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장: 경연
슈아악~!
콰광! 콰과광!
“큽……!”
흐름은 다소 굳혀진 상태였다.
쉬지 않고 강검을 휘두르는 브루노 다스가 공세를 놓치지 않는 쪽으로.
반면, 앙기리스 왕국의 마즈리얼 포우 후작은 수세에 몰렸고 말이다.
물론, 지금 당장 승부가 가려지지는 않을 것이다.
명색이 소드마스터끼리의 대결이었으니까.
이대로 놔두면 한쪽의 힘이 다 떨어질 때까지 대결은 계속될 터.
아무리 오러 블레이드끼리의 충돌이 막대한 힘을 소모시킨다지만, 그래도 한 시간 이상은 더 걸릴 것이 분명했다.
대결 시작으로부터 벌써 한 시간은 족히 흐른 시점이었다.
소드마스터끼리의 대결이 정말 진귀하고 화려한 볼거리이기는 해도, 관객 입장에서는 슬슬 지루해질 타이밍인 것이다.
더구나 이 지루함을 가속화하는 요소까지 존재했다.
우선 반복성이었다.
황제 즉위식을 기념하며 개최된 경연은 벌써 마지막 날인 3일째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첫째 날과 둘째 날 각각 두 건씩 총 네 건의 대결이 펼쳐진 참이었다.
전부 소드마스터끼리의 대결임은 두말할 필요 없었고 말이다.
즉, 이 대결이 다섯 번째였다.
아무리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광경이라 해도, 이쯤 되면 다소 지루해지는 것이 당연했다.
또, 기대감도 작용했다.
이 대결 다음 순서에 대한 기대감.
이번 경연의 하이라이트이자 클라이맥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적과도 같은 업적의 주인공이 출전하는 대결이었다.
더불어 그 주인공은 대륙 최연소 소드마스터이기까지 했다.
바로 라이오넬 라인하트, 나의 대결이 다음 순서이자 경연의 마지막 순서로 잡혀 있는 것이다.
기대감이 부풀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조건이었다.
자연스레 이번 대결에 대한 흥미도 비교적 빠르게 식을 수밖에 없었다.
콰쾅! 콰과광!!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결을 막무가내로 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소드마스터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당사자들 간에 확실히 승부가 갈리지 않는 한 누구도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그럴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 한 명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만.”
지금 막 그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그 입으로부터 작게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경연장 전체로 퍼져 나갔다.
뚝.
동시에 그 내용에 걸맞은 결과를 도출해 냈다.
한쪽이 완전히 나가떨어지기 전에는 절대 끊기지 않을 듯하던 검격의 교환이었다.
그런 것이 일거에 뚝 하고 중단된 것이다.
“좋은 대결이었습니다.”
단순한 중단이 아니었다.
아예 대결 자체가 종결돼 버렸다.
그러자 먼저 인사를 건네는 브루노였다.
사실상 승자로서 건네는 인사라고 봐도 좋았다.
“후우…….”
이에 반대 입장인 마즈리얼 포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승부였소.”
그러나 이것이 직접적인 이의 제기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대륙을 통틀어 유일한 자격을 갖춘 인물의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가이덴 드라이슬러.
무려 그랜드 소드마스터의 판단인 것이다.
나조차 가늠이 어려운 인물이었다.
정령력이 파악한 이 사내의 깊이는 그 정도로 깊었다.
그의 전부를 들여다본 것이 맞는지조차 확신이 들지 않았다.
가이덴에게는 따로 정령력이 느껴지지 않음에도 그러했다.
따라서 평범한 소드마스터의 수준으로는 이의 제기가 요원했다.
애초에 가이덴이 그런 건더기를 제공할 리도 만무했고 말이다.
그렇게 대결은 여기서 완전히 마무리됐고, 두 사람이 무대를 내려왔다.
관객들이 지루함에 지치기 직전, 가장 알맞은 타이밍에.
덕분에 사실상의 메인 매치는 고조될 대로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막을 올릴 수 있었다.
저벅저벅.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내가 무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나에게로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가볍다 볼 수 없는 시선들이었다.
객석을 채운 이들이 지니는 무게감을 고려한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나하나가 대륙을 주도하는 이들의 시선이었으니까.
동시에 대부분 호기심을 한가득 품고 있는 시선이기도 했다.
“라이오넬 라인하트.”
물론 전혀 다른 의미의 시선도 포함돼 있었다.
개중 가장 선명한 것은 무대를 내려가던 브루노의 그것이었다.
무대 밑에서 교차하는 순간, 씹듯이 내 이름을 읊조리는 브루노였다.
나를 향한 적개심으로 가득 찬 시선과 함께.
그런 것들이 나에게로 여과 없이 전달됐다.
원체 뜨겁다 보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오랜만입니다.”
“기다려라. 네 차례도 멀지 않았으니.”
동시에 자신감도 전해졌다.
나와 해볼 만하다는 그런 자신감.
나름의 근거를 갖춘 자신감이기도 했다.
비록 방금 대결에서는 일절 사용하지 않았지만,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내부에서 꿈틀대는 대지의 기운을.
정령석을 섭취한 것이다.
“얼마든지.”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는 내 관심을 오래 붙잡아 두지 못했다.
잠깐 힐끗하고 마는 수준이 다였다.
정령석을 섭취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브루노의 깊이는 명확했다.
그리고 그 깊이로는 나에게 도달할 수 없었다.
저벅저벅.
하여 완전히 신경을 껐다.
그렇게 무대 위에 올라섰다.
그러고는 브루노와 달리 온전히 내 관심을 잡아끄는 시선들에 집중했다.
나를 샅샅이 파헤치려 드는 시선들 말이다.
황제와 가이덴의 것이 있었다.
애초에 이 자리 자체를 꾸민 이가 황제였다.
그런 그의 시선이 나를 꿰뚫으려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다만, 황제 본인에게는 실제로 나를 꿰뚫을 능력이 전무했다.
하여 가이덴이 그를 대신했다.
황제를 대신하여 대륙 최강자의 눈이 나를 조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황제의 옆에는 또 다른 대리자가 존재했다.
이 대리자의 시선 또한 앞의 두 사람 못지않게 내 관심을 잡아끌었다.
아니, 현 상황만 놓고 따지면 오히려 두 사람 이상이었다.
그의 정체, 그리고 그가 지닌 특별함 때문이었다.
‘제국의 광휘.’
크로아티 에르나르.
별칭 제국의 광휘.
머지않아 대륙에 광휘를 흩뿌리고 다닐 존재였다.
제국에게는 찬란한, 반면 제국의 적에게는 암담하기 짝이 없는 지옥의 광휘를 말이다.
물론 이전 생의 나는 이자와 직접 마주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얼굴을 직접 보는 것 또한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즉위식 당일,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나는 이자의 정체를 깨달았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마주하는 순간부터 내 안의 어둠이 요동쳤기 때문이다.
자신의 완벽한 대척점을 향해.
“흠, 이거 반갑다고 해야 하려나?”
비단 장외만이 아니었다.
나를 파헤치려는 자는 장내, 정확히는 무대 위 내 바로 맞은편에도 존재했다.
“반가울 만한 사이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후작 각하?”
“그런가? 그렇다면 좀 아쉽군. 나로서는 무성한 소문의 주인공과 마주하게 된 셈인데 말이야.”
“마주하기만 하는 거라면 몰라도, 아예 해부하려 드시니 말입니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반가울 수가 없지요.”
오늘 나의 상대가 될 크루젠 벤투스 후작이었다.
장외의 대리자들이 눈이라면, 장내의 크루젠은 손이었다.
황제의 손을 대신하여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하면 차라리 얌전히 해부당하는 것은 어떻겠나? 어쩌면 반가운 사이가 될지도 모르는데.”
“글쎄요, 그럴 거였다면 처음부터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터라.”
“힘을 숨겨 둔 채로 적당히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만약 그런 생각이라면 얼른 접게. 자네가 모든 힘을 드러내기 전에는 끝나지 않아. 감히 폐하를 능멸할 작정이 아니라면 말이야.”
크루젠이 권유했다.
쓸데없이 저항하지 말고 처음부터 모든 힘을 드러내라고.
여기서 그가 말하는 모든 힘이 지칭하는 바는 명확했다.
유형화된 어둠이었다.
내가 이베리아 평원 대결전에서 발휘했던, 기적을 만들어 냈던 바로 그 힘 말이다.
그리고 경고했다.
그 힘을 드러내기 전에는 이 대결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러면서 눈짓으로 슬쩍 황제와 가이덴 쪽을 가리키는 크루젠이었다.
조금 전과 같은 결과는 절대 도출되지 않으리라는 의미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가이덴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경연의 이전 순서들처럼 대결이 중단되는 일은 없을 터였다.
동시에 황제의 이름이 걸려 있는 대결이기도 했다.
적당히 시간만 끌다가 항복을 선언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랬다가는 황제를 능멸하는 꼴이 될 테니까.
“당연히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저 역시 끝을 볼 작정입니다. 아예 시작을 않았으면 몰라도, 시작한 이상 끝은 봐야 하는 성격인지라.”
하나, 권유나 경고 따위는 필요 없었다.
나 또한 대충 넘어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확실한 결과를 도출해 낼 작정이었다.
“……내가 한참 얕잡힌 모양이군. 그런 광오한 소리나 늘어놓는 것을 보면.”
그리고 이 작정이 의미하는 바 역시 명료했다.
자신 있다는 뜻이었다.
크루젠쯤은 밑바닥을 드러내지 않고도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이.
“설마 나를 일반적인 소드마스터라 여길 만큼 멍청하지는 않을 테고. 아니면 나이 어린 치기 같은 것이라고 봐야 하려나?”
물론 알고 있었다.
크루젠은 평범한 소드마스터가 아니었다.
나처럼 정령력을 지닌 소드마스터였다.
비단 이 자리에서 지금 막 알게 된 것도 아니었다.
크로아티와 마찬가지로 즉위식 당일부터 알게 된 사실이었다.
비록 당시는 내 상대라는 것을 몰랐기에 세세히 뜯어 보지 못했지만, 어쨌든.
추가적으로 크루젠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도 확보해 두었다.
사흘 전 제국이 내 상대를 통지해 온 때부터 레나가 발 벗고 나선 것이다.
덕분에 크루젠에 대해서는 파악을 마친 상태였다.
따라서 내가 그를 실수로 과소평가할 여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있는 대로, 정령력이 감지하는 그대로 그를 평가할 뿐이었다.
이러한 평가의 결과가 그를 향한 나의 가벼운 미소로 드러나는 중이었고 말이다.
“하긴, 뭐가 됐든 상관없겠지. 대신 이거 하나만 명심하게. 광오함에는 늘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크루젠이 이 미소의 뜻을 모를 리 없었다.
그는 단번에 알아챘다.
그러고는 곧장 힘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탐색전 같은 것은 거치지 않을 모양이었다.
시작하기도 전부터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드는 그였다.
그것은 화염이었다.
크루젠의 검 위로 활활 타오르는 시뻘건 화염.
그가 섭취한 정령석은 불의 정령석인 것이다.
그렇게 정령력의 불꽃이 나를 향해 그 뜨거운 혀를 날름거리기 시작했다.
구우우웅~!
크루젠은 단순히 꺼내 들기만 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것을 강화해 나갔다.
타오르는 불꽃의 온도를 한껏 끌어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일종의 풀무질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단, 일반적인 풀무질과는 그 궤를 완전히 달리했다.
무려 오러로 가하는 풀무질이었으니까.
화르르르륵~!
그러자 타오르는 불꽃 또한 이에 맞춰 그 외양을 달리해 갔다.
시뻘겋게 타오르던 불꽃이었다.
한데, 그것의 색상에 변화가 나타났다.
오러의 풀무질에 따라 그 색이 주황으로 변한 것이다.
변화는 여기서 마무리되지 않았다.
풀무질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불꽃 또한 다시 한번 그 색을 달리했다.
화아아아아~!
노랑이었다.
시뻘겋던 불꽃은 이제 노랗게 타오르는 화염이 되어 그 위용을 뽐내는 중이었다.
이제는 후끈하다 못해 견디기 어려울 만큼 뜨거워진 주변의 온도와 함께.
크루젠의 대결 준비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네. 필요하다면 시간을 줄 테니, 자네도 힘을 꺼내 드는 게 어떻겠나?”
그러고는 다시 한번 권유를 건네 왔다.
지금이라도 어둠을 발현시키라는 권유 말이다.
어찌 보면 협박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타오르는 화염과 함께 건네 오는 권유라면 충분히 그리 여겨질 만했다.
동시에 무지막지한 강제력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대륙 전체를 통틀어 이 강제력을 뿌리칠 수 있는 존재는 채 다섯이 되지 않을 터.
“글쎄요.”
하나, 채 다섯이 안 되는 그 존재 중 하나가 바로 지금 여기에 서 있었다.
그리고 미소 짓고 있었다.
타오르는 화염을 접하기 직전보다 더 짙은 미소를.
“각하 말씀대로 제가 아직 어리긴 어린 모양입니다. 불꽃놀이 정도는 전혀 겁나지 않는 것을 보면.”
“건방진……!”
이에 완전히 표정을 굳힌 크루젠.
때마침 진행자로부터 신호가 떨어졌다.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리하여.
화아아악~!
콰과광!!!
일주일간 이어진 황제 즉위식의 하이라이트가 막을 올렸다.
경연장 전체를 뜨겁게 달구는 화끈한 불꽃놀이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