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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03화 (104/200)

58장: 종속 변환

시간을 살짝 거슬러 올라 아인한드라와의 재회 이틀 전.

나는 극지대를 헤매는 일 없이 곧장 엘프들의 분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과거 황도 아카데미에서 아인한드라가 알려 준 이그드라실 기운 감지 방법 덕분이었다.

한데, 이제 막 도착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심히 달갑지 못한 장면이었다.

웬 괴물들이 분지를 습격 중이었으며, 이로 인해 엘프들이 위기에 처해 있던 것이다.

그래서 일단 달려들었다.

콰각!!

그리하여 떨어져 내리던 손톱을 중간에 가로막았다.

무방비 상태의 엘프를 향해 핏빛 일격을 날려 가던 그런 손톱이었다.

그렇다면 확실했다.

고민조차 필요 없었다.

내 손에 가로막힌 이 여자, 분명한 적이었다.

꽈아악~!

구우우웅~

곧바로 응징에 들어갔다.

손톱을 움켜쥔 손에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오러를 가미하여.

콰드드드득!!!

“크으읍……!!”

털썩.

결과는 금세 도출되었다.

단숨에 으스러지며 그 형태를 잃어 가는 손톱들.

빠져나가려 안간힘 쓰지만, 역부족임을 체감케 하는 신음.

자연스럽게 꿇려지며 바닥에 닿는 무릎까지.

압도적인 격차를 드러내는 명백한 결과물들이었다.

구구구구.

“커흑!!”

철퍼덕.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괴물들의 우두머리는 이 여자였다.

당연히 심도 있는 대화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됐다.

해서 일단 바닥에 깔아뭉개 두었다.

중력으로 사정없이 짓눌러 버린 것이다.

“아인한드라는 어디 있습니까?”

그런 뒤 내가 구해 준 엘프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인한드라의 위치를 묻기 위함이었다.

분지 내에서 그의 기운이 감지되지 않았다.

또, 그가 있었다면 엘프들이 이렇게 위기에 몰리지도 않았을 터.

이 말인즉슨 현재 이곳에 아인한드라가 없다는 뜻이었다.

“아,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려나?”

그러다 이내 실수를 깨달았다.

아인한드라만을 생각하다 보니 발생한 실수였다.

아인한드라는 제국어를 알고 있었다.

하여 그와의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반면 평범한 엘프들은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자칫 난감해질지도 모르는 상황.

“……인간이 아인한드라를 어떻게 알지?”

“제국어를 할 줄 아는 모양이군요?”

하나, 다행이었다.

이 엘프 역시 제국어를 알고 있었다.

덕분에 난감해질 일은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 그런데 어떻게…….”

콰광!!

다만, 진득한 대화는 시기상조였다.

아직 대화를 나눌 만한 여건이 갖추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여자를 제압했음에도 괴물들은 여전히 날뛰는 중이었다.

일단은 정리가 먼저인 것이다.

“상황부터 마무리 짓고 다시 얘기하죠.”

스르릉.

단숨에 정리해 버릴 작정이었다.

그래서 지체 않고 심연을 빼 들었다.

사아아아~

그러고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갔다.

지금 이곳 분지에서 20여 명의 엘프들이 내뿜는 감정들을.

당연히 그 감정의 종류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에 걸맞게 온갖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 찬 상태였으니까.

웅웅웅~

콰아아아~

그렇다면 다음 순서는 정해져 있었다.

받아들인 감정들을 공명하고 증폭시켰다.

5년 전, 이베리아 평원에서 거쳤던 바로 그 과정이었다.

그 과정을 지금 이 자리에서 재연 중인 것이다.

단,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빠르고 깔끔하게.

감정의 격랑에 먹히니 마니 하는 위기 같은 것은 깔끔하게 건너뛰어 버렸다.

고오오오~!

덕분에 어둠의 유형화는 물론이고 그 포진까지 순식간에 마무리됐다.

넘실거리는 어둠이 기둥의 형태로 곧장 심연 위에 자리 잡은 것이다.

5년 전에 벌어졌던 어둠과의 사투 따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일방적인 압도만이 펼쳐졌을 뿐.

쿠우우우~!!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남은 순서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대로 내려치는 것.

날뛰는 괴물들을 향해 어둠이 짓쳐 들었다.

파삭. 파삭. 파사사삭~

저항은 없었다.

엘프들을 몰아붙이던 100여 마리의 괴물들.

이 괴물들은 아무것도 해 보지 못했다.

넘실거리는 어둠에 닿는 순간 한 줌의 잿더미로 화할 뿐이었다.

남긴 거라고는 파삭거리는 소리가 전부였다.

…….

그리고 그렇게 끝이었다.

바닥에 내려앉은 어둠과 함께 괴물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터럭 한 올 남기지 못한 채였다.

상황이 종결된 것이다.

제대로 인지조차 어려울 만큼 순식간에.

자연스레 정적이 찾아왔다.

복합적인 의미의 정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상황 자체를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일 테니까.

물론 이 상황을 만든 당사자는 제외하고 말이다.

“자, 그럼 하던 얘기를 마저 해 보죠.”

다시금 맨 처음 구해 준 엘프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끊겼던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나는 라이오넬 라인하트라고 합니다. 혹시 아인한드라에게 들어 본 적 없습니까?”

“설마 아인한드라의 탈출을 도왔다는 그 인간……?”

“다행히 얘기한 모양이군요.”

“일족이 자리 잡고 나면 꼭 찾아가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소.”

재개된 대화의 분위기는 다행히 나쁘지 않았다.

사실 이 또한 적잖이 신경 쓰이던 부분이었다.

엘프는 인간에 대한 적개심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했다.

지난 세월 이들이 직접 몸으로 겪어 온 바가 있었으니까.

아인한드라야 첫 만남부터 워낙 특별했으니 금방 가까워진 것일 뿐, 다른 엘프들과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었다.

오히려 노골적인 적대감만 비치지 않아도 다행이라 생각한 참이었다.

그런데 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다행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내 등장 타이밍이 참 절묘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등장해서 일족 전체를 구원해 준 것이다.

여기에 아인한드라가 나에 대해 언급해 둔 바까지 더해졌고 말이다.

이만하면 당장 아인한드라가 없더라도 곤란을 겪는 일은 없을 터였다.

“나는 겨울바람 일족의 나르한지아라고 하오. 일족과 아인한드라를 대신하여 인간인 그대, 라이오넬 라인하트에게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실제로 엘프, 나르한지아의 말투 역시 처음과 달리 호의적으로 바뀐 상태였다.

엘프답게 감사 인사에 가득 담긴 진심 또한 그 방증이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친구를 위해 한 일이니까요. 그보다 아인한드라는 어딜 간 겁니까? 함부로 자리를 비워도 될 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덕분에 곧바로 전후 사정 파악에 들어가는 것도 가능했다.

어딘가 비정상적인 괴물들에게 일족이 습격을 받고 있었다.

더욱이 벼랑 끝까지 몰린 상황이었다.

한데, 이런 상황에 일족의 리더이자 최강 전력이 자리를 비운 것이다.

가벼운 문제일 리 만무했다.

“지금 그대 뒤에 엎드려 있는 뱀파이어 때문이오.”

나르한지아가 눈짓으로 내 뒤편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는 지난 1년간의 일을 전해 주는 그였다.

갑작스러운 뱀파이어의 습격부터 이에 대한 겨울바람 일족의 대응, 그리고 아인한드라가 분지를 나설 수밖에 없었던 사정까지 전부.

그렇게 전후 사정을 엘프의 입장에서 소상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랬군요. 그럼 이제 다른 쪽 입장을 한번 들어 볼까요?”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피해자인 엘프의 입장일 뿐이었다.

어떤 일이든 양쪽 입장을 전부 들어 봐야 하는 법.

따라서 이번에는 가해자인 뱀파이어의 입장을 들어 볼 차례였다.

“습격의 이유와 방법부터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본거지의 위치와 전력까지 전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세세하게.”

단, 듣는 내 입장이 중립일 필요는 없었다.

철저히 피해자 쪽에 치우칠 예정이었다.

차라리 취조라고 보는 편이 옳을 터였다.

이 사태의 모든 것을 샅샅이 파헤칠 작정이었으니까.

“제국어는 알려나? 이름.”

“카…… 카밀, 카밀라입니다.”

자신 있었다.

말이 잘 통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뱀파이어가 단순히 내 말을 알아듣는다는 데에서 그치는 의미가 아니었다.

카밀라는 내 말을 아주 잘 들을 것이다.

“소속.”

“소, 소속이라면……?”

“네 주인을 말하라고. 보아하니 네가 진짜 우두머리는 아닌 것 같은데, 아냐?”

“예, 맞습니다! 저는 절대 우두머리가 아니에요. 뱀파이어 퀸 바토리 님께서 제 주인이시자 진짜 우두머리세요.”

확연히 느껴졌다.

이 녀석 진심으로 떨고 있었다.

나를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이다.

질문에 대한 능동적이고도 적극적인 답변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본인이 줄 수 있는 답이면 어떻게든 쥐어짜서라도 주려 할 것이 분명했다.

“습격 이유.”

“엘프들을 잡아가려고…….”

“잡아가? 죽이는 게 아니라 산 채로 잡아간다는 뜻인가?”

“네, 잡아가서 가사 상태에 빠뜨려 놓고 있어요.”

내가 어둠의 힘을 꺼내 든 시점부터였다.

중력에 짓눌리는 순간부터 흠칫하더니, 어둠의 유형화 직후부터는 대놓고 떨었다.

도저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을 만큼 벌벌.

내 어둠에 완전히 압도당한 것이다.

뱀파이어인 카밀라의 본질 때문이었다.

오늘 처음 봤지만, 처음 보는 순간부터 확신했다.

뱀파이어는 본질적으로 어둠에 속해 있었다.

어둠의 주요 속성 중 하나인 음습함.

이 음습함에서 파생되는 마기와 사기로 똘똘 뭉친 존재였다.

정리하면, 본질적인 부분에서 압도적인 힘을 마주한 것이다.

그것도 적으로 말이다.

벌벌 떠는 것이 당연했다.

“가사 상태? 왜?”

“그것이…… 그러니까……, 그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

“그러니까 그 이유가 거…… 아니 파, 팔아…… 하으읍.”

다만, 본질이 같다는 것이지 나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카밀라는 뱀파이어 퀸인 바토리에게 종속된 존재였다.

그리고 이 종속의 족쇄는 상당히 강력했다.

지금 카밀라가 보이는 이상 행동이 그 증거였다.

“제가 원해서 이러는 게 절대 아니에요. 이건 진짜로 제가 어쩔 수 없는…….”

“알아.”

이건 망설임이 빚어낸 결과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종속의 족쇄가 만들어 낸 금제였다.

카밀라가 답변하려는 내용이 바토리에 대한 배신으로 해석되는 모양이었다.

입을 열려 할 때마다 카밀라 내부에서 음습한 힘이 요동쳤다.

그리하여 카밀라의 입을 틀어막는 중이었다.

그런 힘의 작용이 내 감각에 포착됐다.

“그래도 계속해 봐.”

“하지만…….”

“네 힘으로 못 하는 거 알아. 그래도 계속 시도해 봐. 확인할 게 있으니까.”

“네? 아, 예…….”

이 힘을 좀 더 확인해 보고자 했다.

나아가 나 또한 시도해 볼 게 있었다.

“잡아간 엘프들을 가사 상태에 빠뜨리는 건 멀쩡한 상태로 거, 거ㄹ…….”

스스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또다시 음습하고 사특한 힘이 요동쳤다.

“그러니까 인간에게 파, 팔…… 하으윽.”

스스스스.

그 힘이 카밀라에게 금제를 가하는 찰나였다.

사아아아~

이에 맞춰 나 또한 어둠을 움직였다.

그리고 이것을 카밀라의 내부에 침투시켰다.

“어어???”

스스스스.

사아아아~

무언가 심상치 않게 흘러감을 느낀 카밀라였다.

그녀의 눈이 잔뜩 겁에 질려 갔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멈출 내가 아니었지만.

카밀라의 내부에서 요동치는 힘을 내 어둠으로 둘러쌌다.

화악!

그러고는 일거에 덮쳤다.

내 쪽에서 습격을 가한 것이다.

카밀라의 주인이 심어 둔, 그녀의 근간이 되는 힘에.

콰지지지직~!

이 힘에는 어떤 격이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뱀파이어 퀸씩이나 되는 존재의 힘이었다.

격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인 것이다.

또한, 그 격에 맞게 저항 역시 상당한 수준이었다.

힘은 내 어둠에 격렬하게 맞서 왔다.

“꺄아아아악~!!!”

전장은 카밀라의 내부였다.

동시에 카밀라의 근원을 파괴하는 것이기도 했다.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물이었다.

물론, 이 역시 내가 신경 쓸 바 아니었지만.

사아아아아~!

어둠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콰지지지지직!!

“꺄아아아아아아악……!!!”

저항 또한 더할 나위 없이 격렬해졌다.

극에 다다른 것이다.

카밀라가 느끼는 고통과 내지르는 비명이야 굳이 언급조차 필요 없었고 말이다.

콰아아아아~!!

이 지점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 번 더 끌어 올렸다.

그리고 쏟아부었다.

저항이 한계에 봉착한 종속의 인을 향해.

어떤 격이 느껴지면 뭐 하겠는가?

그 격의 근원은 지금 이곳에 없는데.

반면 나는 지금 이곳, 카밀라 바로 앞에 있고 말이다.

처음부터 결과가 정해진 싸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가리켰다.

여기까지라고.

…….

카밀라의 내·외부 모두에서 순간적인 고요가 찾아왔다.

더 이상의 저항은 없었다.

카밀라의 근간을 이루던 힘이 완전히 붕괴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의 눈은 이미 까뒤집힌 상태였다.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에 정신을 놓은 것이다.

스으으.

단, 여기서부터이기도 했다.

완전히 붕괴해 텅 비어 버린 카밀라의 근원.

그 빈 자리를 새로운 근원이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스으으으~

전 주인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음습했다.

그러나 전 주인의 그것과는 또 달랐다.

음습함에서 그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음습한 동시에 모순적이게도 아늑하고 포근했다.

새로운 근원은 어둠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스아아아아~!!

그렇게 카밀라가 새로워지고 있었다.

그녀의 주인, 그녀를 이루는 근원, 앞으로 그녀가 이루어 갈 관계까지.

카밀라의 모든 것이 새롭게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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