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장: 외침을 따르는 이들
어둠은 나를 집어삼키려 했다.
나에 대한 잠식을 기반으로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려는 것이다.
반대로 나는 어둠을 컨트롤하고자 했다.
유형화된 녀석을 통제하여 내 의지에 따라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먹으려는 것과 먹히지 않으려는 자, 통제하려는 자와 통제받지 않으려는 것의 사투가 펼쳐졌다.
‘크읍!!!’
어둠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로 나를 공격해 왔다.
근원적 공포, 좌절, 실망, 체념, 낙망, 낙담, 절망, 비관, 불안 등등.
회귀를 거친 나조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종류가 상당수였다.
또, 이미 수차례 겪어 본 감정 역시도 그 깊이에 있어 차원이 달랐다.
사실상 지금껏 경험해 본 적 없는 것들이라 해도 무방했다.
따라서 관건은 정신력이었다.
어둠은 이 무지막지한 감정들로 내 자아를 갉아먹으려 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미친 듯이 때리고 흔들며 휘젓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 공격을 굳건한 정신력으로 버텨 내야 했다.
녀석에게 가하는 반격의 근원 역시 강력한 의지에 있었다.
물론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처음 겪어 보는 무시무시한 감정의 격랑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나 혼자였다면 버티는 것도 아슬아슬한 형국이 펼쳐졌을 것이다.
유형화 직후 나를 완전히 뒤덮어 외부와 차단시킨 것이 그 방증이었다.
웅웅웅~
하나,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동료가 존재했다.
지금 이 순간, 오른손에 꽉 쥐어진 채 열심히 울어 대는 ‘심연’이라는 이름의 동료가.
콰아아아~!
웅웅웅웅~
정확히는 우는 것이 아니었다.
공명하는 것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고 맹렬하게.
지금 녀석이 미쳐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탄생 후 처음 먹어 보는 초고순도의 어둠과 그 어둠이 선사하는 맛의 황홀함에.
하여 한 입이라도 더 삼키고자 게걸스레 입을 벌려 대는 중인 것이다.
나는 그런 녀석의 입에 터져 나온 어둠을 최대한 밀어 넣어 주는 중이었고 말이다.
당연히 어둠은 이를 거부했다.
터져 나온 어둠의 근원은 결국 나였기 때문이다.
나를 잡아먹어야만 이 사투가 녀석의 승리로 끝나게 될 터.
하여 어둠은 오로지 나를 향해 달려들 뿐이었다.
처음에는 이 저돌적인 달려듦에 분명 당황했었다.
그러나 국면은 점차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환되어 갔다.
나는 점점 어둠의 공격에 익숙해졌고, 심연은 점점 더 게걸스러워졌다.
이것이 시너지효과를 발휘했다.
그리하여 심연의 입에 넣어 주는 어둠의 양을 조금씩 늘려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 이르자 효과가 폭발했다.
조금씩 떼어 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뭉텅이로 밀어 넣어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두 가지 외적인 현상이 그 증거로서 도출되고 있었다.
하나는 차단됐던 시야의 회복.
나를 완전히 뒤덮었던 어둠을 일부나마 걷어 내는 데 성공했다.
아직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시야를 회복했다는 사실은 의미가 컸다.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두 명의 소드마스터와 한 명의 6서클 마법사를.
“라이오넬 라인하트, 네놈 대체……?”
동시에 어떤 현상에 당황한 이들의 모습 역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바로 두 번째 증거, 어둠의 정형화 현상이었다.
어둠이 정형화되어 가고 있었다.
심연 위에서, 마치 하늘을 지탱하는 듯 거대한 기둥의 모양으로.
고오오오오~!
누구라도 알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기현상의 주체라는 사실을.
동시에 이것으로 무언가 엄청난 일을 벌이려 한다는 점 역시도.
나아가 그 일의 대상이 누가 될 것인지까지.
이쯤 되면 모르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 대상이 될 인물들이라면 더더욱.
지이잉!
파앗!!
우우웅~
그 인물들이 일제히 대응에 나섰다.
두 소드마스터는 오러 블레이드와 함께 짓쳐 들었고, 6서클 마법사는 캐스팅 속도를 높였다.
모두가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심연 위에 형성된 이 기둥, 그냥 떨어지게 놔두면 대형사고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힘의 근원인 나조차도 두려움에 떨게 한 어둠이었다.
이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불길함과 음습함을 저들이라고 느끼지 못할 리 만무했다.
고오오.
다만, 문제가 있었다.
대응에 나선 세 사람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였다.
바로 그들이 늦었다는 사실.
슈아악~
나는 이미 심연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평소의 내 검격과 다를 바 없는 속도로.
어둠 자체가 무게를 지닌 것은 아니었다.
검속이 느려질 어떠한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쿠우우우우~!
자연스레 그 위에 형성된 기둥 또한 떨어져 내리는 중이었다.
심연과 같은 속도로.
당연히 짓쳐 드는 그들보다 내 검이 더 빠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나에게 다다르지 못했다.
먼저 어둠을 맞이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그대로 유형화된 어둠이었다.
그런 것이 셋 모두를 범위 안에 담았다.
짓쳐 들던 두 검사뿐 아니라, 다소 거리를 둔 채 캐스팅 중이던 마법사까지.
떨어져 내리던 중 유동적으로 형태를 변환한 것이다.
그러고는 덮쳤다.
범위 안의 모두를 완전히 집어삼킬 기세로.
쿠구구구구구궁~!!!!
물론, 당장 기세만큼의 결과를 도출해 낸 것은 아니었다.
어둠은 완전히 내려앉지 못하고 있었다.
목표물들의 머리 위에서 격렬한 힘 싸움을 벌여 가는 중이었다.
내 이해와 숙련도가 부족하기도 할뿐더러, 목표물들 자체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크읍!”
“흐읍!”
“커헉!! 쿨럭, 쿨럭!”
대신 효과는 분명히 내고 있었다.
일단 셋을 확실히 묶어 두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과라고 봐야 했다.
무려 소드마스터 둘과 6서클 대마법사 하나였다.
이들을 일거에 움직이지 못하도록 찍어 누르는 것이다.
기적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한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효과를 한 가지 더 도출해 내고 있었다.
바로 마법사의 반응.
그의 반응은 두 소드마스터들과 확연히 달랐다.
그는 눈에 띄게 버거워하는 중이었다.
기침에 섞여 나오는 피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적잖은 내상을 입었으며, 그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지는 중인 것이다.
그와 대치 중인 어둠의 특성 때문이었다.
이 어둠, 심연 이상으로 탐욕스러웠다.
자신을 가로막은 이들의 힘을 게걸스럽게 탐냈다.
힘을 빼앗고자 쉴새 없이 때리고 흔들며 휘저어 댔다.
여기에 마법사가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마나 흐름이 불안정한 상태였다.
원래 하던 캐스팅을 급하게 취소한 것이 그 원인.
어둠은 이 틈을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그러고는 내부를 있는 대로 진탕 시켜 놓았다.
내구성이 약한 마법사로서는 속수무책인 것이다.
어둠을 가로막은 그의 실드가 눈에 띄게 출렁이는 광경 역시 그 방증이었다.
쿠구구구구구~!!
다만, 그 반대급부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나 또한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어둠은 여전히 나까지 집어삼키고자 하고 있었다.
이런 어둠을 통제하며, 실력자 셋을 동시에 찍어 누르는 일이었다.
버겁지 않을 리 만무했다.
더구나 이 버거움은 크기를 점점 더 불려 갔다.
정신력이 빠른 속도로 소모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이상은 어려웠다.
나 혼자 써 내려갈 수 있는 기적은 여기까지였다.
당장 이 대치국면조차 얼마나 더 이어갈 수 있을지 불확실했다.
이대로 대치국면이 깨졌을 때 도출될 결말의 비극이야 불 보듯 뻔했고 말이다.
그러므로 판을 뒤집어야 했다.
또 한 번의 기적이 절실한 시점인 것이다.
물론 내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나는 이미 한계에 봉착한 상태였으니까.
대신 다른 힘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내 힘이 아닌 다른 힘, 그러나 내 힘의 연장 선상이라고 볼 수도 있는 그런 힘.
지금이었다.
바로 지금이 이 힘을 불러일으킬 타이밍이었다.
그리하여 마지막 승부수를 던질 타이밍이었다.
해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외쳤다.
“잡아!!!”
* * *
“잡아!!!”
라이오넬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주어도 목적어도 생략된 정말 단출한 외침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필요 없었다.
다이너는 곧바로 깨달았다.
라이오넬의 외침이 가리키는 바를.
파앗!!
그리고 지체 없이 이에 따랐다.
바닥을 박차며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라이오넬이 가리킨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외침의 여운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말이다.
“마, 막아라!”
물론 이 목표를 향하는 길이 순탄치는 않았다.
순탄은커녕 가시밭길이 따로 없었다.
다이너와 목표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장벽 때문이었다.
바이젠의 병력으로 이루어진 인의 장벽.
슈슈슉~!
1차 장벽과 마주했다.
바이젠의 병사들, 그리고 그들이 내지르는 창이었다.
물론 이 자체로는 다이너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명색이 소드 익스퍼트 중급을 넘어선 다이너였다.
병사들의 단순한 창질로는 어림도 없었다.
생채기조차 과분했다.
단, 다이너가 그것을 방어한다는 전제하에.
다이너는 이를 막거나 피할 생각이 전무했다.
아무리 단순한 창질이라 해도 무방비로 맞는 것은 위험했다.
그럼에도 그는 검조차 들어 올리지 않았다.
계속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
두두두두~!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무모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하는 이들을.
“밀어붙여!”
“흐아압!”
“길을 열어라!!”
다이너에게는 동료들이 존재했다.
라이오넬의 외침을 따르는 동료들.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외침의 여운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일제히 바닥을 박찼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었다.
동시에 움직였다.
마치 하나의 생각을 공유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쾅! 쿠웅! 콰앙!
1차 장벽은 이들의 몫이었다.
다이너와 함께하는 슈라우드의 병사들.
이 동료들이 길을 열어 주었다.
방패를 앞세운 채 전속력으로 치닫더니 그대로 들이받아 버린 것이다.
온 몸을 던진 그들이었다.
오로지 뚫겠다는 일념으로, 뒷일은 생각지 않고 말이다.
파바밧.
그렇게 열린 길이었다.
다이너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놈들이 왕세자 저하를 노린다!”
“무조건 막아!!”
하지만 완전히 열린 것은 아니었다.
2차 장벽이 남아 있었다.
더구나 이는 1차 장벽과 비교할 수 없는 방어력을 자랑했다.
구웅~ 구우웅~
무려 오러로 이루어진 장벽이었기 때문이다.
바이젠의 기사들, 그리고 그들이 내뿜는 오러가 앞을 가로막았다.
앞선 병사들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깔끔하게 무시하고 넘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파편조차도 치명상을 유발할 수 있으니 말이다.
구우웅.
그렇기에 이번에는 다이너도 대응을 보였다.
오러를 끌어 올린 것이다.
슈아악~
“…….”
단, 끌어 올린 것이 다였다.
그를 향해 날아오는 검격에도 방어 자세는 취하지 않았다.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데 집중할 뿐이었다.
“우리도 뚫는다!!”
“열어! 무조건 열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1차 장벽 때와 마찬가지로 그를 대신해 줄 동료들이 존재했다.
다이너처럼 병사들이 뚫어 준 길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온 이들이었다.
동시에 라이오넬의 외침을 따르는 이들이기도 했다.
카캉! 콰창! 콰과광!!
슈라우드의 기사들.
이번에는 이들이 온몸을 던졌다.
오러의 장벽을 향해, 아무런 망설임 없이.
병사들이 열어 준 이 길, 기사들이 이어 가고자 하는 것이다.
죽음을 각오한 돌격으로.
스악~ 챙! 화악~ 차캉! 서걱~
다시 한번 그렇게 열린 길이었다.
사실 길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억지로 벌려 낸 작은 틈에 불과했으니까.
그마저도 오러의 파편이 난무하는,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한 작은 틈 말이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설령 길이 아니라 해도 상관없었다.
동료들이 목숨 걸고 만들어 준 마지막 기회였다.
막을 건 막고 내줄 건 내주면서, 온몸을 수놓는 혈선쯤은 가볍게 무시한 채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오로지 최종 목표만을 향해.
콰창~!
“가게, 다이너!”
그리하여 최종 목표를 유효 범위 안에 두게 되었을 때였다.
여기까지 함께 달려온 최후의 동료마저 자신의 몸을 던졌다.
디카프리의 부관인 스콧 보리스 남작.
그가 마지막 남은 왕세자의 호위기사들을 향해 짓쳐 든 것이다.
“잡아, 반드시!!”
덕분이었다.
스콧의 저돌적인 돌진 덕분에 호위기사들까지 뚫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최종 목표와의 거리를 7보 이내로 좁힐 수 있었다.
나아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 최종 목표, 바이젠의 왕세자 또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스아악~
물론, 아직 목표를 달성한 것은 아니었다.
최근접 호위기사가 남아 있었다.
그가 자신의 주군을 지키고자 검을 휘둘러 왔다.
왕세자를 사로잡기 위해서는 마지막으로 이자를, 이 공격을 넘어서야 했다.
카강!!
“크읍!”
그리고 이번만큼은 다이너도 무시하지 못했다.
더 이상 대신해 줄 동료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이너 홀로 해결해야 했다.
하여 직접 막을 수밖에 없었다.
“될 성싶더냐? 어림없다!”
당연히 돌격도 끊기고 말았다.
그사이 왕세자의 뒷걸음질은 계속 이어졌고 말이다.
그리하여 목표까지의 거리가 다시금 벌어지는 중이었다.
더구나 저돌적인 돌진에 잠시 흔들렸던 바이젠 군 또한 슬슬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상황이 점점 좋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래, 난 안 되겠지.”
씨익.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너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처음부터 내가 할 생각도 없었고.”
어차피 다이너의 역할은 처음부터 여기까지였다.
왕세자를 홀로 떨어뜨려 놓는 것.
마무리는 그의 몫이 아니었다.
“카오오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