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15화 (116/200)

65장: 대전회의(2)

…….

분위기가 싸했다.

싸한 공기가 대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아가 이 싸한 공기는 곱지 못한 시선과 함께 오로지 한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저 때문에 분위기가 영 좋지 못하네요. 그렇다고 굳이 제 눈치까지 보실 필요들은 없는데.”

반면 정작 당사자는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레나는 이 무거운 시선과 분위기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기고 있었다.

“뭐? 눈치를 봐? 진심인 것이냐?”

“글쎄,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평소와 달리 너무 조용들 하시니까.”

“하, 그렇게 만든 당사자가 뻔뻔하게……. 하긴, 그렇게 눈치가 없으니 왕녀 따위가 국왕이 되겠다고 설치는 것이겠지.”

그런 레나의 태도가 심히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대전회의 시작도 전부터 태클을 걸고 나서는 크리스토퍼였다.

하긴, 언제 어느 때든 레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그였지만.

이에 레나는 가볍게 고개를 돌리며 무시해 주었다.

“쯧쯧, 꼴에 아직도 자존심은 남아 있는 모양이군.”

원래라면 곧장 발끈해야 하는 크리스토퍼였다.

그것이 성급하고 경솔한 그가 늘 보여 오던 반응이었다.

하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크리스토퍼가 그답지 않게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뭐, 그래 봤자 주제 모르고 날뛰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겠지만.”

나름 그럴 만했다.

대전의 공기를 넘어 정계의 분위기 자체가 평소와 판이했다.

지난 7년 동안의 그것과 달리 레나에게 극도로 부정적인 것이다.

비단 크리스토퍼와 1왕자 측 세력만이 아니었다.

3왕자와 서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중립 세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 또한 세모 눈으로 레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오브리가 국왕과 내무대신 아이르만 다스더 백작마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놓고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오지는 않으나, 애써 레나의 시선을 피하는 그들이었다.

그럼으로써 레나의 의지에 동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그만큼 사회 관념에 정면으로 반하는 일이었다.

왕녀가 국왕 자리를 노린다는 것은.

“대전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레나를 향한 분위기가 심히 좋지 못한 방향으로 고조되는 와중이었다.

아이르만 다스더의 진행과 함께 대전회의가 시작됐다.

“그럼 오늘의 안건에 대해 회의 소집을 신청한 1왕녀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은 곧바로 레나에게 넘어왔다.

레나가 소집을 요청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어차피 오늘의 핵심은 사실상 하나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저 때문에 요 며칠 왕도가 적잖이 시끄러워졌던 것으로 압니다. 우선 의도치 않게 소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부터 드리겠습니다. 대신 이것이 괜한 혼란까지는 번지지 않도록 지금 이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밝히겠습니다.”

하여 레나는 쓸데없이 시간을 끌지 않았다.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다들 소문은 들으셨을 겁니다. 제가 직접 왕위를 노리는 바람에 2왕자와 사이가 틀어졌다는 뭐 그런 소문. 그리고 그 소문……, 맞습니다. 헛소문이 아니에요.”

“그럼 정말…….”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무리 그래도 왕자님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계신데 어떻게 왕녀가…….”

“저는 분명히 슈라우드의 국왕 위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다른 왕자를 내세우는 게 아닙니다. 1왕녀인 제가 직접 계승 경쟁에 뛰어들 작정입니다.”

웅성웅성.

반응은 뜨거웠다.

중구난방으로 한마디씩 떠들어 대는 대신들.

“나라 꼴 참 잘 돌아가는군. 이거야 원, 어디 대륙 전체에 부끄러워서 고개나 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니까? 일개 왕녀 따위가 감히 국왕 자리나 넘보고 말이야.”

역시나 저급한 발언을 쏟아 내는 크리스토퍼.

“…….”

아무 말은 없으나 이제는 대놓고 불편한 시선을 보내오는 오브리가 국왕까지.

대전 안에 레나의 편은 누구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든 제 의지는 꺾이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부로 슈라우드 왕국 정식 계승권자로서의 정당한 권한을 행사합니다.”

“흥, 어디 한번 맘대로 해 봐. 어차피 네 미친 짓거리에 호응할 귀족은 여기 아무도 없으니까.”

“이대로라면 분명 그렇겠지요. 그래서 지금부터 분위기를 바꿔 볼 생각입니다.”

하지만 레나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 당장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었다.

없다면 만들어 가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리고 레나는 얼마든지 만들어 갈 자신이 있었다.

그것도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그녀가 손에 쥐고 있는 압도적인 힘으로.

“오늘 대전회의 소집을 요청한 제가 상정할 안건은 총 두 가지입니다. 건의 사항 하나와 협의 사항 하나.”

그 압도적인 힘의 종류는 두 가지였다.

무력과 경제력.

건의 사항으로써의 무력과 협의 사항으로써의 경제력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아가 이것으로 오늘 대전회의를 완벽하게 찍어 누를 작정이었다.

“우선 건의 사항은 소드마스터에 대한 백작위 수여에 관한 것입니다.”

“소드마스터에 대한 백작위 수여? 혹시 라이오넬 라인하트 경에 대한 작위 수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요, 라이오넬 라인하트 경이 아닙니다.”

아이르만의 물음에 레나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 안건에 라이오넬의 직접적인 등장은 없을 예정이었다.

“라인하트 경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새로운 인물이에요. 우리 왕국에 새로운 소드마스터가 탄생했거든요.”

물론 전부 라이오넬과 관련된 것들이기는 했다.

“에릭스 브란부르크 경입니다. 라인하트 영지의 기사단장인 그가 우리 왕국의 새로운 소드마스터랍니다.”

“……!!”

“얼마 전에 벽을 깼다고 전해 왔습니다. 그간 경지 정리에 몰두해 있느라 전달이 다소 늦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되면 현재 슈라우드 왕국이 보유한 소드마스터의 숫자는 셋으로 늘어난다.

소드마스터 숫자의 증가란 곧 국가 전략 자산의 증대.

따라서 대외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대외적인 것보다 대내적인 의미가 훨씬 지대했다.

정치 지형에 대대적인 지각 변동을 일으키게 되기 때문이었다.

에릭스 브란부르크는 누가 뭐라 해도 라인하트 가문의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 아들인 다이너 브란부르크는 라인하트 자작의 여동생과 결혼까지 한 사이.

그 관계를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 말인즉슨 왕국 내 세 명의 소드마스터 중 둘이 레나의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무력적인 면에서 여타 세력들을 가뿐히 찍어 누르는 것이다.

“그러니 왕도에 불러서 경지 확인 후 백작위 수여를 건의하는 바입니다. 물론 당연히 없겠지만, 혹시라도 이의 있으신 분 계신가요?”

있을 리 만무했다.

실질적인 힘은 물론이고 명분까지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건의사항이었으니까.

“역시 없네요. 이러면 건의 사항은 통과된 것으로 봐도 괜찮을까요, 다스더 백작님? 딱히 문제 될 일은 없어 보이는데.”

지금껏 열심히 태클을 걸던 1왕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반대 의사 같은 건 표명할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충격에 잠겨 입만 떡하니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예, 왕녀님. 왕녀님의 건의 사항은 통과되었습니다.”

이에 아이르만이 통과를 선언했다.

절차를 다소 건너뛰기는 했으나, 지금 사소한 절차 생략 따위는 하등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슈라우드 정계에 휘몰아칠 강력한 변혁의 폭풍이었다.

“감사해요. 그럼 바로 두 번째 안건을 논의하면 되겠네요.”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었다.

기왕에 내친걸음이었다.

레나는 단순히 흐름을 뒤집는 수준에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아예 굳히기에 들어갈 작정이었다.

“말씀드렸다시피 두 번째는 협의가 필요한 사안입니다. 각 영지의 이권이 걸릴 수밖에 없는 안건이어서 말이지요.”

첫 번째가 무력이었다면, 두 번째는 경제력이었다.

경제 분야에서의 압도적인 힘.

어찌 보면 실질적인 세력 변화에는 이것이 더 큰 영향을 미칠 터였다.

직접적으로 돈이 걸린 문제였으니까.

“마이바크 왕국의 썬더 실크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해요. 이제는 필수품이나 다름없는 물건이니까. 두 번째 안건은 바로 이 썬더 실크에 관한 거랍니다. 썬더 실크의 거래와 관련해서 저와 여러분 사이에 협의가 필요해졌거든요.”

“……?”

“앞으로 우리 왕국과 마이바크 왕국 사이의 썬더 실크 거래는 제가 독점하게 됐습니다.”

“무, 무슨!!!”

“마이바크 왕실과 이미 이야기를 마쳤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왕국 내 각 영지와 상단들에 대한 판매량 조정을 진행할 예정이에요. 생각 있으신 분들은 언제든 제 궁으로 찾아와 주시면 됩니다.”

소드마스터라는 무력과 썬더 실크 거래 독점권이라는 경제력.

이 두 가지 힘이면 충분했다.

왕국의 날고 긴다 하는 대신들 전체를 일거에 압도하고도 남았다.

…….

이쯤 되니 대전에 다시 한번 침묵이 내려앉았다.

단, 이번 침묵은 종전의 그것과 의미가 달랐다.

싸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았다.

대신 활발하고 역동적이었다.

염려이자 기대가 잔뜩 실린 침묵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슈라우드 정계에 몰아칠 레나 발 초거대 태풍에 대한 염려이자 기대 말이다.

* * *

“왕녀님, 올란도 카디프 백작이 찾아왔습니다.”

“들라 하세요.”

방문이 열리고, 올란도가 들어왔다.

이에 레나가 그를 가볍게 맞이해 주었다.

“생각보다 많이 늦으셨네요, 카디프 백작. 아침에 분명히 말씀드렸는데, 괜한 쑥스러움 때문에 망설이지 마시라고.”

다만 이것이 진짜 가벼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오늘 아침, 레나에게 결별을 통보했던 올란도였다.

앞으로 그와 레나가 독대할 일은 없을 거라며 당차게 궁을 박차고 나갔던 것이다.

한데, 그러고 나간 이가 고작 반나절 만에 제 발로 다시 방문한 참이었다.

“죄송합니다. 하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제가 어찌 뻔뻔하게 고개부터 들이밀겠습니까? 감히 왕녀님을 믿지 못한 제 우둔함에 대해 어찌 사죄드려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조금 늦어졌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올란도는 분명 방 안에 들어선 상태였다.

그러나 레나에게는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문 근처에 공손한 자세로 기립하고 섰을 뿐이었다.

마치 상관에게 보고라도 올리는 모양새랄까?

그러고는 그 모양새 그대로 본인이 싸 들고 온 보따리를 풀어 놓기 시작하는 그였다.

사죄의 대가로 싸 들고 온 일종의 선물 보따리 같은 것이었다.

“일단 제 영향력이 닿는 남부 귀족들에게 확답을 받고 왔습니다. 모두 왕녀님의 휘하에 들기로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저런,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다니까…….”

“그저 제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그리고 장담 드리건대 저와 저희 가문을 비롯하여 남부 전체는 앞으로 왕녀님의 가장 확실한 우군이 될 것입니다.”

“백작께서 정 그러시다면 저 또한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겠군요. 자, 어서 자리에 앉으세요. 귀한 분께서 계속 그리 서 계시면 안 되지요.”

그제야 감사 인사와 함께 자리에 앉는 올란도였다.

갑을관계가 더할 나위 없이 또렷하게 설정된 현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현장에는 갑과 을, 양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선객이 자리하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레안드로 백작. 카디프 백작께서 감사하게도 제게 도움이 될 만한 선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와 주신 터라 잠시 정신이 팔렸었네요.”

그 선객이란 그레이 레안드로 백작이었다.

레나가 포섭 직전까지 갔던, 그러나 소문이 터진 직후부터 오늘 아침까지 코빼기조차 비치지 않았던 바로 그 중부의 유력 귀족 말이다.

그가 이 갑을관계 확정의 현장을 가감 없이 지켜보고 있던 것이다.

지진이라도 난 듯 미세하게 흔들리는 동공과 함께.

“그럼 하던 얘기 계속 이어 가 볼까요, 레안드로 백작? 그래서 백작께서는 썬더 실크를 얼마나 공급받고 싶으시다고요?”

“크흠, 그것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온 올란도 옆에서 민망하기 그지없을 터.

괜한 헛기침과 흐려지는 말끝이 그 방증이었다.

“오전에 카디프 백작께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제 궁을 방문하는 이의 과거를 크게 따지지 않는답니다.”

물론 레나는 그런 그레이에게도 가볍게 미소를 지어 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레이에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그에게 가벼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지독하게 무거운 압박감으로 작용한다면 또 모를까.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편히 말씀해 보세요, 백작.”

그렇게 레나는 확실하게 수거하는 중이었다.

초거대 태풍이 휩쓸고 간 뒤의 짭짤한 잔여물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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