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장: 심연
결과를 선보이기 위해 나를 불렀다는 데파이.
이 말을 남기고 잠시 자리를 비웠던 그가 이내 웬 둘둘 말린 천 뭉치를 하나 들고 왔다.
그러고는 나에게 그것을 건넸다.
펼쳐진 광경만 놓고 보면 뭘 어쩌라는 거지 싶은 상황.
하지만 나는 입조차 벙끗하지 않았다.
그저 데파이가 건넨 그 천 뭉치를 묵묵히 풀어 갈 뿐이었다.
가능한 한 빠른 손놀림으로.
스으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쉼 없이 꿈틀대는 아주 친근한 녀석이.
사락사락.
데파이가 빈틈 하나 없이 두껍게 꽁꽁 싸매 둔 상태였다.
그렇다 보니 천 뭉치 하나 풀어헤치는 것치고는 적잖은 시간이 소모되고 나서야,
툭.
사아아~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음습하기 짝이 없는 기운과 함께.
“무아지경에 빠져서 정신없이 두드려 댔다. 여정을 빚어냈던 때 그 이상으로. 그렇게 본능에 이끌려 결국 완성에 이르렀는데, 완성해 놓고 보니 내가 요물을 만들었더군.”
“요물이라……, 그럴 수도 있겠네요.”
데파이의 시각에서는 확실히 요물이라고 할 만했다.
데파이뿐만 아니었다.
검을 다루는 이라면 누구라도 그리 느낄 터였다.
그만큼 요사스러웠다.
아직 검집에서 검신을 뽑아 든 것도 아니건만, 그 음습함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올 지경.
데파이가 빈틈 하나 없이 꽁꽁 싸매 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달칵.
“조심하거라. 나도 지금껏 접해 본 적 없는 게걸스러운 녀석이니. 네가 소드마스터에 도달했다는 소식이 아니었으면, 아무리 너라 해도 건네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주의를 당부하는 데파이.
이런 그의 당부와 함께 나는 검신을 검집에서 빼내기 시작했다.
“어찌 된 놈인지 쥐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혼을 빼먹는 것 같더구나. 그러니 너도…….”
스르릉.
다만, 그 당부를 따랐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나는 그의 거듭되는 주의에도 불구하고 행동에 망설임을 갖지 않았다.
가질 이유가 없었다.
나에게 이 녀석은 요물이 아니었으니까.
데파이를 비롯하여 세상 모두가 그리 여길지라도 나에게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으음?”
이 사실이 데파이를 통해 증명되는 중이었다.
그가 고개를 갸웃한 것이다.
검을 뽑아 든 내 모습을 눈에 담은 직후의 반응이었다.
“……괜찮은 모양이군.”
그의 눈에도 보였을 터였다.
평온하기 그지없는 내 모습이.
“정말 말도 안 되는 걸 만들어 내셨네요.”
“글쎄, 그걸 쥐고도 아무렇지 않은 네 녀석만 할까 싶다만. 보아하니 힘으로 억누르고 있는 것도 아닌 듯하고.”
데파이의 말대로였다.
나는 이 검을 억누르고 있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녀석이 뿜어내는 기운 전부를.
사아아아~
기운의 정체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어둠이었다.
무저갱에서 끌어 올리기라도 한 듯 짙고도 음습한 어둠.
그렇기에 나에게 이 녀석은 요물일 수 없는 것이다.
그저 아직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 본 적 없는 어린아이 같았다.
넘실거리는 기운을 전혀 갈무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혹은 제대로 흑화한 사춘기 소년 같은 느낌도 들었다.
못 하는 것도 있지만, 갈무리하려는 의지 자체가 없어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요는 결국 녀석이 한창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는 중이라는 것.
따라서 확실히 길을 들여 줄 필요가 있었다.
갓 태어난 녀석의 창창한 검생을 위해서라도.
다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었다.
제작자인 데파이조차 감당 못 하고 꽁꽁 싸매 둔 상황.
‘아무나’는커녕 ‘아무도’ 못 하는 것이다.
단 한 명만을 제외하고.
“다행히 저한테는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아서요. 좀 거칠기는 하지만, 그래도 귀여운 면이 있는 녀석입니다.”
“…….”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함께 어둠을 공유하고 있는, 그래서 녀석과 동질감을 가질 수 있는 나만이.
내 손에 가만히 쥐어져 있는 녀석의 모습이 그 방증이었다.
사아아아아~
사실 따지고 보면 녀석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쉼 없이 어둠을 뿜어내는 중이었다.
단지 내가 그것을 완벽하게 받아들여 주는 것일 뿐.
그리고 이 점이 내가 바로 그 유일한 한 명인 이유였다.
어둠은 양면성이 강했다.
일차적으로 탐욕스럽고 게걸스러웠다.
모든 것을 다 빨아들이고자 했다.
지금 녀석의 어둠이 그리하는 것처럼.
반면, 완전히 정반대의 성격을 지니기도 했다.
아늑하고 포근했다.
순응자들에게 둘도 없이 평온한 안식처가 되어 주기도 하는 것이다.
검의 어둠이 전자라면, 난 후자로서 이것을 포용해 주었다.
덕분에 내 손 안에서 얌전한 고양이와도 같은 모습을 보이는 녀석이었다.
우우, 우웅~
한데, 비단 여기서 끝이 아닐 듯했다.
한쪽이 주고 한쪽이 받는 일방적인 관계.
당장은 이런 관계지만, 잘만 길들이면 여기서 한 발 더 나갈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공명이라고 해야 할까?
검과 나의 어둠이 한 데 얽히며 어떤 울림을 일으키려 했다.
아직은 조짐에 불과하고 불확실하나,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검과 나의 관계는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물론, 내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이 녀석 이름은요? 역시 그걸로 지어 주셨습니까?”
“아직이다. 아직 이름은 정하지 못했어.”
“……?”
의외였다.
난 당연히 이 검에 이름이 붙여졌으리라고 여겼다.
또, 그 이름이 무엇일지 역시 대강 짐작하던 상태였다.
데파이가 추구하는 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데파이는 대장장이로서 완벽을 추구했다.
티끌조차 용납하지 않는 완전무결로서의 완벽.
그리고 완벽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그에게 전부 실패작에 불과했다.
당장 내 허리춤의 검에 여정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그런 연유였다.
완벽으로 가기 위한 여정에 있을 뿐, 결국 완벽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검, 지금 내 손에 쥐어져 쉼 없이 어둠을 뿜어 대는 이 검이라면 자격이 있었다.
대륙 최고의 대장장이에게 완벽이라는 칭호를 수여 받을 자격이.
여정 때와 같은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했다.
단 한 톨의 티끌조차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중심, 무게, 균형 등등 그 어떤 기준을 들이민다 해도 단언할 수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처음에는 나도 완벽이라는 이름을 붙일까 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 이름은 이 녀석에게 어울리지 않더구나.”
다만, 이해되지 않는 바도 아니었다.
직접 본 이상 데파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손에 쥔 이 녀석은 확실히 완벽했다.
한데, 이것을 검으로서의 완벽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형태는 검이나 검이라는 틀에 가둘 수 있는 녀석이 못 됐기 때문이다.
검보다는 자신만의 의지를 지닌 한 개체로서의 완벽이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탐욕 또한 독립적인 의지임은 분명하니 말이다.
단지 좀 괴이하고 게걸스러울 뿐.
“해서 그만뒀다. 덕분에 이름은 아직이고.”
“그러셨군요.”
“그러니 네가 지어 주거라.”
그렇게 고개를 주억여 갈 때였다.
그러던 것을 순간적으로 우뚝 멈춰 세울 수밖에 없었다.
“예……?”
“뭘 놀란 척하고 그러느냐? 어차피 이미 주인이 정해졌다는 건 네 녀석이 더 잘 알고 있으면서. 그 주인이 누구인지 역시도.”
물론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굴뚝같았다.
또, 이미 확신을 품은 상태이기도 했다.
나 말고는 누구도 이 녀석의 주인이 될 수 없으리라는 그런 확신.
그렇다 해도 무턱대고 입을 열기에는 좀 민망했다.
딱히 대가로 지불할 만한 것도 없는 상황이다 보니 더더욱.
한데 이런 민망함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 것이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생각지 못했던 방식으로.
“한번 잘 길들여 보거라. 나도 궁금하구나. 그 요물이 그저 마검에서 그칠지, 아니면 네 손에서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이렇듯 다소 갑작스럽게, 그러나 이미 정해진 운명과도 같이 시작되었다.
이 괴이하고 게걸스러운 녀석과 나의 본격적인 관계는.
내가 녀석에게 붙여 준 ‘심연’이라는 이름과 함께.
* * *
슈라우드에 1왕녀라는 새로운 세력 축이 등장했다.
덕분에 잔잔하게 고여있던 슈라우드 정계에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1왕자와 3왕자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귀족들이 1왕녀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아직은 그저 관심에 불과했다.
1왕녀에게는 기반이 부실했기 때문이다.
라이오넬이라는 소드마스터와 라인하트 영지가 있기는 하나, 이게 다였다.
소속감이나 안정감을 주기에는 많이 모자란 수준.
그렇기에 4개월가량 지난 현재까지 제대로 된 세력을 형성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하나, 이것만으로도 의미는 상당했다.
일단 물결이 일었다는 점이 중요했다.
물결이 미미하고, 당장은 그저 관심에 그친다 해도 상관없었다.
지금부터 만들고 키워 가면 그만이었다.
물결을 파도로, 관심을 세력으로.
그럴 시간은 충분했다.
그녀에게 시간은 더 이상 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편이라면 모를까.
1왕녀의 정치적 동반자, 라이오넬 덕분이었다.
라이오넬은 대륙 최연소로 소드마스터에 오른 천재 중의 천재.
이제 갓 20살이 된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앞으로 쌓아 갈 공적 또한 그에 비례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벌써 적당한 판까지 깔린 참이었다.
“십인장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뭘?”
“우리 왕국의 새로운 소드마스터가 여기 이베리아로 지원 온다는 거 말이에요. 그 기사님이 합류하면 저 지긋지긋한 바이젠 놈들, 정말로 더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할 수 있을까요?”
“아, 다들 떠들어 대는 그거? 뭐, 분명 좋기야 하겠지. 무려 우리 사령관 각하 같은 소드마스터가 추가되는 건데.”
그 판이란 바로 슈라우드 왕국 최남단의 이베리아 영지.
현재 성문을 경비 중인 남부군의 두 병사가 나누는 대화와도 관련이 깊었다.
이들은 당연히 복잡한 정계 사정을 꿰고 있지 못했다.
그래도 한 가지만큼은 확실히 인지한 상태였다.
왕국의 세 번째 소드마스터인 라이오넬 라인하트, 그가 이곳 이베리아로 온다는 점 말이다.
바이젠 놈들을 때려 부수기 위해서.
“다만…….”
“다만?”
“솔직히 난 좀 회의적이다. 모두 바라는 것처럼 이 지긋지긋한 전쟁 자체를 끝낼 수 있을지는.”
한데, 복무 10년 차인 베테랑 십인장 주드의 반응은 시들시들했다.
기나긴 세월이 그 이유였다.
“바이젠 놈들이랑 여기를 두고 싸운 게 벌써 30년이야. 소드마스터가 대단하기는 해도, 혼자서 이 30년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2~4년마다 한 번씩 이베리아 영지를 두고 국지전을 벌여 온 슈라우드와 바이젠.
이 분쟁의 기원은 무려 3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30년 전, 슈라우드 왕국의 귀족이었던 이베리아 백작.
그가 왕실 모욕은 물론이고 역모로까지 비칠 수 있는 죄를 지었다.
그러고는 바이젠으로 전격 망명을 해 버렸다.
이에 슈라우드가 송환을 요구했지만, 바이젠은 무시했고 말이다.
따라서 책임은 바이젠에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슈라우드의 입장이었다.
반면 바이젠의 입장은 이와 달랐다.
망명한 이베리아 백작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왕국 최대 곡창지대인 이베리아 영지를 직할지로 만들기 위해 슈라우드 왕실이 벌인 더러운 수작질이라는 것.
하여 망명 뒤에도 이베리아 영지의 소유권은 본인에게 있음을 강력히 어필했다.
그리고 여기에 바이젠이 힘을 실어 주었다.
이베리아 백작을 앞세워 슈라우드와 전쟁을 벌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바로 두 왕국의 국력이 비등비등하다는 점.
어느 한쪽이 확실하게 승리를 쟁취하지 못했다.
애매한 판정승과 판정패의 반복이 계속될 뿐이었다.
그것도 무려 30년씩이나.
따라서 이제 전쟁의 의미는 단순히 영지를 차지하느냐 마느냐에 국한되지 않았다.
각국의 자존심이 걸린 사안이었다.
한쪽이 완전히 짓뭉개지지 않는 한 종결은 요원한 것이다.
주드의 회의적인 반응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힘들다고 본다. 바이젠 군을 완전히 괴멸시키거나, 그 사령관을 사로잡는 수준이 아니고는.”
“그럴까요……?”
“아마도. 뭐, 그렇다고 해서 시무룩해질 이유도 없지. 어쨌든 이번 전쟁은 우리가 유리할 게 확실하니까. 그 기사 양반이 오기만 한다면 말이야.”
그리고 문제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30년의 세월보다야 가볍겠지만, 당장은 더 직접적이고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그런 문제였다.
“그나저나 정말 오기는 하는 건지 모르겠다. 바이젠 놈들이 출병 준비를 마쳤다는데, 아직 코빼기도 안 비치니 원…….”
그 소드마스터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바이젠과의 전쟁이 고작 며칠 앞으로 다가온 현시점까지 말이다.
헛소문이었던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늦어도 이제는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이러다 치솟았던 남부군의 사기가 급전직하할 판이었으니까.
“어? 저게 뭐죠, 십인장?”
그때였다.
주드와 함께 경비를 서던 코니가 먼저 무언가를 발견했다.
“뭐가……, 으응?”
이에 주드 또한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 역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성문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어떤 특이한 조합을.
“기사 둘, 아니 하난가? 그리고…… 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