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77화 (78/200)

42장: 혼담(2)

…….

카일이 죄목을 밝힌 직후 내려앉은 잠시간의 정적.

그리고.

“하, 시해 미수?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건가?”

새어 나오는 오브리가의 헛웃음이 이 정적을 깼다.

실제 그의 표정과 말투 역시 어이없다는 반응이 한가득이었다.

“왜 그러시는지요, 전하? 딱히 말이 안 되는 부분은 없다고 사료됩니다만.”

그러나 카일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천연덕스러운 태도로 오브리가의 헛웃음에 대꾸하는 그였다.

“라이오넬 라인하트는 황태자 전하께서 머물고 계시던 저택에 무단으로 침입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호위 기사들을 모조리 쓰러뜨렸으며, 끝내 전하를 직접 위협하기까지 했지요. 정황이 너무나도 확실하지 않습니까?”

확실히 제대로 된 죄목을 들이밀고 있기는 했다.

황태자에 대한 시해 미수라면 일국의 소드마스터라 해도 압송 명목으로 충분했다.

단, 죄목 그 자체를 슈라우드 측이 인정한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이보시오, 자작.”

“예, 다스더 백작님.”

“전후 사정은 쏙 뺀 그런 엉터리 정황을 우리 슈라우드가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보시오?”

당연하게도 슈라우드는 인정하지 않았다.

자리에 함께 있던 아이르만 다스더 백작이 국왕을 대신하여 반박하고 나섰다.

“호위 기사들 모두 단순한 기절에 그쳤을 뿐, 실제 다친 이는 아무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소. 또, 라이오넬 경이 황태자 전하 앞에서는 검조차 빼 들지 않았다는 사실 역시도.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오?”

“아닙니다, 알고 계시는 바가 맞습니다. 하나, 그렇다 해서 무단으로 저택에 침입하여 손을 썼다는 사실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지요.”

“애초에 라이오넬 경이 그런 행동을 벌인 이유가 있지 않소? 사실을 따진다면 그 이유 역시 명명백백히 가려야 할 터인데?”

중요한 것은 결국 이유였다.

라이오넬이 비밀통로를 뚫고 저택에 침입하여 손을 쓴 이유.

이것이 슈라우드가 라이오넬의 죄목을 부인할 수 있는 핵심 근거이기도 했다.

“아, 그 이유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가려야지요.”

물론 제국 또한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황태자가 직접 연관된 일인데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한데, 이에 대한 카일의 반응에서는 심각성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야 라이오넬 라인하트 혼자만의 착각이었다는 사실이 명명백백히 밝혀질 테니 말입니다.”

“착각……?”

“그렇습니다. 왜인지 짐작은 갑니다만, 심각한 착각이지요. 전하께서는 그저 왕녀님과 저녁 식사 한 끼 같이 하고자 하신 것뿐입니다. 실제로도 그리하셨고 말입니다.”

“제국이 단순한 저녁 식사 초대를 그리도 무례한 방법으로 한다는 것은 처음 알았구려.”

“전하께서도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계십니다. 그저 왕녀님에 대한 초대 의사를 크리스토퍼 왕자님께 넌지시 건넸을 뿐인데, 설마 그런 일이 생길 줄은……. 이 점에 대해서는 전하께서도 본인의 불찰을 인정하셨습니다.”

“…….”

크리스토퍼 또한 깊게 연관돼 있었기 때문이다.

슈라우드 왕국의 1왕자이자, 레나의 오빠인 그가 말이다.

오히려 레나에 대한 강제력 행사와 관련해서는 그의 연관성이 훨씬 더 직접적이었다.

이에 결국 아이르만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1왕자 크리스토퍼에 대한 처우가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아무리 백작이자 내무 대신이라 해도 함부로 입을 열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 문제, 끝까지 파고들어 봤자 제국과 황태자에게 좋을 것이 없을 텐데?”

“피차일반이지 않겠습니까? 더욱이 어느 쪽 손해가 심각할지야 굳이 뭐…….”

다시금 오브리가 국왕이 나섰으나, 달라지는 바는 없었다.

카일의 태도는 여전히 천연덕스러웠다.

입가에는 옅은 미소까지 걸어 둔 상태였다.

양국의 입장 차이가 확연했기 때문이다.

제국이야 황태자의 평판이 깎이는 수준에서 적당히 마무리될 터.

반면, 슈라우드는 여기에 걸린 것들이 너무 많았다.

1왕자와 1왕녀, 그리고 소드마스터까지.

적당한 마무리는 그림의 떡이라고 봐야 했다.

“…제국이 원하는 게 정확히 뭐지? 혼사 중단?”

그렇기에 결과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카일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더 짙어져 가는 방향으로.

* * *

“역시 레나를 내놓으라는 소리 아니겠소?”

“아무래도…….”

오브리가 국왕의 추측에 아이르만이 말끝을 흐렸다.

카일이 남기고 간 제국 측의 요구 때문이었다.

카일이 처음 요구했던 바인 라이오넬의 제국 압송.

이는 하늘이 두 쪽 나는 한이 있더라도 수용 불가였다.

국가 보물인 소드마스터를 외부로 유출한다는 건 자주권을 포기한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슈라우드 측에서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조건이었다.

이 점을 제국이라고 모를 리 만무했다.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카일 또한 슈라우드 측에 대안을 제시해 주었다.

라이오넬 압송을 무르는 대신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을 이행하라는 것이다.

첫 번째는 레나와 라이오넬의 혼사 중단.

황태자 시해 미수범과의 혼인은 슈라우드 왕실의 명예 실추니 뭐니 말은 번지르르했다.

그러나 혼사 중단을 요구하는 진짜 이유야 굳이 말로 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이 두 번째 조건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어 갔다.

라이오넬에 대한 슈라우드 자체적인 처벌을 요구한 것이다.

황태자에게 위해가 가해질 뻔한 사안이니만큼 제국 입장에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는 것이 그 이유.

겉으로야 그럴듯해 보이는 조건이었다.

나름의 명분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이 또한 실질적으로 슈라우드 측에서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다.

어화둥둥 어르고 달래며 때 빼고 광을 내 줘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처벌을 내린다?

소드마스터를 타국에 빼앗길 작정이 아니고야 수용은 절대 불가했다.

그러자 카일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대안을 건네 왔다.

다만, 앞서와 같이 명시적이지는 않았다.

대화 말미에 스치듯 흘렸을 뿐이다.

두 번째 조건이 부담스럽거든 황태자에게 선물을 하나 보내는 것은 어떻겠냐고.

황태자가 흡족해할 만한 선물을 말이다.

명시적이지 않지만 명확했다.

카일이 말한 그 선물이 무엇일지는.

“으음, 그렇다고 크리스토퍼 녀석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슈라우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전무한 것은 아니었다.

제국의 요구를 무시한 채 사건의 전말을 명명백백히 밝히는 것도 한 방법이기는 했다.

라이오넬이 그런 행동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공개하는 것이다.

하면 혼사 추진은 물론이고, 라이오넬에 대한 압송과 처벌은 없던 일로 만들 수 있을 터.

그러나 이 또한 현실성이 심각하게 떨어졌다.

이 방안을 선택하자면 크리스토퍼를 버려야만 했다.

황태자의 잘못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크리스토퍼의 잘못 또한 드러내야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의 후폭풍에 있었다.

나로움 후작가를 필두로 한 왕국 동부의 극렬반발이 불 보듯 뻔했다.

왕권이 약한 슈라우드 입장에서는 심히 부담스러운 상황.

심지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황태자였다.

이미 황제나 다름없는 그와 공개적으로 대립하는 일인 것이다.

향후 수십 년간 제국과의 관계 악화는 기정사실.

따라서 이 선택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셈이었다.

애초에 선택은커녕 고민조차 해 볼 수 없는 선택지였으니 말이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카일이 스치듯 흘리고 간 그 한 가지.

물론 어떻게든 다른 대안을 강구할 것이다.

이대로 제국에 끌려다니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어쨌든 당장 처한 상황이 불리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최악의 경우, 어쩌면 레나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 역시도.

“전하, 실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였다.

말끝을 흐렸던 아이르만이 재차 입을 열었다.

어쩐지 의미심장한 목소리와 함께.

“이 상황과 관련하여 전하께 고하지 않고 있던 부분이 있습니다.”

“……?”

“얼마 전, 레나 왕녀님께서 신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을 예견하셨습니다. 제국에서 혼인에 딴지를 걸고 나올 것이라고 말이지요.”

“레나가? 아, 하긴 그 아이라면…….”

입을 연 그가 꺼내 든 것은 레나에 관한 이야기였다.

레나가 그를 찾아와 현 상황을 예견했다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해 오브리가 또한 금세 고개를 주억였다.

레나의 번뜩임은 누구보다 아비인 그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찾아오셔서는 상황이 이리 흘러갈 경우의 방안을 일러 주셨습니다.”

“특별한 방안이 있다? 무엇이오, 그게? 백작이 판단하기에 괜찮은 대안이더이까?”

“그것이 왕녀님 말씀으로는…….”

그렇게 아이르만이 레나가 일러 준 방안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걸 정말 받아들인다는 것이오? 그가, 정말로?”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오브리가였다.

* * *

웅성웅성.

슈라우드 왕궁의 대전.

왕국의 중대한 결정이 이뤄지는 이곳에 지금 각료들이 쭉 늘어선 상태였다.

동시에 이들의 쑥덕거리는 소리가 대전을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대전과 쑥덕거림의 한가운데 서 있는 중이었다.

나에게로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모두 정숙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내무 대신 아이르만 다스더 백작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에 쑥덕거림은 금세 가라앉았다.

단, 스포트라이트는 그렇지 않았다.

나를 향한 각료들의 관심과 집중은 한층 더 끌어 올려졌다.

그나마 저들끼리 주고받던 시선마저도 오롯이 나를 향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처음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사절단 임무를 마치고 왕궁에 도착했던 날 또한 이러했다.

대전에서 왕국 핵심인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것이다.

단, 지금은 그때와 분위기가 판이했다.

당시는 왕국의 세 번째 소드마스터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주를 이뤘다면, 지금은 완전히 그 반대.

염려와 걱정 따위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이 자리가 지니는 의미 때문이었다.

오늘 이 자리, 원래 예정됐던 의미와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어진 상태였다.

원래 예정됐던 것은 기념과 축하.

왕국의 소드마스터가 된 나에게 그에 걸맞은 작위를 부여하는 자리였다.

나아가 레나와의 혼인 공표까지 이루어질 자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정반대로 뒤집혔다.

지은 죄에 대한 처분과 징계.

그리고 방금 아이르만이 나의 죄목에 대해 읊은 참이었다.

대강 정리해 보면, 로만 제국 황태자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을 했고, 그 결과, 왕국과 제국의 갈등을 유발할 뻔했다는 내용.

이로 인해 각료들 사이에 잠시간 소란이 일었던 것이다.

물론 금방 정리됐고, 이제 나에게 내려질 처분과 징계가 발표될 차례였다.

이내 그것이 아이르만의 입을 타고 대전에 울려 퍼졌다.

“라이오넬 라인하트에게 수여될 예정이었던 백작위와 영지는 수여되지 않는다. 그리고 향후 라이오넬 라인하트의 중앙 정계 진출을 금지한다.”

“……!!!”

웅성웅성.

대전이 다시 한번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이번 소란은 그 정도가 훨씬 심했다.

대전 전체가 대신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영지와 백작위야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 칠 수 있었다.

소드마스터라고는 하나 이제 겨우 19살.

아직 이르다고 판단할 여지도 존재했다.

마른오징어 쥐어짜듯 억지로 짜낸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하나, 중앙 정계 진출 금지는 그렇지 않았다.

이건 가능성 자체를 차단해 버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로만 제국 황태자가 엮인 일이니만큼 어쩔 수 없는 부분일지도 몰랐다.

이 정도는 해야 제국에게 더는 꼬투리 잡히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단, 처벌 당사자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치부하고 넘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럴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것이 모두가 웅성거림과 함께 내 반응을 살피는 이유였다.

모두가 나의 극렬한 반발을 예상하는 것이다.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나는 처분에 대한 불만을 단 한마디도 늘어놓지 않았다.

내려진 그대로 받아들였다.

“저에게 내려진 처분, 모두 받아들이겠습니다.”

“……!!!”

이로 인해 대전은 또다시 침묵에 휩싸였다.

앞서와 같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침묵이 아니었다.

충격이 유발한 자연스러운 침묵이었다.

덕분에 좋은 조건이 마련됐다.

준비한 다음 말을 뱉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

하여 나는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다만, 저에게도 한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