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96화 (97/200)

55장: 즉위식과 숙제

“에릭스 경은 정말 괜찮다고 하던가요?”

“예, 왕녀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에릭스 경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차분히 깨달음을 정리할 시간이니까요.”

“알겠어요. 그럼 얘기한 대로 공표는 뒤로 미룰게요. 지금부터 적절한 시기를 재 봐야겠네요.”

에일린의 결혼식 다음 날, 나는 카오를 타고 왕도로 향했다.

정확히는 레나를 대표로 하는 황제 즉위식 축하 사절단 행렬을 향해서였다.

사절단은 이미 왕도에서 출발한 상황.

하여 내가 사절단에 합류한 위치는 왕도 인근의 가도 위였다.

그렇게 가도 위 마차 안에서 레나와 5년 만에 재회의 시간을 가지는 중인 것이다.

물론 그간 마법 통신을 통해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기는 했다.

하지만 직접 얼굴을 마주한 채 이야기하는 것은 또 달랐다.

그렇기에 그리핀 군단 이야기부터 시작해 카르가디아 산맥 안에서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 왕궁과 이베리아 영지 소식 등 여러 주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가 오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방금은 에릭스에 관한 주제가 언급된 참이었다.

에릭스의 경지에 관해서는 당분간 공표를 미루기로 했다.

소드마스터라는 사실이 공표되면 여러모로 시끄러워질 것이 자명했다.

반면 현재 에릭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깨달음을 정리할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여 에릭스 본인이 요청한 사항이었다.

그리고 레나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레나와 입장에서도 나쁠 것은 없었다.

가장 필요한 순간,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터뜨린다면 그만큼 효과가 극대화될 테니 말이다.

“그보다 결혼식은 잘 보고 왔나요? 에일린 양은 어땠어요?”

화제는 다시 한번 전환되었다.

이번에는 에일린과 다이너의 결혼식에 관한 것이었다.

당연히 이 또한 할 얘기가 넘쳐났다.

“잘 보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 드리기 조금 민망하지만 제 동생, 참 예쁘더군요. 돌아가신 어머님을 닮아 예쁘장한 건 알았지만,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은 진짜 천사가 내려온 줄…….”

다만, 자칫 팔불출 되기에 십상인 주제이기도 했다.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레나가 그 증거였다.

이에 얼른 정신줄을 붙잡았다.

“흠흠, 어쨌든 오랜만에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부럽지는 않던가요?”

그러자 레나가 곧장 이어지는 질문을 던져 왔다.

“글쎄요, 딱히 그런 쪽으로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던지라.”

“그래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사랑과 축복으로 가득한 가정을 이룬 거잖아요.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많이 부러웠을 것 같은데…….”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된 질문이었다.

나와 레나의 현 상황을 기반으로 한 여러 가지 의미 말이다.

아마도 나에 대한 그녀의 미안함이 주가 되어 있을 터였다.

“제가 그런 쪽으로 무관심해서 그런지, 정말로 부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었다.

어차피 전생에도 연애나 결혼 같은 것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나였다.

이번 생이라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었다.

오히려 더 담을 쌓고 살게 될지도 몰랐다.

내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내 사람들을 챙기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쁜 것이다.

“아, 대신 다이너 녀석이 더 꼴 보기 싫어진다는 생각은 많이 들었습니다. 산적보다 더 산적 같은 녀석이 천사 같은 제 동생을 훔쳐간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요.”

“……항상 미안하고 또 고마운 마음뿐이에요, 진심으로.”

다만, 레나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 리 만무했다.

하여 레나는 나에게 부채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라이.”

“예, 왕녀님.”

“혹시 그런 건 아니겠죠? 따로 마음에 품은 여자가 있는데 저 때문에 일부러 숨기고 있다거나, 아니면 아예 남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다든가 하는…….”

그래서인지 구태여 확인 작업까지 거치는 그녀였다.

그것도 아주 조심스럽게.

“남다른 취향이라니요?”

“으음, 그러니까 그게 혹시 여자가 아닌 쪽에 관심이 더 많다든지 하는 뭐 그런…….”

“……아닙니다. 전자도 아니지만, 후자는 특히나 절대! 절대로 아닙니다. 전 절대적으로 평범한 취향입니다, 왕녀님.”

“역시 그런 거죠? 정말 다행이에요.”

그렇게 조심스러운 확인 작업까지 거친 뒤에야 레나는 안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시에 입가에 환한 미소를 걸고 있는 그녀였다.

오늘 보인 것 중 가장 환한 미소였다.

“그렇게 다행이라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 꽤 짙게 의심을 하고 계셨다는…….”

“아니요, 저도 절대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혹시나 해서, 만의 하나를 생각해서 여쭤본 거랍니다.”

“그러니까, 그 만의 하나라는 것 자체가…….”

“그건 그렇고, 라이. 라이도 짐작하고 있겠죠?”

그러고는 재차 화제 전환을 시도했다.

상당히 부자연스럽게 말이다.

“이번 경연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서.”

“……예, 짐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따지고 들 수는 없었다.

주군이 적당히 넘어가고자 하는 일이었다.

신하 된 입장에서 더 따지고 들기는 애매했다.

무엇보다 이어지는 주제 자체가 중요한 내용이기도 했다.

논의가 필요한 사안인 것이다.

경연의 표면적인 방식과 목적은 간단했다.

대륙 각국의 이름난 실력자들을 초청하여 로만 제국의 실력자와 자웅을 겨루게 하는 것.

이것이 경연의 방식이었다.

물론 그 실력자란 최소 소드마스터 이상이고 말이다.

목적 역시 명료했다.

황제 즉위식과 같은 대륙 차원의 행사를 기념 및 축하하는 것.

이렇듯 방식과 목적 모두 간단명료했으며, 그만큼 명분 또한 확실했다.

따라서 정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초청에 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경연의 진정한 의미는 고작 기념이나 축하 따위에 머물지 않았다.

간단하기는커녕 정치·군사적 목적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제국의 패권과 대륙 경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을 미리 판별하고 파악해 두고자 하는 것이다.

자연스레 그 대상은 각국의 소드마스터 급 이상 실력자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 국가의 보물이자 전략 자산으로 평가받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제국 입장에서도 아무 때나 아무렇게 꺼내 들 수 있는 카드가 아니었다.

황제 즉위식처럼 각국이 거절할 수 없는 확실한 명분이 필요했다.

그런 만큼 한번 개최할 때마다 확실하게 본전을 뽑아 가는 제국이었다.

“제가 제1 타깃이라고 봐야겠지요.”

그리고 그런 제국의 눈이 나를 향해 쏠려 있었다.

이번 경연의 목적은 사실상 나를 파악하는 데에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간 내가 써 내려온 이력들이 이 점을 뒷받침했다.

우선 나는 대륙 최연소 소드마스터였다.

내가 소드마스터임이 밝혀진 지 벌써 5년 넘게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러했다.

25살이라는 나이조차도 소드마스터에 도달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린 나이인 것이다.

동시에 정체불명의 힘까지 지니고 있었다.

5년 전 이베리아 영지에서 선보인 어둠의 힘, 소드마스터 둘과 6서클 대마법사 하나를 동시에 찍어 누른 바로 그 힘 말이다.

물론 정령력에 기인한 힘이라는 것 정도는 제국도 짐작하고 있을 터였다.

하나, 정확히 어떤 힘을 지니고 있으며, 얼마만큼의 파괴력을 발휘하는지 등은 알지 못했다.

알려야 알 수가 없었다.

지금껏 대륙에 등장한 적 없는 종류의 정령력이었으니까.

하여 이 힘을 최우선적으로 파악하려 들 것이 분명했다.

비단 힘을 지녔다는 사실만이 다가 아니었다.

이 힘을 바탕으로 벌써 몇 번이나 기적을 써낸 상태였다.

이베리아 영지에서의 일은 제국이 직접 겪었으니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지난 5년간 카르가디아 산맥을 휩쓴 일도 그 못지않았다.

비단 소드마스터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업적이었다.

무려 5년이라는 장기 주둔, 거기다 산맥 자체를 휩쓸어 버린 업적은 기적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더구나 이 힘이 벌써 두 차례나 아이단 황제와 제국을 향해 쓰인 참이었다.

황도 아카데미에서 한번, 이베리아 영지에서 한번.

그리고 제국은 이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맞아요. 라이가 더 잘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해요. 제국에서는 분명 라이 상대로 만만치 않은 실력자를 내보낼 테니까.”

제국은 나를 분석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나 이상 혹은 최소 나에 버금간다고 판단되는 실력자를 내놓을 터였다.

그래야 내 밑바닥까지 긁어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미 브루노 다스라는 실패한 선례까지 존재하는 이상 당연한 부분이었다.

“문제는 제국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는 거예요. 현재 우리가 지닌 정보만으로는 라이 경의 상대가 될 만한 실력자를 추려 내기 어려워요. 분명 정령석 섭취자가 나올 텐데, 누가 뭘 섭취했는지 알 도리가 없으니…….”

제국의 소드마스터 급 이상 실력자는 대외적으로 공개된 숫자만 16명에 달했다.

제국이 숨겨 두었을 전력은 차치하더라도 이 적잖은 숫자 내에서 추려 내야만 했다.

물론 제국 각지에 사령관으로 퍼져 있는 이들을 제외한다면 숫자는 대폭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기에 정령석이라는 변수가 추가됨으로써 계산은 한층 더 복잡해졌다.

뭘 먹었는지는커녕 누가 먹었는지조차 추론이 불가했기 때문이다.

제국은 이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었다.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건 대략적인 짐작뿐이에요. 검술 실력 면에서 라이에게 밀리지 않도록 숙련된 소드마스터가 나오리라는 점. 더불어 정령석 섭취자이되, 그 기간이 오래됐거나, 혹은 라이처럼 아주 특별한 정령석 섭취자가 나오리라는 점 정도요.”

“혹시 그 모든 조건을 무시할 만큼 압도적인 실력자가 나올 가능성은 없겠습니까?”

“가이덴 드라이슬러 공작이요?”

리스트는 꼭 소드마스터로만 한정되지 않았다.

제국은 그 상위의 존재를 보유하고 있었다.

“예. 그랜드 소드마스터인 그보다 확실한 카드는 또 없으니 말입니다.”

그가 나온다면 제국 입장에서 목적 달성이 더할 나위 없이 수월할 터였다.

그 사람 앞에서 여유 따위를 남겨 둘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젖먹던 힘까지 끌어 올린다 해도 버틸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했으니까.

따라서 가이덴 드라이슬러 공작보다 확실한 카드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요, 그는 나오지 않아요.”

하나, 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단정적으로 가능성 자체를 부인하는 그녀였다.

“형평성에 문제가 있어요. 누군 그랜드 소드마스터와 대결하고 누군 일반 소드마스터와 대결한다고 하면 불만이 제기될 수밖에 없죠.”

무려 그랜드 소드마스터와의 대련이었다.

검사라면 누구라도 바라마지 않을 기회인 것이다.

소드마스터라고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소드마스터이기에 더했다.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봐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소중한 기회였다.

그런 것을 특정 국가에만 제공한다면 불만이 생기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또, 제국이 남 좋을 일을 할 리가 없기도 하고요. 그랜드 소드마스터와의 대결 기회를 타국 실력자들에게 나눠 줄 리 만무하죠.”

무엇보다 제국은 자선단체가 아니었다.

애초에 제국의 걸림돌이 될 요소들을 파악하기 위해 마련하는 자리였다.

이런 자리에서 걸림돌에게 오히려 성장의 거름을 제공한다?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가정이었다.

아예 가능성 자체가 없다고 봐도 좋았다.

“역시 그렇군요.”

당연히 나 역시 짐작하는 부분이었다.

단지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랜드 소드마스터와의 대련은 나에게도 기연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설령 내 밑바닥까지 전부 들통난다 해도 꼭 한번 잡았으면 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어찌 됐든 중요한 건 제국이 라이를 심각하게 벼르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이번 기회에 아예 골수까지 해부하려 들 게 뻔해요. 괜찮겠어요, 라이?”

“어떤 자가 제 상대로 배정될지 모른다 해도, 이거 하나는 확실합니다.”

꼭 잡았으면 하는 기회는 가능성 자체가 제로였다.

그렇다면 한 가지는 장담할 수 있었다.

“황제는 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겁니다. 그 누구를 내보낸다 해도.”

그랜드 소드마스터가 아닌 이상 나에 대한 간파는 불가했다.

누가 내 상대로 나선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카르가디아 산맥에서 보낸 지난 5년.

이 5년이라는 시간이 그리 만들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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