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04화 (105/200)

58장: 종속 변환(2)

“……그렇게 해서 카밀라는 내 종속이 된 상태야. 여러모로 쓸모 있을 것 같아서 일단 두고 보는 중이고.”

결과적으로 카밀라는 뱀파이어 퀸의 종속에서 벗어났다.

대신 내 종속이 되었다.

내 발밑에서 깜짝 등장한 것도 그래서였다.

정확히는 내 어둠 속에 녹아들어 있다가 나온 것이다.

아인한드라에게 대강 이런 내용의 설명을 마친 참이었다.

“혹시 네가 많이 불편하다면 여기 있는 동안은 분지 밖으로 내보내 둘게.”

“그럴 필요 없다, 라이. 네 종속이 됐다면 상관없다. 물론 불편이야 하겠지만, 여러모로 쓸모가 있으리라는 네 판단에 나 역시 동의한다.”

이렇게 아인한드라의 동의까지 받았다.

다른 엘프들의 동의야 지난 이틀 동안 나르한지아를 통해 이미 받아 두었고 말이다.

이리하여 엘프의 전력에 뱀파이어가 정식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그것도 불과 이틀 전까지 뱀파이어 퀸의 직속 수하였던 뱀파이어가.

암울하기만 하던 겨울바람 일족의 미래에 한 줄기 서광이 비치기 시작한 셈이었다.

휘청.

덕분에 아인한드라의 긴장이 살짝 풀린 모양이었다.

그가 몸을 휘청거렸다.

“너 괜찮은 거야?”

“……괜찮다.”

“아니,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

비단 휘청거림만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하얀 얼굴이 급격하게 창백해져 갔다.

이 강추위 속에 식은땀까지 흘리기 시작한 그였다.

단순히 긴장이 풀린 정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이내.

“으음…….”

털썩.

“아인!”

선 자리에서 정신을 잃은 채 그대로 쓰러지고 마는 아인한드라였다.

* * *

“역시!”

카를로스 지안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앙기리스 왕국을 대표하는 자카럼 상단의 주인으로서 도저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금화가 넝쿨째로 굴러들어 오게 생긴 판이었다.

이런 걸 보고 진심으로 즐겁지 아니하다면 그자는 상인이 아닐 터였다.

“역시 바토리 님의 물건은 믿지 않을 수가 없군요. 좋습니다. 최상등품이에요.”

“바토리 님은 극지대의 여왕이시다. 최상이 아니면 취급하지 않으신다.”

“그럼요, 그렇고말고요. 여왕님의 격이 있으신데, 당연하지요. 앙기리스 왕국의 백작이자 자카럼 상단의 주인인 제가 바토리 님의 위대함을 보증합니다.”

더구나 여타 거래 시처럼 속내를 숨겨야 할 상대도,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

오히려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더 좋았다.

지금은 적극적으로 아부를 이어 갈 타이밍이었기 때문이다.

“극지대를 지배하는 분이시다. 일개 백작 주제에 감히 그분의 위대함을 보증할 수 있다고 보나?”

“이런, 제가 실언을 했군요. 죄송합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주의하도록. 바토리 님에 대한 무례는 용납하지 않는다.”

“명심하지요. 다만, 바토리 님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제 마음만큼은 진심임을 알아주기 바랍니다, 테페슈 공.”

귀족의 피보다는 상인의 피가 훨씬 더 짙게 흐르는 카를로스였다.

이런 것쯤은 그에게 치욕 축에도 끼지 못했다.

이깟 사과쯤이야 골백번도 더 할 수 있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 고이 잠들어 있는 엘프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어찌 됐든 정말 대단합니다. 엘프를 이렇게 싱싱한 상태로 보관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혁명이나 다름없어요. 덕분에 일전에 거래한 엘프들도 모두 비싼 값에 팔 수 있었고 말이지요.”

이번이 벌써 네 번째 거래였다.

지난 세 번의 거래에서 각각 하나씩 엘프 셋을 받아 갔으며, 그걸로 자카럼 상단은 이미 쏠쏠한 재미를 본 상태였다.

“그래서 여쭤보는 건데, 혹시 그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사냥은 잘 마무리됐습니까? 이번 거래를 할 때쯤이면 얼추 마무리될 거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다음 거래일에는 거래가 가능할 것이다.”

“오오, 말씀하셨던 숫자 전부 말입니까?”

“그렇다. 최소 30 이상.”

“이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가 아닐 수 없군요. 대단하십니다. 정말로 대단해요.”

심지어 오늘까지는 맛보기에 불과했다.

잭팟은 다음번 다섯 번째 거래에 터질 예정이었다.

이렇듯 싱싱한 최상급 엘프가 무려 30 이상인 것이다.

더욱이 일반 엘프만이 아니었다.

“하면 정말 그 하이엘프도……?”

“지금 바토리 님을 의심하는 건가?”

“아닙니다. 절대 아니에요. 제가 감히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바토리 님을 믿지요. 이건 의심 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개인적인 궁금함일 뿐입니다. 제국까지 물 먹이면서 대륙을 워낙 시끄럽게 만들었던 물건인지라…….”

테페슈가 예고한 거래 품목에는 하이엘프가 끼어 있었다.

사실상 황제를 엿 먹였던 전력이 있는 바로 그 하이엘프, 아인한드라 말이다.

이건 단순히 돈으로 따질 수 있는 가치가 아니었다.

황제에게 가져다 바친다면 단순한 숫자 이상의 보상으로 돌아올 것이 자명했다.

“그 하이엘프가 제국 따위에 어찌했든 그런 건 중요치 않다. 바토리 님께서 직접 나서신 이상 결과는 한 가지뿐이니까.”

“역시 그렇군요. 제가 아둔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진심으로 탄복했습니다. 바토리 님의 그 끝을 알 수 없는 전지전능하심에.”

사과와 마찬가지였다.

찬양 역시 수천, 수만 번이라도 할 수 있었다.

30이 넘는 엘프, 그리고 하이엘프 아인한드라를 생각한다면 그 이상도 가능했다.

“바토리 님께 진심으로 탄복한다면, 마땅히 해야 할 일 또한 잊지 않았겠지?”

“아, 그거 말씀이십니까? 물론입니다. 제가 그걸 어찌 잊겠습니까? 확실히 인지하고 있지요.”

물론 사과와 찬양만으로 거래가 성사되지는 않았다.

당연히 카를로스 또한 뱀파이어에게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그리고 뱀파이어는 첫 엘프 거래 시부터 원하는 대가를 확정해 두었다.

“저 역시 다음 거래일에는 정령석을 들고 오겠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서 곧바로 거래를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말이지요.”

그것은 바로 정령석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뱀파이어 퀸이 정령석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유 따위는 어차피 중요치 않았다.

자카럼 상단에 터질 전례 없는 초대박만이 중요할 뿐.

이유가 뭐가 됐든 카를로스는 무조건 이 거래를 성사시킬 작정이었다.

“좋다. 절대 잊지 말도록. 그리고 한 가지 더. 그 종류는 반드시 물의 정령석이어야 한다는 사실 역시도.”

* * *

쓰러진 날로부터 나흘 후.

“으음…….”

“아인, 정신이 좀 들어?”

아인한드라가 다시 눈을 떴다.

꼬박 나흘 만에 정신을 차린 것이다.

“여긴……?”

“안심해. 분지 안이니까. 네가 쓰러져 있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고.”

우선 그런 아인한드라를 안심시켜 주었다.

실제로 지난 나흘간 이곳 분지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이군. 내가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었던 건가?”

“나흘. 등에 입은 상처에 탈진까지 겹쳤던 모양이야. 카밀라 말로는 뱀파이어 퀸의 혈조에 당한 상처라던데?”

“맞다. 포위를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바토리에게 빈틈을 드러냈다. 막거나 피하기에는 당시 상황이 여의치가 않더군.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너 정말 위험했어, 아인. 퀸의 시독 때문에 특히 더. 카밀라 통해서 제거하기는 했지만, 조금만 더 늦었으면 장담 못 했을 거라고 하더라.”

퀸의 공격이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그녀의 피가 지닌 파괴력에 한정되지 않았다.

그 피에 함유된 시독 역시 굉장한 무기였다.

아인한드라쯤 됐기에 이틀이나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마나나 정령력이 받쳐 주지 못할 시 금세 죽음에 이르는 맹독이라는 것이 카밀라의 부연설명이었다.

“그보다 라이, 카밀라를 불러 줄 수 있겠나? 그녀에게 궁금한 게 있다.”

“그래. 나와, 카밀라.”

스르륵.

내 명령에 카밀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등장한 카밀라는 다소 쭈뼛대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비록 내 종속으로 포지션 변경을 하기는 했어도, 종 자체는 여전히 뱀파이어인 그녀였다.

또, 과거의 기억은 그대로 유지 중인 상태였다.

당연히 아인한드라 앞에 나서는 일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토리 관련해서 묻고 싶은 게 있다.”

“네, 아인한드라 님. 말씀하세요.”

반면, 아인한드라는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괜한 심력 낭비 없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는 그였다.

“바토리의 본거지에서 가사 상태에 빠뜨려 놓은 우리 일족들을 발견했다. 바토리 말로는 본인이 꼭 갖고 싶은 게 있어서라고 하던데?”

“네, 맞아요. 바토리가 간절히 원하는 게 있어요. 다만, 스스로 구하기는 어려운 물건인지라 인간과의 거래를 통해 얻으려 하는 거예요.”

“그게 뭐지? 대체 어떤 물건이기에 우리 일족 전체가 필요하다는 것인가?”

노예 시장에서 엘프의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일반 엘프만 해도 경매 시작가가 5,000골드를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2,000골드였던 레오파드 일족 수인의 최종 낙찰가와 비교하면 2.5배에 달하는 것이다.

심지어 이는 낙찰가도 아닌 시작가였고 말이다.

이런 엘프였다.

그런데 이런 엘프를 한둘도 아니고 일족 전체를 필요로 한다?

이 말인즉슨, 물건의 가치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아인한드라가 깨어나기 전 카밀라에게 미리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분명 그럴 만한 가치를 지닌 물건이었다.

“정령석이요.”

바로 정령석이었다.

바토리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는 물건은.

당연히 가치가 상상을 초월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지금은 과소평가를 당하는 중이라고 봐야 했다.

그래도 거래가 가능한 상황이었으니까.

5, 6년쯤 지나고부터는 아예 거래 자체가 불가능해질 터였다.

그때쯤은 전략 물자로써의 정령석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뿌리내리게 될 테니 말이다.

“정령석?”

“네, 정령석. 바토리가 원하는 건 정령석이에요. 그중에서도 물의 정령석.”

“뱀파이어와 정령석이라……, 잘 매치가 되지 않는군.”

“한계를 벗어나려는 시도인 거죠. 바토리는 이곳 극지대를 지긋지긋하게 여기고 있어요. 떠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떠나고 싶어 하는데, 그간 뱀파이어의 한계가 발목을 잡아 왔어요.”

신체의 부패와 관련한 뱀파이어의 한계.

이에 대해 카밀라의 상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를 요약하면 간단했다.

부패의 한계를 정령석 섭취로 극복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굳이 물의 정령석을 원하는 이유가 그럼……?”

“그런 거죠. 특히 나르한지아 님의 정령력 활용이 결정적이었어요. 정령력으로 얼음이 만들어지는 걸 목격하고는 마음을 굳힌 것 같더군요.”

“그게 전부인가? 그게 다라기에는 판단이 지나치게 단편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뱀파이어가 정령력을 보유 가능할지부터가 미지수였다.

또, 보유가 가능하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얼음으로 부패를 막는다는 계획이 언뜻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나, 진짜 정답일지는 알 수 없었다.

1년이나 이어진 습격의 근거가 되기에는 많이 부족한 것이다.

“잃을 게 없으니까요. 잃을 게 없으니 아무리 근거가 단편적이어도 상관없는 거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기만 한다면.”

“으음…….”

단, 이는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입장에서의 판단.

바토리의 입장은 일반적인 것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그녀는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었다.

근거의 부족함 따위는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결국, 바토리는 중도에 멈출 생각이 조금도 없다고 봐야겠군.”

“그렇죠. 본인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게 아닌 한에는.”

결국, 결론은 한 가지뿐이었다.

끝장을 보는 것.

엘프들이 이곳에서나마 자리 잡기 위해서는 바토리를 끝장내야만 하는 것이다.

“늦어도 앞으로 일주일 내로는 다시 습격해 올 거라고 했지, 카밀라?”

“네, 주인님. 자카럼 상단에 뱉어 둔 말도 있고, 또 애초에 바토리 성격이 그렇게 느긋한 편도 아니니까요. 저 때문에 알아보려고 시도야 하겠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거예요.”

카밀라는 일주일을 예상했다.

그것도 길어야 일주일이었다.

당장 하루 이틀 내가 될 가능성 역시 다분했다.

“……만약 바토리가 죽는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한데, 이렇듯 간단해 보이는 결론과 달리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결론에 도달하기까지는 아직 중대한 걸림돌이 하나 남아 있었다.

“그 경우, 가사 상태에 빠진 우리 일족은 무사한 것인지 궁금하다. 깨어날 수 있는 것인가?”

“그게……, 사실 힘들어요. 가사 상태의 원인이 바토리가 주입한 퀸의 피인지라, 아무런 대책 없이 죽인다면 그들도 깨어나지 못할 거예요.”

이것이었다.

가사 상태에 빠진 엘프들.

이들을 무사히 구하는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그전에는 바토리에게 제대로 손을 쓰기가 어려웠다.

자칫하다가는 이들이 영영 깨어나지 못할지도 몰랐으니까.

끝장을 낼 때 내더라도 일단 이 문제부터 선결할 필요가 있었다.

“대신, 다른 방법이 하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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