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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00화 (101/200)

56장: 경연(3)

“쿨럭, 쿨럭.”

기침 소리뿐이었다.

오직 기침 소리만이 경연장을 채우고 있었다.

대륙 각지에서 온 각양각색의 인사들이 객석을 가득 채우고 있음에도 그러했다.

누구 하나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는 것이다.

경연장은 잠시간 이렇게 비정상적인 침묵에 잠겨 들었다.

“쿨럭. 져, 졌다.”

“오오오오~!!!”

다만, 그리 길지는 않았다.

이내 경연장이 함성으로 가득 메워졌다.

잠시간의 침묵이 반대급부라도 된 듯 한층 더 감탄 어린 함성으로 말이다.

기침의 주인이 자신의 패배를 선언한 직후의 일이었다.

“좋은 승부였습니다.”

“…….”

이에 나 또한 기침의 주인, 크루젠의 목에 겨누어졌던 검을 거두어들이며 말했다.

좋은 승부였다고.

그러자 조금 전 상황과 반대로 이제는 크루젠이 침묵에 잠겨 들었다.

자신의 비참한 패배를 받아들이면서.

이론의 여지조차 없었다.

결과가 너무나도 명확했기 때문이다.

백염이 완성되기 직전의 순간이었다.

내 검이 그 타이밍을 완벽하게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하여 활활 타오르던 화염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화염에 휩싸여 있던 크루젠의 애검과 함께.

심지어 그다음은 더 잔인했다.

내 검은 크루젠의 화염과 애검을 갈라 버린 뒤, 그의 목덜미에서 멈춰 섰다.

정확히는 목덜미 한 치 앞이었다.

즉, 크루젠은 잔뜩 진탕 된 속과 달리 외적으로 자그마한 생채기 하나 입지 않은 것이다.

크루젠 입장에서는 극도로 잔인한 처사가 아닐 수 없었다.

차라리 베이기라도 했으면, 그래서 죽거나 사경을 헤매기라도 했으면 좀 나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렇듯 관객들 앞에서 맨정신에 패배를 자인하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

크루젠은 검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일컬어지는 소드마스터였다.

소드마스터로서 이보다 더 큰 치욕은 찾아보기 어려울 터였다.

관객들이 대륙 각지의 실력자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저벅저벅.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크루젠의 입장.

내 알 바는 전혀 아니었다.

나로서는 큰 상처 없이 살려 주는 것만으로도 할 만큼 한 셈이었다.

어차피 경연에서 죽이거나 중상을 입힐 수도 없는 노릇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따라서 그가 어떤 심정일지는 관심 없었다.

더 이상 그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현재 내 시선은 똑바로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쪽으로 향하는 걸음과 함께.

우뚝.

그렇게 그 대상을 정면으로 마주 본 상태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인사를 올린 것이다.

공손하게.

“…… 대는 볼 때마다 나를 놀라게 만드는군. 대단한 재주야.”

“과찬이십니다. 그저 폐하를 즐겁게 해드 리고자 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황제, 아이단을 향한 인사였다.

동시에 그의 미소를 보기 위한 인사이기도 했다.

“즐겁다라……. 하긴, 어찌 보면 이런 의외성도 즐거움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겠지. 이거 고맙다고 해야 하려나?”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폐하. 폐하께서 즐거우셨다면 소인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진심이었다.

당장은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면 족했다.

눈은 전혀 웃고 있지 못한, 입꼬리가 미세한 경련까지 일으키는, 그런 미소 아닌 미소면 말이다.

* * *

“어찌 된 일이오, 후작?”

“……죄송합니다, 폐하.”

경연은 끝이 났다.

이로써 로만 제국 황제 즉위식도 마무리되었다.

최악의 끝맺음과 함께.

“다 끝난 마당에 사과나 듣자고 이러는 게 아니오.”

과정은 완벽했다.

일주일 내내 모든 것이 계획대로, 준비한 대로 흘러갔다.

마지막 직전의 순간까지도 그러했다.

브루노 다스가 승리를 거둠으로써 제국은 3일간 이어진 경연에서 전승을 기록했다.

크루젠이 방점을 찍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크루젠의 패배가 아예 계산에 없던 것은 아니었다.

패배 또한 경우의 수에 포함 시켰다.

그간 라이오넬의 행보를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경우의 수였으니까.

하지만 이런 완패는 아니었다.

이렇듯 무력한 패배는 계산 범위에 넣지 못했다.

설혹 지더라도 목적은 반드시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크루젠은 노련한 소드마스터이자 정령력 보유자였다.

정령력의 숙련도 또한 결코 낮다고 볼 수 없었다.

아무리 라이오넬의 정령력이 특이하다지만 크게 꿀릴 것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계산이 완전히 빗나갔다.

크루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승리는 물론이고 라이오넬의 전력을 끌어내는 일까지, 아무것도.

황제와 제국의 체면을 구긴 것으로도 모자라 실리마저 챙기지 못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최악의 결과를 도출해 냈다.

완벽했던 지난 일주일을 완벽하게 뒤집어엎는 그런 방점이었다.

“이유를 말해 보시오. 라이오넬에게 그리 무력했던 이유.”

그렇기에 아이단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크루젠이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완패한 이유에 대해서.

“그것이…… 착오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부분이?”

아이단이라고 모르지 않았다.

무언가 착오가 있었으니 이런 참담한 결과가 도출됐을 터.

그가 묻는 것은 착오의 지점이었다.

어느 지점에서 생긴 것인지를 알아야 했다.

그래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테니까.

“죄송합니다, 폐하……. 신으로서는 정확히 판단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당사자인 크루젠 또한 그것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그는 스스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처음에는 정령력만이 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분명 그랬는데, 그자의 마지막 일격에 신이 너무 허무하게 무너졌습니다. 이제는 정말 단순히 정령력 때문인지 확신이 서지를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

사실상 라이오넬의 제대로 된 반격은 마지막 일격 한 번뿐이었다.

한데, 크루젠은 고작 그 한 번의 반격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 점이 그의 머리를 뒤죽박죽 헝클어 놓은 것이다.

즉, 크루젠은 지금 스스로의 혼란조차 수습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상황이 이러하니 아이단도 더는 그를 몰아붙일 수가 없었다.

“정령력이 맞아. 검은 아니야.”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아이단의 대리자는 크루젠만이 아니었다.

장외에서 아이단의 눈을 대신한 이들도 존재했다.

그중 하나인 가이덴 드라이슬러가 나섰다.

그리고 확답을 주었다.

“그자가 소드마스터의 경지를 초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폐하.”

검에 있어서만큼은 가이덴이 곧 진리였다.

그가 아니라면 검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당장 라이오넬의 검을 염려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크루젠이 일격에 무너졌다는 사실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하면 라이오넬이 지닌 정령력이 그 정도로 엄청나다는 말이오? 동급의 후작을 일격에 무력화시킬 만큼?”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겁니다. 후작이 일격에 무너진 주된 원인은 그자의 정령력 이전에 후작 본인에게 있으니 말이지요.”

그래도 이 또한 가이덴이 일정 부분 해답을 제시해 주었다.

“후작의 집중력이 문제였을 겁니다. 마지막 일격을 받는 과정에서 이상하리만치 흔들리던 것으로 보였는데, 내 말이 틀렸나, 후작?”

“……말씀을 듣고 보니 그랬던 듯합니다. 그때는 어떻게든 흐름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대결 자체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쯧쯧, 자네답지 않은 실수를 저질렀어. 결투에서 산만함은 곧 죽음이라는 걸 모를 리 없는 사람이.”

흔들린 크루젠의 집중력이 주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가이덴의 진단이었으며, 크루젠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고 있었다.

이로써 완패의 이유 중 일부를 확보한 셈이었다.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이기는 한데, 어찌 됐든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군.”

단, 일부는 어디까지나 일부일 뿐, 전부가 될 수 없었다.

또, 진짜 중요한 것은 지금 확보한 일부를 빼고 남은 나머지였다.

애초에 이 나머지를 확보하고자 벌인 일이었으니 말이다.

“혹시 정령력은? 정령력에 관해서도 공작의 눈에 잡힌 바가 있소?”

“신의 눈에는 딱히 없었습니다. 역시나 검술 이외의 부분은 애매하더군요.”

아쉽게도 가이덴의 눈은 여기까지였다.

이제 남은 것은 아이단이 배치한 마지막 대리인뿐이었다.

“에르나르 백작은 어땠소? 백작의 빛이라면 그래도 뭔가 잡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래도 이 마지막 대리인에게는 기대를 걸어 볼 만했다.

모든 불투명한 것들을 환하게 밝혀 주는 빛.

그런 빛을 보유한 크로아티 에르나르였다.

아이단은 그라면 충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했다.

“죄송합니다, 폐하. 신 또한 따로 얻은 바가 없습니다.”

하나, 그런 아이단의 기대는 배신당했다.

크로아티가 건네 온 답변은 그의 기대와 거리가 멀었다.

가능성은 그저 가능성에서 그친 것이다.

“그자의 어둠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대결 중에도 틈이 전혀 보이지 않았는지라…….”

“아무것도?”

“예……, 그렇습니다.”

크로아티의 이번 임무는 틈을 파고드는 것이었다.

대결 중 발생하는 틈을 파고들어 라이오넬의 어둠이 지닌 진면목을 밝히는 것.

실패했던 즉위식 당일의 시도를 발판삼아 마련한 대안이었다.

결국, 이 또한 대차게 실패하고 말았지만.

“하, 이거야 원. 결과적으로 얻은 바가 전무하다는 거군. 대륙이 들썩일 만큼의 자원을 투입하고도 말이야.”

아이단이 황제의 이름으로 개최한 경연이었다.

심지어 경연의 참가자는 각국의 보물들인 소드마스터.

불러 놓고 입 싹 씻을 수야 없는 노릇이었다.

그에 걸맞은 보상이 당연히 뒤따라야 했다.

하여 각국의 경연 참가자들에게 승패에 상관없이 20만 골드씩을 하사했다.

평범한 왕국의 1년 치 예산이 170만 골드가량임을 고려하면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셈.

그럼에도 실패했다.

더욱이 돈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했다.

진짜 대단한 것은 이번 경연에 투입된 인적 자원들이었다.

대륙을 들썩인다는 아이단의 표현은 절대 과장이 아니었다.

가이덴을 비롯하여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실력자들과 경연에 참여한 제국 소드마스터들.

이들이면 왕국 너덧 개쯤은 가볍게 들어 엎고도 남았다.

그만큼 엄청난 전력이었다.

그럼에도 본연의 목적 달성에는 실패했다.

아이단으로서는 기가 차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

아이단의 헛웃음이 마지막이었다.

기가 찬다는 그의 헛웃음을 마지막으로 황제 집무실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정령력을 섭취한 소드마스터들은 물론이고 그랜드 소드마스터조차 깰 수 없는 그런 침묵이.

현재 대륙에서 가장 무거운 침묵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숨 막히다 못해 질식해 죽을 것만 같은 정적이 이어졌다.

“하아…….”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정확하지는 않으나 최소 1분 이상은 흐른 뒤였다.

그제야 질식할 것만 같던 정적이 깨져 나갔다.

아이단의 깊은 한숨, 그리고 이어진 질문과 함께.

“그래서, 지금 라이오넬은?”

“셀레스티나 1왕녀와 함께 왕국으로의 복귀를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정적 사태를 만들어 낸 주범(?)에 관한 질문이었다.

이에 함께 자리하고 있던 카일 이반이 즉각적인 답변을 건네 왔다.

“향후 라이오넬의 외부활동 일정은?”

“따로 계획된 바는 없다고 합니다. 지난 5년간 쉬지 않고 카르가디아 산맥을 돌아다닌 만큼, 당분간은 이베리아 영지에 칩거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한동안 이대로 두고만 봐야 한다는 거군.”

“…….”

안타깝게도 그것이 아이단의 마음에 드는 답변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잠시 끊겼던 침묵이 다시금 내려앉았고 말이다.

* * *

“넌 여기서 돌아가, 카오.”

“카오오!”

돌아가라는 지시에 고개를 젓는 카오였다.

“여기까지 온 것만도 너로서는 최선을 다한 거잖아. 그러니까 아쉬워할 거 없어.”

그러나 카오에게는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녀석으로서는 이 이상 올라갈 수 없었다.

당장만 해도 얼어붙은 깃털로 인해 날갯짓조차 제대로 못 하는 실정이었으니까.

“카오오…….”

결국, 똘똘한 카오도 인정했다.

여기서부터 자신은 나에게 짐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러고는 내 지시를 받아들였다.

내 몸에 부리를 비벼 오는 녀석이었다.

“그래, 그래. 금방 다녀올 테니, 카르가디아 산맥에서 기다리고 있어.”

레나를 슈라우드 왕궁까지 무사히 복귀시킨 뒤였다.

야음을 틈타 카오를 타고 날아올랐다.

그리고 이동에 이동을 거듭했다.

황도에서 얻은 숙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이번에는 혹시 몰라 황도에 들고 가지 않았던 심연까지 챙겨서 말이다.

그리하여 현재는 첫 번째 숙제 지역으로의 입장을 앞둔 상태였다.

“그럼, 다녀오마.”

“카오오오~!”

그렇게 카오의 배웅을 받으며 이제는 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인간의 거주를 불허하는 그곳, 사시사철 눈보라와 칼바람이 몰아치는 극한의 동토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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