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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02화 (103/200)

57장: 북방 극지대(2)

샤악~ 샤아악~!

바람의 칼날이 휘몰아칠 때마다였다.

서걱! 서걱! 서걱…….

노스페라투들의 머리가 속절없이 몸통에서 떨어져 나갔다.

한 번에 한두 개씩도 아니었다.

최소 다섯 개 이상씩은 분리됐다.

그리고 이로 인해 순간적으로 포위망의 한쪽이 열리고 말았다.

“막아!”

샤라라락~

하이엘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주저 없이 파고들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빠져나가 버렸다.

마치 한 줄기 바람처럼.

“이런……!”

포위망을 빠져나간 뒤는 더했다.

정말 바람과도 같은 속도로 멀어져 갔다.

“제가 쫓겠습니다, 주인님.”

이에 아쉬움을 금치 못하는 뱀파이어 테페슈였다.

그가 곧바로 추격을 자청했다.

“됐어. 놔둬.”

하지만 허용되지 않았다.

바토리가 잘라 낸 것이다.

“쫓아간다고 해서 당장 잡을 수 있는 먹이가 아니야.”

그렇지 않아도 민첩한 엘프였다.

그런 엘프가 정령의 바람까지 타고 다녔다.

아무리 바토리의 공격에 상처를 입은 상태라 해도 쉬이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그럼……?”

“덫을 놓고 유인해서 잡아먹어야지. 덫은 이미 놓은 셈이니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돼.”

더욱이 쫓아갈 필요 자체가 없었다.

제 발로 찾아오게 만들면 그만이었다.

유인책도 이미 마련해 둔 상황.

찾아오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터였다.

어떻게든 제 일족들을 구하고 싶을 테니 말이다.

“그보다 날짜는? 자카럼 상단 인간이 오기로 한때가 다 되지 않았어?”

“나흘 후에 극지대 초입에서 만나기로 약속돼 있습니다.”

“좋아. 이제 사냥도 끝났으니, 이번에는 언제까지 구해 올 수 있는지 확답을 받아 와.”

“예, 주인님.”

바토리가 엘프를 사냥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아인한드라에게 밝혔다시피 갖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바토리와 권속들의 힘으로 구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그래서 인간과 거래를 하기로 했다.

엘프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인간들이었으니까.

다만, 한둘로 구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인간들 사이에서는 전략물자로 급부상했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가치가 오르고 있는 귀물이었다.

거래를 이어 오던 자카럼 상단 인간의 말에 따르면 그러했다.

아무리 엘프라 해도 한둘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상관없었다.

한둘로 안 된다면 뭉텅이로 내놓으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바토리는 겨울바람 일족 전체를 거래 품목으로 내놓을 작정이었다.

아무리 귀하고 비싸다 해도 이거면 충분할 터.

그만큼 간절히 바라는 물건이었다.

정확히는 그 물건을 통해 얻게 될 능력이 탐났다.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눈보라만 몰아치는 이 지겹고 지루한 곳에서.

바토리가 자칭 극지대의 여왕으로 지내 온지도 어언 100년이 넘었다.

그녀가 본인의 존재를 인지하기 시작한 때부터였으니 대략 110년쯤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뭐 하겠는가?

제대로 인정받지를 못하는데.

극지대에 있는 거라고는 두꺼운 털에 둘러싸인 멍청한 몬스터들뿐이었다.

이런 것들 사이에서 여왕 대접은 가당치도 않았다.

강력한 그녀 앞에서 덜덜 떨기는 했다.

그러나 받든다거나 섬긴다는 등의 이성적 행동은 성립 자체가 불가했다.

여왕이나 지배자라는 개념 자체가 부재한 것이다.

바토리를 그저 하나의 강대한 포식자로 인식할 뿐이었다.

물론 그녀의 권속들이 있기는 했다.

테페슈와 카밀라, 그리고 노스페라투들.

하지만 사실상 테페슈와 카밀라, 이 둘이 다였다.

수백의 노스페라투들은 어차피 이지 없는 시체에 불과했다.

애초에 본체는 멍청한 몬스터들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다고 테페슈나 카밀라 같은 권속을 많이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바토리 본인의 피를 나눠 줘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힘의 소모가 상당했으며, 회복에 역시 적잖은 시간이 소요됐다.

진짜 뱀파이어는 노스페라투처럼 단순히 흡혈과 감염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만들 만한 대상도 마땅치 않았다.

이곳 북방 극지대에는 이성을 지닌 존재 자체가 극히 희소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극지대 바깥과 교류라도 잦으면 또 몰랐다.

그랬다면 바토리도 여왕이자 지배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을 터.

하나, 바깥의 존재들은 이곳에 관한 관심이 전무했다.

가끔 한 번씩 극지대 몬스터의 가죽과 털을 얻어 가는 정도가 다였으며, 이마저도 그다지 열성을 보이지 않았다.

여태껏 교류를 튼 상대라고는 자카럼 상단 하나뿐인 것이 그 방증이었다.

바토리는 지겹고 지루했다.

그녀는 이성을 지닌 존재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나아가 그들로부터 인정도 받고 싶었다.

그래서 이 지긋지긋한 극지대를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뱀파이어로서의 한계 때문이었다.

바토리를 비롯한 뱀파이어의 몸은 기본적으로 시체였다.

극지대에서와 같은 극한의 추위가 아니면 부패가 진행되는 것이다.

극지대 밖에서는 이 부패의 진행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하여 아무리 지겹고 지루해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바토리였다.

그런데 1년 전, 바토리에게 새로운 희망이 찾아왔다.

바토리가 간절히 바라는 바로 그 물건이었다.

자카럼 상단과의 거래 과정에서 우연히 이것의 쓰임새를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쓰임새로부터 희망을 발견했다.

간절히 바라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때마침 적당한 거래 물품까지 그녀의 영역에 굴러 들어온 참이니 더더욱.

사실 처음에는 엘프들을 두고 볼 생각이었다.

이성을 지닌 존재들이니만큼 정착에 성공한다면 나름 재미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희망을 접한 뒤부터는 아니었다.

본격적인 사냥을 시작했다.

그리고 최대한 상처 없이 사로잡았다.

비록 아인한드라의 존재가 성가시기는 했지만, 어차피 이곳은 그녀의 영역.

하이엘프라 해도 결과적으로 성가심 이상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결국 오늘에 이르렀고 말이다.

이제 사냥의 마무리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우웅.

“음……?”

그렇게 바토리가 한창 행복 회로를 돌려 가던 때였다.

그런 그녀의 내부에 갑자기 어떤 힘의 작용이 느껴졌다.

“왜 그러십니까, 주…….”

“입 다물어 봐.”

“…….”

우우웅.

그것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요동이었다.

마치 끊어지거나 소멸되기 직전의 마지막 발악과도 같은 그런 요동.

우우우우웅~

당연히 바토리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작용이었다.

그런 것이 순식간에 크기를 불려 나갔다.

바토리가 어떻게 손 써 볼 새도 없이 말이다.

그리고 끝내.

뚝!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카밀라……?”

흔적도 없이 완벽하게.

* * *

샤라라락~

“헉, 헉, 헉.”

포위망을 뚫은 직후, 아인한드라는 곧바로 분지를 향해 달렸다.

정말 미친 듯이 달렸다.

부상 수습이고 뭐고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부상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제발…….’

동시에 기원했다.

제발 일족들이 무사하게 해 달라고.

다만, 내심 알고 있기도 했다.

아마도 일족들이 무사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미친 듯이 달려왔지만, 벌써 이틀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이미 상당한 피해가 발생했을 터였다.

어쩌면 전부 당했을지도 몰랐고 말이다.

“아…….”

드디어 저 멀리 분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자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일족들의 안위에 대한 염려, 이미 끝났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제발 버텨 줬기만을 바라는 염원 등이 복잡하게 섞인 그런 신음이었다.

이제 곧 이 신음의 향방이 확실히 정해지게 될 터였다.

샤락~

그때였다.

바람이 먼저 그 향방을 알려 왔다.

“……!!”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제는 눈으로도 직접 확인 가능해졌다.

신음의 향방이 대놓고 떡하니 드러난 것이다.

“나르한지아!!!”

신음은 안도로 마무리되었다.

친우이자 아인한드라 부재 시 대행 역할을 맡고 있는 나르한지아.

그가 분지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파아앗!!

샤라라락~

이에 아인한드라가 전속력으로 달렸다.

친우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바람이 전해 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자 했다.

“아인한드라!”

“괜찮은 것이냐, 나르한지아?”

“그래, 괜찮아.”

“다른 이들은?”

“괜찮다. 나도, 일족도 모두 괜찮아. 크게 다친 이도 없고.”

직접 확인한 바도 다르지 않았다.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나르한지아는 매우 멀쩡했다.

또, 그의 말에 따르면 일족 전부 괜찮았다.

한마디로 기적이 따른 것이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다만, 이에 대한 의문 역시 뒤따랐다.

당연한 일이었다.

정말 다행이기는 하지만,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으니까.

이곳은 북방 극지대였다.

기적이 따를 요소 자체가 전무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기적이 발생했고 말이다.

“오랜만이야, 아인.”

답은 나르한지아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그의 뒤편에서 나왔다.

아인한드라로서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얼굴과 목소리로.

“라이???”

라이오넬이었다.

제국에서 아인한드라를 구출해 주고 이곳 북방 극지대로까지 보내 준 둘도 없는 은인, 바로 그 라이오넬 라인하트 말이다.

그리고 그가 등장하는 순간 아인한드라는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일족이 이렇게 무사한 이유에 대해서.

다른 이도 아니고 라이오넬이었다.

이 사실 하나면 충분했다.

다른 이유는 눈곱만큼도 필요치 않았다.

“라이, 그대가 어떻게 여기 있는 것인가?”

그래도 의문 자체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자연스레 또 다른 의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라이오넬이 지금 이곳에 있는 이유.

이곳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북방 극지대 한복판이었다.

소식이 쉽사리 전달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다고 아인한드라가 따로 도움을 요청한 것도 아니었다.

도움 요청은커녕 사정이 여의치 않은 관계로 지난 6년간 기별 한번 넣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 눈앞에 떡하니 라이오넬이 등장한 것이다.

의아함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다.

“제국에 들렀다가 우연히 소식을 접했어. 엘프들이 노예로 나오게 될 거라는 뭐 그런 소식. 그 소식 듣고 혹시나 싶어서 바로 달려왔는데, 역시나였던 거지.”

그렇게 이어지는 라이오넬의 설명을 통해 자초지종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아인한드라가 할 수 있는 말은 한 가지뿐이었다.

“고맙다, 라이. 그대에게는 항상 도움만 받는구나. 그리고 미안하다. 은혜를 갚지는 못할망정 늘 받기만 해서.”

“감사는 잘 받을게. 그런데 사과는 됐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이에 대한 라이오넬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제국에서도 늘 그랬듯 진심뿐이었다.

진심으로 아인한드라를 친구라 여기는 라이오넬이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하이엘프인 아인한드라가 이를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그의 눈에는 라이오넬의 진심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였으니까.

“알겠다, 라이. 다시 한번 고맙다.”

이런 라이오넬에게 아인한드라가 당장 줄 수 있는 것 또한 정해져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진심 어린 감사, 그리고 유일한 인간 친구에게 보내는 작은 미소.

라이오넬을 비롯하여 인간이라는 종 자체에 처음으로 보내는 미소이기도 했다.

“어……”

처음이라 어색했던 것일까?

한결같던 라이오넬이 처음으로 다른 반응을 내비쳤다.

그답지 않게 다소 얼빠진 듯한 반응이었다.

“……그, 그래. 근데 아인,”

잠시 후, 라이오넬이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고는 어떤 충고?

혹은 경고 같은 것을 늘어놓는 그였다.

“물론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다른 인간들 앞에서는 미소짓지 마. 특히 인간 여성 앞에서는 절대로.”

잠시 내비쳤던 반응만큼이나 실없는 소리이기도 했다.

“아닌가? 남자 앞에서 더 조심해야 하려나……? 하긴 어쩌면 그게 더 위험할지도…….”

“걱정할 필요 없다, 라이.”

물론 아인한드라도 무슨 뜻인지 모르지는 않았다.

그 역시 인간에 대해 문외한은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라이오넬의 말이 실없는 소리임은 여전했다.

“그대를 제외한 인간 앞에서 내가 미소 지을 리 있겠는가? 내 미소를 볼 수 있는 인간은 오직 그대뿐이다.”

직관이 가능한 인간은 라이오넬 외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고 말이다.

아인한드라는 이 사실을 확실히 못 박아 주었다.

여전히 라이오넬을 향하는 작은 미소와 함께.

“그……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럼 나만 조심하…… 흠흠.”

어쨌든 상황은 그렇게 마무리되어 갔다.

아인한드라의 복귀 및 라이오넬과의 재회 모두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그건 그렇고, 아인. 너한테 고백할 게 있어.”

그렇게 별 탈 없이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이어지는 라이오넬의 뜬금없는 고백만 아니었다면.

“네가 많이 놀랄 일이야. 그냥 놀라는 정도가 아니라 심하게 거부감까지 들 게 분명하고. 그래도 일단은 진정해 줬으면 좋겠어. 결과적으로 우리한테 나쁠 것 없는 일이기도 하니까.”

“……??”

“나와.”

스르륵.

그리고 그에 맞춰 라이오넬 발밑에서 등장하는 존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

“아인,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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