿐이었다.

“왕녀 따위가 날뛰어서라……. 길리언,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이에 레나가 나머지 한 사람에게 물었다.

너도 크리스토퍼와 같은 생각이냐고.

그러자 상대로부터 명시적인 답변이 나오지는 않았다.

질문을 받은 상대, 3왕자 길리언 바이나프 슈라우드는 침묵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확실히 말하고 있었다.

자신 역시 크리스토퍼와 같은 생각이라고.

“하긴, 굳이 들을 필요는 없겠네. 두 사람이 이렇게 나란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답은 충분히 됐으니까.”

주지했다시피 10년 넘게 계승권 경쟁을 벌여 오던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아예 공개적으로 손을 잡은 것이다.

오직 레나 하나를 고꾸라뜨리기 위해서.

당연하게도 그냥 손만 잡고 끝일 리 만무했다.

실크로 상단에 대한 전방위적 공격부터 곡물 거래 금지를 통한 북부 압박까지, 그 목적에 부합하는 수작질 역시 활발하게 펼쳐 가는 중이었다.

“대신 다른 걸 하나 물어볼게. 실크로 상단이야 어차피 그렇다 치고, 북부는 대체 어쩔 생각인 거야? 이렇게 대놓고 적대하면 바르코스 후작의 분노는 어떻게 감당하려고?”

“애초에 후작이 자초한 일이다. 사리 분별 못 하고 왕녀 같은 것 편에 서니 이런 험한 꼴을 당할 수밖에 없는 거지.”

“바르코스 후작이 내 편에 섰었던가?”

“바르코스 후작이 라인하트와 가깝다는 건 개나 소나 다 아는 사실이다. 괜한 걸로 진 빼지 말지?”

“무엇보다 저희가 바르코스 후작의 심기를 고려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누님. 곡물 거래 금지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내린 어쩔 수 없는 결단이었으니까요.”

단순한 감정적 반응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들의 수작질은 이성적 측면에서도 나름의 근거를 갖추고 있었다.

“지금 서부는 완전히 난리입니다. 흉년이 닥치니 해상 군도의 해적들이 아예 미쳐 날뛰고 있어요. 거래든 전쟁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을 막으려면 타지역으로의 곡물 유출을 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명분이 있으니 괜찮다? 그럼 서부는 그렇다 치고, 동부는?”

“그딴 게 꼭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쨌든 우리도 이유는 있지. 국경에서 포착되는 제국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언제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서부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대비가 필요해.”

물론 실상은 어디까지나 끼워 맞춘 근거에 불과했다.

크리스토퍼의 명분이 특히 그러했다.

국경에서 제국군의 움직임이 포착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단, 모두가 능히 짐작 가능한 사실이기도 했다.

이 움직임이 크리스토퍼와 제국의 설정극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쯤은 말이다.

“그래, 두 사람 뜻이 그렇게 확고하다면야.”

다만, 이들의 명분은 억지든 뭐든 일단 나름의 근거를 갖췄다고 봐야 했다.

여태껏 철저히 명분에 기반한 행보를 이어 온 레나였다.

이런 그녀의 행보대로라면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부분이었다.

“알겠어,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얘기해 봐, 요구 사항이 뭔지.”

“진작 그럴 것이지. 간단하다. 썬더 실크 독점권을 포기하고, 그리핀 군단이 획득해 오는 몬스터 부산물을 공정하게 분배해라. 또, 실크로 상단이 가져간 마탑 아티팩트 판매 대행 권한도 내려놓고.”

“누님이 이 세 가지의 이행을 약속하시면, 형님과 저도 현 상황의 수습을 위해 힘쓰겠습니다.”

그래서인지 두 왕자의 요구는 지나치게 노골적이었다.

실크로 상단의 주요 기반은 크게 다섯 가지였다.

이 중 네 가지를 완전히 무너뜨리겠다는 의지가 훤히 드러났다.

곡물을 포함한 기타 일반 거래에 대한 방해는 이미 진행 중이었고, 나머지 세 가지는 레나를 굴복시킴으로써 얻어 내겠다는 것이다.

“알지, 두 사람 요구가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거? 요구를 좀 더 현실적인 내용으로 수정하는 게 어때?”

“왜 그래야 하지? 착각하지 마라. 급한 건 우리 쪽이 아니야.”

“그래서, 수정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는 거지?”

“누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든 저희는 현 상황에 맞는 적절한 요구를 하는 겁니다. 수정 같은 건 없습니다.”

레나로서는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그렇다고 두 왕자 쪽에 적정선에서 합의할 생각이 있어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두 사람 뜻은 잘 알았어.”

해서 레나는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곧장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잘 알았으니까, 조만간 이쪽에서도 답을 보낼게. 그때 다시 얘기하자.”

“얘기는 무슨 얘기? 지금이 아니면 얘기할 기회조차 없을 거다. 앞으로 더 재미있어질 거거든.”

“그것도 가 보면 알게 되겠지. 어쨌든 난 이만 가 볼게. 그럼 또 봐.”

그렇게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아무런 성과 없이 마무리되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계승권자들 간의 협상 테이블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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