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28화 (129/200)

73장: 남부행의 성과

덜컹, 덜컹, 덜커덩~

기절한 상태의 볼티너 2왕자와 후이그 보토 후작.

그들은 현재 온몸을 꽁꽁 묶인 채로 수레에 짐짝처럼 실려있었다.

이대로 짐짝 취급을 받으며 테네시아의 왕도로 끌려갈 예정인 것이다.

“저들은 정신 차릴 새도 없이 왕도에 도착하는 대로 공개 처형 될 거야. 혹여라도 그대의 정체가 발설되는 일은 절대 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이런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크레이그 왕자가 이내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한 가지 다짐이자 약속을 건네 왔다.

“왕자님께서 직접 신경 써 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전혀 걱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딱히 걱정하지는 않았다.

단순히 크레이그의 약속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 사람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일부러 손속을 좀 과하게 써 두었다.

특히 정신적인 부분에 집중해서.

따라서 설령 중간에 깨어난다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온전하지 못한 정신상태일 테니까.

“저것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대신 다른 것들에 관심을 돌렸다.

돌아간 내 시선이 향한 곳은 마치 관짝처럼 아예 뚜껑을 덮어 버린 또 다른 수레였다.

그 쓰임새가 외양과 완벽하게 부합하는 수레이기도 했다.

안에 두 구의 시체를 싣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드마스터 크루젠 벤투스 후작과 6서클 대마법사 스루지아넨 카이탄의 시체 말이다.

“우선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은밀하게 보관해 둘 생각이야. 제국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모르니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는 카드로 쥐고 있어야지. 쥐고 있다 보면 언젠가는 제국을 공격하는 카드로 쓰게 될지도 모르고. 물론, 당장은 어림도 없는 얘기긴 하지만.”

카밀라가 피만 쪽 빨아먹은 덕분에 시체는 아주 온전한 상태였다.

제국의 테네시아 내전 개입 사실을 증명하는 데에 더할 나위 없는 최상의 증거물인 것이다.

심지어 저 두 구만이 아니었다.

카운테스 평원에서 처리한 소드마스터까지 하나가 더 있었다.

한창 조사 중이니 머지않아 그 정체 또한 밝혀질 터였다.

“솔직히 지금 저것들만 생각하면 기분이 아주 더러워. 제국이 벌인 짓거리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가지고도 아무런 대가도 받아 낼 수가 없다는 점이.”

문제는 이 확실한 증거물을 써먹을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국제 정치에서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힘의 논리였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공개해 봐야 오히려 제국에게 공격의 빌미만 주게 될 것이 빤했다.

일단 깔끔하게 짓밟아 놓으면 증거야 그다음에 얼마든지 조작 가능하니까.

하여 당장은 기분이 어떠하든 간에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 더러움, 왕자님만의 감정이 아닙니다. 저와 레나 왕녀님은 물론이요, 마이바크 왕국의 왕세자 저하까지 모두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입니다. 테네시아뿐 아니라 슈라우드와 마이바크 역시 결국은 묻어 둬야 했으니까요.”

비단 크레이그 왕자와 테네시아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크레이그 왕자와 같은 감정을 품은 왕국의 리더들이 이미 둘이나 더 있었다.

여기에 이들의 중심에 서 있는 나까지 포함하면 벌써 셋.

“하지만 지금 이대로 쭉 나아간다면 제국과 아이단 황제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 작정입니다.”

“좋아, 그대라면 충분히 믿을 만하지. 그 길에 나와 테네시아 왕국도 동참하겠네. 한번 같이 만들어 가 보자고.”

그리고 오늘, 이 셋이 넷으로 늘어났다.

곧 국왕이 될 크레이그 왕자가 테네시아 왕국을 이끌고 여기에 가담한 것이다.

적의 전력 약화와 아군 전력 강화를 동시에 이뤄 낸 셈이었다.

정령석부터 드워프, 그리고 테네시아 왕국까지, 이만하면 제국을 향한 본격적인 반격 또한 가시권에 들어온 셈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정말 잠깐이라도 왕도에 들를 생각은 없나? 공개적으로는 힘들다 해도, 나와 왕국의 은인에게 최소한의 대접은 하는 것이 도리인데…….”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흉작인 상황에 뒷정리해야 할 것들까지 넘쳐나지 않으십니까? 분명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실 겁니다. 또, 저 역시 제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워 뒀습니다. 여기서 바로 복귀하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으음,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대신 갈 때 가더라도, 이거 하나만은 절대 잊지 말게. 그대의 뒤에는 항상 나와 테네시아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이로써 나는 대륙 남부 행을 완벽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 목표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초과 달성한 상태로 말이다.

* * *

“어르신, 저 왔습니다.”

테네시아 왕국에서의 일을 마친 뒤로 석 달여가 흐른 현재, 나는 슈라우드 왕도에 당도한 상태였다.

그리고 왕도에 발을 들이자마자 한숨 돌릴 새도 없이 곧바로 향한 곳이 있었다.

레나가 있는 왕궁이 아니었다.

바로 이곳, 데파이 스토스의 거처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나야 당연히 데파이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기도 하고, 또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한 분야의 대가였으니까.

“…….”

그러나 내 인사는 깔끔하게 씹혔다.

씹힌 정도를 넘어 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그였다.

그런 데파이의 시선은 오로지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인사를 건넨 내가 아닌 내 뒤편, 비정상적으로 땅딸막하고 두꺼운 인물에게로.

물론 이런 시선의 집중이 고작 특이한 외양 때문일 리는 없었다.

그런 부수적인 것 따위가 대가의 시선을 이토록 오래 잡아끌 수는 없는 노릇.

원인은 이 인물의 중얼거림에 있었다.

“이 아이는 무게가 살짝 덜 잡혔군. 이 녀석은 중심이 약간 빗나갔어. 으음, 이건 좀 많이 엇나갔는데? 그래도 이 아이는 나름…….”

언제나 그렇듯 데파이의 무구들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중얼거림은 바로 이 무구들에 대한 평가였다.

굉장히 무성의해 보이는 평가이기도 했다.

대충 쓱 훑어보고 한마디 남기는 것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핵심이었다.

널브러진 무구들이 지닌 핵심이자, 데파이의 시선을 오롯이 집중시키는 핵심.

“흐음.”

중얼거림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핵심만을 탁탁 짚어 내는 소름 돋으리만치 완벽한 평가의 결과물이었다.

순식간에 널브러져 있는 모든 무구에 대한 평가를 마무리 지은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비정상적으로 땅딸막하고 두꺼운 인물, 드워프 타로쉬핸드의 시선이 데파이에게로 향했다.

“이 덜 여문 녀석들, 늙은 인간 네가 빚어낸 아이들인가?”

“그렇다면?”

“그렇다면 좀 실망이군. 여정과 심연을 탄생시켰다길래 꽤나 기대를 품고 왔거든.”

드디어 펼쳐진 대가들 간의 첫 대화.

이것은 객관적으로 볼 때 긍정적인 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타로쉬핸드가 시작부터 지나치게 직설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이 정도만 해도 제국 대장간에 있는 웬만한 드워프 못지않을 텐데?”

“흥! 자유를 억압당한 상태에서 빚어진 아이들이 정상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인간의 탐욕 때문에 일그러진 채 태어난 아이들을 잣대로 감히 우리 드워프를 모욕하지 마라.”

“그렇단 말이지……?”

물론 충분히 짐작 가능했던 전개이기는 했다.

라바오레 지대에서 드워프와의 첫 대면을 떠올려 보면 간단했다.

당시 내가 도움을 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갈등의 꽃이 만개했었다.

그만큼 인간에 대한 골이 깊은 것이다.

비록 타로쉬핸드가 선발대로서 세상에 발을 내딛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이 골이 벌써 메워졌을 리는 만무했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재미있는 친구를 데리고 왔구나.”

“그렇죠? 역시 데파이 님이라면 그리 여기실 줄 알았습니다. 블랙핸드 일족의 타로쉬핸드라는 친구입니다.”

“좋군. 실망했다고 했나, 타로쉬핸드? 그럼 안으로 들어와라. 진짜 내 아이라고 할 만한 녀석들을 보여 주지.”

그렇기에 정말 탁월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시간이 필요한 이 시점에 타로쉬핸드를 데파이에게 데리고 온 것은 말이다.

타로쉬핸드의 태도는 직설적이다 못해 공격적이었다.

하지만 데파이에게서 불쾌한 기색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굉장히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였다.

내가 처음 굴타르 산의 흑광석을 내밀었을 때의 표정과 비슷하달까?

자신에 버금가는 대가를 보니 오랜만에 제대로 흥미가 동한 모양이었다.

“진짜 아이? 확실한 것이냐, 늙은 인간? 이곳에 있는 아이들처럼 또 나에게 실망만 안겨 주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 여정과 심연에 기대를 품었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울 거야. 약속하지. 그리고 괜찮다면 나도 자네 등에 메고 있는 그 도끼를 한번 보고 싶군. 얼핏 보기에도 범상치가 않아.”

“흥, 그래도 일단 보는 눈은 확실하군. 이 대부 스룬팅에는 우리 블랙핸드 일족의 혼이 담겨 있다. 당연히 범상치 않을 수밖에…….”

장인들은 그렇게 각자가 지닌 작품 이야기에 심취해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나라는 존재는 또다시 까맣게 잊히고 말았다.

물론, 이런 종류의 소외라면 나로서는 얼마든지 환영이었지만.

이것으로 타로쉬핸드에 관한 문제들이 일거에 해소된 셈이었다.

그의 거처부터 멘토까지, 전부 한 방에 말이다.

* * *

“여길 들어간다고? 진짜 여길 들어가는 거유, 라트 형?”

끄덕.

“아무리 라트 형이어도 여긴 좀 아닌 것 같은데……? 정말로 들어가도 괜찮은 거 맞수?”

에치오가 거듭해서 물었다.

그의 눈앞에 열려 있는 거대한 문.

진짜 저 문 너머로 들어가도 되는 것이 맞는지, 정말 그래도 괜찮은 것인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괜찮다.”

“으으음…….”

라트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터.

그를 믿기에 대륙 남부를 떠나 북부인 이곳 슈라우드까지 따라온 에치오였다.

물론 라트가 에치오의 도박 빚을 갚아 주기는 했다.

목숨 던져 가며 돈을 벌었음에도 아직 반도 갚지 못한 그 큰 빚을 말이다.

또, 안정적인 일자리를 마련해 주겠다고 꼬드기기도 했다.

카운테스 성에서의 보수만큼은 아니지만, 평균적인 용병 벌이보다는 훨씬 풍족할 것이라는 첨언까지 곁들여 가면서.

솔직히 이런 것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단, 그렇다 해도 가장 밑바탕에 깔린 전제는 어디까지나 라트에 대한 믿음이었다.

전장에서 함께 뒹굴며(?) 쌓인 끈끈한 전우애를 믿었기에 여기까지 따라온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충만한 믿음을 기반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에치오는 거듭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라트가 에치오를 데리고 들어가려 하는 곳이 그런 장소였기 때문이다.

일개 3급 용병 나부랭이가 마음대로 드나든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그런 곳.

일개 3급 용병 나부랭이는 언제 죽어 나가도 이상할 것이 없는 그런 장소.

“여긴 왕궁인데? 나 같은 놈이 대체 무슨 이유로, 또 뭘 믿고 왕궁에 들어간다는 거유? 함부로 들어갔다가 무슨 경을 치려고?”

“네 새 직장.”

“직장? 내 새로운 직장이라고? 여기 슈라우드 왕궁이?”

“비아트릭스 셀레스티나 슈라우드 1왕녀님 호위. 네 새 직업.”

“하하하…….”

왕궁이 새 직장이라는 것만으로도 까무러칠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주 업무는 왕녀 호위라는 것이다.

갈수록 가관이 아닐 수 없었다.

하도 어이가 없다 보니 이제는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하하, 하아…… 라트 형이 뭐, 그 라이오넬 라인하트인가 하는 왕녀님 약혼자라도 되슈? 그런 것도 아니면서 대체 무슨 수로 나를 왕녀님 호위로 넣어 주겠다는 거유?”

슈라우드 출신도 아닐뿐더러, 슈라우드어라고는 쥐똥만큼도 구사할 줄 모르는 에치오였다.

그렇다고 무력이 출중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고 말이다.

이런 에치오를 다이렉트로 왕녀 호위 자리에 박아 준다?

세기의 로맨스로 유명한 왕녀 약혼자 라이오넬 라인하트쯤 되는 것이 아니고야 턱도 없는 얘기였다.

에치오로서는 당연히 헛소리로 치부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수, 내가 잘못했수. 좋은 일자리 구해 줘야 한다고 내가 형을 너무 보챈 모양이우. 이제 안 그럴 테니까, 장난 좀 그만…… 엉? 잠깐만.”

그런데 그때, 문득 에치오의 뇌리를 스치고 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방금 에치오가 본인의 입으로 내뱉은 어떤 단어였다.

정확히는 누군가의 이름.

슈라우드까지 오는 길에 수시로 들었던 이름이기도 했다.

“라이오넬? 라이오…… 넬?”

드워프 타로쉬핸드로부터였다.

테네시아 국경에서부터 동행한 그가 라트를 부르던 이름인 것이다.

다만, 웬 대장간에서 타로쉬핸드와 헤어진 뒤 여기 왕궁 앞에 다다르기 전까지만 해도 에치오는 이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다.

“에이, 아니지? 아닐 거야. 그렇지, 라트 형? 형이 무슨 라이오넬 라인하트겠어. 말도 안 되지.”

라이오넬이라는 이름이 흔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희귀한 것도 아니었다.

또, 라트는 대륙 동부 출신이었다.

그의 용병패에는 분명 그리 적혀 있었다.

더욱이 라트는 단검의 명수였다.

검의 대가로서 소드마스터에 오른 라이오넬 라인하트와는 분야가 다른 것이다.

“분명 아닐 거야. 내가 아무리 감으로 먹고살기로서니 무슨 그런 거물을 붙잡아? 그럴 거였으면 애초에 도박 빚도 지지 않았겠지. 그럴 리가 없…….”

물끄럼.

“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이며 형 반응을 보면 또 아닌 게 아닌 것도 같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얼마든지 조작 가능한 것들이었다.

용병패?

라이오넬 라인하트쯤 되면 용병패 위조야 식은 수프 먹기일 터.

단검의 명수?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 또한 왠지 소드마스터쯤 되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무엇보다 현 상황이 너무나도 압도적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왕궁 정문에서 새 직장이니, 왕녀 호위니 등을 입에 담은 라트였다.

그것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는 듯 아주 당당한 태도로 말이다.

분명 말도 안 되는 가정인데, 상황이 이러니 에치오의 의식이 자꾸만 그쪽으로 흐르는 것이다.

“라트 형, 그렇게 물끄러미 쳐다보지만 말고 뭐라고 말 좀 해 보슈. 아니지? 내가 너무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맞다.”

“그러니까, 뭐가 맞는다는 거유? 내 생각? 아니면 말도 안 된다는 거?”

“네 생각.”

그리고 이내 라트가 이 혼란에 종지부를 찍어 주었다.

에치오의 말도 안 되는 가정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줌으로써.

“나다. 라이오넬 라인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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