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11화 (112/200)

62장: 암살 시도

‘드디어 오늘로 끝이군. 길었어.’

그라가스가 걸음을 옮기며 이번 임무에 대해 회상했다.

이례적으로 길었던 임무였다.

암살을 주업으로 삼는 그의 직종에서 반년을 넘어가는 작업 기간은 흔치 않았다.

보통 암살을 의뢰하는 경우는 최대한 빠른 처리를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이번 임무는 특별했다.

준비 기간까지 합치면 작업 기간이 근 1년에 달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암살과는 거리가 멀었다.

암살 대상부터가 그러했다.

로만 제국 3황자 프레드릭 대니얼 니바스 로만.

즉, 암살 대상이 황족인 것이다.

아무리 계승권 경쟁에서 참패한 황자라지만, 그래도 황족은 황족.

황족 암살은 위험 부담이 지대할 수밖에 없었다.

돈이 얼마가 됐든 웬만해서는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신상에 이로웠다.

그러나 그라가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 임무를 맡았다.

돈이나 암살자로서의 명성 따위 같은 하찮은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의뢰인 때문이었다.

로만 제국의 현 황제 아이단.

그가 바로 의뢰인이었다.

동시에 그라가스의 숨겨진 주인이기도 했다.

사실상 의뢰라기보다는 주인으로서의 명령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망설일 이유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렇게 임무가 하달되자마자 곧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니바스 개인에 대한 세밀한 조사는 굳이 말로 할 것도 없었다.

니바스의 극히 사소한 습관조차 니바스 본인보다 그라가스가 더 잘 알고 있을 지경이었다.

더불어 카일 이반의 도움을 받아 적당한 신분을 준비했다.

마이바크행의 실무 책임자 제이든 스미스 남작.

이것이 현재 그라가스가 뒤집어쓰고 있는 위조 신분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뒤에는 니바스와 행렬을 이끌고 이곳 썬더 그라운드로 향했다.

그러고는 도착과 함께 본격적인 임무에 착수했다.

니바스 암살을 위해 그라가스가 선택한 수단은 독이었다.

어차피 니바스에 관한 모든 것이 그의 손을 거치는 만큼, 음식물에 독을 섞는 일쯤은 간단했다.

니바스가 의심이 많고 조심성이 과하기는 하나 이 또한 문제 될 것 없었다.

시간이 나름 길게 주어진 상황이었다.

혼합 독을 사용하면 그만인 것이다.

주기적인 케어나 고급 아티팩트는 꿈도 꿀 수 없는 니바스였다.

그가 혼합 독을 눈치챌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했다.

하여 지난 한 달 동안 이것을 니바스의 체내에 차곡차곡 쌓아 온 참이었다.

그리고 오늘이 드디어 디데이였다.

두 시간 전, 니바스의 점심에 마지막 독을 탔다.

니바스에게는 마지막 만찬이었달까?

그릇이 전부 비워졌음 또한 그라가스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지금쯤이면 니바스에게 죽음이라는 영원한 안식이 주어지고도 남았을 터.

우뚝.

그라가스가 걸음을 우뚝 멈춰 세웠다.

도착했기 때문이다.

최종 확인을 위한 장소, 니바스의 임시 거처 앞에.

“황자님, 제이든 스미스 남작입니다.”

그러고는 곧장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니바스를 부른 것이다.

“오후 일과에 나서실 시간입니다. 모시러 왔습니다.”

원래라면 오후 일과가 진행될 차례였다.

썬더 실크의 기밀을 파헤치고, 운이 좋다면 정령석까지 찾기 위한 썬더 그라운드 탐색.

아무것도 모르는 니바스가 지난 한 달 동안 사활을 걸고 진행해 온 임무였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오늘은 이 탐색 임무가 아닌 다른 것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황자의 죽음에 대한 통곡과 흉수에 대한 조사 같은 것들 말이다.

당연하게도 여기서 니바스의 대답은 들려올 리 만무했다.

“아직 기침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럼 제가…….”

“잠시만 기다리게. 금방 나갈 테니.”

“……!!!”

그런데 들려왔다.

절대 들려와서는 안 되는 것이.

심지어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달칵.

“낮잠을 조금 길게 잤군. 준비가 살짝 늦었어.”

직접 문을 열고 나오기까지 한 니바스였다.

그것도 아주아주 멀쩡한 모습으로.

단잠을 자고 일어났는지 개운해 보이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

“왜 그러고 섰어, 남작? 안 그래도 늦었는데, 얼른 가야지. 형님 폐하께서 맡기신 임무를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그, 그렇지요.”

니바스의 디데이 오후는 그렇게 활기찼다.

그런 니바스의 활기찬 등을 따라 그라가스 또한 잠시 멈췄던 걸음을 재개했다.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어 가는 의구심과 함께.

* * *

슈라우드 왕궁의 한 왕자 궁 안.

클리앙 나로움이 여유롭게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반면 반대편에 마주 앉은 상대는 그렇지 못했다.

그가 의구심 가득한 목소리로 클리앙에게 물었다.

“나로움 남작이 나는 어쩐 일로 찾아온 것이오?”

“2왕자님께서는 제가 그리 달갑지 않은 모양이시군요.”

“우리가 정답게 마주 앉아 담소나 나눌 관계는 아니니까. 그렇다고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의구심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 자체가 어색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1왕자의 최측근인 나로움 후작가의 장남 클리앙 나로움.

그리고 셀레스티나 1왕녀 덕분에 말석이기는 해도 대권 주자로 부상한 2왕자 카리우스 드로튼 슈라우드.

어떻게 보더라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지금껏 두 사람이 이렇게 1대1로 대면한 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한데 오늘, 클리앙이 뜬금없이 찾아와서는 드로튼에게 담소를 요청한 것이다.

“사실 저는 왕자님과 전부터 친해지고 싶었습니다.”

“나와 말이오?”

“그렇습니다. 제가 뵌 왕자님은 지닌 바 능력에 비해 운이 참 없으신 분입니다. 개인적으로 그 점이 못내 안타까웠지요.”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입니다. 솔직히 왕자님의 능력이 1왕자님이나 3왕자님에 비해 모자란 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더 뛰어난 부분이 많다면 모를까.”

클리앙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 갔다.

세력 구도를 모르고 본다면 진심으로 느껴질 만큼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단지 그분들보다 운적인 요소, 그러니까 타고난 배경에서 밀릴 뿐이라는 것이 제 소견입니다. 비단 저만이겠습니까? 저처럼 여기는 귀족들이 한 둘은 아닐 겁니다. 분명 왕자님 본인께서도 그리 생각하실 터이고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뜬금없이 찾아와 이런 말이나 늘어놓는 이유를 모르겠소만? 어차피 내 편에 설 입장도 못 되는 사람이.”

“그렇긴 합니다만, 단지 안타까워서 그렇습니다. 빈약한 배경 때문에 왕자님같이 출중한 분이 능력 발휘를 못 하고 계시는 점이.”

“능력 발휘를 못 한다라…….”

말끝을 흐린 드로튼.

그가 피식하고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대충 감이 잡히는군. 나와 누님의 힘이 점점 커지니 크리스토퍼 형님께서 많이 다급해지신 모양이오? 형님의 심복인 그대가 갑자기 찾아와서는 어처구니없는 능력 타령이나 늘어놓는 것을 보면.”

슈라우드 왕국의 계승 경쟁 구도는 원래 단순했었다.

1왕자와 3왕자 간의 1대1 경쟁으로 압축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1왕자가 크게 앞서 있는 편이었다.

웬만하면 다음 대 국왕은 1왕자로 가되, 3왕자 측에 적잖은 양보를 해 줘야 하는 구도.

이것이 7년 전까지의 구도였다.

하지만 7년이 지난 현재, 단순했던 구도는 굉장히 복잡해진 상태였다.

더는 1왕자가 크게 앞서 있는 편이라고 할 수 없었다.

분명 최선두는 최선두이되, 언제 역전당할지 모르는 불안정한 최선두였다.

레나와 2왕자 드로튼의 급부상이 원인이었다.

이들이 3왕자와 세력을 합치면 1왕자의 세력을 압도하는 것이다.

물론 현재는 손을 잡고 있지 않으나, 이대로면 향후 구도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이 불가했다.

더구나 레나와 2왕자는 지금도 그 세력을 야금야금 불려 가는 중이었고 말이다.

“아니라고는 못 하겠군요. 실제로 1왕자님의 짜증이 전보다 잦아지신 것은 분명하니 말이지요.”

그렇지 않아도 성격 급하고 참을성이 부족한 1왕자였다.

그런 그가 자꾸만 초조함을 내비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클리앙 또한 이 점을 순순히 인정했다.

“다만, 제가 왕자님께 품은 안타까움 또한 분명한 진심입니다. 역으로 제가 하나 여쭤보지요. 왕자님이 말씀하신 그 힘이라는 거, 그게 정말 왕자님 것이 맞기는 한 겁니까?”

“더더욱 확실해지는군. 나로움 남작 당신, 나와 누님 사이를 이간질하려 찾아온 것이었어. 말로는 능력, 능력 하더니 되려 나를 만만하게 본 모양이오. 내가 그런 하찮은 모략에 놀아날 것 같으시오?”

“하찮은 모략이라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당장 왕자님부터가 제 질문에 과민반응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가 구체적으로 특정한 바는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지요. 제 눈에는 이미 스스로 의구심을 품고 계셨다는 의미로밖에 비치지 않습니다.”

“소문답게 세 치 혀가 아주 요사스러워. 하지만 내게는 안 통하오. 계속 그런 쓸데없는 소리나 늘어놓으려거든 당장 나가시오.”

단, 단순한 인정에서 그치지 않았다.

역으로 질문 공세를 펼쳐 가는 그였다.

“단순히 쓸데없는 소리로 치부하실 일이 아니지요. 솔직히 지금 떠오르는 제3의 세력 중 왕자님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겁니까? 세력의 주축이 되는 라인하트 영지와 이베리아 영지, 그리핀 군단은 모두 누구의 것입니까? 또, 북부 바르코스 후작과의 친분은 누구 덕이며, 실무를 담당하는 마검학연 출신 하급 관리들은요?”

“그만하시오, 남작.”

“이 중 왕자님의 영향력이 미치는 부분이 단 하나라도 있기는 한 것입니까? 전부 라이오넬 라인하트에게서 비롯된 것들 아닙니까? 그 라이오넬 라인하트가 1왕녀님의 사람이라는 것은 대륙 전체가 다 아는 사실이고 말이지요. 당장 왕자님께서 그자에게 명령 한 줄이라도 내리실 수 있습니까?”

“나로움 남작!!!”

그것도 전부 맞는 질문들뿐이었다.

사실 질문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눈에 빤히 보이는 사실관계의 단순 나열에 불과했으니까.

단지, 그동안 드로튼 앞에서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것을 오늘 클리앙이 처음으로 꺼내 든 것이고.

“언짢으셨다면 사죄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안타까워서 그렇습니다. 왕녀님의 그늘에 가려져 왕자님의 그 출중한 능력이 발휘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요사스러운 혀 놀림에 나와 누님 사이가 흔들릴 일은 추호도 없어! 그러니 헛소리 그만하고 당장 나가시오!!”

“알겠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다만, 제 진심을 그저 모략으로 치부하지는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저 정계의 중론을 좀 더 직설적으로, 진심을 담아 전달해 드린 것뿐이니.”

“나가라니까!!!”

결국, 드로튼이 폭발했다.

그리고 클리앙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이에 클리앙은 차 한잔 다 마시지 못하고 드로튼의 궁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입가에는 옅은 미소를 그린 채로.

* * *

사삭.

짙은 어둠으로 한 치 앞도 분간이 힘든 깊은 밤.

그라가스가 건물 안으로 은밀히 잠입해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사실 성공이랄 것도 없었다.

그는 무려 제국 황제가 직속 수하로 둔 최상위 암살자였다.

한 치 앞도 분간이 힘든 이 시간, 이 환경은 오히려 그에게 아늑한 요람과도 같은 것이었다.

샤샤샥.

그렇게 건물 안에 들어선 뒤, 목표물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향해 이동했다.

첫 디데이로부터 벌써 일주일 넘게 흐른 시점이었다.

그동안 실패 원인을 분석하고 재차 독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 역시 모두 실패했다.

원인도 찾지 못했을뿐더러, 재시도는 재실패로 이어졌을 뿐이다.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독을 좀 더 강하게 썼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니바스에게서 어떤 특별한 기색이 발견되지도 않았다.

그는 여전히 썬더 그라운드를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이쯤 되면 니바스가 독이 통하지 않는 특이체질이라고 봐야 했다.

조사 과정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던 부분이지만, 이것 말고는 마땅한 답이 없었다.

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지금 그가 진행 중인 잠입이 바로 그 방법이었다.

즉, 직접 암살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직접 암살이라고 해서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쉽고 깔끔하며, 마이바크 쪽에 누명을 씌우기도 더 유리하기에 독살을 선택한 것뿐이었다.

그라가스 정도 되면 직접 암살이라 해도 얼마든지 깔끔한 처리가 가능했다.

하여 더는 시간을 끌지 않고 행동에 나선 참이었다.

‘니바스 3황자.’

이내 목표물 앞에 도달했다.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모른 채 꿈나라에 빠져 있는 니바스였다.

‘그럼 끝냅시다.’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단검을 들어 올려 니바스의 목에 겨눴다.

변변한 아티팩트 하나 없는 니바스였다.

이대로 손에 힘을 줘 찌르기만 하면 끝나는 일인 것이다.

‘잘 가시오.’

스악~

그렇게 단검을 찔러 들어갔다.

이대로 니바스가 절명하리라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라가스는 이 사실을 단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우뚝!

우드득!!

“……!!”

갑자기 그의 몸이 우뚝 멈춰 서고, 단검이 종잇장처럼 우그러지기 전까지만 해도.

“으음……. 헉!! 웨, 웬 놈이냐??”

설상가상 니바스까지 완전히 잠을 깨고 말았다.

“바, 밖에 누구 없느냐?? 여기 지금…….”

달칵.

“진정하시죠, 황자님. 애타게 찾으시는 밖의 누구 들어왔으니까.”

그에 맞춰 등 뒤에서는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혀 예상 못 했던 제3의 목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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