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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19화 (120/200)

68장: 벌레와 장인(2)

애초에 인간에 대한 의심과 분노로 가득 찬 드워프였다.

당연히 내 말 또한 당장 신뢰를 얻기는 요원했다.

진실의 눈을 가진 하이엘프와는 경우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물론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입니다. 내가 만약 당신들을 노린 것이라면 이렇게 빨리 도울 이유가 있었겠습니까? 완전히 힘이 빠진 뒤에 끼어들었으면 그만인 것을요.”

“더 들어 볼 필요도 없소, 족장! 말로 할 게 아니라 당장 붙잡아서 속셈을 캐내야 하오!”

제 몸뚱이만 한 도끼를 내게 겨눈 드워프가 고함쳤다.

살기마저 짙게 배어 있는 그런 고함이었다.

“부족장 말이 맞소!”

“[email protected]#$$!”

“%^&!!”

“$%@#$!”

“당장 처단합시다!”

그리고 대다수의 드워프들이 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뜻만큼은 충분히 전달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자연스레 분위기는 한층 더 심각해졌다.

“그만. 다들 일단 진정하도록.”

“족장!”

그나마 나에게 처음 말을 걸어 왔던 족장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상황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 나섰다.

“인간이오! 우리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바로 그 인간! 우리가 그간 어떤 꼴을 당해 왔는지 잊었소?”

“경거망동하지 마라, 타로쉬핸드. 우선은 대화로 풀어 나간다.”

“언제 인간들과 대화로 해결된 적이 있기는 했소? 하는 말마다 거짓을 일삼는 놈들이란 말이오!”

“다 같이 보지 않았나? 저 인간은 보통 인간이 아니다. 경거망동하다가는 자칫 커다란 희생이 뒤따를 수도 있어.”

“어차피 인간이 여길 찾아낸 이상 뒤는 없소.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 자리에서 끝을 봐야 하오!”

다만 쉽지는 않아 보였다.

분명 내 신위를 직접 봤고, 족장이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기까지 했음에도 마찬가지였다.

모두의 눈에 깃든 결기와 각오는 스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불타올랐다.

부족장 타로쉬핸드의 말마따나 이미 벼랑 끝에 몰린 상태라 여기기 때문일 터였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들을 해할 생각 같은 건 정말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흥, 웃기지 마라! 우리가 인간의 말을 믿을 것 같으냐?”

“그렇긴 하겠지요, 나라도 믿지 않을 테니.”

그렇다고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굳이 이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대화 분위기부터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혹시 이거면 어느 정도 믿음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하여 어떤 물건 하나를 내밀었다.

이 자리와 분위기를 예상하고 일부러 챙겨 온 물건이었다.

“음? 이건……?”

“알아보시는군요.”

“엘프의 친구인 것인가?”

그러자 족장이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혹시나 했는데, 다행히 물건이 지닌 의미를 알아본 것이다.

“겨울바람 일족의 하이엘프 아인한드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그와는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엘프가, 그것도 하이엘프가 인간과……?”

내가 건넨 것은 아인한드라가 준 엘프의 증표였다.

이그드라실의 가지를 세공한 물건이기에 진위 여부가 의심받을 리는 없었다.

“어차피 재수 없는 엘프의 물건일 뿐이지 않소, 족장? 그것만으로 인간을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오.”

“우리가 엘프와 마음 터놓고 술잔을 나눌 사이는 아니지만, 최소한 그들의 진실성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잘 알지 않나, 타로쉬핸드?”

“…….”

덕분에 일촉즉발에 이르렀던 분위기는 살짝 가라앉힐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해소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터지기 일보 직전의 순간에 살짝 멈춰 선 것에 불과했다.

족장이 이 점을 분명히 했다.

“엘프의 친구라고 하니 최소한 우리를 노리고 온 것이 아니라는 말은 믿어 줄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우리는 인간을 완벽하게 신뢰하지 못한다. 이곳을 나가자마자 무슨 짓을 벌일지 알 수 없으니까. 지금까지 인간은 늘 그래 왔고.”

“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바랍니까?”

“방법은 하나뿐이다. 우리가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될 때까지 너는 이곳을 나가지 못한다.”

동시에 그는 대안을 제시했다.

과열된 부족원들을 일단 확실하게 진정시킬 수 있는 안이었다.

단, 오히려 한층 더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 안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무기한 구속하겠다는 뜻이군요?”

“신체 구속까지는 아니겠지만, 철저한 감시하에 머물게 될 것이다. 거부는 소용없다. 거부한다면 우리는 강제할 수밖에 없으니까. 어떤 희생을 치른다 해도.”

내가 거부한다면 결국 폭발이 예고된 안이었기 때문이다.

드워프들에게 나를 강제 구속할 능력이 있고 없고는 이 순간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이었다.

설령 이 자리에서 내 손에 전부 죽는다 해도 마지막까지 덤벼들 터였다.

“여기 머물러야 한다라…….”

남은 것은 내 선택뿐이었다.

내 선택에 따라 드워프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다만,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좋습니다. 원하실 때까지 이곳에 머물겠습니다.”

바라던 바였다.

오히려 어떻게 머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서로 간의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일단 어떤 식으로든 얼굴을 맞대야 하니 말이다.

“대신 나도 제안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단, 무기한은 곤란했다.

이곳에 무한정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음 일정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역으로 제안을 건넸다.

“방금 도망친 크고 단단한 자이언트 스톤 웜, 그놈 그거 지금 처치 곤란 아닙니까?”

목표로 하던 정령석을 획득하는 김에 빠른 신뢰 확보까지, 일석이조가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제안이었다.

* * *

일촉즉발의 상황은 대강 정리되었다.

족장 앤비르스미스가 제시한 방안대로였다.

라이오넬이라는 인간이 순순히 이곳에 머물기로 한 것이다.

지금은 공동의 한 가운데에 앉아 한가롭게 무기를 손질 중인 그였다.

그럼에도 타로쉬핸드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는 절대 인간을 믿지 않았다.

드워프 중에서도 제련에 특화된 블랙핸드 일족이니만큼 그간 인간에게 당한 것이 무지막지했기 때문이다.

하여 눈에 힘을 잔뜩 준 채로 인간을 감시 중이었다.

또한, 이는 현재 부족 최고의 전사이자 부족장인 그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책임이기도 했다.

사악~ 사악~

그런데, 아까부터 그런 타로쉬핸드의 눈을 자꾸만 훔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인간이 손질 중인 검이었다.

길고 하얗게 쭉 뻗은 아름다운 자태와 멀리서 보기에도 완벽에 가까워 보이는 균형이 자꾸만 그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다.

“크흠.”

물론 결코 긴장을 푼 것은 아니었다.

인간이 족장의 제안을 수용하고, 족장 또한 인간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지만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

언제 어떻게 그 시커먼 속내를 드러낼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 그마저 인간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점을 상기하며 고개를 휘휘 젓는 타로쉬핸드였다.

사악~ 사악~ 사악~

하지만 장인의 본성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누른다고 누를 수 있는 것이 못됐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필시 엄청난 장인의 손길로 탄생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 것이 자꾸만 눈앞에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아무리 용을 써도 절로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휘익~ 휘익~

드디어 손질이 끝난 모양이었다.

그러자 인간이 검을 눈높이까지 들어 올려 휘두르기 시작했다.

검의 아름다움을 한껏 강조하듯 심히 유려하게, 그러면서도 마치 누구 보라는 듯 아주 천천히.

“…….”

이에 대한 반응은 뻔했다.

타로쉬핸드의 눈은 검신이 수놓은 찬연한 궤적을 따르고 있었다.

숫제 입까지 살짝 벌린 채 아예 대놓고 말이다.

휘익~ 탁!

“하아…….”

찬연한 유영을 끝마친 검신이 검집에 들어갔을 때는 저도 모르게 아쉬움의 탄식까지 내뱉고 말았다.

“헙……! 흠흠.”

타로쉬는 금세 자신의 추태를 깨달았다.

해서 얼른 아무 일도 없던 척하려 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시선을 돌리는 와중이었지만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피식 웃음 짓는 라이오넬의 모습을.

“저자가…….”

인간이 그를 놀린 것이다.

이에 타로쉬핸드가 발끈하려던 찰나였다.

저벅저벅.

“뭐냐?”

갑자기 타로쉬핸드에게 걸어오는 인간이었다.

그러더니 그를 마주 보고 섰다.

“한번 해보자는 것이냐? 내가 우스워 보이는 모양이지, 인간?”

스윽.

그렇게 앞에 서서는 뜬금없이 제가 쥔 검을 내밀었다.

“이게 무슨 뜻이지?”

“별 뜻 없어. 그냥 아까부터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보고 싶으면 자세히 보라고.”

“웃기지 마라, 내가 왜…….”

휘릭~ 턱!

스릉~

순식간이었다.

인간이 타로쉬핸드의 손을 잡아채더니 검의 손잡이를 쥐여 주고는 검집을 빼 버리기까지의 시간 말이다.

너무 순식간이라 타로쉬핸드가 제대로 상황을 제대로 인지조차 못 할 정도였다.

“타로쉬핸드라고 했지? 보고 싶은 만큼 보고 천천히 가져다줘. 난 내 자리에 가 있을 테니까.”

그러고는 쿨하게 원래 있던 자리로 걸음을 옮기는 인간이었다.

“날 뭘로 보고 이런 짓을! 누가 이런 값싼 동정 따위…….”

이에 타로쉬핸드는 검을 내던지려 했다.

태연하게 등을 보인 채 뚜벅뚜벅 걸어가는 시건방진 인간을 향해서.

“따위를…….”

하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내던지기는커녕 쏟아 내려던 분노의 한마디조차 끝내 마치지 못한 그였다.

샤아아~

시야에 들어온 영롱한 검신이 그를 사정없이 유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단 시야만이 아니었다.

손에 쥐어지는 감촉 또한 마찬가지였다.

고작 손잡이를 잡았을 뿐임에도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이건 도저히 쓰다듬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크흠, 흠흠…….”

그렇게였다.

그렇게 타로쉬핸드는 검이 주는 황홀함과 아름다움에 흠뻑 심취해 들어갔다.

* * *

한 시간여가 지난 뒤였다.

정말 천천히 검을 감상하더니 검을 돌려주기 위해 나에게 다가온 타로쉬핸드였다.

물론 검만 건네고 곧바로 돌아가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나, 순순히 돌려보내 줄 생각은 없었다.

나는 검을 받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이 녀석의 이름은 여정이야. 완벽을 추구하는 여정에 있다는 뜻이지. 그럼 감상에 대한 대가로 여정에 대한 드워프의 평을 듣고 싶은데?”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훌륭한 아이다. 아이의 부모를 꼭 한번 만나 보고 싶을 정도로. 그보다 뭐 하나, 어서 받지 않고?”

타로쉬핸드의 재촉이 있고 나서야 그가 내민 여정을 받아들었다.

그러나 고작 이대로 끝낼 리 만무했다.

“이 녀석을 탄생시킨 분의 성함은 데파이 스토스. 우리 슈라우드 왕국이 자랑하는 대륙 제일의 장인이셔.”

“흥, 대륙 제일? 역시나 너희 인간이란 놈들은 오만하기 이를 데가 없군.”

“그럼 아니라는 건가? 여정의 부모라면 충분히 대륙 제일이라는 칭호를 붙일 만하지 않아?”

“여정이 훌륭한 아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 완성도에 있어서 나와 우리 일족조차도 감탄을 금치 못할 수준이니까. 그렇지만 그 데파이 스토스라는 장인 스스로도 알고 있을 텐데? 이 아이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그러니 완벽이 아닌 여정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일 테고.”

여정이 가진 미세한 흠.

타로쉬핸드는 이미 그것을 캐치했다.

역시 드워프는 드워프인 것이다.

“여정으로는 인간 제일이라면 모를까 결코 대륙 제일이라는 칭호를 입에 담을 수 없다. 그건 우리 드워프가 빚어낸 아이들을 보지 못했기에 가지는 오만에 불과해.”

그런 만큼 자부심 또한 남달랐다.

그리고, 그렇기에 더 좋았다.

이 실력과 자부심이 그를 더 깊숙한 늪으로 빠져들게 만들 테니까.

“그럼 이건 어때?”

스릉.

재빨리 여정을 집어넣었다.

그 자리를 다른 녀석으로 대체하기 위함이었다.

스으으~

탐욕스러운 어둠으로 가득 찬 녀석, 바로 심연이었다.

“이, 이건!!”

예상대로였다.

타로쉬핸드는 단번에 심연의 진가를 꿰뚫어 봤다.

굳이 말이 필요 없었다.

빠지기라도 할 것처럼 튀어나온 눈알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지금 얼마나 정신을 놓고 있는지.

비단 타로쉬핸드만이 아니었다.

공동 내에 있는 모든 드워프가 마찬가지였다.

그들 모두 둘째가라면 서러운 뛰어난 장인인 것이다.

당연히 타로쉬핸드와 똑같은 반응을 내비칠 수밖에 없었다.

“심연이야. 마찬가지로 데파이 스토스 님께서 탄생시킨 녀석이고.”

“말도 안 돼…….”

그렇게 모두가 심연에 빠져들어 가는 사이였다.

그사이, 나 또한 스며들기 시작했다.

드워프들의 마음에 아주 천천히, 시나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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