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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23화 (124/200)

70장: 반가면 라트

“나는 후이그 보토 후작 각하의 충직한 기사 코그너 게라스다. 덤벼라, 1왕자의 개들아!!”

보토 기사단 소속 코그너 게라스는 지금 흥분이 최고조에 다다른 상태였다.

방금 그의 손으로 크레이그 1왕자의 기사 도리안 지스라는 자를 처단했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크레이그 1왕자 측 기사의 수가 채 스물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몇 안 되는 기사를, 그것도 소드 익스퍼트 중급의 기사를 1대1로 꺾은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카운테스 성 공성전에서 현실적으로 이보다 뚜렷한 공은 세우기 힘들 터.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슈악~ 스악~

서걱! 서걱!

“커헉……!”

“크아악!!”

“이 코그너 게라스를 막을 전사는 없단 말이냐? 죄다 고기 방패들뿐이로구나!”

당연하게도 일반 병사들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저 무참히 썰려 나가기만 할 뿐이었다.

이로 인해 코그너의 7보 이내는 순식간에 텅 비게 되었다.

“역시 나약한 1왕자의 주구들답다. 제 주인을 닮아 그런지 누구 하나 용기 있게 나서는 놈이 없어.”

코그너는 쉬지 않고 도발을 이어 갔다.

비단 최고조에 이른 흥분 때문만이 아니었다.

여기서 끝낼 이유가 하등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크레이그 왕자 군에서 내놓을 수 있는 전력이라 봐야 뻔했다.

기껏해야 방금 코그너가 죽인 도리안 지스 수준의 기사 하나 정도.

사실 이것도 굉장히 무리할 경우를 가정한 계산이었다.

현재 크레이그 왕자 측은 스물도 안 되는 기사로 성벽 전체를 커버해야 하는 상황.

소드 익스퍼트 중급인 코그너에 걸맞은 상대를 내놓을 여력 자체가 없었다.

그렇기에 코그너가 도발을 지속하면 지속할수록 더 좋았다.

크레이그 왕자 군의 사기가 계속해서 떨어질 테니까.

물론, 코그너가 공적을 세울 수 있게 또 다른 기사가 와 주면 더 좋았고 말이다.

“좋다. 이렇게 겁쟁이들뿐이라면 내가 오늘 나약한 네놈들 주인의 목을…….”

저벅저벅.

“으음?”

그때였다.

코그너 반경 7보 이내, 텅 비어 있던 그 공간에 누군가 진입했다.

그러고는 코그너 정면에 떡하니 마주 섰다.

“네놈이구나.”

코그너도 아는 놈이었다.

정확히는 많이 들어서 아는 놈이었다.

“네놈이 요즘 천지 분간 못 하고 날뛴다는 그 용병 맞나?”

“…….”

“하긴, 물을 필요도 없겠군. 반가면을 쓰고 다니는 놈이 흔한 것도 아니니.”

반가면을 쓴 용병이었다.

대략 일주일쯤 전부터 등장해 병사들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놈이기도 했다.

카운테스 성벽 위를 적잖이 활개 치고 다녔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제는 하급 기사 하나가 놈의 단검에 절명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올 정도였다.

“그렇지 않아도 한번 보고 싶었다. 주제 파악 못 하는 네놈에게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알려 주고 싶었거든. 그 가면 밑에 가려 둔 낯짝이 궁금하기도 했고.”

코그너는 기분이 한층 더 좋아졌다.

안 그래도 벼르고 있던 참이었다.

어디 용병 나부랭이 따위가 기사들이 주역인 전장에서 함부로 설쳐 댄단 말인가?

만나면 박살을 내는 것은 물론이요, 아예 얼굴을 까발려 조리돌릴 작정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찾기도 전에 알아서 제 발로 나타나 준 것이다.

내심 반갑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기특하게 내 앞에 먼저 모습을 드러낸 상으로 이름 남길 기회 정도는 주마. 네놈 이름이 무엇이냐? 얼핏 듣기로는 라……,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라트.”

“아아, 그래 라트, 라트였어. 자, 그럼 용병 라트, 어디 한번 들어와 보도록. 진짜 기사가 어떤 존재인지, 이 코그너 게라스 경이 건방진 네놈에게 친히 알려 주도록 하마.”

코그너는 당연히 자신감이 넘쳤다.

상대는 이름도 들어 본 적 없는 하찮은 용병 나부랭이였다.

어쩌다 기사 하나를 잡았다고는 하나, 그래 봤자 서임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초짜에 불과했다.

진짜 기사라고 하기에는 아직 여물지 못한 친구였던 것이다.

반면 코그너 본인은 죽은 그 친구와 질적으로 차원이 달랐다.

그야말로 제대로 된 실력자인 동시에 이번 전쟁을 통해 드높이 비상할 진짜 기사였다.

코그너 본인은 철석같이 그리 믿고 있었다.

따라서 눈앞의 용병 나부랭이에게 진다는 생각 같은 건 눈곱만큼도 품고 있지 않았다.

휘릭!

샤아악~!

실제로도 그러했다.

용병이 기습적으로 단검을 던져 왔지만, 소용없었다.

까딱.

“흥, 이깟 거.”

제자리에 선 채 살짝 고개만 까딱이는 코그너.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단검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오죽하면 한마디 가르침을 선사하는 여유까지 부리는 그였다.

“고작 빠르기만 한 던지기 따위는 백날 해 봐야…….”

사아아.

우뚝.

“어?”

푸욱!!

“켁……!”

문제는 그 한마디를 미처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점이었지만.

코그너가 저도 모르게 내뱉은 단말마의 비명, 그리고 비명 직후 찾아온 갑작스러운 암전 때문이었다.

코그너를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잠에 빠지게 만드는 그런 암전 말이다.

* * *

“네놈이구나! 야비한 수법으로 신성한 전장을 어지럽히는 반가면 라트라는 놈이!”

역시나 오늘도 있었다.

라트에게 단신으로 덤벼드는 기사가.

“네놈의 주제넘은 짓거리도 오늘로 끝이다. 더는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지 못할 것이야.”

라트를 따라다니는 에치오의 눈에는 있는 대로 간덩이 부은 짓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라트가 전황 역전을 선언한 지가 오늘로 닷새째였다.

그리고 어제 전투까지 라트 손에 죽어간 볼티너 왕자 측 기사의 수가 무려 29명이었다.

첫날 11명, 둘째 날 9명, 셋째 날 5명, 넷째 날 4명.

적 수뇌부도 바보는 아니기에 셋째 날부터는 기사들이 두셋씩 뭉쳐 다니기 시작했다.

이 덕에 셋째 날부터 전사자 수가 뚝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어디든, 어느 집단이든 더럽게 말 안 듣는 놈들이 꼭 존재했다.

“가드넷 기사단 소속 기사, 나 플란다스 오트리가 네놈을 처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공에 대한 욕심, 용병 따위가 강해 봐야 얼마나 강하겠냐는 자만 등이 적절하게 혼합된 그런 멍청한 놈들.

지금 라트에게 호기롭게 검을 겨누는 플란다스 오트리 같은 놈 말이다.

“덤벼라, 용병 라트. 네놈의 악행을 오늘 이 자리에서…….”

휘릭~

샤아악~!

라트는 이런 놈과 굳이 말을 섞지 않았다.

아무런 대꾸 없이 무심하게 단검을 던질 뿐이었다.

투캉!

“그런 야비한 수 따위가 계속 통할 것 같더냐!”

그래도 나름 준비를 하기는 했다.

라트의 단검을 피하지 않고 방패로 막아 내는 플란다스였다.

사아아.

우뚝.

“어림없다!”

텅!

또,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방패에 튕겨 나간 뒤 공중에서 방향을 틀어 재차 짓쳐들어가는 라트의 단검.

플란다스는 방심하지 않고 이마저 막아 냈다.

선배 전사자들의 사례를 통해 학습해 온 것이다.

“네놈의 수법은 이미 간파했다. 이 플란다스 오트리에게는 통하지 않으니, 단단히 각오하는 편이 좋을 거다.”

휘릭~

샤아악~!

“말귀가 어두운 놈이구나. 글쎄, 통하지 않는…….”

휘릭~ 휘릭~ 휘릭~

샤아악~! 샤아악~! 샤아악~!

문제는 이런 그림이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된 상태라는 점이었다.

어제부터 이렇게 준비해 오는 기사들이 있었다.

오늘도 플란다스 전에 한 놈 찾아왔었고.

결과는 전원 전사.

라트의 단검은 고작 하나가 아니었다.

하나가 이런 식으로 막힌다?

그러면 무더기로 던져 버리는 라트였다.

텅! 텅! 텅! 텅!

거의 동시에 날아간 네 개의 단검.

첫 공격은 플란다스의 방패, 갑옷에 막혀 전부 튕겨 나갔다.

사아아.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 왔듯 곧장 이 격째가 이어졌고,

텅! 투캉! 푸욱! 투캉!

개중 하나가 방패와 갑옷 사이를 파고 들어갔다.

“크헉!”

텅그렁.

하필이면 그 부위가 왼쪽 겨드랑이였다.

자연스레 왼손에 쥐고 있던 방패가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즉, 무방비 상태가 된 것이다.

“자, 잠깐……!”

플란다스 또한 이를 깨달았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여섯 번째 단검은 이미 라트의 손을 떠난 뒤였다.

플란다스의 목줄기를 향해.

샤아악~!

서걱!

“켁……!!”

그렇게 끝이었다.

반가면 라트에 의한 기사 전사자 명단은 이로써 31명이 됐다.

고작 닷새 만에 말이다.

“반가면 라트가 승리했다! 적 기사를 또 죽였어!”

나아가 이 닷새가 늘려 놓은 것은 죽은 기사의 숫자만이 아니었다.

라트의 활약은 병사들 눈에 빠짐없이 박혀 들었고, 함성의 형태로 모두에게 전달되었다.

승전보의 반복과 중첩에 따라 병사들의 사기 역시 대폭 상승했다.

암울하기만 하던 크레이그 왕자 군에 한 줄기 서광이 비친 것이다.

“이길 수 있다! 저깟 떨거지들 따위 박살 낼 수 있어!!”

“전부 성 밖으로 밀어 버려!!”

“우오오~!!!”

자연스레 전황 또한 뒤집혔다.

숫자 차이에 밀려 가던 크레이그 왕자 군이 역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라트의 활약은 이렇듯 눈부신 결과물을 빚어내는 중이었다.

* * *

볼티너 2왕자 군은 오늘도 패배했다.

단순히 성을 함락하지 못했다는 결과로서의 패배만이 아니었다.

이 패배의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가 막심했다.

특히 지난 일주일이 그러했다.

이 기간 발생한 기사 사망자 수가 무려 42명에 달했다.

일반 병력 또한 1,200명의 사상자가 도출됐다.

크레이그 왕자 군 측에 고작 기사 5명, 병사 150명 여의 손해가 발생할 동안 말이다.

대패도 이런 대패가 또 없는 것이다.

“대체 왜!!”

볼티너 2왕자가 고함을 쳤다.

짜증과 분노, 답답함 따위가 가득 실린 그런 고함이었다.

공성 시작 때만 하더라도 전황은 분명 볼티너 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한데, 그랬던 것이 지금은 어찌저찌 비벼지는 수준까지 따라잡히고 말았다.

이 추세대로라면 금세 역전당할 것이 분명한 상황.

“대체 왜 그 라트인지 뭔지 하는 용병 놈 하나에 절절매느냐 이 말이오! 그놈이 소드마스터인 것도 아니라면서!!”

심지어 이 모든 것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웬 용병 하나 때문이었다.

이름 한번 들어본 적 없는 용병 하나에 대사가 헝클어지고 있는 것이다.

볼티너 입장에서는 열이 뻗칠 대로 뻗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놈의 실력이 대단한 건 아니지만, 움직임이 워낙 빠른 데다 비겁하게 단검만 던지며 치고 빠지는지라…….”

“그 비겁하다 치부하는 단검에 기사만 34명이 죽어 나가지 않았소? 그것도 고작 일주일 만에?”

“…….”

볼티너 측에서 파악한 라트의 실력은 익스퍼트 상급, 혹은 중급에서 상급 사이.

정통 검술을 쓰는 것이 아니기에 정확한 실력 파악은 불가하지만 크게 엇나가지는 않을 터였다.

놈이 상급 이상의 기사들은 철저하게 회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중급 이하의 기사들만을 쏙쏙 골라내어 단검의 먹잇감으로 삼아 온 것이다.

이런 정황만 보면 참모의 말마따나 실력 자체는 대단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 방안은? 놈을 잡을 방안은 마련했소?”

“……송구합니다.”

문제는 그럼에도 라트를 저지할 방안이 없다는 점이었다.

놈은 용병, 명예 따위 개나 줘 버리고 마는 그런 족속이었다.

불리하다 싶으면 서슴없이 도망치는 것은 물론이요, 치사하게 암습을 가하는 데에도 거침이 없었다.

이런 놈을 잡으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도망칠 여유조차 주지 않는 것.

하나, 안타깝게도 볼티너 왕자 군 내에서는 그런 압도적인 실력을 지닌 이가 없었다.

“그럼 어쩌자는 것이오? 이대로 패배만 거듭하자는 건가? 그러다가 아예 전멸까지 해 버리고? 대책을 내놔야 할 것 아니오, 대책을!!”

“그래서 드리는 말씀이온데…….”

“무슨 말?”

“일단 병력을 조금 뒤로 물리심이 어떻겠습니까? 물러나서 병력을 재정비하고, 반가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편이 좀 더…….”

“그걸 지금 말이라고!!”

결국, 2왕자가 폭발하고 말았다.

말이 좋아 병력을 물리는 것이지, 실상은 처참하게 패퇴하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서 병력을 물리면 패배를 자인하는 꼴인데, 그다음은? 그렇지 않아도 내가 음모를 꾸몄느니 뭐니 헛소리나 늘어놓으며 눈치 보는 박쥐들이 우글대는데, 그놈들이 가만히 있겠소? 우리가 물러나는 순간 죄다 저쪽에 들러붙을 거란 말이오!”

“하지만 왕자님, 어차피 지금 이대로라면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자칫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듣기 싫소! 무슨 일이 있어도 후퇴는 없소. 그리들 알고 나가서 대책을 마련해 오시오.”

“그렇지만 왕자님…….”

“듣기 싫다니까! 모두 나가시오! 나가서 제대로 된 대책이나 마련해 오란 말이오!”

폭발한 볼티너에 의해 회의가 강제로 종료되었다.

그렇게 모든 참석자들이 내쫓기다시피 회의장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자리에 앉아 있는 단 한 명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하아……, 어찌하는 게 좋겠습니까, 할아버님?”

그는 바로 볼티너 왕자의 외할아버지, 후이그 보토 후작이었다.

“방법은 한 가지뿐인 듯합니다. 제가 제국의 카일 이반 자작에게 연락을 넣겠습니다.”

“정녕 다른 방법은 없는 것입니까? 지난번 일로도 이미 많은 것들을 내주기로 했는데…….”

지난 보토 성 전투에서 안드리 카운테스 후작과 그 기사단을 깔끔하게 지워 버린 성과.

이는 볼티너 왕자의 힘으로 이룩해 낸 것이 아니었다.

볼티너 세력 내에는 그럴 만한 힘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 제국으로부터 은밀하게 빌려 온 힘을 통해 이룩해 낸 성과였다.

당연하게도 공짜일 리 만무했다.

볼티너가 왕위에 오른 뒤 수많은 이권을 내주기로 이미 약속이 된 상태였다.

이것만으로도 국가 차원의 상당한 출혈을 감내해야 할 터.

그런데 여기서 추가 지원을 요청한다?

자칫 완전히 속국이나 다름없는 처지가 될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일단 이기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면 모든 게 끝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왕자님.”

“하아아…….”

깊은 한숨을 내쉬는 볼티너.

고민 서린 침묵도 함께였다.

다만, 이것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한 가지뿐이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연락 넣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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