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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16화 (117/200)

66장: 마탑

3황자 운송까지 끝낸 뒤, 나는 슈라우드 왕국으로 복귀했다.

물론 빈손은 아니었다.

이번 마이바크행을 통해 얻은 것들이 있었다.

우선 강력한 우군.

그래플과 마이바크 왕국을 강력한 우군으로 두게 됐다.

이 사실만으로도 굉장한 소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강대한 제국을 상대함에 있어 하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우군의 존재가 가져다주는 이점은 단순히 추상적인 개념에서 그치지 않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실질적인 이득까지 안겨 주었다.

썬더 실크 거래량 증가 및 독점 거래권이 그것이었다.

이를 통해 레나는 슈라우드 왕국의 정치 지형을 단숨에 뒤집어 버릴 수 있었다.

개인적인 소득 역시 빼먹을 수 없었다.

무려 정령석이었다.

그것도 4원소 정령석과 달리 극히 희소한 뇌전의 정령석.

이것을 소득 집계에서 빼먹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물론 이것을 내가 섭취할 수는 없었다.

난 이미 어둠에 동화된 상태였다.

여타 정령석 섭취는 정령석의 허무한 낭비라는 것 외에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얼마든지 의미 넘치게 사용 가능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를 위해 특별한 장소에 방문한 상태였다.

“그러니까 탑주는 죽어도 맡기 싫으시다고요?”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연구할 시간도 모자라 죽겠는데, 그 귀찮은 자리를 어떻게 떠맡겠어?”

“그래도 백작님 체면이 있지 않습니까? 왕국에서 무려 20년 만에 탄생한 6서클 대마법사이신데, 웬만하면 맡으시는 게 나아 보입니다만?”

“체면이 마법 실력 늘려 주나? 연구 시간 확보해 줘? 오히려 까먹기만 하지. 그깟 체면 따위 나한테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남들은 그 체면을 얻지 못해 안달입니다.”

“어허, 그런 쭉정이들과 나를 비교하면 안 되지. 자네 말마따나 내가 명색이 6서클 대마법사인데.”

내가 방문한 장소는 슈라우드 마탑이었다.

그리고 이곳 마탑에서 6서클 대마법사와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마법사의 이름은 막시무스 슈러그혼.

1년쯤 전 여섯 번째 서클을 만들어 냄과 동시에 백작위를 수여 받은 인물이었다.

한데, 이 사실이 지니는 의미가 남달랐다.

비단 슈라우드 왕국이 20년 만에 배출해 낸 대마법사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보다 더 큰 요소가 작용하고 있었다.

바로 회귀 전과는 달라진 흐름이었다.

회귀 전의 슈라우드에는 대마법사가 출현한 적이 없었다.

막시무스라는 인물 자체는 존재했지만, 그의 경지는 5서클에서 멈췄던 것이다.

적어도 내가 죽기 직전까지는 분명 그러했다.

하지만 지금은 존재하고 있었다.

내 감각 또한 그의 여섯 번째 서클을 확실하게 감지하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이 뜻하는 바는 한 가지뿐이었다.

막시무스에게 회귀 전에는 없던 새로운 변수가 작용했다는 것.

“그렇게 쭉정이들과는 다른 명색이 6서클 대마법사께서 어찌 이리도 사사로운 청탁을…….”

“흠흠, 뭘 그리 꼬치꼬치 따지고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렇고 그런 거지. 그리고 어디 나 혼자 좋자고 이러는 것인가? 사랑스러운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베풀 시간도 충분히 확보해야 할 것 아닌가? 이게 다 참된 스승의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부탁인 게야.”

그 변수가 무언지는 굳이 질문을 던질 필요조차 없었다.

지금 이 방 안에 함께 있는 내 사람들이 바로 그 변수였으니까.

막시무스가 제자로 삼은 센트럼과 베로카 말이다.

“생각해 보게. 당장 탑주인 우리 사형이 왜 그리 호시탐탐 나한테 그 자리를 떠넘기고 싶어 하겠나? 그만큼 귀찮고 시간 많이 잡아먹는 자리라는 뜻이야. 이 양반이 나이 먹더니 늘라는 마법 실력은 안 늘고 사제 괴롭히는 잔머리만 늘었어.”

“어차피 탑의 위계질서 문제 때문에라도 언젠가는 맡으실 수밖에 없을 텐데요?”

“적어도 우리 사형 죽기 전까지는 아니야. 그때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양반을 방패로 내세워야지. 그러니까 자네가 나 좀 도와줘. 말했다시피 우리 마탑에 공급되는 썬더 실크 물량만 늘려 오면 일단 군말 없이 5년 더 맡아 주기로 했단 말일세.”

이렇듯 나와 개인적인 연이 두터운 막시무스였다.

그런 막시무스가 현재 나에게 청탁을 해 오는 중이었다.

청탁 내용은 간단했다.

마탑에 공급되는 썬더 실크 물량을 늘려 달라는 것.

이를 통해 귀찮은 마탑주 자리를 하루라도 더 미루겠다는 요량인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현재 공급량의 절반이나 더 늘려 달라는 건 좀 과하지 않습니까? 지금도 전체 수입 물량의 40%가 마탑에 공급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어쩌겠나, 마법사들에게 연구 재료라는 건 아무리 많아도 항상 모자란 것을. 그래서 내 이렇게 특별히 부탁하는 것이기도 하고. 자네가 왕녀님께 잘 말씀드려 보면 어떻게 되지 않겠나?”

“제가 아무렇게나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정치적인 성격이 짙은 문제인지라.”

“나도 아네, 단순하게 결정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 그래도 부탁 좀 함세.”

“으음…….”

“우리 연이 어디 보통 연인가? 마탑 밖에서는 사실상 자네가 저 아이들의 보호자나 다름없지 않나? 센트럼과 베로카를 봐서라도 자네가 힘 좀 써 주게.”

“으으음…….”

내가 고민하는 기색을 역력히 내비쳤다.

이게 정말 어려운 문제라서?

아니었다.

솔직히 이 문제는 전혀 어렵지 않았다.

얼마든지 막시무스의 바람대로 해 줄 수 있었다.

애초에 내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으니 말이다.

“하아, 말씀드렸다시피 이게 정말 제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차라리 저보다는 레나 왕녀님과 직접 대화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왕녀님과 직접?”

“예. 중요한 정치적 결정은 결국 왕녀님께서 내리시는 거니까요. 제가 말씀은 잘 드려 놓을 테니, 크게 어렵지는 않으실 겁니다. 왕녀님께 드릴 선물만 적절히 잘 준비하신다면요.”

그럼에도 나는 공을 레나에게로 넘겼다.

이곳에 오기 전 이미 그렇게 하기로 레나와 이야기를 마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선물이라면 어떤?”

“아마 아티팩트 판매 대행 권한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으응?”

아티팩트 판매 대행 권한.

이번 기회에 이것을 얻어 내기 위함이었다.

“그건 좀……. 난 복잡하게 가기 싫어서 자네에게 부탁하는 것인데, 오히려 더 복잡한 문제를 들이밀면 어떡하나?”

마탑의 마법사들은 아티팩트를 만들어 내기만 할 뿐, 직접 판매하지는 않았다.

마법 연구에 쏟을 시간도 모자라다 여기는 이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여 지금껏 외부 상단에 판매 대행을 맡겨 왔고, 여기에는 자연스레 막대한 이권이 걸리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총 세 개의 상단이 이 이권을 나눠 가진 상태였다.

첨언 하자면, 이 세 개의 상단 중 하나이자 무려 이권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상단이 바이퍼 상단이었다.

1왕자의 최측근이자, 과거 아카데미에서 베로카와 진하게 얽힌 바 있는 카르사노 바이퍼.

이 카르사노 바이퍼를 장남이자 후계자로 둔 바로 그 바이퍼 가문의 직영 상단 말이다.

어쨌든 레나는 거대한 이권이 오가는, 그렇기에 고도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이 판에 끼어들고자 하는 것이다.

“복잡하기야 하겠지만, 어차피 그런 문제들은 전부 왕녀님께서 알아서 처리하실 겁니다. 장담컨대 백작님 본인이 귀찮아지실 일은 없어요.”

“음…….”

“어차피 선택은 백작님 몫입니다. 저는 백작님께서 하도 탑주 자리가 싫으시다길래 대안을 제시해 드리는 것뿐이니까요. 물론, 백작님과 제 연이 있는 만큼 저도 왕녀님께 특별한 부탁을 드리기는 하겠지만요.”

“특별한 부탁?”

“굳이 예를 들자면, 지금 원하시는 것보다 공급량을 더 늘려 주십사하는 부탁 같은 것 말이죠. 아예 깔끔하게 현재의 두 배 정도?”

“……!!”

“제가 개인적인 연으로 무언가를 해 드릴 수 있는 건 백작님께서 선택하신 이후의 영역입니다. 선택은 어디까지나 백작님께서 하셔야 해요.”

굳이 붙일 필요 없는 사족이었다.

막시무스의 눈은 이미 반짝하고 빛을 낸 뒤였으니까.

공급량 두 배라는 단어가 내 입을 타고 흘러나오는 순간 선택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말 꼭 지켜야 하네. 두 배로 늘려 주겠다는 그 말.”

“제가 설마 대마법사이신 백작님께 허언을 하겠습니까? 제가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킵니다.”

“좋아, 믿겠네. 그럼 난 사형과 얘기를 좀 해 봐야 할 것 같군. 이 문제는 나 혼자 결정할 만한 사안이 아니라서 말이야.”

“예, 다녀오십시오. 저도 그사이에 아이들과 회포 좀 풀고 있겠습니다.”

“알겠네. 그럼 다녀오지.”

그렇게 눈을 빛낸 막시무스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탑주를 만나러 쌩하니 나가 버렸다.

역시 대마법사답게 시원시원한 결단과 움직임이었다.

“둘 다 그동안 잘 지냈지?”

“예, 라이 경.”

“저희는 잘 지냈습니다.”

덕분에 나는 내 사람들과의 시간을 가지게 됐다.

센트럼과 베로카.

이번 생에 내가 발굴해 낸 최고의 보석들이었다.

“그럼 얘들아, 백작님도 자리 비우셨는데, 이제 좀 앉지 않을래? 특히 베로카, 넌 왜 하녀처럼 그러고 섰어?”

그런데 이 녀석들이 좀 이상했다.

방에 들어온 지 한참이 지났건만 여전히 앉지를 않고 서 있는 것이다.

특히 베로카가 문제였다.

베로카가 하녀였던 아카데미 시절처럼 내 옆에 시립하고 선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센트럼 또한 그 옆에 어정쩡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전 괜찮습니다, 라이 경.”

“내가 안 괜찮아서 그래. 베로카, 너 이제 이럴 사람 아니야.”

베로카는 이제 이러고 서 있을 위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녀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할 위치였다.

내가 봤던 잠재력 그대로였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본인 스스로 어마어마한 노력을 곁들인 모양인지, 8년 만에 다시 본 베로카는 엄청난 마법사로 탈바꿈해 있었다.

고작 20대 중반의 나이에 무려 다섯 개의 서클을 보유한 것이다.

희대의 천재라는 수식어가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 뒤 경지에 맞게 남작 위까지 받을 녀석의 행동이 이러했다.

마치 하녀 때처럼 여전히 나를 떠받들고 있었다.

내 옆에 시립은 기본이요, 다과는 완벽히 내 취향에 맞춰 세팅된 상태였고, 내 찻잔의 차는 떨어질 틈이 없었다.

베로카가 그때마다 바로바로 채워 주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와 베로카의 관계라 하더라도 5서클 마법사가 이러는 건 과했다.

과해도 아주 많이 과했다.

“네가 이러니까 센트럼도 덩달아 눈치만 보고 있잖아.”

찌릿.

“빨리 앉아요, 센트럼. 라이 경께서 불편하시지 않도록.”

“네, 네. 앉겠습니다, 베로카 양.”

센트럼도 여전했다.

여전히 베로카의 순한 양이었다.

베로카의 눈짓에 따라 재빨리 내 맞은편에 앉는 그였다.

“베로카, 너도 얼른…….”

“차가 다 떨어졌네요. 가서 다시 채워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베로카 양, 제가…….”

“앉아요. 앉아서 제가 다녀올 동안 담소 나누고 있어요. 라이 경 심심하시지 않게.”

베로카마저 그렇게 자리를 비웠다.

잠시간이기는 하겠으나, 이제 방 안에는 나와 센트럼뿐이었다.

“베로카가 쭉 저렇게 행동해 온 거야? 만약 아직도 과거 습관을 버리지 못한 거라면 그건 좀 문제인데…….”

“아니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마탑에 온 이후로 처음 보는 모습이에요. 평소 모습과 완전히 다릅니다. 마탑에서 베로카 양 별명이 얼음 마녀거든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나저나 너는 어때, 센트럼? 잘 지내고 있어?”

“그럼요, 저도 정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트라우마의 극복과 베로카의 영향이 큰 모양이었다.

센트럼의 경지 역시 굉장히 빠른 속도로 향상됐다.

벌써 4서클 마스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그냥 4서클도 아니었다.

강력한 뇌전 마법에 특화된 4서클이었다.

마법사로서의 가치는 여타 4서클에 비해 월등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 흐음, 그런데 왜 내 눈에는 그늘이 져 있는 걸로 보이지?”

“네……?”

“우리 둘만 있으니 솔직히 얘기해 봐. 혹시 베로카 때문이야? 베로카랑 너무 차이가 벌어지는 것 같아서 신경이 쓰인다든지, 뭐 그런 거.”

“아닙니다! 절대, 절대 아니에요! 전 베로카 양이 높이 올라가는 걸 보는 게 정말로 행복합니다, 라이 경. 이건 진심이에요.”

내 말에 펄쩍 뛰는 센트럼이었다.

이런 그의 격렬한 반응 어디에도 거짓은 보이지 않았다.

베로카를 위하는 센트럼의 마음은 분명 진심이었다.

“그게 네 진심인 건 나도 알아. 그러면 왜 그렇게 풀이 죽어 있는 건데?”

그러나 내 질문도 꼭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내 어둠에 포착되는 센트럼의 감정 때문이었다.

그 안에는 고민이나 번뇌 따위 역시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내가 널 몰라? 꼭 옛날 아카데미 때 모습 보는 것 같아서 그래. 물론 그때만큼 심각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무슨 고민이 있기는 있어.”

무엇보다 과거 아카데미에서 센트럼의 트라우마를 극복시켜 준 장본인이 바로 나였다.

센트럼의 심리 상태쯤이야 그냥 한번 쓱 보는 것만으로도 파악 가능했다.

“…….”

그래서였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진심을 내보일 수밖에 없는 센트럼이었다.

“……라이 경 말씀대로 있기는 있는데, 그렇다고 또 이게 무슨 해결책 같은 게 있는 건 아니어서…….”

“혹시 알아? 그러니까 일단 말해 봐.”

“그게, 으음……, 제가 베로카 양에게 너무 보살핌만 받는 것 같아서……. 저도 뭔가 도와드리고 싶기도 하고, 또 지켜 드리고 싶기도 한데, 저는 베로카 양에게 딱히 쓸모가 없는 존재인 것 같기도 하고…….”

센트럼의 횡설수설이 시작됐다.

한번 물꼬가 트이니 진심이 콸콸 터져 나오는 것이다.

역시나 예상한 그대로였다.

“그래서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은데, 그렇다고 무슨 방법이 있는…….”

“거봐. 내가 뭐라고 그랬어?”

그리고 이런 면에서 센트럼은 참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것도 아니……, 예?”

“혹시 모르니까 일단 말해 보라고 그랬지?”

꼭 필요한 순간마다 알맞은 대책을 제공해 주는 나라는 존재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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