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장: 특이한 재능
“스승님의 시신은……?”
테네시아 왕국의 1왕자 크레이그 아트레우스 테네시아가 물었다.
침울함을 넘어 암울함마저 느껴지는 기색으로 말이다.
“……방금 인도받았다고 합니다. 정오쯤이면 당도할 예정입니다.”
이에 나라트 카운테스 자작이 답을 주었다.
그리고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왕자 이상이었다.
답변을 내놓는 그에게서는 활활 타오르는 분노가 느껴지고 있었다.
“정말 미안하게 됐다, 나라트.”
“그런 말씀 마십시오. 왕자님의 잘못이 아니지 않습니까?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입니다. 왕자님은 물론이고, 아들인 저마저도…….”
안드리 카운테스 후작과 카운테스 기사단의 시신이 오늘 도착하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1왕자 크레이그의 진영 전체에 침통함이 깊게 밴 상태였다.
“그러니 더더욱 심기를 굳건히 하셔야 합니다. 여기서 왕자님께서 흔들리시는 것이야말로 간악한 2왕자의 노림수일 테니 말입니다.”
테네시아 왕국은 한창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1왕자 크레이그와 2왕자 볼티너 건더러스 테네시아의 내전이라는 홍역이었다.
단, 원래라면 그리 길게 이어질 홍역은 아니었다.
크레이그 왕자 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했기 때문이다.
소드마스터 안드리 카운테스 후작의 존재 덕분이었다.
그의 존재 덕에 무력 충돌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병력의 규모는 볼티너 왕자 측이 더 컸음에도 불구하고 전투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수차례 교전에서 연승을 거두며 금세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내전 발발 4개월 만에 2왕자 측을 세력 최후의 보루인 보토 후작 성에 몰아 넣은 것이다.
그곳에서 마지막 발악과도 같은 농성에 돌입한 볼티너였다.
이에 크레이그는 굳이 시간을 끌지 않고 곧장 마무리에 들어갔다.
소드마스터와 그의 기사단을 보토 후작성에 투입한 것이다.
물론 천천히 말려 죽이는 방법도 있기는 했으나,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대륙 차원의 이상 기후로 인해 흉작이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소모적인 내전의 장기화는 피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어차피 볼티너 측에는 소드마스터에 대한 대응책이 전무했다.
사실상 카운테스 후작이 진입하는 순간 끝이라고 봐도 좋았다.
해서 카운테스 후작 본인조차 아무 거리낌 없이 보토 성에 발을 들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카운테스 후작이 영주성까지 진입했다는 보고 직후 하루 동안 모든 소식이 뚝 끊겼다.
그리고 하루 뒤, 비보가 전해져 왔다.
소드마스터인 후작과 카운테스 기사단 전원 전멸했다는 아직 끔찍한 비보가.
도무지 영문조차 알 수 없는 결과가 도출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알아볼 시간 같은 것은 주어지지 않았다.
비보 전달 직후부터 다이렉트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현재는 전황이 완전히 역전되어 버렸다.
오히려 궁지에 몰린 크레이그가 카운테스 후작령에 콕 틀어박혀 있는 상황이었다.
B22
“하아……, 그래. 고맙다, 나라트. 뭐라도 해 봐야지, 이대로 무력하게 주저앉을 수는 없어. 지금 우리와 볼티너 쪽 병력 현황이 어떻게 되지?”
“우리는 총 병력 1,482명에 기사 22명입니다. 그리고 볼티너 쪽은…… 병력 4,000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에 기사 또한 70명 정도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보토 성에서 입은 피해가 너무나도 막심했다.
병력만 2,000명가량 소실됐으며, 기사는 거의 1/4 토막 난 것이다.
“으음.”
“그래도 현재 귀족들을 열심히 설득 중이고, 또 용병 길드를 통해 최대한 병력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일단 농성을 이어 가면서 버티고 또 버티다 보면 분명 역전의 기회는 찾아올 것입니다.”
카운테스 후작마저 전사한 상황에서 이 정도 격차는 사실상 극복이 요원하다고 봐야 했다.
유리할 때도 중립을 유지하던 대다수의 귀족들이었다.
그들이 이제 와 크레이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다는 것은 헛된 망상에 가까웠다.
용병들은 한술 더 떴다.
제 목숨이 무엇보다 귀한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몰릴 대로 몰린 크레이그 측에 자원한다?
정말 돈에 미친 놈이 아니고야 말이 되지 않았다.
어느 모로 보나 상황은 정말 좋지 못한 것이다.
“……그래. 어떻게든 버텨 봐야지.”
크레이그도 나라트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따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든 버텨 보자는 다짐 외에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카운테스 성을 둘러싼 침울함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가고 있었다.
* * *
용병 길드 테네시아 중앙 지부.
이곳 접수창구에 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인 나이 든 용병 자크가 앉아 있었다.
그는 현재 서류 작업에 한창이었다.
지원자들에 관한 서류를 작성하고 양쪽으로 나누는 작업이었다.
다만, 양쪽 혹은 나눈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는 작업자인 자크 본인도 의문이었다.
서류가 한쪽으로 거의 완벽히 몰리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2왕자인 볼티너 건더러스 테네시아 진영 쪽으로 말이다.
반면, 1왕자인 크레이그 아트레우스 테네시아 진영은 텅 비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볼티너 왕자 쪽에 비해 크레이그 왕자 쪽의 보수가 족히 5배는 됨에도 그러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것이 당연한 결과였다.
용병이 아무리 돈을 좇는 자들이라지만 그것이 목숨보다 중요치는 않았다.
현재는 거의 볼티너 왕자의 승리로 굳어져 가는 형국이었다.
이런 때 크레이그 왕자 측에 지원한다는 것은 제 발로 사지에 걸어 들어가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1왕자 측에 가는 이들은 돈이 지나치게 급한 나머지 제 목숨마저 내놓은 불나방들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딸랑딸랑.
달칵.
그렇게 자크가 한창 서류 작업에 몰두하던 중이었다.
처음 보는 한 사내가 용병 길드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저벅저벅.
전체적으로 떡 벌어진 체격부터 탄탄하게 잡힌 근육까지, 누가 봐도 힘을 쓰는 사내였다.
그런 사내가 용병 길드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이는 곧 사내가 용병이라는 뜻이었다.
하면 처음 보는 얼굴이라 해서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어차피 테네시아 왕국 내전 참가를 위해 하루에도 수십 명씩 용병들이 찾아오고 있었으니까.
이 사내도 그 수십 명 중 하나일 뿐이었다.
‘반가면?’
그래도 한 가지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기는 했다.
이 사내가 얼굴의 반을 가면으로 가린 상태라는 점이었다.
이러한 특징이 밋밋하고 평범한 사내의 얼굴에 약간의 특색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테네시아 왕국 내전에 지원하러 온 것인가?”
단, 그렇다고 해도 역시나 특별할 것은 없었다.
용병치고 보기 싫은 흉터 하나 없는 이는 드물었다.
얼굴에 커다란 흉터가 있어 그것을 가리고 다니는 중이라 여기면 그만이었다.
끄덕.
“용병패를 주게.”
그렇게 자크는 반가면 사내가 건넨 용병패를 받아 들었다.
“라트, 3급 용병이군.”
반가면 사내의 이름은 라트.
용병 등급은 3급이었다.
3급이면 신참은 벗어난 지 오래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장에서 나름 1인분은 가능한 실력인 것이다.
“대륙 동부 출신인데, 이곳 말은 가능한가?”
“약간.”
“대강 알아듣는 것 같기는 하니 그 정도면 됐고. 그럼 어느 쪽에 지원할 건가? 뭐 물으나 마나이긴 하겠지만.”
“1왕자 크레이그 아트레우스 테네시아 쪽.”
“응? 뭐라고?”
반가면을 썼다는 점만 빼면 딱히 특별할 것 없는, 말 그대로 널리고 널린 용병 중 하나였다.
한데, 이 용병의 선택은 그렇지가 못했다.
자크의 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그의 선택은 지나치게 특별했다.
이에 자크가 확인차 다시 한번 물었다.
“1왕자 쪽 지원한다.”
그러나 두 번째 대답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특별하기 그지없었다.
“자네 혹시 내전이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는 있는 것인가?”
“1왕자 쪽 불리하다.”
“그냥 불리한 정도가 아니야. 압도적으로 불리해. 사실상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봐도 좋아. 그런데도 1왕자 쪽에 지원할 생각인가?”
드러난 것만 해도 양측의 전력 차는 3배를 웃돌았다.
더구나 2왕자 측에는 드러나지 않은 전력까지 존재했다.
소드마스터 안드리 카운테스 후작을 죽음으로 몰고 간 바로 그 비밀 전력 말이다.
따라서 결과는 이미 도출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상황에 1왕자 측의 용병으로 전장에 나선다는 것은 죽으러 간다는 소리와 동일했다.
자크는 이 점을 짚어 주었다.
무사히 은퇴까지 한 몇 안 되는 용병 선배로서의 조언이었다.
“괜찮다. 1왕자 쪽 지원한다.”
“……뜻이 정 그러하다면야. 알겠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어차피 선택의 본인의 몫.
책임을 져 줄 것이 아닌 이상 조언은 한마디면 족했다.
그리고 이 라트라는 용병은 조언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면 자크가 더는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었다.
“이걸 들고 카운테스 후작 성으로 가게.”
“고맙다.”
자크는 더 이상의 질문 없이 용병 길드 보증서를 건넸다.
그러자 라트라는 용병은 그것을 받아 들고는 곧장 용병 길드를 떠났다.
“쯧쯧쯧, 돈보다 목숨이 중한 것인데.”
이에 자크가 가볍게 혀를 찼다.
“뭐, 내가 참견할 바는 아니지.”
다만, 이번에도 이게 다였다.
본인이 죽으러 가겠다는데 자크가 뭘 어쩌겠는가?
하여 자크는 신경을 끊고 다시 본인의 업무에 몰두해 갔다.
방금 그가 받은 접수가 어떤 의미인지, 내전에 어떤 바람을 몰고 올 것인지 등은 눈곱만큼도 예상하지 못한 채 말이다.
* * *
“여기다.”
병사의 안내에 따라 건물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렇게 당도하게 된 카운테스 후작령 내 용병 숙소.
회관 하나를 통째로 쓰는 꽤 큰 숙소임에도 불구하고 내 눈에 보이는 용병의 수는 채 10명이 되지 않았다.
이곳까지 오며 전해 들은 전체 용병의 수도 마찬가지.
나까지 포함해 18명이 전부였다.
크레이그 1왕자의 암울한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시라고 할 수 있었다.
이를 잘 반영하듯 분위기 역시 칙칙하고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모두가 나를 살짝 힐끔 하더니 곧장 관심을 꺼 버렸다.
‘음??’
딱 한 명, 내 시선을 잡아끄는 한 녀석만 빼고 말이다.
녀석 또한 묘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중이었다.
다만, 이 의외의 시선 교환이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신입이오, 산체스.”
“알겠소.”
“대륙 동부 출신이라는데 말귀는 대강 알아듣는 모양이오. 알아서 잘 가르치시오.”
안내 병사가 나를 웬 용병에게 넘기고는 휑하니 떠나 버렸다.
그러고 나니 병사에게 나를 인계받은 산체스라는 용병이 다가왔다.
귀찮음이 뚝뚝 떨어지는 표정으로.
“이곳에서 임시로 리더를 맡고 있는 산체스다. 어차피 대충 다 알지?”
말투 역시 표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나라는 존재 자체에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밖에서 들은 소식. 전부다.”
“그거면 됐어. 거기에 실제가 소문보다 더 개 같다는 사실 정도만 추가로 인지해 두면 된다. 대충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끝?”
“그럼 뭐가 더 필요하지? 어차피 당장 뒤져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곳인데. 그리고 빈자리는 아무 데나 쓰면 된다. 뭐, 보아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비겠지만.”
이게 다였다.
이 말을 끝으로 대화 자체를 종결짓는 그였다.
당연히 추가 안내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었다.
툭툭.
물론 나 또한 뭘 더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빈자리에 묵묵히 짐만 풀어 놓을 뿐이었다.
이런 칙칙하고 삭막한 분위기, 나로서도 나쁠 것 없었다.
미리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대화부터가 원활치 못했기 때문이다.
말귀를 대강 알아듣는 것도 세밀한 감정 캐치가 가능한 덕분이지, 아니면 턱도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또, 이런 분위기라면 정체 때문에 쓸데없이 이 말 저 말 지어낼 필요도 없을 터.
여러모로 현재의 나에게는 매우 바람직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대충 짐만 풀어 두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누가 알려 주는 사람도 없으니 알아서 둘러보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형씨.”
그런데, 그런 나를 따라 밖으로 나온 인물이 있었다.
“나?”
“그렇수. 앞으로 함께 이승과 저승을 왔다리 갔다리 할 사이인데 그래도 통성명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수?”
내 또래 정도 됐을까?
용병치고는 다소 슬림해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내 이름은 에치오요. 형씨는?”
내가 부름에 반응하자 대뜸 제 이름부터 들이밀고 보는 그였다.
“싫수? 다른 꼰대들이야 여기 있은 지 좀 됐으니 그렇다 쳐도, 형씨는 오늘 들어왔으면서 벌써 그리 빡빡하게 굴 필요는 없지 않나 싶은데…….”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내 시선을 잡아끌던 녀석이었다.
동시에 나로서도 처음 보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처음 접하는 유형의 재능을 지닌 인간이랄까?
심지어 무슨 종류인지 긴가민가한 그런 유형이기까지 했다.
분명 능력이 있기는 한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를 정의 내리기 어려웠다.
정령석 섭취 후에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라트.”
“아하, 라트. 반갑수.”
“무슨 일?”
“딱히 특별한 용건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뭐, 오늘부터 한 지붕 덮고 지내게 됐는데 앞으로 같이 잘 지내 보자 그런 차원인 거지. 그러는 편이 이 지옥에서 살아남는 데 더 유리하기도 할 테고. 안 그렇수?
그래서였다.
이 녀석의 넉살 좋은 접근을 굳이 쳐내지 않고 받아 주었다.
나 또한 이 에치오라는 녀석에게 상당히 흥미가 동한 상태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