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장: 벌레와 장인
쿵! 쿠궁!
엄청난 충돌음과 함께 지진이라도 난 듯 공동 전체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쿠궁! 쿠구궁!!
이곳은 각 드워프 일족의 생존자들이 모여 죽을 힘을 다해 만든 최후의 피난처였다.
비록 열악한 환경에서 급조했다지만 그 견고함 만큼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인 것이다.
한데, 그런 공동이 금세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족장, 아이언이 공격을 시작했소!”
그 원흉이 블랙핸드 일족 출신이자 현 부족장 타로쉬핸드에 의해 밝혀졌다.
사실 밝히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83명의 부족원 중 모르는 이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아이언은 그만큼 징글징글하고 치가 떨리는 놈이었다.
“길어야 대여섯 방, 오래는 못 버티오.”
에펜시아 대륙 남부 테네시아 왕국과 폴라드 왕국의 경계에 걸쳐 있는 라바오레 지대.
놈은 사실상 이 단단한 암석지대의 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지대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자이언트 스톤 웜 중에서도 가장 특수한 개체인 것이다.
대체로 자이언트 스톤 웜의 몸길이는 5m에서 7m 사이인 반면, 아이언은 무려 10m에 육박했다.
나아가 그 크기보다 더 압도적인 것은 바로 놈의 강함에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단단한 바위쯤은 무른 진흙이라도 되는 양 분쇄해 버리고, 다 자란 성체는 철광석마저도 씹어 삼키는 자이언트 스톤 웜이었다.
한데, 놈은 한술 더 떴다.
철광석으로도 모자라 드워프 제 강철마저 찢고 뚫어 내는 것이다.
여기에 상식을 뛰어넘는 껍질의 단단함은 덤이었고 말이다.
드워프들이 놈에게만 붙인 아이언이라는 별칭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지, 오늘도 어떻게든 버텨 내는 수밖에.”
이에 무쇠모루 일족 출신이자 현 족장인 앤비르스미스가 씹듯이 읊조렸다.
방법이 없으니 어떻게든 버텨 내는 수밖에 없다고.
“전원 장전.”
철컥! 철컥! 철컥! 철컥!
그렇게 모든 드워프들이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처절함이 예고된 전투였다.
하지만 앤비르스미스의 말마따나 어쩔 수 없었다.
인간들에게 쫓기고 쫓긴 끝에 가까스로 찾은 마지막 피난처였다.
여기서마저 버티지 못하고 몰려나면 끝이라고 봐야 했다.
전원 인간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사실상의 멸족이나 다름없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주기적으로 이어지는 침공에도 불구하고 죽을 힘을 다해 버티는 것이다.
쿠구구궁!!
“뚫렸다!”
이윽고 강철 방벽의 한 부위에 구멍이 뚫렸다.
한 부위라고 하지만 어마어마한 크기의 구멍이었다.
머리 지름 1.3m 이상의 자이언트 스톤 웜들이 서너 마리씩 한꺼번에 몸을 들이밀 정도로.
“조준.”
척! 척! 척! 척!
“발포!”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이윽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드워프제 철포의 일제 발포가 그 신호탄이었다.
이 신호탄은 뚫려 버린 방벽의 구멍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리하여 오늘 전투의 서전을 장식했다.
콰과과광!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구멍으로 진입 중이던 자이언트 스톤 웜들의 머리가 일거에 터져 나간 것이다.
남겨진 몸뚱이는 조각난 육편이 되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재장전.”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조준.”
척! 척! 척! 척!
“발포!”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전과는 고작 한 번으로 끝이 아니었다.
드워프들의 철포는 쉼 없이 불을 뿜어냈으며, 이에 따라 육편 또한 쉬지 않고 떨어져 내렸다.
이런 과정이 수차례 반복되고 또 반복되었다.
“…….”
그럼에도 드워프들의 분위기는 점점 더 무거워져만 갈 뿐이었다.
이런 흐름이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을 그간의 반복된 전투를 통해 모두가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몸 성히 구멍을 넘어오는 웜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중이었다.
물론 넘어온다고 해서 당장에 치명적인 피해를 유발하지는 못했다.
개별 사격을 받고 마찬가지로 찢겨 나갈 뿐이었다.
하나, 문제는 화망이 엷어진다는 점이었다.
구멍을 덮는 화망이 엷어지며 점점 더 많은 웜이 방벽을 넘어섰고, 그렇게 개별 사격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화망은 한층 더 엷어져 갔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악순환의 반복은 결국 한 개체의 무사 난입으로 이어졌다.
“놈입니다!”
특수 개체 아이언.
놈이 엷어질 대로 엷어진 화망을 뚫고 그 거대한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눈이나 코 따위는 없고 커다란 입만 가지고 있는, 마치 지렁이를 수억 배쯤 확대해 놓은 듯한 그 징그러운 위용을 말이다.
쿠구구구!
당연하게도 등장이 다가 아니었다.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놈은 그대로 돌진을 시작했다.
“아이언을 조준한다!”
이렇게 된 이상 화망 유지는 후 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아이언의 돌진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여 모든 조준점이 일제히 아이언에게로 향했다.
“발포!”
콰앙! 콰앙! 콰앙! 콰앙!
그리고 지체 없이 발포되었다.
드워프들과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중인 아이언의 머리를 향해.
텅! 투콱! 터터텅! 투콱! 터텅!
하나, 그 결과는 영 신통치 못했다.
아이언의 껍질은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일반 개체들을 사정없이 찢어발기던 특제 탄환들이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놈의 머리에 박힌 것들도 있기는 했지만, 그저 박힌 것이 다였다.
치명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쿠우우우!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것이 놈에게도 적잖은 고통을 안겨준다는 점이었다.
피격 직후 아이언이 보이는 몸부림과 이로 인해 멈춰 선 놈의 돌진이 그 방증이었다.
일단 드워프 입장에서도 최악은 면한 셈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최악을 면한 것이 전부였지만.
“1열, 2열 방패 들어! 충돌에 대비한다!”
아이언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사이, 일반 개체들도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이제는 이 거대하고 징그러운 몬스터들과 직접 몸을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콰과과과광!
“크읍!!”
“흐읍!”
“으아압!!”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았다.
드워프들의 타고난 힘 역시 만만치 않은 덕분이었다.
그들의 무구는 만만치 않은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고 말이다.
그리하여 일반 개체들의 돌진까지도 어떻게든 막아 냈다.
“3열까지는 육박전 돌입! 4열은 아이언에 집중 사격!”
대신 본격적인 육박전이 시작됐다.
3열까지의 드워프들은 각자의 무구와 방패를 이용해 일반 개체들을 상대해 갔다.
그것들이 방어선 자체를 집어삼키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가로막았다.
그러는 사이 마지막 남은 4열은 오로지 아이언에 집중했다.
일반 개체들이야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며 막아 낼 수 있다지만, 놈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언이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하면 그때는 어느 정도의 희생에서 그치지 않을 터였다.
하여 급박한 와중에도 놈에 대한 집중 사격만큼은 절대로 멈추지 않았다.
“크읍! 족장, 아무래도 오늘은 쉽게 물러나지 않을 모양이오!”
전황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했다.
본질은 벌레인 주제에 나름의 지능(?)이라고 할 만한 것을 갖춘 아이언이었다.
절대 혼자 쳐들어오는 법이 없었다.
무조건 일반 개체들을 떼로 모아서 쳐들어 왔다.
특히 오늘은 한층 더했다.
지금껏 실패만을 거듭하더니 오늘은 이를 간 모양이었다.
모아온 자이언트 스톤 웜의 숫자가 평소보다 배는 많았다.
이로 인해 방어가 상당히 버거운 상황이었다.
“달리 방법이 없다! 버텨야 해!”
그러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평소 일반 개체들이 몰살당할 때쯤 되면 알아서 물러나던 아이언이었다.
오늘도 그 지점까지 최대한 벌레들을 쳐 죽이며 죽자사자 버티는 방법뿐인 것이다.
“흐읍!”
“크으읍!”
“커헉……!”
“크악!!”
자연스레 드워프들이 입는 피해 또한 평소보다 커졌다.
더는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거나, 아예 벌레에게 잡아먹히는 인원도 속출했다.
그럼에도 자이언트 스톤 웜의 수는 여전히 10마리 이상이었고 말이다.
아무래도 적잖은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뚝.
“……??”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웜들의 모든 움직임이 우뚝 멈춰섰다.
이로 인해 전투가 한창이던 공동에는 순간적인 정적이 찾아왔다.
구구구구.
당연하게도 몬스터들의 의지일 리는 만무했다.
이것들은 어떻게든 드워프를 집어삼키고자 혈안이 되어 있는 상태였으니까.
원인은 제3의 힘에 있었다.
정체 모를 제3의 힘이 벌레들을 일거에 찍어 누르고 있는 것이다.
“넌 누구지……??”
비록 정체는 모르나 그 출처는 짐작 가능했다.
제3의 힘과 함께 등장한 제3의 인물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라이오넬 라인하트라고 합니다.”
웬 인간이었다.
오늘 처음 보는 웬 인간 하나.
“자세한 소개는 일단 저것들부터 정리한 뒤에 하도록 하죠.”
그리고 이때부터였다.
웬 처음 보는 인간의 출현과 함께 모든 상황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 * *
이베리아 영지를 떠난 뒤 곧장 대륙 남부로 향했다.
사네에게 얘기한 대로 그간 시간이 없어 미뤄 둔 일을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미뤄 둔 일이란 간단했다.
나만이 아는 회귀 전 정보를 활용하는 것.
그 정보란 향후 정령석이 발견되는 위치에 관한 정보였다.
따라서 활용 방법 역시 간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서 집어 오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나는 어둠의 정령력을 지니고 있었다.
덕분에 대략적인 위치 한정만으로도 실제 발굴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회귀 전의 나는 검에 미쳐 사느라 세상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정말 특징적인 곳이 아니고는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이런 안타까움을 뚫고 내 뇌리에도 각인될 만큼 특징적인 곳은 총 세 군데였다.
그중 하나가 대륙 동북부에 위치한 마이바크 왕국의 썬더 그라운드.
여기서는 이미 뇌전의 정령석을 획득한 참이었다.
두 번째는 남서부 스위카 왕국에 위치한 샐런드 산이었다.
이곳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과 그 용암지대에 서식하는 샐러맨더로 유명했다.
또한, 훗날 화염의 정령석이 발견되는 지역으로 유명해지기도 한다.
비록 이번에는 인터셉터의 존재로 인해 그리되지 못하겠지만.
이렇게 화염의 정령석을 확보하자마자 향한 곳이 마지막 세 번째 장소였다.
대륙 남부 테네시아 왕국와 폴라드 왕국의 경계에 걸쳐 있는 라바오레 지대.
몬스터 자이언트 스톤 웜의 서식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단, 이는 인간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현재의 사정에 불과했다.
지대 개발이 이루어지는 6년여 뒤에는 두 가지 사항이 더 추가된다.
하나는 여기서 발견되는 대지의 정령석,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이곳이 드워프 최후의 피난처라는 점이었다.
둘 다 추가 직후 곧장 사라지게 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쿠우우우~
어쨌든 나는 현재 라바오레 지대의 거대 암석 내부에 진입해 있었다.
암석 내부에 드워프들이 마련한 피난처.
그곳에 서서 도망치는 자이언트 웜 특수 개체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단단하긴 단단하네.’
특수 개체답게 일반 개체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가볍게 날렸다고는 해도 분명 오러 블레이드가 실린 일격이었다.
그런 내 일격을 먹고도 멀쩡히 달아나는 중인 것이다.
외피의 단단함이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뭐, 일단은…….’
다만, 딱히 상관은 없었다.
성가시기는 해도 진심으로 고민해야 할 만큼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이렇게 순순히 보내 주는 것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금 내가 진짜 고민해야 할 것은 따로 있었다.
“목적을 밝혀라, 인간.”
뒤편에서 의구심과 적개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오는 드워프에 관한 것이었다.
비단 눈빛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나를 향하는 경계태세 또한 엄중하기 그지없었다.
만약 내가 자이언트 스톤 웜들을 싹쓸이하며 등장한 것이 아니었다면, 그저 경계에서 그치지 않았을 터였다.
나에게 겨눠진 총구 역시 곧바로 불을 뿜었을 것이 분명했다.
“인간이 여기 온 이유가 뭐지? 여길 어떻게 알아냈고, 또 무엇을 하기 위해 온 것인지 밝혀라.”
“정령석을 찾아다니던 중이었습니다. 정령석의 기운을 쫓다 보니 자연스레 이곳에 도달하게 됐을 뿐입니다.”
“정령석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 뿐, 우리를 노리고 온 것은 아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더러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것인가,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