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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10화 (111/200)

61장: 썬더 그라운드(2)

스트라우스 백작가의 젊은 가주, 그래플 스트라우스.

그는 2년 전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단, 이는 매우 기분 좋은 바쁨이었다.

바쁨의 이유가 모국의 발전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3년 전, 마이바크 왕국은 썬더 실크라는 획기적인 제품을 대륙에 내놓았다.

그리고 출시 직후부터 대박을 쳤다.

썬더 웜의 고치로부터 만들어지는 이 썬더 실크는 마나 친화력이 극도로 뛰어났다.

마나의 흡수와 유통 면에서 압도적인 효율성을 보이는 것이다.

이 말인즉슨 아티팩트로서 최고의 재료라는 의미였다.

또, 굳이 아티팩트화 하지 않더라도 마나 친화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옷으로 만들어 입고만 있어도 상당한 효능을 자랑했다.

대륙 각지에서 주문이 폭주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

마이바크 왕국은 이를 기반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중이었다.

자연스레 국가 발전의 기틀이 마련되었고 말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그래플은 어린 시절부터 왕세자 나우트라 매크리 마이바크와 둘도 없는 친분을 맺어왔다.

덕분에 그래플의 재능은 누구보다 왕세자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2년 전, 왕세자가 대리청정을 시작하며 왕국 전체가 세대교체의 도상에 들어섰다.

그래플은 바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된 것이다.

지금도 그러했다.

국력 신장에 따라 군제의 발전적 개편도 가능해진 상황.

왕세자의 지시에 따라 그래플은 한창 개편안 초안 마련에 전념하고 있는 상태였다.

“우리가 짜 둔 일정은 깡그리 무시한 채 일직선으로 썬더 그라운드를 향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렇겠지. 어떻게든 황제 예쁨을 사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텐데,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올 리 있겠어?”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일에 완전히 신경을 끊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당장만 해도 수하를 통해 니바스 3황자의 일을 보고 받는 중이었으니까.

“3황자가 살짝 안타까울 지경입니다. 목적이 뻔한데, 그게 달성 불가능할 것도 너무 뻔하지 않습니까?”

“뭐, 어쩌겠어? 지 팔자인 것을.”

수하의 말마따나 제국의 목적은 뻔했다.

썬더 실크의 비밀을 파헤치고, 기회가 된다면 정령석을 찾는 것.

너무 뻔해서 도저히 모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3황자에게는 안타깝게도 이 목적의 달성 확률은 지극히 미미했다.

그만큼 마이바크 왕국의 대비는 완벽했기 때문이다.

그래플이 왕도에서 소식만 전해 듣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다른 소식은?”

“이 외에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 그럼 나가봐. 썬더 그라운드 쪽 일에 귀는 계속 열어 두고.”

“예, 백작님.”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다.

하여 별다른 지시 없이 수하를 내보냈다.

“자, 그럼 나는 다시 일이나…….”

그러고는 다시 군제개편안 마련에 몰두하려는 찰나였다.

“그냥 귀만 열어 두는 정도로는 많이 모자라.”

흠칫.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의 집무실에 울려 퍼지는 어떤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래플도, 방금 나간 수하의 것도 아닌 제3의 목소리.

그것이 개편안에 대한 그래플의 집중력을 앗아가 버렸다.

“정말이야. 관심 두는 정도로는 안 돼. 지금 당장 네가 썬더 그라운드로 가야 해.”

저벅저벅.

“너……?”

“오랜만이야 그래플. 근 7년만인가?”

음영 속에서 등장한 낯익은 얼굴과 함께 말이다.

* * *

꽈르릉!!

“어떠십니까? 이곳이 우리 왕국의 자랑인 썬더 그라운드입니다. 대륙 어디에 내놔도 부족함이 없는 절경이지요.”

“…….”

정말 거지 같은 곳이었다.

이런 곳이 절경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니바스는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었다.

심심하면 벼락이 내리꽂히는 이런 곳이 대체 어떻게 절경이란 말인가?

까딱하다가는 죽기 십상인 사지라고 불려야 마땅했다.

“음, 황자님께서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혹시 별로이신 겁니까? 표정이 좋지 못하신 듯한데…….”

“흠흠, 아니, 좋소. 내 표정은 원래 이러니 신경 쓸 필요 없소.”

“아하, 그러시다면 마음이 좀 놓이는군요. 얼굴을 찌푸리고 계시기에 혹시나 했습니다. 일정을 단축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그럴 리가 있겠소? 살면서 꼭 한 번 눈에 담고 싶었던 광경인데.”

그렇다고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외적으로는 그가 원하기에 세워진 관광 일정이었다.

그리고 이 대외적인 명목은 가능한 한 길게 유지돼야 했다.

그래야 황제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터였다.

‘변방국 일개 백작 따위가 감히…….’

이 사실을 마이바크 왕국이라고 해서 모를 리 만무했다.

공공연한 비밀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눈앞의 젊은 백작이란 놈도 마찬가지였다.

알고 있을 것이 빤했다.

그럼에도 일정 단축 같은 망발을 지껄이는 것이다.

니바스를 놀리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하면 계속하겠습니다. 보시다시피 이곳 썬더 그라운드는 저 나방들이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기 바닥에 작은 탑처럼 일정하게 솟아 있는 것들은 나방의 유충, 썬더 웜들이 자라는 곳입니다.”

그래플 스트라우스라는 놈이었다.

놈이 니바스의 속을 뒤집어 놓고는 태연하게 설명을 이어 갔다.

“저희가 인공사육에 성공하여 조성해 둔 것이지요. 저곳에서 자라는 유충들의 고치로부터 일정한 처리를 거쳐 썬더 실크를 ……. 그 처리 방식도 자세하게 말씀드리자면 …….”

그리고 그 설명이라는 것은 쓸데없이 길고 세세했다.

얼핏 듣기에는 굳이 밝힐 필요 없는 것들까지 포함돼 있었다.

이 유충들은 특이하게 흙을 먹고 자란다느니, 나방들이 죽기 직전 귀소본능을 지니고 있다느니 등등 어찌 보면 나름 기밀이라 할 만한 내용이 상당수였다.

‘대충 비밀 같아 보이는 것들 몇 개 던져 주고 최대한 빨리 돌려보내시겠다?’

그렇기에 니바스의 눈에도 이 젊은 백작 놈의 속셈이 훤히 보였다.

어떻게든 빨리 돌려보내려는 것이 분명했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속셈이었다.

니바스가 이곳에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산업 기밀이 새어나갈 확률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셈이니까.

‘흥, 바라는 대로 될까 보냐?’

안 그래도 오래 머물러야만 하는 니바스였다.

그래서 체면 불구하고 강짜라도 부릴 작정이었다.

한데, 울고 싶은 놈 뺨 때리는 격이랄까?

젊은 백작 놈은 그런 니바스의 심기까지 긁어 주었다.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아마도 흙을 먹고 자라기에 귀소본능이 생긴 것 아닐까 추측을…….”

“스트라우스 백작. 부탁이 있소.”

그래서 중간에 설명을 끊었다.

어차피 놈의 입에서 나오는 설명은 핵심에서 벗어난 것들뿐일 터.

길게 듣고 앉았을 필요는 없었다.

“예. 말씀하십시오, 황자님.”

“생각했던 것보다 벼락 치는 절경이 나를 훨씬 더 매료시키는구려. 해서 이곳에 가능한 한 길게 머물고 싶소.”

“아, 그러십니까? 혹시 얼마나 생각하고 계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래야 저희도 거기 맞춰 황자님 예전을 준비할 수 있는지라.”

“글쎄, 딱히 정해 둔 기한은 없소. 지금 말해 줄 수 있는 건, 기간이 꽤 길 것이라는 사실 정도? 백작도 알지 않소? 어차피 내가 본국에서도 한량이나 다름없는 위치라는 거. 그래서 그냥 마음 닿는 날까지 있을까 하오.”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이렇게 대놓고 선언할 줄은 몰랐을 테니까.

“괜찮겠지? 나 때문에 소모되는 비용이야 형님 폐하께서 지불해 주실 터이니. 아, 혹시 그래도 부담스럽다 싶으면 예전 같은 거 신경 쓰지 않아도 되오. 사실 딱히 필요 없기도 하고.”

“으음, 그러시다면…….”

젊은 백작 놈이 말끝을 흐렸다.

이제 나올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일개 새파란 백작 따위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총책임자인 왕세자에게 묻겠다는 대답이 나올 터.

왕세자의 답변이 어떤 방향이든 니바스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생각이었고 말이다.

“차라리 이곳에 거처를 하나 마련해 두심은 어떻겠습니까?”

“뭐……?”

“정해 둔 기한 없이 길게 머물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아예 여기 썬더 그라운드 안에 황자님께서 머무실 만한 저택을 하나 지어 두는 것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라 언제든 와서 절경을 즐기실 수 있도록 말이지요.”

“여기…… 말이오? 이 썬더 그라운드 안에?”

꽈르릉!

“그렇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벼락이 내리치기는 하지만, 그래도 곳곳에 피뢰침을 박아 두었습니다. 위험할 일이 많지는 않을 겁니다. 또, 황자님께서 머무신다면 안전장치나 기반 시설도 최대한 증설할 예정입니다.”

많지는 않다?

반대로 말하면 없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부담가지실 필요도 없습니다. 말씀하셨다시피 비용은 황제 폐하께서 대 주시지 않겠습니까? 황자님께서는 그저 이곳이 황자님 별장이다 생각하시고 편히, 원하시는 그날까지 오래오래 머무시면 됩니다.”

꽈르릉!!

“황자님께서 이곳 절경에 그리 취하셨다면, 역시 그게 가장 좋은 방안인 것 같습니다. 그럼 이 방안을 오늘 당장 왕세자 저하께 상신토록 하겠습니다. 하루라도 더 빨리 황자님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말이지요.”

“으음…….”

물론 제국의 목적 달성 측면에서만 놓고 보면 더할 나위 없는 방안이었다.

그럼에도 니바스는 꺼림칙함을 금할 수 없었다.

마이바크 측에서 꺼리기는커녕 되려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니 어딘가 미심쩍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안했다.

계승 경쟁 패배 이후 지난 10년간 목숨 부지 하나에만 매달려 온 니바스였다.

꽈르릉!!!

그런데 이렇듯 수시로 벼락이 내리치는 곳을 아예 거처로 삼는다?

불안감이 극대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말로는 안전하다고 하는데, 눈으로 보이는 광경은 전혀 그렇지 못했으니까.

“다만 한 가지, 저기 보이는 제한구역 너머는 조심하셔야 합니다. 정 구경하고 싶으시다면 말리지는 않겠으나, 각서는 써 놓고 들어가셔야 합니다. 아직 이곳의 안전이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는지라, 황자님의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

* * *

“아무리 그래도 너무 자유롭게 풀어 두는 거 아니야?”

내가 언덕 아래를 응시하며 물었다.

니바스 3황자와 제국 인사들이 썬더 그라운드를 자유롭게 헤집고 다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상관없어. 저렇게 싸돌아다녀 봤자 원하는 기밀 같은 건 절대 얻지 못할 테니까.”

그러나 그래플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파헤칠 테면 얼마든지 파헤쳐 보라는 태도인 것이다.

“애초에 기밀 자체가 없거든.”

“기밀이 없다고?”

“응, 기밀이고 말고 할 게 없어. ‘썬더 그라운드에 서식하는 썬더 웜의 고치로 실을 만들고 실크를 짠다.’ 그냥 이게 다야.”

“그래도 특수한 처리 과정 같은 건 있을 거 아니야?”

“있기야 있지. 근데 그런 게 아무리 밝혀져 봤자 말짱 꽝이야. 결국, 썬더 웜이 있어야 하거든. 따지고 보면 썬더 웜이 썬더 실크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거지.”

“유출 가능성 같은 것도 없는 모양이네.”

“맞아. 지난 몇 년간 이것저것 다 시도해 보고 내린 확실한 결론이야. 썬더 웜이라 해도 여기, 썬더 그라운드에서 자란 썬더 웜이 아니면 안 돼. 완성품이 평범한 실크랑 별 차이가 없어져.”

알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회귀 전, 이번 일의 초점은 3황자에게만 집중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는 제국이 썬더 실크를 완전히 독점했고 말이다.

“새어 나갈 기밀 같은 게 있었으면, 아무리 제국이라 해도 공개 자체를 절대 안 했지. 또, 저러다가 부수적으로 정령석이라도 찾아 주면 오히려 땡큐고. 그에 대한 감시는 호위보다 더 철저하게 하고 있으니까.”

그래플이 왕도에서 소식만 전달받으려 했던 것은 이런 연유였다.

제국은 결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리라 여긴 것이다.

땅 자체를 옮기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아, 혹시 너무 돌아다니면 라이 네가 3황자를 경호하는 데에 차질이 생기려나?”

“아니, 괜찮아. 경호에는 문제없어.”

그러나 지금은 나와 함께 이곳 썬더 그라운드에 서 있는 상태였다.

내가 한 경고 때문이었다.

나는 그래플에게 이번 일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렸다.

니바스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것이며, 황제의 진짜 목적은 거기 있다고 말이다.

단, 이 경고는 전부 추측의 형태로 전달됐다.

전부 명백한 사실이기는 하나, 현시점에서는 아직 그렇지 못했으니까.

그럼에도 그래플은 곧장 행동에 나섰다.

나를 전적으로 믿기도 했거니와, 왕국 입장에서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간 내가 펼쳐 온 황제와의 대립 행보들이 강력한 근거로 작용해 주었다.

이에 나 또한 단순 경고에서 그치지 않았다.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니바스 3황자에 대한 비밀 경호였다.

그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는 불상사 자체를 지워 버릴 작정이었다.

그럼으로써 황제의 목적을 어그러뜨리고, 마이바크 왕국을 확실한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계획인 것이다.

“그나저나 여긴 나방이 정말 많네.”

“그렇지? 굳이 벼락이 아니어도 여긴 저 나방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야.”

“혹시 나방 중에 특별한 개체도 있어? 다른 나방과 다른 기운을 가졌다든지 하는.”

내 목적은 원래 이렇게 두 가지뿐이었다.

분명, 이 두 가지 외에 다른 목적은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썬더 그라운드를 가득 메운 나방들을 직접 눈에 담기 전까지만 해도.

“아니, 그런 개체가 발견됐다는 보고는 받은 적 없어. 왜?”

정확히는 이 나방 중 특정 개체를 눈에 담기 전까지만 해도였다.

특출난 기운을 지닌 특별한 개체.

그것이 내 눈에 포착됐고, 그 순간부터 목적은 한 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별건 아니고, 그냥 그런 게 있으면 기념으로 하나 가져가 볼까 했지. 왕녀님께 선물해 드리면 좋아하시지 않을까 해서.”

“오호~ 그런 거라면 또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내가 특별히 예쁜 것들로 몇 마리 찾아 두라고 할게. 기대하고 있어.”

그래플에게는 다소 미안한 목적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양심의 가책이 생기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마이바크 왕국을 구해 주고 받아 가는 소정의 대가.

새로운 목적은 딱 이 정도 느낌으로 달성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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