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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83화 (84/200)

45장: 이적(2)

‘늦어.’

늦었다.

이대로면 나보다 화염구가 먼저 목표 지점에 도달할 터였다.

하필이면 내가 있던 곳과 정반대 지점인지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로 인한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일 것이 분명했다.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화염구, 최소 6서클이다.

그렇지 않고야 저런 재앙 수준의 파괴력을 지닐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즉, 바이젠 측에 6서클 마법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것이 바이젠 측의 꿍꿍이속이기도 했고 말이다.

스릉!

물론 지금은 꿍꿍이속이니 뭐니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일단 저 화염구부터 어떻게 해야 했다.

아니면 정말 대참사가 발생할 터.

해서 이베리아 영지에 도착한 뒤 처음으로 뽑아 들었다.

흑요석과도 같은 어둠을 뽐내는 검, 심연을.

웅웅웅웅~

그러고는 곧장 필요한 작업에 들어갔다.

심연과 나의 어둠을 공명시킨 것이다.

사아아아아아~!

덕분에 폭발적으로 증대된 어둠의 정령력.

이것을 곧장 일직선으로 뻗어 보냈다.

목적지야 당연히 한곳 뿐이었다.

시시각각 성벽에 가까워져 오는 초거대 화염구를 향해서.

가가가각~

구구구궁~

정령력을 극한까지 뽑아냈다.

이를 바탕으로 화염구를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동시에 바닥으로 찍어 눌렀다.

어떻게든 속도와 위력을 줄여 보기 위함이었다.

‘역시 정령력만으로는 안 돼.’

하지만 부족했다.

정령력만으로 화염구를 막아 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심연과의 공명을 통해 몇 배로 증폭시켰음에도, 효과는 충분치 못했다.

어둠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화염구는 덜 끌려오고, 덜 가라앉았다.

물론 처음부터 예상하던 바였다.

무려 6서클 마법이었으니까.

심지어 단순히 6서클 마법사 혼자서 시전한 마법도 아니었다.

주변 마법사들의 서포터까지 받아가며 시전한 것이 분명했다.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여러 힘의 작용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정령력만으로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파바밧!!

그렇기에 정령력을 극한으로 활용하는 와중에도 발은 절대 멈추지 않았다.

성벽 위 병사들을 헤치며 필사적으로 달리는 중이었다.

정령력만으로는 부족하기에 여기에 추가적인 힘을 얹고자 함이었다.

바로 소드마스터로서의 힘을.

‘젠장, 모자라.’

소드마스터로서의 힘을 얹기 위해서는 근처까지 도달해야만 했다.

그러나 시간이 모자랐다.

애초부터 거리도 멀었거니와, 장애물이 너무 많았다.

화염구까지 닿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약간, 아주 약간 모자랄 것으로 보였다.

“이쪽으로 온다, 이쪽으로 온다고!!”

“으아아아……! 사, 살려 줘!!”

“비켜, 비키란 말이야!!!”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특히 화염구의 충돌 예상 지점은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적아 구분도 존재하지 않았다.

슈라우드와 바이젠의 병력 모두 그저 살기 위해 몸부림칠 뿐이었다.

우우우우웅~!

그때였다.

일말의 희망이라고 해야 할까?

화염구의 진행을 가로막는 방어벽이 등장했다.

거대한 마나의 투명한 방어벽, 실드 마법이었다.

우리 측 마법사들이 다급히 힘을 모아 실드를 시전한 것이다.

콰창~! 콰장창!!

물론 턱도 없었다.

여러 겹의 실드가 세워졌지만, 1초 이상 버텨 내는 실드는 단 한 겹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화염구와 닿는 족족 유리창처럼 허무하게 깨져 나갈 뿐이었다.

하나,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처음부터 실드가 화염구를 막아주리라는 기대는 눈곱만큼도 품지 않았다.

그럴 가능성 자체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급조된 실드 마법으로 6서클 이상의 마법을 어찌 상대하겠는가?

언감생심 꿈조차 꾸기 어려운 일이었다.

콰장창!!!

대신 이 덕에 일말의 희망이 솟아난 참이었다.

실드들이 무참히 깨져 나가면서 벌어 준 약간의 시간, 고작해야 몇 초에 불과한 그 약간의 시간이 바로 희망이었다.

내가 제때 화염구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그리하여 늦지 않게 소드마스터로서의 힘을 가미할 수 있으리라는 그런 희망.

거기까지만 된다면 그때는…….

“틀렸어, 다 깨져 나갔다고!”

“X발, 비키라니까!!”

“으아아아아……!!!”

하지만 솟아올랐던 약간의 희망이 다시금 자취를 감춰 갔다.

실드의 붕괴와 함께 한층 더 심각해진 몸부림, 그리고 아비규환 속으로.

더는 헤치고 나아갈 틈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만들고자 하면 억지로라도 만들 수야 있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여기서 낭비하게 될 그 찰나의 시간이 지금까지의 과정을 모두 무로 돌려 버릴 터.

‘차라리.’

차라리 다음을 대비하는 편이 현명한 것일지도 몰랐다.

충돌 이후 즉, 대참사의 직후를 말이다.

현재로서는 그러는 편이 더 나아 보였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나 또한 불가피한 선택을 내리려던 참이었다.

익숙한 울음소리 하나가 이 아비규환을 뚫고 내 귀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카오오오오~!”

“……!!!”

자취를 감췄던 희망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솟아올랐다.

나아가 이번에는 단순히 솟아오르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예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잠시 후,

쿠과과과과광~!!!!

초거대 화염구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단, 그 상대가 원래 목표인 성벽은 아니었다.

충돌 상대는 따로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한 인간, 그 인간이 발휘하는 짙은 어둠, 그리고 여기에 가미된 강렬한 오러블레이드였다.

* * *

“십인장, 이거 너무 위험한 거 아니에요?”

슈라우드 남부군 복무 10년 차 십인장 주드.

그는 현재 성벽 위에서 한창 바이젠 군을 밀어붙이는 중이었다.

한데, 그런 주드를 향해 그의 십인대 소속 대원인 코니가 염려를 표해 왔다.

“이렇게 밀어붙이다 보면 분명…….”

“그래서, 저놈들 올라오게 놔두자고? 어차피 마찬가지야. 올라오게 두면 그다음에는 저놈들 창에 찔려 뒤진다고.”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어영부영하다가는 진짜 다 죽어. 그러니까 입 닥치고 우선 밀어붙여!”

주드는 일단 그 염려를 찍어 눌렀다.

전투 중에 원래 이런 잡담은 금물이었다.

본인의 목숨은 물론이고, 동료의 목숨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몰지각한 행동이었으니까.

다만 주드는 이 이상 코니를 윽박지르지도, 혹은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다.

단순히 전투 그 자체에 집중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이곳 서쪽 성벽의 전황은 상당히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바이젠 병사들이 성벽 위에 제대로 발도 붙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

따라서 약간의 잡담도, 또 이에 대한 윽박이나 조치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저 주드 스스로 하지 않은 것일 뿐.

콰직!

대신 묵묵히 창을 내지를 뿐이었다.

미친놈처럼 올라오려 기를 쓰는 바이젠 병사들을 향해.

“…….”

실은 그 또한 코니와 마찬가지 염려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위험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그런 염려.

비단 코니와 주드만이 아니었다.

주드 예하 십인대원들은 물론이고, 주변에 포진한 병력 전부가 그러했다.

모두가 똑같은 걱정을 품고 있는 상태였다.

“지, 지금! 지금 또 하려는 모양입니다!!”

그때, 코니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집중됐다.

엄청난 빛과 스파크가 명멸하는 한 지점, 바이젠 진영의 한복판으로.

“여기는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렇지?”

“제발, 제발, 제발 이쪽만 아니게 …….”

“여기로 올 리가 없어. 동쪽 성벽도 바이젠이 밀리고 있으니까 분명 그리로…….”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창이나 칼질 따위를 멈췄다.

대신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본인들이 서 있는 곳만큼은 목표 지점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쏘, 쏜다!!!”

이윽고 그 엄청난 빛과 스파크가 하나의 줄기를 형성했다.

그리고 쏘아졌다.

거대한 뇌전의 형태로.

“어, 어디…….”

콰지지지지지직!!!

다만, 병사들이 그 경로까지는 육안에 담지 못했다.

채 눈에 담기도 전에 끝났기 때문이다.

목표 지점으로의 도달이.

“커헉!”

“케헥!”

“크륵!”

그리고 쓰러져 갈 뿐이었다.

이런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시꺼멓게 타들어 간 고깃덩어리만을 남긴 채로.

“아…….”

그제야 주드는 깨달을 수 있었다.

코니의 염려는 현실이 됐다.

뇌전의 목표 지점은 그와 그의 십인대가 위치한 이곳 서쪽 성벽이었다.

우후죽순처럼 쓰러져 가는 눈앞의 병사들이 그 증거였다.

사실 정확히는 여기서 약간 더 서쪽으로 치우쳐진 지점을 타격한 것이지만, 상관없었다.

약간의 순서 차이에 불과했다.

뇌전은 한 지점을 피격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최초 피격 대상을 기점으로 끊임없는 이동을 시작했다.

사람에서 사람 사이로의 이동이었다.

동시에 이 이동의 과정에 죽음이라는 재를 흩뿌리고 다녔다.

감전에 따른 쇼크사라는 시꺼먼 재를 말이다.

‘이제…….’

깨달음 덕분이었을까?

갑자기 주드가 보는 세상이 극도로 느려졌다.

시꺼멓게 타들어 간 채 쓰러지는 병사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그의 눈에 담겼다.

뇌전이 다가오는 순서, 이를 앞둔 병사들의 반응과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의 표정, 이로부터 읽히는 그들의 공포와 고통까지.

느려진 세상 속에서 그는 이 모든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나구나.’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주드 본인의 차례가 도래했음을.

이제 뇌전이 그를 덮칠 차례였다.

이를 피할 방도 같은 건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주어진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수밖에 없었다.

느려진 세상 속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며, 아주 무력하게.

“카오오오~!”

그리 깨달았고, 하여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받아들이려 했었다.

한 줄기 희망이 울려 퍼지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 그러했다.

“……!!”

한데, 느려진 세상 속에서 그의 귀에 확실히 꽂히는 어떤 포효가 존재했다.

이 포효가 육신보다 먼저 죽어 가던 주드의 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삶에 대한 희망을 심어 주었다.

쿠웅!!

콰지지지지직~!

비단 심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곧장 현실화시켜 주기까지 했다.

주드의 눈앞에 어떤 등판 하나를 떨어뜨려 줌으로써.

콰지지직!

지금 이 순간, 주드의 눈에는 바다보다도 넓게 느껴지는 어떤 등판.

포효와 함께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이 넓은 등판의 소유자가 바닥에 검을 꽂아 넣었다.

검첨에 뇌전의 줄기를 걸어 둔 상태에서.

이로 인해 뇌전 또한 검과 함께 땅바닥에 처박혔다.

물론 뇌전은 여기에 저항했고, 죽음의 재와도 같던 스파크를 미친 듯이 흩뿌려 댔다.

콰지직, 지지지, 지직…….

하지만 그게 다였다.

꽤 격렬하게 저항하던 뇌전은 결국 넓은 등판의 소유자와 그의 검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고는 머지않아 처박힌 자리에서 처박힌 그대로 소멸했다.

즉, 참화가 종결된 것이다.

예정되었던 대참사까지는 이어지지 못한 채로.

“아……!”

그리고 주드는 알고 있었다.

참화를 종결짓고 그의 목숨까지 구해 준 인물의 정체를.

이 바다보다 넓은 등판의 주인은 그가 아는 한 오로지 한 명뿐이었다.

“라이오넬 경!!!”

라이오넬 라인하트.

오로지 그뿐이었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주드가 직접 성문을 열고 맞이했던 소드마스터여서?

물론 그 영향도 무시하지는 못했다.

그날 라이오넬과 그 일행이 남긴 인상은 워낙 강렬했으니까.

하나, 그렇지 않았다 해도 분명 주드는 단번에 알아봤을 것이다.

주드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라이오넬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슈라우드 병사들뿐 아니라 바이젠의 병사들까지도 전부.

이베리아 전투에 참전한 이라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후우, 낯익은 얼굴이군. 주드라고 했었나?”

“예, 예! 그렇습니다, 라이오넬 경!”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 라이오넬의 행색이 그 증거였다.

어찌 보면 우스꽝스럽다고 볼 수도 있었다.

쭈뼛쭈뼛 선 채로 산발이 된 머리, 말려 올라간 눈썹, 시꺼멓게 타 버려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든 의복, 그 자리에 남은 시꺼먼 검댕까지.

솔직히 거지꼴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주드는 이 모습이 조금도 우습지 않았다.

우습기는커녕 눈물이 핑 돌만큼 고맙고 감격스러웠다.

병사들을 위한 라이오넬의 희생과 솔선수범이 빚어낸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모습 덕에 목숨을 부지한 병사들이 몇인데, 감히 웃음 따위를 지을 수 있겠는가?

그런 놈이 있거든 주드가 달려들어 직접 쳐죽일 작정이었다.

아니, 아마 주드가 달려들기도 전에 이미 죽어 있을 것이다.

그 미친놈 바로 옆에 있는 또 다른 추종자에 의해서.

라이오넬은 지금 병사들에게 그런 존재였다.

“흐음, 오늘은 제대로 작정을 한 모양이네.”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래도 바로 또 가 봐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여기 뒷정리는 자네에게 맡겨야 할 듯싶군, 주드.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라이오넬 경. 제가 책임지고 정리하겠습니다”

“그럼 믿고 가지. 카오!”

심지어 라이오넬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또 다른 참사를 막기 위해 곧바로 움직이고자 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 버리는 그였다.

주드는 잠시간 그런 라이오넬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만이 아니었다.

근방의 병사들 모두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자자, 아직 전투 안 끝났어. 일단 자리부터 다시 잡아!”

물론 그에게 맡겨진 역할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라이오넬이 직접 맡긴 역할이었다.

잊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코니, 라이오넬 경 명을 어길 생각이냐? 그만 넋 놓고 빨리 움직이라니까!”

“그럴 리가요! 지금 갑니다!!”

그렇게 흐트러졌던 병력이 일사불란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다시 성벽을 지켜 나가기 시작했다.

라이오넬의 이름으로, 전보다 한층 더 단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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