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27화 (128/200)

72장: 재회(2)

이미 승리에 대한 확신을 품은 크루젠.

동시에 기쁨, 희열과 같은 감정들도 함께 품은 그였다.

이런 감정들이 어둠을 타고 나에게까지 또렷하게 전해져 왔다.

경연에서의 치욕으로 쌓였던 것들이 확실히 적지 않은 모양이었다.

“고맙다라…….”

“이렇게 알아서 사지로 뛰어들어 줬는데, 당연히 고마울 수밖에. 예상치 못한 선물까지 안겨 준 셈이니 더더욱.”

슈아악~!

“그 감사 인사, 아쉽지만 받기 어려울 듯하군요.”

콰과광!!

“그래도 내 양심이란 것이 아직 완전히 닳아 버린 것은 아니라서.”

그러나 너무 이른 확신이고 희열이며 감사였다.

더불어 그 방향 또한 잘못 설정돼 있었다.

“내가 정말 아무 대책도 없이 여기 뛰어들었다고 생각합니까? 멍청하게 오만이나 부리는 중이라고?”

“뭐……?”

“천만에. 오히려 내가 더 고맙습니다. 후작과 백작, 두 사람 모두에게. 덕분에 나야말로 황제에게 정말 좋은 선물을 안겨 줄 수 있게 됐으니까.”

확신과 희열은 크루젠의 것이 될 수 없었다.

당연히 그에 따른 감사 역시 마찬가지.

올바른 방향은 반대가 돼야 했다.

크루젠이 내게 하는 것이 아닌, 내가 크루젠에게 표하는 것으로.

우우우웅~

파지직!

“헛!!”

이내 그 증거가 도출되기 시작했다.

나나 크루젠으로부터가 아니었다.

우리와 다소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인물, 스루지아넨 카이탄으로부터였다.

마법의 완성을 목전에 둔 그에게 뜻밖의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웬 놈…….”

그 변수란 바로 갑작스러운 습격.

갑자기 튀어나온 무언가가 스루지아넨을 습격해 들어갔다.

파지지직!

물론, 스루지아넨이 이 습격에 다이렉트로 뚫린 것은 아니었다.

명색이 6서클 대마법사인 그였다.

당연히 수준 높은 방어용 아티팩트를 보유하고 있었다.

습격자의 출현과 동시에 이 아티팩트가 작동하며 방어막이 형성됐다.

그러고는 스파크를 튀겨 가며 습격자를 막아서는 중이었다.

파지직~ 콰장창!!

문제는 그 시간이 매우 짧다는 점이었다.

방어막은 순식간에 박살 나 버리고 말았다.

“무, 무슨!”

이에 대한 스루지아넨의 반응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허무하리만치 너무 쉽게 뚫려 버린 것이다.

스아아~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는 납득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습격자의 정체를 안다면 말이다.

무려 뱀파이어 퀸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튀어나와 스루지아넨을 습격해 들어가는 존재는.

“젠장!”

파스스슷.

결국, 스루지아넨이 결단을 내렸다.

나를 목표로 준비해 가던 대형 마법.

거의 완성에 다다른 그것의 캐스팅을 중단한 그였다.

“그레이트 실드.”

스루지아넨 정도 되면 충분히 느낄 수 있을 터였다.

카밀라의 힘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그렇기에 우선 이 기습 상황부터 모면하는 선택을 내린 것이다.

콰지지직!

그러나 이미 늦었다.

6서클 대마법사와 뱀파이어 퀸.

비슷한 실력자끼리의 대결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런 대결에서 마법사가 상대에게 처음부터 근접 거리를 허용한다?

반쯤 지고 시작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더욱이 카밀라는 지금 그녀와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최고의 조력자까지 손에 쥐고 있는 상태였다.

사아아아~!

바로 심연이었다.

어둠으로부터 태어난 사이하고 음습한 녀석들끼리의 조화.

이보다 잘 어울리기는 힘들었다.

나를 제외한다면 카밀라야말로 심연의 힘을 가장 효율적으로 끌어내는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이렇듯 쿵짝이 맞는 어둠의 자식들끼리 합작해 들어가니 그 위력은 배가 되었다.

콰장창창!!

고작 메모라이즈 된 마법 따위가 버티고 말고 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뛰어넘었다.

결국, 스루지아넨의 두 번째 방어막마저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방어막으로써의 기능은 제대로 발휘해 보지도 못한 채로 말이다.

“헉……!!”

이쯤 되면 다음은 없었다.

스루지아넨이 자력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제는 카밀라가 말 그대로 정말 코앞이었기 때문이다.

메모라이즈 마법조차 시전이 어려울 만큼.

따라서 이번에는 스루지아넨 쪽에 외부적 요인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내게만 집중해도 모자랄 텐데요?”

슈아악~

콰캉!!

“크윽.”

하나, 그 유일한 가능성마저도 철저하게 차단됐다.

내가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으니까.

애매하게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바람에 되려 손해만 보게 된 크루젠이었다.

그리고 그사이, 상황은 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아, 안…….”

스아아~

덥석.

접근을 마친 카밀라의 백지장 같은 손이 스루지아넨의 목을 덥석 움켜쥐었다.

다만, 그 목을 곧장 꺾어 버리지는 않았다.

목을 꺾는 대신 송곳니를 내미는 카밀라였다.

콰득.

“컥, 커거걱.”

꿀꺽꿀꺽.

흡혈을 위함이었다.

무려 6서클 대마법사의 피였다.

피에 깃든 힘을 생각하면 그대로 흘려보내기 아쉬운 것이다.

하여 얼른 송곳니를 박아 버리는 카밀라였다.

“미친!!”

이 광경은 당연히 크루젠의 눈에도 포착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광경이었으니까.

인간의 피를 쪽쪽 빨아먹는 장면은 그만큼 기괴한 것이었다.

“집중하시라니까.”

그래도 그러면 안 됐다.

어떤 광경이 펼쳐지든 단 한 순간도 시선을 빼앗겨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크루젠이 마주하고 선 상대 때문이었다.

그 상대는 빈틈 따위를 못 본 척해 줄 만큼 관대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부분만 더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성격이라면 모를까.

사아아아.

더욱이 지금 그 상대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까지 마친 뒤였다.

카밀라의 손에 쥐어져 있던 심연.

그것이 어느새 내 손으로 옮겨 온 상태였다.

크루젠이 흡혈 장면을 흘깃하는 그 짧은 틈에 말이다.

쿠구구구~

이렇게 되면 힘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심연이 없는 상태의 나조차 버거워하는 크루젠이었다.

이런 상황에 내가 심연까지 손에 쥐었다.

사실상 상황 종결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쿠과과광!!

“커헉……!”

챙그랑.

실제로도 그러했다.

악재가 겹칠 대로 겹친 크루젠은 더 이상 내 일격을 받아 내지 못했다.

압도적인 무게에 짓눌려 속절없이 검을 놓치고 마는 그였다.

털썩.

검뿐만 아니었다.

무릎도 마찬가지였다.

크루젠의 양 무릎이 결국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닿았다.

무장해제는 물론이요 완벽한 무방비 상태가 된 것이다.

“크으읍, 처음부터 우리를 노리고 있었구나.”

“과거가 있으니 당신들이 걸려들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지는 않았지요. 그래도 그냥 가능성일 뿐, 설마 당신과 백작이라는 월척들이 이렇게 한 번에 낚일 줄은 몰랐습니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겠군요.”

“폐하께서 네놈을 절대 용서치 않으실 것이다.”

“글쎄, 누가 용서치 않는 입장에 설지는 끝까지 두고 봐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쿨럭, 쿨럭. 어리석구나. 감히 제국에 맞서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뭐, 그럴지도. 어쨌든 난 끝까지 갈 작정입니다. 그러니 저승에서 한번 지켜보기 바랍니다, 끝에 웃는 쪽이 어디일지.”

그렇게 저승에서 지켜보라는 당부를 끝으로 크루젠과의 대화를 마쳤다.

“카밀라.”

그러고는 카밀라를 불렀다.

어느새 스루지아넨에게서 떨어져 나와 내 옆에 서 있는 그녀였다.

“알지? 피만 섭취하고 시체는 온전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는 거.”

“네, 주인님. 마법사도 그리해 두었어요.”

“그래, 잘했어. 그럼 이쪽도 마무리 짓고 있어. 금방 다녀올 테니까.”

이렇게 카밀라에게 크루젠에 대한 처리를 맡겨 놓은 뒤, 나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그러자 잠시 후, 등 뒤로 소리가 들려왔다.

콰득.

꿀꺽꿀꺽.

“커헉!! 바, 반드시 두고 보마! 네놈이 폐하의 손에, 크으윽…… 갈기갈기 찢기는 것을, 반드시! 크으으으, 라이…… 오넬 라인하트……, 바, 반드…….”

* * *

“하아, 하아, 하아.”

볼티너 2왕자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한창 꽁무니 빠져라 줄행랑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제국에서 보내 준 마법사의 목이 덥석 움켜쥐어지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볼티너는 외할아버지인 후이그 보토 후작과 함께 저택 내 비밀통로로 향했다.

그리고 지금은 한창 그 비밀통로를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늦은 도주라고 할 수 있었다.

흉수가 출현한 직후도 아니고, 승부가 거의 다 끝나 가는 시점에서야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애초에 제국의 실력자들이 질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품지 못했다.

또, 품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다.

소드마스터와 6서클 대마법사가 한꺼번에 패배하리라고 세상에 어느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그 상대가 내전 전까지는 이름도 알려진 바 없는 일개 용병에 불과하다면 더더욱.

어찌 됐든 현재 볼티너 앞에 펼쳐진 상황은 원래 예상과 180도 달랐다.

일단은 이 거지 같은 상황부터 모면하고 보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는 게 좋겠습니까, 할아버님? 통로를 빠져나가도 딱히 갈 곳이 없는데…….”

“제국으로 가시지요.”

“제국이요?”

끄덕끄덕.

“제국도 들인 공이 상당하니, 우리와 테네시아 왕국을 쉽사리 포기하지는 못할 겁니다. 제국에서 황제의 보호를 받으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입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렇게 빈손으로 가는 우리를 황제가 반겨 주겠습니까?”

“……훗날을 도모하려면 어느 정도의 고난은 견뎌 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왕자님. 그리고 엄밀히 따지면 우리가 빈손으로 가는 건 아니지요.”

“빈손이 아니라니요?”

“용병 라트가 있지 않습니까? 그자의 진짜 정체.”

상황만 놓고 보면 분명 최악 중 최악이라고 해도 모자랐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히도 실낱같은 희망 한 줄기가 이들의 손에 쥐어진 상태였다.

바로 용병 라트.

이번 내전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그 반가면 용병의 진짜 정체 말이다.

크루젠 벤투스의 외침을 당연히 이들 역시 들은 것이다.

“그 용병이 슈라우드 왕국의 라이오넬 라인하트라는 걸 알면 황제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자와 셀레스티나 1왕녀, 그리고 황제 사이에 얽힌 것이 있다는 걸 제가 깜박하고 있었어요.”

“황제에게 나름 좋은 선물이 될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라이오넬 라인하트, 그자에 대해 어떻게든 건수를 잡고 싶었을 테니 말이지요. 왕자님과 제가 공개적으로 증언까지 해 준다고 하면 아마 적잖이 흡족해할 가능성이 큽니다.”

아이단 황제와 라이오넬의 연적 관계는 대륙 전체에 널리 퍼져 있었다.

셀레스티나 1왕녀와의 혼인을 두고 벌어진 이들의 충돌이 워낙 공개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속사정이야 감춰져 있다 해도, 어찌 됐든 연적끼리의 관계가 좋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당장 라이오넬이 용병 노릇까지 해 가며 테네시아 내전에 초를 치는 것만 봐도 어느 정도 짐작 가능했다.

따라서 이 상황이 전달되기만 한다면 황제에게는 나름 괜찮은 선물이 될 터였다.

“일단은 이걸로 황제의 마음을 산 뒤, 기회가 올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리는 겁니다. 여기에만 벌써 소드마스터 둘에 대마법사 하나를 쏟아부은 셈이니, 황제도 절대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터. 기회는 분명히 옵니다.”

“알겠습니다, 할아버님. 제국으로 가겠습니다. 그곳에서 금의환향하는 그날까지 이 악물고 견뎌 내겠습니다.”

이리하여 볼티너의 행선지가 확정되었다.

로만 제국, 그리고 아이단 황제에게로.

그 덕에 볼티너의 발걸음에 다시금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목표가 확실해지니 망설임이 사라진 것이다.

남은 것이라고는 얼른 이 비밀 통로를 빠져나가 제국으로 향하는 일뿐이었다.

화라락~

퍽! 퍼벅! 퍼걱!

“웬 놈…… 켁!”

“커헉!”

“왕자님, 피하…… 크아악!”

하나, 문제의 본질은 그의 마음가짐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안타깝지만 그렇게는 안 되실 것 같습니다, 왕자님.”

그가 처한 현실에 있었다.

“너, 너……!!”

“저와 함께 가 주셔야겠습니다. 왕자님의 형님이신 크레이그 왕자님께요.”

볼티너의 현실은 순식간에 암울함으로 물들어 갔다.

그의 모든 것을 망친 주범의 등장과 함께 말이다.

“아, 아니야! 안돼! 그럴 순 없어! 여기서 이렇게 허무하게 끝낼 수는……”

구구구구.

“크헥!!”

이윽고 그의 현실은 암울함조차 뛰어넘었다.

그리하여 아예 새까만 지경에 도달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전 상태의 새까맘.

이것이 볼티너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