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장: 벌레와 장인(3)
공동에서 드워프들과 지내기 시작한 지 한 달 보름여가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드워프들과 최대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여정과 심연으로 자연스럽게 물꼬를 터 두었기에 어렵지 않았다.
대화거리 또한 차고 넘쳤다.
드워프 중에는 장인 아닌 이들이 없었다.
검이나 도끼, 망치 등의 무기뿐만 아니라 방어구와 갑옷, 아티팩트 등 각자만의 분야에서 대작을 최소 하나씩은 보유한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어둠으로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데파이 스토스조차 인정한 최고의 감정사인 것이다.
환상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언어 역시 장애가 되지 못했다.
그때마다 타로쉬핸드를 통역사로 활용했다.
툭툭거리기는 해도 장인으로서의 태도는 더없이 순수한 드워프였다.
작품에 관한 감정을 할 때만큼은 진지했기에 전혀 문제 될 것 없었다.
물론 작품 감정만이 다는 아니었다.
감정을 통해 조금씩 가까워지며 대화거리도 확장해갈 수 있었다.
데파이 스토스, 굴타르 산에서 캐낸 흑광석, 엘프와의 인연 등 드워프의 흥미를 끌어낼 만한 요소들이 적지 않은 덕분이었다.
나아가 대화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함께해 왔다.
바로 자이언트 스톤 웜 퇴치.
그날 이후 아이언이 직접 등장하는 일은 없었다.
놈은 대신 이곳 공동으로 일반 개체들을 몰아넣었다.
이렇게 기어들어 온 자이언트 스톤 웜을 처리함에 있어 내가 힘을 보탠 것이다.
내가 중력으로 놈들을 짓누르는 사이 드워프들이 달려들어 끝장을 내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으로 온전한 사체를 확보하여 방어선 보강에 투입했고 말이다.
이런 과정이 몇 차례 반복된 끝에 결국 드워프들은 내 역제안을 수락했다.
나와 함께 아이언 사냥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나름의 의미를 지니는 결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단순히 이곳에서 아이언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직접 공동 밖으로 나가 놈을 척살하는 일이었다.
그런 만큼 나에 대한 믿음이 일정 정도는 생겨야 가능한 결정이었다.
“정지.”
우뚝.
“5보 앞의 지점에서부터는 놈이 우리를 인지할 겁니다.”
최소 인원만을 공동에 남긴 채 아이언 사냥에 나선 74명의 드워프들.
그들이 내 정지신호에 따라 일제히 멈춰섰다.
내 어둠에 숨어 아이언에게 최대한 접근한 상태였다.
그러나 1km가량을 앞둔 현 지점부터 더 이상의 은밀한 접근은 어려웠다.
여기서부터는 행동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2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
“알겠네. 뒤따르지.”
“그럼.”
파앗!
내가 먼저 바닥을 박찼다.
전속력으로 아이언을 향해 나아간 것이다.
드워프들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벌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거침없이 나아갈 뿐이었다.
그리하여 한 달 보름 만에 다시 아이언을 눈에 담게 되었다.
그가가각~
아이언 또한 이미 나를 인지한 상태였다.
당연히 놈 또한 대응에 나섰다.
그 거대하고 징그러운 몸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쿠우우우!
그러자 공간 전체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흔들렸다.
굳이 드워프들과 협동에 나선 이유가 여기 있었다.
이곳은 아이언이 땅속을 아무렇게나 헤집고 다니며 형성된 공간이었다.
아무리 단단한 암석지대라 해도 구조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조건인 것이다.
드워프들이 단단하게 다져 둔 곳과는 달랐다.
이런 곳에서는 제대로 힘을 쓰기가 어려웠다.
조금이라도 잘못 썼다가는 공간 자체가 무너져내릴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스릉.
일단 심연을 꺼내 들었다.
동시에 어둠 역시 끌어 올렸다.
슈아악~!
그러고는 놈의 머리 부분을 내리쳤다.
카강!!!
내려 벤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몽둥이로 패듯 내리친 것이었다.
구구구구!
그러면서 어둠의 중력으로 아이언을 찍어 눌렀다.
목적은 놈을 완벽하게 구속하는 데에 있었다.
10m에 달하는 아이언의 전신을 아예 옴짝달싹조차 못 하도록 말이다.
까각! 까가각!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애초에 오러 블레이드마저 몸으로 견뎌 내는 놈이었다.
그런 놈을 완벽하게 구속하는 일이 쉬울 리 만무했다.
나 또한 정신을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두두두두.
그렇게 내가 아이언을 몸부림치지 못하도록 묶어두고 있는 사이, 드워프들이 당도했다.
“곧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도착한 그들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곧장 나를 지나쳤다.
그러고는 계획한 대로의 움직임을 펼쳐 나갔다.
74명의 드워프들이 아이언의 기다란 몸을 따라 빈틈없이 늘어섰다.
아이언의 좌우로 각각 37명씩 촘촘하게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런 뒤,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캉! 캉! 캉!
종족적 특성을 있는 그대로 살리는 작업이었다.
망치를 든 드워프들이 아이언의 몸에 정을 박아 넣기 시작했다.
캉! 캉! 캉! 캉!
단단하기는 분명 무식할 정도로 단단했다.
소드마스터의 칼질을 견뎌 낸다는 사실만으로도 굳이 더 설명이 필요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대가 좋지 못했다.
드워프의 망치질은 단순히 단단함만으로 물리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정은 결을 파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캉! 카각! 캉! 카가각!
그렇다고 해서 작업이 수월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중간중간 도로 튕겨 나오는 정들이 속출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박아 대는 드워프들이었다.
“작업 완료!”
그렇게 10분여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드디어 작업이 마무리됐다.
물론 이 자체로 특별한 의미를 지니기는 어려웠다.
아이언의 몸통 곳곳에 정이 박히기는 했지만, 그래 봤자 뚫린 것은 껍데기뿐이었다.
고작 껍데기에 구멍 살짝 낸 정도로는 본체에 타격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업은 여기까지면 충분했다.
“사슬 연결!”
어차피 이 작업의 목적은 아이언의 숨통을 끊는 데 있지 않았다.
아이언의 숨통을 끊는 과정에서 놈이 칠 몸부림을 저지하는 데에 있었다.
그래야 공간의 붕괴 없이 무사히 사냥을 마칠 수 있을 터.
따라서 이는 일종의 바통터치 작업이라고 봐야 했다.
“준비됐다. 아이언은 우리가 붙잡아 둔다.”
아이언의 몸에 드워프제 쇠사슬 수십 줄기가 연결됐다.
그러자 드워프들이 이 쇠사슬을 본인들의 몸에 둘러 지탱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모든 준비가 완료됐다.
남은 것은 오직 사냥의 마무리뿐.
“그럼 최대한 빨리 끝내겠습니다. 조금만 버텨 주기 바랍니다.”
마무리를 위해 나 또한 바통을 완전히 드워프들에게 넘겼다.
어둠을 완전히 거둬들인 것이다.
그가가가각~!!
이에 아이언은 당연히 몸부림치려 했다.
하나, 그 시도는 이번에도 가로막히고 말았다.
“흐아압!”
“버텨!!”
“으아아아!!”
“무조건 버텨!!!”
드워프들이었다.
드워프들이 근력으로 아이언의 몸부림을 버텨 나갔다.
“후우.”
그사이, 나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한번 깊게 심호흡을 했다.
지금 내가 시행하려는 방안이 썩 유쾌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드워프들이 아이언의 힘을 오래 버틸 수는 없는 노릇.
최대한 빠르고 안전한 마무리를 위해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다소 더럽고 구역질 난다 하더라도 말이다.
파앗!!
그렇게 내가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몸부림치며 활짝 벌려진 아이언의 입속을 향해.
* * *
그가가각~!
“흐으읍……!”
“크으으……!!”
드워프들의 힘이 급속도로 소진되고 있었다.
“버텨…… 버텨야 한다!!”
이에 타로쉬핸드가 고함치며 일족들을 격려했다.
하지만 일족 중 가장 많은 힘을 쓰고 있는 그였다.
그런 만큼 그가 가장 절실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면 아이언 제어에 실패하고 말리라는 것을.
‘아직인 거냐……?’
인간이 아이언의 입속에 들어간 지 벌써 15초가량 흘렀다.
그럼에도 아이언은 여전히 날뛰고 있었다.
반대로 놈의 몸부림은 오히려 더 극렬해지는 중이었다.
그가가가각!!
“으으으…….”
“크으읍…….”
이제 정말 한계에 다다랐다.
“조금만 더 버티면 나올 거다! 반드시 나올 거야!!”
처음 봤을 때는 무조건 적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난 한 달 보름가량 같이 지내며 적개심을 상당 부분 내려놓기는 했다.
단, 거기까지였다.
적개심을 죽인 것일 뿐, 여전히 친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간 인간이 해 온 짓이 있는데, 인간인 그를 어떻게 전적으로 신뢰한단 말인가?
타로쉬핸드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여겼다.
그가가가가각!!!
쿠구구구~
“크으으으……! 인간…….”
하지만 지금은 다른 수가 없었다.
오로지 인간인 그를 믿는 수밖에.
그가 늦기 전에 아이언을 처리해 주리라고 말이다.
지금 이 순간, 타로쉬핸드를 비롯한 드워프 전체가 기댈 곳이라고는 오직 인간인 라이오넬뿐이었다.
“라이오넬!!”
쿠과과과광!!
그때였다.
엄청난 폭음이 들려왔다.
우뚝.
동시에 미친 듯이 몸부림치던 아이언의 움직임이 뚝 하고 멈춰 섰다.
그리고.
콰광!!
퍼석~
놈의 항문 부위가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앞뒤가 휑하니 개통돼 버린 것이다.
그곳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온 한 인간에 의해.
“나 불렀어?”
“너…….”
“늦어서, 미안. 생각보다 더 단단하더라고. 그래서 이걸 분리해 내는 데 시간이 좀 걸렸어.”
라이오넬이었다.
모든 것이 끝나기 직전의 순간, 그가 기적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웬 인간 머리통 5개는 족히 될 법한 크기의 암석 덩어리를 옆구리에 낀 채.
* * *
“정말 아이언의 부산물을 우리에게 모두 넘길 생각인가? 대륙에서 찾아보기 힘든 최고의 재료일 텐데?”
“최고의 재료이니만큼 더더욱 최고의 장인들 손에 맡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신 정령석 추출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이언의 내부로 들어간 나는 놈의 중심부에서 암석 덩어리 하나를 꺼내 왔다.
물론 땅바닥에 떨어진 물건 줍듯 간단히 꺼내 온 것은 아니었다.
아이언의 중심부에 깊숙이 박혀 있는 걸 강제로 뽑아낸 것이었다.
더구나 이 뽑아내는 과정이 만만치가 않았다.
아이언에게 극강의 단단함을 선사한 것이 바로 이 암석, 좀 더 정확히는 암석 내부에 박혀 있는 대지의 정령석이었기 때문이다.
단단하게 변이된 암석째로 삼켜지다 보니 아이언에게 흡수되지 않은 상태였다.
대신 암석을 변이시킨 것처럼 아이언에게 역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런 것을 뽑아내는 일이니만큼 나로서도 온 힘을 다해야 했다.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렸던 것도 이런 연유였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아무리 성질이 변환됐다 해도 결국 암석일 뿐이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뽑아 나온 것을 드워프에게 맡겨 두기로 했다.
어차피 내부에 박혀 있는 것을 추출하려면 장인의 손길이 필요한 상황.
여기에 드워프보다 적합한 장인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이를 앤비르스미스가 흔쾌히 수락해 주었고 말이다.
“그리고 제가 드린 제안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으음, 바깥이라…….”
“말씀드렸다시피 인간들은 머지않아 이곳에도 손을 뻗쳐 올 겁니다. 길어야 6~7년 정도? 그 전에 대안을 마련해 둬야 합니다.”
그간 함께 지내며 드워프에게 한 가지 정보 겸 제안을 건네 두었다.
이곳도 결국 인간에게 발각되고 말 테니 미리 대안을 마련해 두는 것이 좋으리라는 정보였다.
나아가 그 대안 마련에 내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제안이기도 했다.
“너도 마찬가지야, 타로쉬핸드. 어차피 족장님이 이곳을 비우실 수는 없으니, 나가게 된다면 네가 가야 하잖아.”
“그렇긴 하다만…….”
“그렇다고 당장 결정하라는 건 아니고, 내가 다녀올 동안 심사숙고해 봐. 적어도 반년은 걸릴 테니까.”
“알겠다, 고민해 보지.”
물론 시급한 결정을 재촉하는 것은 아니었다.
전적으로 내 말을 믿고 따르기에는 아직 우리 사이의 신뢰가 단단하지 못했다.
현재로서는 다른 마음을 품지 않았다는 내 진심을 믿어 주는 정도.
그 이상은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그럼 곧장 테네시아 왕국으로 가는 것이냐?”
“그래. 이제 나도 여기까지 온 진짜 목적을 달성하러 가야지.”
무엇보다 지금 당장은 내가 시간이 없었다.
당분간은 전장을 뒹굴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남의 나라 남의 땅에서, 그것도 라이오넬이 아닌 다른 전혀 다른 인물로.
사실상 내 적이 만든 전장, 그곳에서 내 적을 제대로 물 먹이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