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장: 3황자의 행방
“국경에서 왕세자가 직접 성대한 환송식까지 치러 줬다라…….”
로만 제국 황제 아이단이 말끝을 흐렸다.
방금 그의 수하인 카일 이반이 들고 온 소식 때문이었다.
“아예 대놓고 못을 박는군. 본인들은 니바스를 아무 문제 없이 돌려보냈다고.”
3황자 니바스가 무사히 제국으로 복귀했으며, 마이바크 왕국은 그런 그에게 성대한 환송식까지 치러 주었다는 소식이었다.
한데, 이 환송식이 평범하지 않았다.
식의 장소가 제국과 마이바크 왕국의 국경이었다.
즉, 제국군 국경수비대가 보는 앞에서 치러진 것이다.
그것도 마이바크 왕국의 왕세자가 직접 국경까지 행차해서.
이는 일종의 선언이라고 볼 수 있었다.
마이바크 왕국은 무탈하게 3황자를 제국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니 괜한 트집 같은 거 잡을 생각 마라, 뭐 이런 종류의 선언 말이다.
“그라가스에 관한 것은?”
“송구합니다, 폐하. 행방불명 상태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아직 뚜렷한 것이 없습니다.”
“어차피 이쯤 됐으면 전부 다 들통 난 것이라고 봐야겠지. 그게 아니고야 마이바크 왕국이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행보를 보일 리 없을 테니.”
“……송구합니다.”
그라가스의 보고가 끊긴 지 벌써 두 달째였다.
직접 암살을 시도하겠다는 보고가 마지막이었다.
이 말인즉슨 직접 암살 시도가 실패한 것은 물론이요, 그라가스의 신변에 어떤 문제까지 생겼다는 의미.
아무래도 마이바크 측에 발각되어 진짜 정체와 임무까지 드러났다고 봐야 했다.
이어진 마이바크 왕국의 노골적인 행보가 이를 뒷받침했다.
“일단 니바스부터 최대한 빨리 데려오도록. 녀석이 와야 제대로 된 정황 파악이 가능해.”
“그렇지 않아도 인원을 보내 두었습니다. 중간에 어디 새는 일 없이 곧장 황도로 직행할 겁니다.”
“그렇군, 알겠다. 그럼 나가 봐.”
“예, 폐하.”
그렇게 카일을 내보낸 뒤, 아이단은 홀로 생각 정리에 들어갔다.
‘대차게 말아먹었군.’
사실 결과에 대해서는 정리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너무나도 자명했기 때문이다.
임무를 맡았던 그라가스는 행방불명됐고, 죽어야 했을 니바스는 여전히 쌩쌩했으며, 표적이었던 마이바크 왕국은 타겟팅에서 벗어났다.
직속 수하를 잃었음에도, 목적은 무엇 하나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한 마디로 대실패였다.
‘어느 부분에서 꼬인 거지?’
문제는 이런 처참한 결과를 도출시킨 원인이었다.
현재로서는 원인 파악이 불가능했다.
그라가스는 아이단이 직접 키운 최상위 암살자였다.
그런 그가 변변한 아티팩트 하나 없는 니바스 암살에 실패했다.
어떤 변수가 작용한 것은 분명한데, 이 변수에 대한 정보가 너무 빈약했다.
그라가스가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이바크의 소드마스터들이 개입한 것도 아닌데……, 숨겨 둔 실력자라도 있는 것인가?’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은 그라가스를 압도하는 실력자의 개입이었다.
그러나 마이바크의 실력자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니바스가 마이바크로 떠난 뒤 주기적으로 체크해 온 부분이니만큼 이는 확실했다.
그렇다면 제국이 체크하지 못한 새로운 실력자의 출현일지도 몰랐다.
“으음…….”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했다.
현재 확신할 수 있는 바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일단은 기다리는 수밖에.’
일단 니바스가 돌아와야 했다.
그래야 사건의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을 터.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니바스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고민을 일단락짓는 아이단이었다.
그리고 밤늦은 시간이니만큼 내일을 위해 수면에 들어갔다.
“폐하!!”
그런데 이른 새벽 시간, 아이단의 수면을 강제로 중단시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 카일 이반 자작이옵니다. 급히 드려야 할 보고가 있습니다!”
카일 이반이었다.
어젯밤 보고를 올리고 물러간 지 채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았건만 급하게 다시 찾아온 것이다.
“……들도록.”
무언가 문제가 발생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야 카일 이반쯤 되는 이가 이렇게 경우 없이 행동할 리 만무했다.
“폐하, 문제가 생겼습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그 문제가 인사조차 건너뛴 카일 이반의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3황자가 사라졌습니다.”
“……!!”
* * *
암살 실패 직후였다.
“사, 살려 준다고 하지 않았소? 그러면서 제국으로 돌아가라니!!”
그렇기에 니바스는 그래플이 내놓은 대안에 더욱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막 죽다 살아난 상황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이건 무조건 이행돼야만 하는 필수조건입니다. 그래야 제국이 우리 왕국에 괜한 트집을 잡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물론 그냥 보내지는 않을 겁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살려 드리겠다고.”
그러나 그래플은 빈말을 하지 않았다.
니바스의 생존은 이곳에 들어오기 전부터 결정된 바였다.
3황자는 우리가 확보해 두기로 이야기를 끝낸 것이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는 한 수로서.
“믿을 만한 보디가드를 하나 붙여 드리겠습니다.”
끄덕.
그래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나 또한 신호를 보냈다.
스으으.
“헙!!”
콰당.
그러자 어둠에 스며들어 있던 카밀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니바스가 놀라자빠졌지만, 누구 하나 신경 써 주지 않았다.
니바스 본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본인이 넘어진 것은 인식조차 못 한 채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볼 뿐이었다.
등장하자마자 이어진 카밀라의 거침없는 행동을.
콰득.
등 뒤로 가서는 암살자의 목덜미에 곧바로 송곳니를 박아 넣는 그녀였다.
그리고 뱀파이어로서의 본능을 따르기 시작했다.
꿀꺽꿀꺽.
“히, 히익!!!”
단, 아주 천천히.
니바스의 눈을 똑바로 응시한 상태에서.
“……!!”
카밀라만이 아니었다.
카밀라에 의해 고정된 암살자의 시선 또한 똑바로 니바스를 향했다.
감히 형용할 수 없는 고통 가득한 눈빛으로.
“아아, 아아아…….”
이에 압도당하고 만 니바스였다.
절로 새어 나오는 신음이 그 방증이었다.
탄식 같기도 좌절 같기도 한 그런 신음 말이다.
꿀꺽꿀꺽.
물론 카밀라는 그런 것 따위 눈곱만큼도 개의치 않았다.
여전히 니바스의 눈을 응시한 채 끝까지 빨아먹을 뿐이었다.
단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털썩.
이내 결말이 도출됐다.
암살자는 결국 시체가 되고 말았다.
온몸의 피란 피는 전부 빠져나간, 하얗디하얀 시체가.
스으으.
그런 직후였다.
암살자의 피를 모조리 흡수한 카밀라는 등장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새하얀 시체 한 구만을 남겨 놓은 채 어둠 속으로 다시 스며든 것이다.
“히끅! 히끅!”
시간만 놓고 보면 정말 짧은 등장과 퇴장이었다.
하나, 남긴 임팩트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강렬했다.
그 강렬함을 니바스의 딸꾹질이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방금 보신 그 친구를 황자님께 붙여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우선 제국으로 돌아가세요. 공식적으로 국경을 넘어서고 나면 방금 그 친구를 통해 황자님을 다시 제국 밖으로 빼낼 겁니다. 어떻게, 이 정도면 믿을 만하지 않겠습니까?”
“히끅! 히끅!”
“그러니 맘 편히 먹으시기 바랍니다. 괜히 일 복잡해지게 엄한 생각 같은 거 품지 말고.”
이는 일종의 경고이기도 했다.
행여나 허튼 짓거리는 꿈도 꾸지 말라는 그런 경고.
끄덕끄덕.
그리고 이 경고의 효과는 굳이 확인조차 필요 없었다.
딸꾹질에 이어 무의식적으로 끄덕여지는 니바스의 고갯짓을 본다면 말이다.
* * *
암살 시도를 막아 낸 뒤에도 그래플의 신경은 오로지 니바스를 향해 쏠려 있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짜 끝은 니바스가 공식적으로 국경을 넘어선 뒤라고 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암살 저지 직후 오히려 더 바빠진 그래플이었다.
곧바로 니바스와 제국 인사들의 복귀 준비에 착수한 것이다.
‘슬슬 끝에 다다른 것 같은데?’
덕분이었다.
반대로 나에게는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암살 저지 이틀 후, 따로 떨어져 나와 홀로 움직였다.
애초에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 자체를 그래플과 마이바크 왕세자밖에 모르는 상황이니만큼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꽈릉! 꽈르릉!!
그리하여 썬더 그라운드 깊숙한 곳을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마이바크 왕국이 확보해 둔 안전 구역을 한참이나 넘어선 지역이었다.
당연히 처음 와 보는 지역이기도 했다.
‘거의 다 온 모양이네.’
그럼에도 여기까지 오는 동안 헷갈림이나 시행착오는 겪지 않았다.
이정표라고 할 만한 것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나방이었다.
일전에 그래플에게 물은 바 있는 특별한 나방.
그것을 따라 지대의 거의 끝에 다다른 참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확신 가능했다.
이 특별한 개체를 따라오는 게 맞았다는 사실을.
그래플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 나방들은 귀소본능을 지니고 있었다.
특별한 개체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만 마리 중 한 둘씩 보이던 특별한 개체가 족히 수십 마리는 보이는 것이다.
그것들이 일제히 한 방향을 향해 날아가는 중이었다.
‘저거구나.’
그렇게 목표로 한 것에 도달했다.
특별한 개체들의 요람이자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벼락 맞아 타 버린 나무와 바위들 틈에 교묘하게 가려져 있는 것이기도 했다.
콰릉!
외형 자체가 특별하지는 않았다.
지대 초입에 형성해 둔 인공 사육장의 그것과 모양 면에서 큰 차이는 없었다.
그저 약간 더 크고 높다는 정도?
콰르릉!!
하지만 특별했다.
외형 따위로는 구별할 수 없는 특별함이었다.
특별하지 않은 외형 속에 품고 있는 엄청난 무언가 때문이었다.
비록 쥐똥만큼의 기운조차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꽁꽁 싸매고 있지만, 나에게는 확연히 느껴졌다.
나방의 요람이자 무덤이 품고 있는 엄청난 무언가, 바로 정령석의 존재가.
‘이래서 제국이 금방 찾았던 거였군.’
정령석은 생각보다 찾기 쉬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마이바크 점령 후 3년 만에 제국에 뇌전의 소드마스터가 출현했던 것도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아마 황제의 계략을 망쳐 놓은 지금의 흐름대로라고 해도 시기는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이대로라면 썬더 그라운드 개척이 끝나는 시점 즈음에는 마이바크 왕국이 발견할 테니 말이다.
우우웅~
하나,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발견의 주체와 시기 모두 달라질 예정이었다.
주체는 회귀 전과 같은 로만 제국도, 그렇다고 땅의 주인인 마이바크 왕국도 아니었다.
시기 또한 몇 년 뒤가 아니었다.
지금 당장이었다.
지금 당장, 이곳을 찾은 나에 의해서.
콰과광!!
주먹에 오러를 모아 그대로 내리쳤다.
망설임은 없었다.
제국을 향한 작은 복수이자, 왕국을 존속시켜 준 정당한 대가였다.
망설일 이유가 조금도 없는 것이다.
“반갑다, 뇌전.”
콰지지직~!!
그렇게 손에 넣었다.
장차 제국을 태워 버릴 강력한 무기, 뇌전의 힘을.
* * *
깜박깜박.
연신 눈을 깜박였다.
그럼에도 시력의 회복은 빠르지 않았다.
여전히 침침했다.
“으으으…….”
시력만이 아니었다.
온몸이 다 그러했다.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물건인 양 삐걱대고 있었다.
특히 허리는 심각하게 굳어 있는 상태였다.
살짝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절로 신음이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으으……. 사, 큼큼, 살았…… 다.”
하지만 니바스는 안도했다.
눈은 침침하고, 몸은 삐걱대며, 목소리마저 잔뜩 갈라져 쇳소리가 흘러나오지만, 그럼에도 안도의 한숨을 쉬는 그였다.
이런 고통조차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그래플 스트라우스, 그자가 약속을 지켰구나.’
그래플은 니바스에게 약속했었다.
일단 제국으로 돌아가라고.
그러면 국경을 넘어선 직후 다시 빼내 주겠다고.
니바스는 이 약속을 믿고 그대로 따랐고 말이다.
사실 따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입장이었다.
비단 황제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벌어진 그날 밤의 기억.
이 기억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했다.
그날 이후, 검은 것만 봐도 소스라치게 되는 니바스였다.
심지어 니바스 본인의 그림자조차 쳐다보기 두려울 지경이었다.
이것의 원인은 분명했다.
소름 끼치도록 아름다웠던, 그러나 시체를 연상케 할 만큼 창백했던 한 여자.
어둠에서 나와 어둠으로 사라진 그 여자를 떠올릴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가끔 그녀의 치명적인 송곳니까지 떠오를 때면 오줌이라도 지릴 것만 같았다.
감히 다른 생각 같은 것은 품을 겨를 자체가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그래플의 지시에 따라 국경을 넘어섰다.
그러자 반나절 뒤, 다시 어둠이 일렁거렸다.
소름 끼치도록 치명적인 그녀가 재등장한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기겁하고 말고 할 새도 없었다.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됨과 동시에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막 정신을 차린 참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몸이 시리…….’
“깨어났나?”
“히, 히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