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장: 새 식구
그나마 기사 같아 보이는 인간 한 명, 넝마가 된 옷차림만 봐서는 기사인지 용병인지 잘 구별 안 되는 인간 하나, 그리고 진짜 이상한 것 한 마리.
이렇게 구성된 특이한 조합의 일행이 이내 성문 앞에 도달했다.
다만 곧장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고 멈춰 선 상태였다.
주드가 그들을 멈춰 세웠기 때문이다.
“정체를 밝히시오.”
당연한 절차였다.
그렇지 않아도 군사 지역인 이베리아 영지였다.
더구나 바이젠과의 충돌을 며칠 앞두지 않은 시점.
정체불명인 데다 심히 특이하기까지 한 자들을 함부로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일행은 지시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멈추라니 멈췄고, 정체를 밝히라니 그나마 가장 멀쩡해 보이는 자가 한발 앞으로 나섰다.
기사 같아 보이는 인간이었다.
그가 품속에서 웬 문양이 수 놓인 천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펼쳐 보임과 동시에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라인하트 자작가의 차남, 라이오넬 라인하트라고 한다.”
“아……!”
가문의 문양이 수 놓인 천까지도 필요 없었다.
이름이면 충분했으니까.
주드는 물론이고 성문을 지키던 병사들 모두가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의 정체에 대해서.
“코니, 가서 보고 올려. 소드마스터 라이오넬 라인하트 경께서 도착하셨다고. 지금 당장.”
“예, 십인장!”
주드는 잠시도 지체하지 않았다.
복무기간 10년의 짬밥은 허투루 먹은 것이 아니었다.
이름을 듣자마자 곧장 필요한 조치에 들어갔다.
우선 라이오넬의 도착을 알리기 위해 통제실로 코니를 보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라이오넬에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정확한 신분 확인을 위해 기사님을 모시러 갔습니다. 금방 돌아올 것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절차상 정확한 확인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름만으로 들여보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문양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주드는 그것을 구별할 수 없었고 말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라이오넬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불만스러운 기색은 조금도 내비치지 않았다.
이에 주드는 거리낌 없이 필요한 작업을 이어 갈 수 있었다.
“한데, 옆에 계시는 분은……?”
나머지 일행에 관한 확인 절차 역시 당연히 거쳐야만 했다.
하여 일단 둘 중 그나마 인간인 이에 대해 먼저 물었다.
행색 때문에 신분이 잘 구별되지 않는 인물이었다.
꼬질꼬질한 상태만 보면 용병은커녕 거지라 해도 믿을 법했다.
하지만 착용한 장비들이 그렇지 않았다.
기사들이 여행 시 착용하는 약식 갑옷에 가까웠다.
여기저기 깨지고 부서진 데다 관리 상태 또한 엉망인지라 비록 확신은 어려웠지만.
“이쪽은 다이너 브란부르크. 내 부관이자, 라인하트 자작가의 정식 기사다.”
역시 조심스럽게 묻기를 잘했다.
주드의 눈썰미가 틀리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행색이 이렇게 거지꼴인 건 그다지 신경 쓸 필요 없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몬스터들하고 가벼운 드잡이질 좀 벌이느라 그런 것뿐이니까.”
“가벼운 드잡이질이요? 거기다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제가 누구 때문에 이 거지꼴을…….”
라이오넬의 첨언에 다이너라는 기사가 울분을 쏟아 냈다.
행색과 비례하여 라이오넬에게 쌓인 것이 많았던 모양.
“아아, 신경 쓸 필요 없다.”
라이오넬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있었지만 말이다.
별거 아니라는 듯 주드를 향해 손을 한번 휘휘 저어 주는 그였다.
그는 그렇게 다이너라는 기사의 항거를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러고는 마지막 일행(?)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흐음, 이 녀석은…….”
주드의 시선 또한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했다.
라이오넬의 정체에 잠시 가려졌던 것일 뿐, 사실 처음부터 가장 의아한 부분이었다.
마지막 남은 것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축이나 일반 짐승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몬스터였다.
심지어 그냥 몬스터도 아니었다.
매의 머리와 날개를 가지고 있지만, 몸통은 사자인, 그런데 다시 앞발은 또 매의 그것인 몬스터.
나아가 와이번과 더불어 하늘을 양분한다고 알려진 극강의 몬스터, 바로 그리핀이었다.
따라서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난리가 났어야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그리핀이었다.
남부군 사령관이자 소드마스터인 디카프리 델로나 후작이 아니고야 답이 없는 그런 놈.
그럼에도 주드와 병사들은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고 일단 지켜보는 중이었다.
일반적인 몬스터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뒤적뒤적.
우선 매우 얌전했다.
라이오넬이 멈추라니 멈췄고, 기다리라니 기다렸다.
현재는 그의 옆에 착 달라붙어 한가롭게 털이나 고르고 있었다.
일반적인 몬스터의 광폭한 흉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진짜 제대로 된 그리핀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졌을 터.
언제 어떻게 흉성이 폭발할지 모르며, 한 번만 폭발해도 진영은 난장판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나, 이 녀석은 괜찮을 것으로 판단됐다.
몬스터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외양에 앳됨이 묻어 나오고 있었으니까.
즉, 녀석은 아직 새끼인 것이다.
어린 주제에 몸체가 성인 남성의 그것에 버금가기는 했지만, 어쨌든 새끼는 새끼.
당장 위협이 될 만큼은 아니었다.
하여 일단 두고 보는 중인 것이다.
“뭐랄까, 오다 주웠다고 해야 할까……?”
* * *
이베리아 영지 도착 3개월 전.
1년 만에 가문으로 복귀한 나는 왠지 모르게 눈꼴이 시렸다.
그리고 영지 내에서 나에게 이런 시림을 안겨 줄 만한 인물은 하나로 고정돼 있었다.
바로 다이너.
단백질로 가득 찬 근육 돼지 기사 녀석이 유일했다.
내가 영지에 도착했을 당시, 다이너는 소드 익스퍼트 중하급에 올라 있는 상태였다.
이것만으로도 수재 소리를 듣기에 충분한 실력이었다.
이제 갓 21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 정도면 객관적으로 훌륭한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괜히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것으로 보였다.
영지 내에서는 친절하고 예의 바른 녀석으로 유명하다지만, 내 눈에는 영 아니올시다였다.
알량한 제 실력에 취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녀석이 에일린과 정식 교제를 시작해서, 거기다 대놓고 꽁냥대는 모습을 보여서 이러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구우웅~
서걱!
“끄륵. 끄르르…….”
“헉헉, 끝. 하아…….”
쿠궁!
털썩.
마지막 남은 미노타우로스까지 베어 낸 다이너.
미노타우로스의 육중한 몸체가 쓰러짐과 동시에 그대로 드러눕는 그였다.
팔다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탈진 직전에 다다른 모양.
“아직 더 할 수 있지?”
“무슨 개소…….”
“뭐, 개소리?”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안 보이십니까, 지금 제 상태?”
“보여.”
당연히 보였다.
바닥에 대자로 누워서 팔다리 미세하게 떨고 있는 거.
“한탕 더 뛰어도 괜찮은 상태로.”
“야 이……!”
“억울하면 네가 소드마스터 하든가.”
탈진 직전이지만, 아직 탈진은 아니라는 사실 역시도.
그렇다면 전투 한 번쯤은 더 해도 괜찮았다.
무려 소드마스터가 내리는 판단이었다.
아직 중급도 안된 소드 익스퍼트 나부랭이는 그냥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럼 한 무리 더 불러온다.”
원래라면 지금쯤 바르코스 요새에 있어야 할 다이너였다.
몬스터 웨이브가 한창인 시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내가 영지군에서 녀석을 빼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카르가디아 산맥 한복판으로 끌고 들어왔다.
몬스터 웨이브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느끼게 해 주기 위함이었다.
덕분에 다이너는 지금 진절머리나게 느끼는 중이었다.
몬스터의 천국이라 불리는 곳에서, 그것도 중대형 급들만 골라 가면서.
“시간 없으니까, 얼른 일어나.”
“[email protected]#$%^&”
걸쭉한 감탄사를 뱉어 내는 다이너였다.
중간중간 누군가를 향한 진심 어린 욕설이 섞여 있었지만, 그리고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뻔히 알고 있었지만, 가볍게 웃어넘겨 주었다.
어찌 됐든 내 명령이라면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드는 녀석이었으니까.
지금도 걸쭉한 감탄사와 함께 끙끙대며 몸을 일으키는 중이었고 말이다.
이렇듯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다이너를 몰아붙이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이젠과의 전쟁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적어도 전쟁 발발 전에는 이베리아 영지에 도착해야 할 터.
그전까지 다이너의 실력을 최대한 끌어 올릴 생각이었다.
어차피 영지군은 에릭스가 완벽하게 통솔하고 있는 상황.
다이너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는 더 많은 경험이 필요했다.
하여 이번 전쟁에 그를 참전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영지에서 에일린과 시시덕대는 꼴이 눈꼴 시려서 이러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스릉.
사아아~
그리고 목적은 비단 다이너의 실력향상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나 개인의 숙달 또한 포함돼 있었다.
익숙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새로이 나의 동반자가 된 녀석, 심연과.
웅웅웅웅~
조짐이 맞았다.
심연과 나는 일방적인 관계에서 그치지 않았다.
처음 심연을 쥐었을 때 느꼈던 어떤 울림.
이것은 공명이 확실했다.
모든 것을 삼키는 심연의 어둠과 전부를 포용하는 나의 어둠.
이 두 가지가 얽히고설키더니 하나로 융합했다.
동시에 공명했다.
콰아아아아~
그리하여 증폭시켰다.
어둠의 정령력을, 전보다 족히 몇 배는 더 큰 힘으로.
당연히 그 범위도, 범위 내에 미치는 영향력도 대폭 향상됐다.
굳이 카르가디아 산맥으로 들어온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향상된 정령력을 양껏 펼쳐 보기에 이만한 장소가 또 없었으니까.
그렇게 다이너 수련 겸 나의 숙련을 목적으로 다시 한번 정령력을 퍼뜨려 갔다.
“으음?”
그때였다.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던 정령력에 어떤 이질적인 기운들이 감지됐다.
지금껏 수많은 몬스터들을 불러내고 처리해 온 나였다.
그런 나조차 처음 감지해 보는 기운들이었다.
오우거 못지않게 강력한 본질을 지닌 녀석들이기도 했다.
이런 기운들이 서로 간에 한창 필사의 격돌을 벌이는 중이었다.
자연스레 호기심이 일 수밖에 없는 상황.
해서 살짝 자극해 보았다.
찌릿.
그렇다고 딱히 방해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한쪽의 승리로 완벽하게 굳어진 형세였다.
나머지 한쪽은 그저 끝이 정해진 발악을 이어 가고 있을 뿐.
가벼운 호기심의 발로에 불과했다.
그래서인지 충돌 중인 녀석들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내 자극을 무시했고, 하여 나도 더는 관심을 두지 않으려 했다.
꿈틀.
거대한 두 녀석에서 떨어져 나온 한 줄기 미약한 기운만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자극에 반응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슈아악~
더구나 단순한 반응 정도에서 그치지도 않았다.
자극의 진원지를 향해 미친 듯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 진원지가 나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사실.
아무래도 점점 스러져 가는 기운 쪽에서 떨어져 나와 나를 피난처로 삼은 모양이었다.
캬아악~!
이윽고 승부 또한 마무리됐다.
스러져 가던 쪽의 기운이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동시에 승자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어찌나 큰지 십수 킬로를 격하고 있는 나와 다이너의 귀에까지 어렴풋이 들려올 지경.
그러더니 놈 역시 비행을 시작했다.
자극의 진원지를 향한 비행이라는 점은 마찬가지였다.
단, 목적이 달랐다.
앞선 녀석의 목적이 피난이라면, 이놈은 사냥이었다.
승자의 권리를 즐기고자 하는 것이다.
또, 그 속도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앞선 녀석도 충분히 빨랐다.
벌써 그 먼 거리를 뚫고 내 시야에 모습을 드러냈을 정도.
새끼 그리핀이었다.
한데, 뒤의 놈은 차원이 달랐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건만 그리핀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힌 것이다.
“설마 저더러 저걸 잡으라고요?”
다이너가 질린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먼 거리를 격하고 등장한 것이 성체 와이번이었기 때문이다.
사냥의 난도 측면에서 오우거를 능가하는 몬스터였다.
힘이야 비슷하다 쳐도 비행 능력을 고려해야 했으니 말이다.
따라서 현재 다이너 실력으로는 죽었다 깨나도 잡지 못할 놈이었다.
“잡아 볼래?”
“……제가 아가씨와 사귀는 게 그리도 마음에 안 드십니까? 이렇게까지 절 죽이고 싶을 정도로?”
“뭐, 안 들긴 하지.”
물론 진짜 싸우게 할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에일린과 사귀는 게 눈꼴시더라도 죽음으로 내몰 만큼은 아니었다.
자칫하다가는 오히려 내가 에일린에게 죽어날지 모르는 노릇이기도 했고.
촤악~!
이렇듯 내가 잠시 다이너와 잡담을 나누는 사이에도 새끼 그리핀은 필사의 도주를 지속했다.
그러나 이미 다 따라잡힌 것은 물론이고, 등에는 발길질까지 한 대 얻어맞은 참이었다.
와이번은 분명 장난삼아 한 대 툭 친 것에 불과했다.
하나, 새끼 그리핀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생사를 넘나드는 타격이었다.
무려 와이번의 발톱과 발길질이었으니까.
“카오오……!”
그럼에도 새끼 그리핀은 포기하지 않았다.
타격 직후의 순간, 녀석의 눈빛이 똑바로 나를 향했다.
고통에 휩싸여 흐려지기는 했으나, 그 의지만큼은 분명히 전해졌다.
녀석은 어떻게든 살고자 했다.
그리고 이 의지 그대로 마지막 도박 수를 던졌다.
지이잉~
지체 없이 넘어선 것이다.
내 영역의 경계선을.
내 허락도 받지 않은 채로, 불확실한 나의 자비심에 기대어.
어쨌든 새끼 그리핀은 그렇게 생사의 기로에서 선택을 했다.
하면 남은 한 놈은?
사아아아~
그리핀을 가지고 놀던 와이번 또한 마찬가지 상황에 직면했다.
내 어둠의 경계를 마주한 것이다.
놈 또한 선택해야만 했다.
넘어설 것인지 말 것인지.
“캬아아악~!”
이에 포효를 내지르는 와이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