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05화 (106/200)

59장: 퀸

“곧 도착할 거야.”

내가 분지 입구 쪽을 힐끗 가리켰다.

그리고 예고했다.

음습하고 사특한 존재들의 등장을.

“알겠다, 라이.”

그러자 아인한드라가 반응했다.

비단 아인한드라뿐만이 아니었다.

나르한지아를 비롯한 분지의 엘프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내 한마디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서서히 기운을 끌어 올리며 준비에 들어간 것이다.

우우웅~

전투 준비였다.

뱀파이어와의 전투 준비.

뱀파이어 퀸 바토리가 직접 권속들을 이끌고 이곳 분지로 접근 중이었다.

그리고 이제 곧 그 요망한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었다.

겨울바람 일족의 운명을 결정지을 중대한 전투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물론 상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 가능성이 컸다.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심복이었던 카밀라의 예측에 따르면 그러했다.

지난 1년간 이어져 온 무수한 습격들.

바토리에게는 오늘 펼쳐질 전투 역시 이 무수한 습격의 연장 선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바토리가 지금껏 위기란 걸 제대로 겪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기의식은 그리 크지 않으리라는 것이 카밀라의 예상이었다.

카밀라 건에 대해 그저 좀 분노하고 약간의 주의를 기울이는 정도?

실제로 바토리는 사정 파악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열심히 진격 중이었고 말이다.

어떤 수작 같은 것을 부리고 있지도 않았다.

확신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확실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접근 중인 기백의 노스페라투 사이에 섞여 있는 하나의 강력한 존재감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카밀라를 통해 이미 한번 접해 봤을뿐더러, 주변의 시체 덩어리들과는 격 자체가 달랐으니까.

두두두두.

이내 소리가 들려왔다.

진격 중인 괴물들이 내는 불규칙한 발걸음 소리였다.

그런 것이 극지대의 눈보라와 칼바람을 뚫고 직접 귀에 들려오는 것이다.

이제 곧 시야에까지 직접 들어올 터였다.

그만큼 전투가 가까워진 상황.

“그럼 건투를 빌어, 아인. 조금 이따 보자.”

“부탁한다, 라이.”

이런 상황에 나는 오히려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아인한드라의 옆에서 뒤편의 엘프들 사이로.

다시 엘프들 사이에서 아예 대열의 바깥으로.

그러는 사이 괴물들이 분지 입구에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내, 겨울바람 일족의 명운을 건 전투가 시작되었다.

전투의 가장 중요한 변수가 그 존재를 감춘 상태에서 말이다.

* * *

엘프들이 자리 잡은 분지에 칼바람이 휘몰아쳤다.

단순한 묘사나 비유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칼바람이었다.

사물을 정말 칼처럼 베어 버리는 바람에 달리 무슨 표현을 붙일 수 있겠는가?

샤라라락~!

서걱! 슈각! 슈가각!

이 바람이 한 번 불 때마다 노스페라투의 머리가 우후죽순 굴러떨어지는 중이었다.

한 번에 최소 다섯에서 많게는 열 이상까지도.

‘역시 성가셔, 아인한드라.’

이 무자비한 칼바람의 주인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이엘프 아인한드라.

엘프들을 이끄는 지도자이자, 바토리의 주요 타깃이기도 한 그가 몰아치는 바람이었다.

지난 1년간 바토리를 상당히 성가시게 만들어 온 존재와 바람이기도 했다.

아인한드라가 아니었다면 엘프 사냥은 끝나도 한참 전에 끝났을 테니 말이다.

‘좀 많이 떨어지기는 하네.’

피해가 상당했다.

벌써 절반가량의 노스페라투가 목이 떨어져 잿더미로 화했다.

그간 모아둔 노스페라투를 싹싹 긁어모아 300두가량을 끌고 온 상태였다.

즉, 전투 시작 15분도 안 돼서 150두 가까이가 당한 것이다.

전투의 양상이 전과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묶여있어야 할 대상들이 자유롭게 날뛰고 있었다.

아인한드라는 물론이거니와 나르한지아까지도.

그의 얼음 역시 노스페라투들의 목을 싹둑싹둑 잘라 나가는 중이었다.

원인이야 간단했다.

바토리가 나서지 않고 있는 것.

바토리는 전과 달리 앞으로 나서지 않은 채 흐름을 주시 중이었다.

그녀가 나서지 않으니 아인한드라가 자유롭게 날뛸 수 있는 것이고 말이다.

비단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인한드라가 마음껏 날뛰니 테페슈 역시 활동에 제약이 생겼다.

그의 바람을 피해 다니느라 나르한지아에게 제대로 견제를 넣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르한지아 또한 전에 없는 활약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렇듯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전투 양상의 원인은 어디까지나 바토리의 관망에 있는 것이다.

‘뭐, 딱히 상관없기는 하다만…….’

다만, 바토리는 크게 개의치 않는 부분이었다.

노스페라투쯤은 얼마가 소멸당하든 문제 될 것 없었다.

또 만들어 내면 그만이었으니까.

만드는 과정도 몹시 간단했다.

멍청한 몬스터들 잡아다 피 좀 빨면서 감염만 시켜 놓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면 알아서 걸어 다니는 시체로 화하는 것이다.

또, 현재 바토리의 관망은 이유 있는 관망이기도 했다.

그녀의 종속인 카밀라와의 단절 사건.

이 사건의 전후 사정을 아직 밝히지 못한 상태였다.

사정을 모르는 채로 전면에 나서는 것은 아무래도 찝찝할 수밖에 없는 일.

하여 우선은 관망을 통해 사태부터 파악하려던 참이었다.

단절의 이유 자체는 뻔했다.

카밀라가 소멸당한 것일 터.

그러나 누가 어떻게 그녀를 처리한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였다.

10분 넘게 전투 양상을 관망 중인 현시점까지도 말이다.

분지에 이렇다 할 변수는 파악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여기서 더 잃었다가는 사냥과 거래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다만, 여기까지였다.

이제 관망은 그만두고 직접 나설 생각이었다.

더 지켜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되려 일만 그르칠 뿐이었다.

노스페라투의 소멸 자체로는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소멸이 가져올 결과는 문제가 됐다.

다시 노스페라투를 만들어 사냥을 재개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지체될 터.

하면 거래 일정 역시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바토리의 체면이 깎이는 것은 물론이고, 그녀의 소원 성취 또한 지연되는 것이다.

‘엘프한테 피해 좀 입히다 보면 알아서 꼬리를 드러내겠지.’

물론, 사실 좀 깎이고 지연돼도 되는 것들이었다.

그런다고 해서 바토리가 심각한 타격 같은 것을 받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바토리는 그러기 싫었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극지대 바깥에 나가 있은 지 오래였으니까.

그래서 그러지 않을 작정이었다.

스스스.

안개화 상태로 은밀한 접근을 시작했다.

암습을 가하려는 것이다.

그 목표야 당연히 하나뿐이었다.

‘내가 이것들 따위한테 잡힐 리도 없고.’

어차피 크게 위험할 것도 없었다.

일단 해 보고 역부족이다 싶으면 물러나면 그만이었으니까.

바토리가 마음먹고 피하는 이상 누구도 그녀를 잡지 못했다.

은신과 회피에 있어 바토리의 실력과 자신감은 그만큼 절대적이었다.

따라서 별다른 걱정 없이 아인한드라와의 거리를 좁혀 가는 바토리였다.

샤라라락~!

서걱! 슈각!

때마침 주어진 상황도 이보다 적합할 수가 없었다.

아인한드라가 한창 전투에 집중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암습에 최적화된 상황인 것이다.

그렇게 목표인 하이엘프를 향해 다가가는 바토리였다.

천천히, 대신 아주 은밀하고 음습하게.

스스스스.

아인한드라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그였다.

그저 바람으로 노스페라투의 목을 잘라 내는 데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덕분에 더할 나위 없는 기회가 만들어졌다.

아인한드라의 등을 완벽하게 잡은 것이다.

스윽.

지난번과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괜히 목덜미를 움켜쥐려는 시도 같은 것은 애초부터 깔끔하게 접었다.

곧바로 오른손의 손톱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쳤다.

아인한드라의 등판을 무자비하게 훑고 지나갈 준비 말이다.

츠츠츠츠~!

그러고는 힘의 원천인 피를 끌어 올렸다.

이와 함께 날을 세운 바토리의 손톱이 검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순식간에 그녀의 주 무기, 혈조가 완성된 것이다.

스아악~

물론 단순히 완성에서 그칠 리 만무했다.

피를 끌어 올림과 동시였다.

그와 동시에 바토리의 손은 이미 대기를 찢어발기는 중이었다.

아인한드라가 힘의 작용을 제대로 감지할 시간조차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깔끔하게 훑어 주는 순서만이 남은 상황.

‘어?’

아니, 한 가지가 더 남아 있기는 했다.

그것은 바로 아인한드라의 인지.

이쯤 되면 알아차리고도 남았어야 했다.

아무리 바토리의 접근이 은밀했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아인한드라쯤 되는 실력자가 이 지점에서까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다?

어딘가 이상한 일이었다.

또, 수상한 일이기도 했다.

‘아직도……?’

그런데 현재 이 이상하고 수상한 일이 실제로 펼쳐지는 중이었다.

아인한드라는 여전히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기는커녕 암습을 인지하고 움찔하는 반응조차도 말이다.

그저 묵묵히 하던 일에나 계속 집중할 뿐인 그였다.

사아아~

그때였다.

아인한드라가 보인 수상함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충분한 근거를 지니고 있었다.

바토리는 이 점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녀에게로 쏟아지는 어떤 기운에 의해.

“…….”

심지어 그냥 쏟아지지도 않았다.

바토리가 아인한드라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그녀의 뒤에서 쏟아져 왔다.

애초에 바토리는 암습을 가해가던 쪽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인한드라가 쳐 둔 덫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던 쪽이라고 봐야 했다.

지금 역으로 그녀를 향해 쏟아져 오는 암습이 그 방증이었다.

사아아아~

슈아악~!

어딘지 모르게 친숙한 기운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짓쳐들어오는 한 자루의 검이었다.

이런 것들이 바토리의 등을 노리고 있었다.

직접 본 것은 아니었다.

그녀야말로 고개를 돌리고 말고 할 시간조차 없었으니까.

대신 느낄 수 있었다.

이 기운과 일격의 주인은 상당히 강력한 자였다.

뱀파이어 퀸인 바토리의 감각을 쭈뼛 서게 만드는 힘이 느껴졌다.

이 상태, 이 자세로는 절대 온전하게 막아 낼 수 없었다.

피해야만 했다.

동시에 깨달을 수 있었다.

이 힘과 힘의 주인이 변수였다.

카밀라를 처치하고, 여태껏 숨어 있던 바로 그 변수 말이다.

그러더니 가증스럽게도 결정적인 순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흥!!”

가소로웠다.

물론 전해지는 기운이 어딘지 이상하고 강력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였다.

애초에 변수의 존재 자체는 인지하고 있던 바토리였다.

그걸 알고도 직접 움직임에 나선 것이다.

변수가 언제 어디서 달려들든 상관없었다.

그녀 또한 언제 어디서든 회피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파앗!

바토리가 재빨리 바닥을 박찼다.

오른쪽으로 경로를 틀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몸은 왼 방향으로 뒤집고자 했다.

회피와 함께 기회를 봐서 반격까지 가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터.

아인한드라에게 쓰려고 준비해 두었던 혈조가 있으니 불가능할 것도 없었다.

스스.

그러면서 안개화까지 시전해 갔다.

혈조로 반격을 가한 뒤 확실하고 안전하게 몸을 빼려는 의도였다.

안개화에 들어가고 나면 웬만한 공격들은 전부 무용지물이 된다.

일정 범위를 휩쓰는 공격이거나 핵이 타격을 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렇게까지 하고 나면 말 그대로 완벽한 회피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만만한 바토리였다.

구구구구!

분명 끝까지 그랬을 것이다.

갑자기 작용한 정체불명의 힘만 아니었다면.

“헛……??”

찍어 누르는 힘이었다.

웬 찍어 누르는 힘이 갑자기 바토리를 짓뭉개 버렸다.

앞선 두 가지 계획 모두에 차질이 생길 만큼 강력하게.

이로 인해 원하는 만큼 경로를 틀지도, 몸을 뒤집지도 못한 바토리였다.

모두 한 끗씩 부족해지고 말았다.

슈아악~!!

그러는 와중에도 검은 무자비하게 짓쳐 들고 있었다.

수직으로 내리쳐지던 그것이 이제 바토리의 왼 어깨에 거의 다 도달한 상황.

스스스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바토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혈조로 반격을 가한 직후 시전을 마치려 했으나,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반격이고 뭐고 일단 피하고 봐야 했다.

하여 곧바로 전력을 다해 안개화에 들어갔고, 덕분에 늦지 않게 마칠 수 있었다.

동시에 검격의 경로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한번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서걱!!

“커흑……!!!”

안개화고 안간힘이고 소용없었다.

곧장 핵을 노리고 베어져 들어오는 강력한 검격 앞에서는.

마치 바토리의 본질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처럼 똑바로, 그리고 정확하게 말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