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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07화 (108/200)

60장: 강탈

북방 극지대 초입.

그나마 사람이 갈 수 있는 마지노선인 이곳에 지금 카를로스 지안이 대기 중이었다.

앙기리스 왕국의 백작이자 자카럼 상단의 주인인 그가 직접 말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중대한 거래.

실제 카를로스는 수십만 골드짜리 거래를 앞두고 있었다.

겨울바람 엘프 일족 전체가 품목으로 예정된 그런 거래였다.

중대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거래 상대가 뱀파이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후작 각하.”

“소문으로나 들었지, 그 마물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은 몰랐군.”

“북방 극지대에 콕 박혀 있는 미개한 것들입니다. 사실 마물이라는 평도 아깝지요.”

단, 이번 거래의 최고 결정권자는 카를로스가 아니었다.

물론 형식상이기는 하나, 어쨌든 카를로스보다 한층 더 높은 인물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즈리얼 포우.

앙기리스 왕국의 셋밖에 없는 후작 중 하나이자 다시 둘밖에 없는 소드마스터 중 하나인 인물.

그가 카를로스와 함께 북방 극지대 초입에서 대기 중인 것이다.

“그런데 저들이 원한 것은 물의 정령석이라고 하지 않았나? 우리 측에서 준비한 것은 바람의 정령석이고 말이야. 아무리 미개한 마물이라 해도 쉽게 넘어오겠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특별히 각하까지 모신 자리입니다. 제가 지안 백작가와 자카럼 상단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넘어오게 만들 것입니다.”

“백작 자네가 그렇다면야.”

당연하게도 마즈리얼은 이유 없이 그냥 오지 않았다.

후작에 소드마스터씩이나 되는 인물이 이런 곳에 그냥 올 리 만무했다.

카를로스의 부탁으로 온 것이었다.

이번 거래에 있어 무력을 담당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럼 내가 처리할 놈은 하나인 것인가?”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테페슈라는 놈이지요. 다만, 거래 규모가 규모이니만큼 뱀파이어 쪽에서도 추가 인원이 나올지 모릅니다. 카밀라라는 뱀파이어가 하나 더 있더군요. 어쩌면 그것까지 각하께 부탁드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거야 뭐 크게 상관없네. 그깟 마물 한 마리나 두 마리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뱀파이어 따위가 떼로 몰려온다 해도 소드마스터이신 각하의 상대가 될 수는 없지요.”

무력이 필요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 거래, 성사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카를로스에게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미개한 마물 따위와 거래는 무슨 거래란 말인가?

그냥 강제로 취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간 비위를 맞춰 줬던 것은 어디까지나 오늘의 한탕을 위한 포석에 불과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충돌은 필연적일 터.

그래도 미개한 마물답게 힘은 좀 센 편인 뱀파이어였다.

하여 카를로스에게도 확실한 무력이 필요했고, 그 답이 마즈리얼이었던 것이다.

물론 마즈리얼 외에 자체적인 병력도 당연히 준비해 두었고 말이다.

이만하면 뱀파이어의 저항쯤이야 간단하게 정리하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물의 정령석을 구해 오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였다.

어차피 결렬될 거래였다.

그런 거래에 쓸데없이 시간과 돈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멍청한 뱀파이어를 거래 직전까지 꾀어낼 정도면 충분했다.

그래서 현재 앙기리스 왕국에 확보돼 있는 것을 하나 들고 왔다.

그것이 바람의 정령석이었다.

“한데, 그 뱀파이어 퀸이라는 것이 나올 가능성은 없겠나?”

“아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만, 매우 낮습니다. 그간 모습을 드러낸 적도 없을뿐더러, 그 수하를 통해 짐작해 보건대 꼴에 자존심이 상당한 듯하더군요. 극지대의 지배자나 뭐라나. 이런 거래에 직접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가? 아쉽게 됐군.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한 번 봤으면 싶었는데.”

“이런, 각하께서도 그러셨군요. 실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각하께서 계시는 만큼 퀸이 나타난다면 사로잡아 갈 수도 있을 텐데 말이지요. 아쉽습니다, 아쉬워.”

그렇게 오늘 벌일 일에 관한 대화를 나눠 가던 중이었다.

마즈리얼이 무언가를 느낀 듯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신호를 주었다.

“오는군.”

뱀파이어의 접근을 알리는 신호였다.

기다리던 순간이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호는 실제가 되었다.

약속 시간에 맞춰 뱀파이어가 극지대 초입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습니까, 테페슈 공. 오호? 오늘은 카밀라 님도 함께 오셨군요.”

그에 맞춰 카를로스가 앞으로 나섰다.

반면 마즈리얼은 살짝 뒤로 물러났다.

일단은 뱀파이어를 꾀어내는 것이 먼저였다.

그때까지 마즈리얼은 눈길을 끌지 않을 예정이었다.

“두 분 다 잘 지내셨습니까?”

“정령석은?”

“역시 안부 인사 같은 것은 바로 건너뛰시는군요. 한결같아서 좋습니다.”

뱀파이어의 태도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보자마자 본론부터 꺼내 드는 테페슈였다.

“그래서, 정령석은?”

“정령석이야 당연히 구해 두었지요. 테페슈 공은 어떻습니까? 사냥은 차질없이 마무리하셨습니까?”

“마무리했다.”

“하긴, 극지대의 지배자이신 바토리 님께서 나서신 일인데 당연히 그렇겠군요. 이거 제가 또다시 실언을 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알면 됐다. 그럼 거래를 진행하지.”

바토리 이야기에 전과 달리 다소 시큰둥하기는 했다.

하나, 딱히 신경 쓸 만한 부분은 아니었다.

오늘만큼은 거래에 집중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카를로스 역시 거래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그리 했을 터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진행하시지요. 우선 준비해 둔 엘프들의 숫자와 성별 등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남성 스물에 여성 열넷, 총 서른넷이다.”

“엘프 서른넷이라니. 좋습니다, 좋아요. 아, 당연히 하이엘프 아인한드라가 포함된 숫자이겠지요?”

끄덕.

“역시!”

다시 한번 생각해 봐도 정말 대박이 아닐 수 없었다.

하이엘프가 포함된 엘프 서른넷.

이 정도면 경매를 통해 못해도 40만 골드 이상 뽑아낼 수 있을 터였다.

한마디로 잭팟이 터진 것이다.

“그럼 제가 직접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엘프들은 어디…….”

“정령석부터. 정령석 확인이 먼저다.”

“아아, 하긴 그렇지요. 순서상 정령석부터 확인하는 것이 맞지요. 분명 그게 맞기는 한데…….”

그렇다면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였다.

현재 눈앞에는 뱀파이어 둘만 있는 상태였다.

물건들은 극지대 안쪽 어딘가에서 대기 중일 터.

계획대로의 진행을 위해서는 그것들을 이곳으로 불러낼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카를로스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그의 언변으로 저들을 살살 꾀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실은 정령석 관련해서 테페슈 공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지?”

“제가 정령석을 구해 두기는 했습니다. 분명 구해 두기는 했는데……, 그게 아쉽게도 물의 정령석은 아니어서 말이지요.”

“……??”

“백방으로 수소문해 봤지만, 물의 정령석은 도저히 매물이 보이지를 않더군요. 정말 대륙 전체를 이 잡듯이 뒤졌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지? 거래를 이대로 엎자는 건가?”

당연히 테페슈의 반응은 좋지 못했다.

되묻는 그의 인상은 대놓고 찌푸려진 상태였다.

그러나 이는 카를로스의 예상 범위 내에 있었다.

“그럴 리가요. 저도 저지만, 바토리 님께서 분노하실 것을 생각한다면 거래 백지화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지요. 테페슈 공의 입장이 굉장히 난처해지실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임시방편이 될 만한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주섬주섬.

달칵.

카를로스가 상자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열었다.

테페슈의 눈에 아주 잘 보이도록.

샤아아~

그러자 상자를 중심으로 가벼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상자의 안, 그곳에 고이 보관돼 있는 한 물건이 중심이었다.

그 물건이란 바로 정령석.

비록 정령의 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나, 이는 어디까지나 편의상의 명칭에 지나지 않았다.

돌의 형태가 일반적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전부 돌처럼 생긴 것은 아니었다.

같은 종류의 정령석이라 할지라도 그 형태는 다른 경우가 허다했다.

지금 테페슈 앞에서 바람을 일으키는 정령석이 이를 증명했다.

돌이 아닌 나뭇가지의 형태였다.

나뭇가지 끝부분에 바람의 힘이 깃든 것으로 추정되는 모양새를 지닌 것이다.

“바람의 정령석입니다. 물의 정령석은 아니지만, 가치로만 따지면 그 이상이라고 볼 수도 있지요. 어떻게, 이만하면 임시방편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분명 물의 정령석을 원한다고 했었다.”

“물론 이걸로 거래를 마무리 짓자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정확히 뭘 어쩌자는 거지?”

“우선 이걸 가지고 가서 바토리 님의 심기를 가라앉혀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거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머지않아 물의 정령석을 대령할 것이다, 이런 느낌으로 말이지요. 일종의 증표라고 봐도 좋겠군요. 그런 뒤 제가 물의 정령석을 구해 오면 그때 정령석끼리 교환하며 거래를 마무리 짓자는 겁니다.”

물론 바람의 정령석은 거래의 방점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방점이 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가교 역할 정도면 충분했으니까.

“하면 엘프는?”

“엘프에 대해서야 저와 테페슈 공이 적당한 합의점을 찾아가면 될 일이지요. 오늘은 제가 반만 가져간다든지, 혹은 하이엘프만 가지고 간다든지 등등 방법은 많을 겁니다. 거래를 이어 갈 의지만 있다면.”

“…….”

“정 안 된다면 제가 정령석만 맡겨 두고 가는 방안도 있습니다. 솔직히 저로서도 무리가 따르는 방안이기는 하지만, 제 진정성을 전할 수만 있다면 못할 것도 없지요.”

이를 가지고 어떠한 내용의 합의가 이루어지는지도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뭐가 됐든 상관없습니다. 테페슈 공의 의중에 최대한 맞출 생각이니까요. 대신 제게도 한 가지만 확인시켜 주시면 됩니다.”

“무슨 확인?”

“하이엘프를 포함한 엘프 서른넷의 사냥이 확실히 끝났다는 것을요. 바토리 님의 힘을 의심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만, 그래도 사안이 사안이니 말이지요. 그렇다고 뭐 거창한 걸 바라는 건 아닙니다. 그냥 이 자리에서 물건을 한 번 확인시켜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엘프들을 이 자리에 가지고 오게끔 만드는 것.

이 한 가지만 충족되면 그만이었다.

여기까지만 충족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카를로스가 신경 쓰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소드마스터인 마즈리얼과 상단의 전투원들이 전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

“확인 정도는 어렵지 않은 일 아니겠습니까? 설마 위대한 뱀파이어 일족이 두 분이나 계시는 자리에서 사고가 날 리도 없고 말이지요.”

“…….”

“물론 테페슈 공 같은 분께서 절대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염려되신다면 상단원들을 뒤로 물리겠습니다. 그러면 되겠습니까?”

이 역겨운 종자들을 마주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뒤는 생각하지 않고 자존심까지 살살 긁었다.

이러면 승낙하지 않고는 도저히 배길 수 없을 터였다.

그간 취해 오던 권위적인 태도를 하루아침에 뒤집지 않는다면 말이다.

“……필요 없다. 확인시켜 주지.”

“역시, 테페슈 공. 위대한 뱀파이어 일족답게 담대하시군요.”

카를로스의 의도대로였다.

테페슈는 결국 제안을 승낙했다.

흔쾌한 승낙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어차피 상관없었다.

이제 물건들이 도착하기만 하면 모든 게 끝이었으니까.

끄덕.

그렇게 물건의 도착을 기다리는 사이, 카를로스는 잠시 시선을 뒤편으로 던졌다.

뒤편에 물러나 대기 중이던 마즈리얼을 향해.

그리고 가볍게 신호를 주었다.

일의 성사와 전투 준비를 알리는 신호였다.

이에 마즈리얼 역시 마주하여 고개를 끄덕여 왔다.

잠시 후.

푹푹푹푹…….

극지대 안쪽에서 뱀파이어의 수하인 노스페라투들이 나타났다.

그러고는 차례대로 짊어진 것들을 눈밭 위에 내려놓았다.

그것은 총 34개의 관이었다.

상당히 눈에 익은 관이기도 했다.

지난 거래 때마다 그 안에 잠든 엘프들을 담고 있던 관이었으니까.

“확인해 보도록.”

“그럼.”

테페슈의 말에 따라 카를로스가 관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확인했다.

이 관은 역시나 그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34개의 관 안에는 이번에도 엘프들이 잠들어 있었다.

“이자가 하이엘프 아인한드라인 모양이군요.”

나아가 확인 과정에서 하이엘프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기품과 아우라가 달랐기 때문이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 일색인 엘프들 사이에서도 하이엘프는 군계일학이었다.

저도 모르게 절로 눈이 갈 수밖에 없을 지경.

꿈틀.

“음?”

그렇게 한참이나 관속의 하이엘프를 살펴보던 중이었다.

그런 카를로스의 눈에 이상한 장면이 사로잡혔다.

어째 하이엘프의 눈썹이 살짝 꿈틀댄 듯한 이상한 장면이.

‘잘못 봤나?’

혹시 잘못 봤나 싶어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고는 관에 거의 몸을 들이밀다시피 했다.

좀 더 자세히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꿈틀.

“어어?”

그리고 확인했다.

카를로스의 눈은 정확했다.

꿈틀댄 것이 맞았다.

나아가 이는 문제를 유발했다.

이것이 단순한 확인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문제.

확인은 의외의 상황으로까지 번져 나갔다.

번뜩.

“어어어??”

하이엘프가 아예 눈을 떠 버리는 전혀 의외의 상황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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