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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22화 (123/200)

69장: 특이한 재능(2)

슈악~

“흐엑!!”

데굴데굴.

등 뒤에서 휘둘러져 오는 검을 앞구르기로 피해 냈다.

보고 피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랬다면 비싸디비싼 가죽 등갑이 쫙 찢어지도록 두지 않았을 터.

순전히 감으로 피한 것이었다.

쭈뼛 선 온몸의 솜털.

그것이 전장의 아비규환 속에서 오늘도 에치오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

쭈뼛.

잠깐 숨 돌릴 틈도 없었다.

엎드려있는 상태에서 이번에는 옆으로 몸을 굴렸다.

스아악~

타앙~!

그러고 나니 엎드려 있던 자리에 검이 내리꽂혔다.

이번에도 역시 감이었다.

타고난 감이 또다시 그를 살린 것이다.

벌떡.

에치오도 더는 피하기만 하지 않았다.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슈욱~

그리고 에치오를 두 번이나 몰아붙였던 상대에게 역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때마침 땅바닥에 검을 내리친 것 때문에 손목 타격을 입은 볼티너 2왕자 측 병사였다.

즉, 빈틈이 훤히 드러난 상태인 것이다.

푸욱!

“커헉!!”

그래도 나름 3급 용병인 에치오였다.

무방비 상태의 적을 죽이는 데에 문제없을 정도는 됐다.

물론 그 이상은 그에게 심히 무리였지만.

“후우…….”

가까스로 한숨 돌릴 수는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멍하니 넋 놓고 있을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볼티너 왕자 군과의 전투가 한창인 와중이었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눈코 뜰 새 없이 움직여야만 했다.

“아오, 저 징그러운 인간이 진짜!”

더구나 에치오에게는 또 하나의 미션이 있었다.

누군가를 악착같이 따라다니는 일이었다.

그 누군가란 바로 라트.

지금 이 순간에도 저 앞에서 볼티너 왕자 군을 시원시원하게 베어 가는 반가면의 용병 말이다.

사실 원래 목표는 라트의 옆에 바싹 붙어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도저히 달성 불가능한 목표였다.

저 인간, 공식 등급은 3급인데, 몸놀림을 보면 1급 이상이 분명했다.

2급이면 기사 기준으로 소드 유저 급, 1급이면 소드 익스퍼트 급의 실력자였다.

3급이되 실력 자체는 4급과 별반 차이 없는 에치오로서는 한참 역부족인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멀찍이라도 뒤따르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아 좀 같이 가자고, 같이!”

역부족임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따라붙으려는 이유?

간단했다.

그의 감이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트 옆에 꼭 붙어 있으라고.

이 전장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바로 그의 옆이라고.

‘이 망할 놈의 감 같으니라고. 꼭 이럴 때만 명확해서는…….’

지금껏 전장에서 그의 목숨을 연명시켜 준 감의 지시였다.

비록 이 감 때문에 빚까지 져 가며 판돈을 걸었다가 패가망신한 그였지만, 그래서 이 지옥 같은 곳까지 굴러 들어온 그였지만, 어쨌든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만큼은 단 한 번도 배신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15살 때부터 시작한 용병 생활이 벌써 10년 차에 접어든 에치오였다.

지난 10년, 그와 함께 의뢰에 뛰어들었던 동료들 대다수가 죽거나 병신이 됐다.

용병계라는 곳이 원래 그런 곳이었다.

실력이 없으면 금방 뒤지는 곳.

실력이 있어도 언제 어떻게 뒤질지 모르는 그런 곳.

하지만 이런 용병계의 너무나도 당연한 섭리가 에치오만큼은 비켜 갔다.

변변치 못한 실력으로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을 멀쩡하게 버텨 오고 있는 그였다.

모두가 이 감 덕분인 것이다.

그래서 에치오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이 망할 놈의 감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살고 싶으면 그 어떤 거지 같은 상황에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저 반가면 옆에 착 달라붙어 있으라고.

현재 에치오에게는 이것이 지상 명제나 다름없었다.

“성가신 놈이구나.”

“헙……!”

문제는 이 지상 명제의 수행이 지나치게 험난하다는 점이었다.

오늘만 해도 요단강을 벌써 몇 번이나 건널 뻔했는지 몰랐다.

그리고 지금은 아예 강물에 반쯤 몸이 잠긴 상태였다.

하필이면 그가 적군 기사의 눈에 찍힌 것이다.

슈아악~!

에치오를 찍은 기사는 가차 없었다.

대비할 틈도 주지 않은 채 곧바로 검을 날려 왔다.

기사의 검은 수직으로 베어져 내려왔다.

눈에 보이는 대로라면 에치오의 오른쪽 어깨 부위가 수직 이등분 되기 일보 직전의 상황.

막는 건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살고 싶으면 무조건 피해야 했다.

검의 경로 반대편인 왼쪽으로 무조건 몸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쭈뼛.

그런데 감이 가리키는 방향은 그게 아니었다.

감은 오른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창 검이 떨어져 내리는 중인 바로 그 방향 말이다.

“X발!!”

어쩌겠나?

따라야지.

감에 따라 오른쪽으로 몸을 던진 에치오였다.

차마 보지는 못하겠기에 눈을 꼭 감은 채로.

후웅~

“호오? 이걸 간파했다고?”

살았다.

간발의 차로 목숨을 건졌다.

기사가 검에 가벼운 페이크를 섞었던 것이다.

오른쪽을 베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왼쪽을 베는 그런 가벼운 페이크.

물론 당하는 에치오 입장에서는 전혀 가볍지 않았고, 또 일절 예상치도 못했으나, 감은 이것을 간파했다.

그리하여 에치오의 목숨을 연명시켜 주었다.

“신기한 놈이군. 어디 이것도 피할 수 있으면 한번 피해 봐라.”

스아악~

하지만 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기사는 살짝 신기해할 뿐, 딱히 위기의식 같은 것은 품지 않았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다시 검을 내지르는 그였다.

“……!!!”

실제로도 그러했다.

당장 에치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일격에는 어찌어찌 몸을 움직여 볼 수 있었으나, 이 격째는 그럴 여건 자체가 안 됐다.

첫 일격을 피하느라 바닥에 몸을 던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감조차 이런 상황에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런 신호도 보내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은 짓쳐 드는 검을 그저 멍하니 지켜보는 것 말고 에치오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서걱!

촤르륵~

“커…… 커걱…….”

목줄기가 정통으로 베였다.

자연스레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죽음은 기정사실이 된 것이다.

“사, 살았다.”

단, 이 죽음이 에치오의 것은 아니었다.

에치오의 목줄기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대신 기사는 그렇지 못했다.

그는 피가 쏟아지는 목줄기를 부여잡은 채 바닥에 쓰러지고 있었다.

에치오 대신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중이었다.

“하아, 라트.”

라트였다.

저 멀리 있던 그가 어느새 다가와 기사의 목을 단검으로 베어 버린 것이다.

덕분에 에치오가 이렇게 무사히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그의 애원 역시도.

“제발 그만 좀 싸돌아다니면 안 되겠수? 나 이번엔 진짜로 뒤질 뻔했단 말이우.”

피식.

“그렇게 웃지만 말고, 제발 좀…….”

파앗.

물론 귓등으로도 먹히지 않았지만.

피식하는 웃음과 함께 또 저만치 가 버리는 라트였다.

“X발.”

욕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입뿐이었다.

에치오의 몸은 입과 반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재빨리 일어나 또다시 라트의 뒤를 쫓기 시작한 것이다.

강렬하게 울리는 생존본능을 따라서.

* * *

“헉헉, X발, 하아, 하아, 하아.”

내가 이곳에 당도한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지난 일주일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전투가 벌어졌다.

볼티너 측에서 미친 듯이 몰아붙이는 중인 것이다.

그럼에도 카운테스 성은 함락되지 않고 있었다.

“힘들어?”

“지금, 하아, 하아, 그걸 말이라고…….”

대신 내부에서는 하루하루 지옥도가 펼쳐지는 중이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고단한 지옥을 맛보는 이가 있었다.

전투가 끝나자마자 대자로 드러누워 숨을 헐떡이는 에치오였다.

죽자고 날 따라다니다 완전히 퍼져 버린 것이다.

재미있는 녀석이었다.

지닌 바 재능이 상당히 특이했기 때문이다.

전투 센스나 신체 능력이 뛰어난 것도, 그렇다고 머리가 비상한 것도 아니었다.

일반적인 형태의 재능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평범 혹은 평범 이하였다.

대신 생존본능이 말도 안 되게 탁월했다.

생명의 위기를 감지하는 육감이 거의 예지에 가까운 수준으로 발달한 것이다.

날 보자마자 들러붙기 시작한 것도 이런 예지에 가까운 육감의 산물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 전장에서 나보다 확실한 구명줄은 또 없으니 말이다.

물론, 물리적으로 회피가 아예 불가능한 상황까지 극복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이나,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경우와 상황에 따라서는 천고의 재능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

“후우우. 아니, 내가 여길 기어 다니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따라다닐 거유. 지난 일주일 동안 한 개고생이 아까워서라도 무조건! 그러니까 귀찮다고 나 쳐내지만 마슈.”

쓸모가 있을 녀석이기도 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험로를 생각한다면 분명 그럴 터였다.

끄덕.

“흐흐흐, 분명 약속한 거유, 라트 형.”

해서 녀석의 부탁 아닌 부탁에 나 또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자 완전히 퍼져 버린 와중에도 헤벌쭉하게 만족의 웃음을 짓는 에치오였다.

“저……, 라트님.”

그때였다.

뜻밖의 인물이 내게 다가왔다.

“산체스?”

산체스였다.

일주일 전 병사에게 나를 인계받았던, 그러나 곧장 내팽개쳤던 바로 그 용병.

귀찮음을 넘어 대놓고 무시하는 기색까지 드러냈던 그가 지금은 존칭과 함께 아주 조심스레 말을 걸어 오고 있었다.

“그게 저……, 드리고 싶은 부탁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부탁?”

“혹시 저희 사정도 좀 헤아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희가 지금 진짜로 죽을 지경이라…….”

나에게 사정하기 위함이었다.

비단 산체스만이 아니었다.

그의 뒤편에는 용병 넷이 함께 서 있었다.

산체스처럼 아주 공손한 태도로.

“라트 님께서 활약하신 뒤로 자꾸만 적이 이쪽으로 몰리고 있어서…….”

“그런데?”

“물론, 절대! 절대 라트 님 탓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같은 용병으로서 저희를 좀 불쌍히 여겨 주십사 하는 것뿐입니다.”

이렇듯 급변한 태도가 이해는 됐다.

현재 카운테스 성에 남은 용병이라고는 나와 에치오를 포함하여 여기 있는 7명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전부 사망했다.

원래부터 숫자가 적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일주일 만에 1/3 토막 난 것이다.

산체스의 말마따나 여기에는 내 활약이 크게 작용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나는 용병 담당 구역을 활발히 휩쓸고 다녔다.

자연스레 이쪽으로 적군의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위험한 구역에 배치되는 용병들이었다.

이런 마당에 시선이 쏠리며 적군까지 배로 몰리니 죽을 맛인 것이 당연했다.

실제로 죄다 죽거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중이었고 말이다.

이런 흐름은 용병들의 목표 달성에 매우 치명적이었다.

크레이그 왕자 군에 가담한 용병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성이 함락되든 말든 끝까지 살아남는 것.

그래야 이번에 목숨 걸고 번 돈이 의미를 지닐 터였다.

전쟁에서 패해 포로가 돼도 상관없었다.

승리할 게 아니라면 오히려 현재로서는 그게 베스트였다.

용병패를 제시하며 일정 비용만 지불하면 노예 신세는 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툭 튀어나온 내 활약이 자꾸만 이들의 생존 확률을 줄여 놓고 있었다.

미치고 팔짝 뛸 수밖에 없는 노릇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나에게 제재를 가할 수도 없었다.

용병계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계.

누가 뭐라 해도 힘이 곧 법이었다.

그리고 이들도 내 활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반항은 절대 불가했다.

따라서 이들에게 남은 방법이라고는 애원뿐인 것이다.

“알아서 살아남는다. 네 말이다.”

“죄송합니다. 그때는 제가 라트 님을 몰라뵙고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부탁은? 정확히.”

“저희를 이끌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라트 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겠습니다.”

이끌어 달라.

본인들을 부하로 삼아 달라는 뜻이었다.

“싫다.”

“예?? 어째서……?”

“귀찮다.”

“그, 그런…….”

그러나 이는 달리 말하면 나더러 본인들의 목숨을 지켜 달라는 뜻이었다.

즉, 내가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늘어난다는 의미.

에치오처럼 쓸모가 있는 놈들도 아닐진대 그런 귀찮음을 감수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리고 필요 없다.”

“……??”

무엇보다 그럴 필요 자체가 없었다.

“전황 바뀐다. 지금부터. 아주 많이.”

탐색전이 끝났기 때문이다.

이제 한판 뒤집기가 시작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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