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장: 대륙 최연소(2)
기사들의 무기는 여전히 들려 있는 상태였다.
저벅, 저벅.
그러나 그 방향은 올바르지 못했다.
그들의 무기가 겨눠진 곳에 더 이상 내가 서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이미 걸음을 옮기고 있는 중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그렇다고 내 걸음이 잡지 못할 정도로 빠른 것도 아니었다.
기사가 아니라 일반인이라 해도 잡을 수 있을 만큼 평범한 속도에 불과했다.
그저 이들이 잡지 못하는 것일 뿐.
싸울 의지 자체가 완전히 꺾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인 기사들의 오러 또한 그 방증이었다.
나는 그런 기사들 한가운데를 태연하게 가로질렀고 말이다.
“너……, 라이오넬 네놈, 대체 어떻게……?”
튀어나올 듯 크게 떠진 눈, 잘게 떨리는 목소리의 크리스토퍼.
이 상황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는지 연신 ‘말도 안 돼’, ‘어떻게’ 따위를 읊조리는 그였다.
하지만 그의 심리 상태가 어떠한지는 내 알 바 아니었다.
“벌써 세 번째입니다, 입 다물라는 말.”
“…….”
세 번째였다.
그리고 네 번째는 필요 없을 것으로 보였다.
크리스토퍼는 그대로 합죽이가 되어 버렸으니까.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입이 꿰매진 크리스토퍼와 얼어 버린 그의 기사들을 등 뒤에 남겨 둔 채로.
그들은 더 이상 내 걸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우뚝.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걸음은 곧바로 저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중간에 다시 한번 우뚝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뒤에 남겨진 자들이 원인일 리는 만무했다.
원인은 정면에 있었다.
달칵.
안에서부터 열리는 저택의 정문에.
그리고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한 인물에게.
“심상치 않은 힘이 느껴지기에 나와 봤더니, 이건 정말 의외로군. 그 힘의 주인이 자네였던 건가, 라인하트 공자?”
“그렇습니다, 다스 백작님.”
인물의 정체는 로만 제국의 브루노 다스 백작.
황태자의 호위 기사이기도 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나와도 이미 안면을 튼 상태였다.
그간 몇 차례 황태자와 직접 만남을 가졌던 바 있고, 그때마다 얼굴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것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 상황에 전혀 중요치 않은 것들이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브루노라는 인간 그 자체였다.
그가 검으로 일가를 이룬 대가, 즉 소드마스터라는 사실 말이다.
이 말인즉슨, 내가 최종적으로 레나와 황태자에게 도달하기 위해서는 소드마스터를 꺾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것도 비극을 막으려는 목적이니만큼 최단 시간 내에.
“그 나이에 벌써 소드마스터라고?”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운? 그게 결코 운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는 걸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모르겠나? 이거야 원, 어이가 없다 못해 박탈감까지 들 지경이야.”
애초에 내가 오러 블레이드를 꺼내 든 것도 이 사람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단순히 크리스토퍼와 그의 기사들을 처리하는 일뿐이었다면, 굳이 소드마스터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을 터.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차피 브루노를 잡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오러 블레이드를 상대하는 데에는 같은 오러 블레이드가 기본 전제인 법.
하여 드러낸 것이다.
“어쩌다 보니 그리됐습니다. 그보다 지금은 제가 급하게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혹시 비켜 주시겠습니까?”
“그럴 리가 있겠나? 안에 어떤 분이 계시는지 자네도 뻔히 알 텐데? 그런 만큼 지금 자네가 얼마나 무모한 짓을 벌이는 중인 건지도 잘 알 테고.”
“알긴 압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갈 작정입니다. 비켜 주시지 않는다면,”
당연히 알고 있었다.
애초에 다 알고 내친걸음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이제 와 거리낄 이유 같은 건 없었다.
대화를 길게 끌고 갈 생각도 없었다.
여정을 들어 올렸다.
“강제로 뚫어 내서라도.”
그리고 겨누었다.
최종 목적지로 향하는 길의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 장애물을 향해.
“눈에 뵈는 게 없군. 자신감이 지나치다 못해 광오해. 가능할 거라고 보나?”
굳이 답변은 필요치 않았다.
검사는 검으로 말하는 법이니까.
브루노 역시 답을 바라고 던진 질문이 아니었을 터.
기다리지 않고 검을 빼 드는 브루노의 행동이 그 증거였다.
지체 없이 나를 향해 겨누어지는 그의 검첨 역시도.
지잉!
지이잉!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처음부터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 올렸다.
“들어와라.”
다만, 그다음은 선후가 있었다.
나에게 선공을 양보하는 브루노였다.
같은 소드마스터 사이에도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이 차이는 대개 경력과 경험의 깊이로부터 비롯된다.
따라서 브루노 본인이 우위에 있다는 판단은 객관적으로 잘못됐다고 보기 어려웠다.
같은 소드마스터라 하나 나는 아직 20살도 안 된 애송이.
아무래도 경험은 부족하리라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일 수밖에 없었다.
40대 후반에 접어들며 완숙의 단계에 다다른 브루노 본인에 비한다면 말이다.
“그러시다면.”
나 또한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오히려 브루노의 착각이 고맙다면 또 모를까.
해서 사양 않고 양보를 받아들였다.
먼저 짓쳐 든 것이다.
그리하여.
콰광!!!
첫 충돌이 일었다.
검과 검의 충돌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굉음과 함께.
쿠구구구구~
격돌지점을 진원지로 퍼져 나가는 충격파 역시 엄청났다.
대기의 꿀렁임이 눈에 보일 지경.
물론 고작 한 번으로 끝날 격돌은 아니었다.
콰강! 콰캉!! 콰쾅!!!
충돌과 굉음, 충격파가 쉼 없이 발생했다.
내가 계속해서 짓쳐 들었고, 브루노는 이를 받아넘겼다.
지속적인 나의 공세와 브루노의 수세.
그러나 여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었다.
브루노는 모든 검격을 침착하게 받아넘겼으며, 나 또한 필사적으로 공격하지 않았으니까.
아직은 그저 탐색전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물론 흠뻑 빠져들게 만들기에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검사라면 도저히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이 대결, 이 살 떨리는 검격의 교환에.
무려 소드마스터끼리의 대결이었다.
흩날리는 오러 파편에 살짝 스치는 것만으로도 승부가 갈릴 수 있었다.
가벼운 탐색전조차도 긴장의 끈을 극도로 팽팽하게 당겨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레나 구출이라는 지상 과제를 수행 중인 나였다.
그런 나조차도 까딱하다가는 대결 자체에 심취해 버릴 것만 같은 중독성을 지니고 있었다.
급박한 처지에 놓인 내가 이럴진대, 브루노는 어떻겠는가?
그는 이미 진심으로 이 대결 자체에 흠뻑 젖어 든 것으로 보였다.
슈아악~
콰광!!
그가 수세의 와중에 강력한 역습을 가해 왔다.
이에 나는 무리하지 않고 살짝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브루노 또한 곧장 따라붙지 않았다.
“정말 온전한 성취를 이뤘군. 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말이야.”
대신 입을 열었다.
당연히 시간을 끌거나 대결 진행을 늦추고자 함은 아니었다.
되려 그 반대였다.
“이만하면 간 보기는 충분한 듯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들어가지.”
한층 더 흠뻑 빠져들고자 하는 것이다.
간단했다.
브루노 본인도 적극적인 공세에 나서겠다는 의미.
파앗!!
그는 그것을 실제로 행동에 옮겼다.
입을 닫자마자 벌어졌던 거리 역시 순식간에 좁혀 나가는 그였다.
이번에는 브루노가 먼저 짓쳐 들기 시작한 것이다.
슈아아악~!
동시에 파괴적인 검격도 함께였다.
단어 뜻 그대로였다.
그의 검은 파괴적이었다.
힘에 집중한다는 점은 라인하트 검법과 비슷하지만, 그 결이 달랐다.
라인하트 검법이 적을 짓누르는 무게에 치중한다면, 브루노의 검은 적을 깨부수는 순수한 파괴력에 치중하고 있었다.
강검 계열인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저돌적이었다.
자연스레 내 왼 어깨 위쪽에서부터 베어져 내려오는 그의 검격 또한 그러했다.
중후함보다는 저돌성이 가미된 사선 베기.
내 검과 오러 블레이드, 그리고 몸통까지, 모든 것을 산산 조각 내 버릴 기세였다.
정석대로라면 이 지점에서는 흘려보내는 것이 맞았다.
이미 상대에게 공세를 내준 상황.
그렇다면 조금 전의 브루노처럼 수세를 취하는 편이 일반적이었다.
공격해 들어오는 상대의 힘을 빼고 틈을 만들어 역습까지 취할 수 있도록 말이다.
굳이 정면으로 맞대응하여 손해를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
스악~!
쿠콰광!!!
하지만 나는 물러나지 않았다.
수세를 취할 생각 자체가 없었다.
브루노의 강검에 실린 파괴력을 흘려보내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쳤다.
맞대응으로 인한 손해?
감수할 작정이었다.
어차피 이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승부를 볼 지점은.
주어진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이 대결을 끝내고 레나에게 가야만 했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공세로 전환하며 저돌적으로 짓쳐 든 브루노.
그만큼 파괴적이었다.
대신, 자세는 그만큼 불안정해졌다.
수세 때와 비교하면 무게중심이 대폭 높아진 상태인 것이다.
물론 평범한 소드마스터끼리의 대결이라면 딱히 문제 되지 않았을 부분일 터.
그러나 브루노에게는 안타깝게도 나는 평범한 소드마스터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비장의 무기가 존재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이 비장의 무기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콰가가가각~!
순간적으로 대치 국면이 펼쳐졌다.
나와 브루노가 검을 사선으로 맞댄 채 힘겨루기를 하는 그런 전형적인 대치 국면.
지금이었다.
사아아아~
정령력을 끌어 올렸다.
끌어 올릴 수 있는 최대의 힘으로.
그러고는 그것을 모조리 한 지점에 쏟아부었다.
여정과 브루노의 검이 맞닿아 있는 바로 그 지점에 말이다.
“……!”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브루노.
당연한 반응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힘일 테니까.
단순히 기색에서 그치지 않았다.
팽팽하던 대치국면 또한 순식간에 깨져 나갔다.
압도적인 무게에 눌려 브루노의 검이 아래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면 검을 놓치든 아니면 무릎을 꿇든 둘 중 하나는 할 수밖에 없는 상황.
까가각~
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소드마스터의 경지는 운으로 도달한 게 아니었다.
당황했을 이 순간에조차 기지를 발휘하는 브루노였다.
그는 억지로 버티지 않았다.
찍어 누르는 힘에 그대로 순응하며, 살짝 한 발만 빼려 하고 있었다.
그럼으로써 검을 놓치지도, 무릎을 꿇지도 않은 채로 대결을 이어 가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말이 쉽지 결코 아무나,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대응이 아니었다.
힘의 적절한 분배와 완벽한 밸런스 유지가 중요했다.
하나라도 틀어졌다가는 그대로 게임 오버.
오히려 버티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 자명했다.
스윽.
그리고 브루노는 이것을 해냈다.
여전히 검을 맞댄 채로 최적의 타이밍에 오른발을 빼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제 빼낸 이 오른발을 한 걸음 뒤의 목표 지점에 안착시키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하면 계속해서 대결을 이어 갈 수 있었다.
비록 극단적인 수세에 몰리겠으나, 우직하게 버티다 보면 분명 기회는 또다시 찾아올 터.
무사히 오른발을 안착시키기만 한다면 말이다.
사아아~
문제는 내가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리 없다는 점이었지만.
나는 브루노의 오른발을 무사히 안착시켜 줄 생각이 없었다.
이번에도 역시 정령력이었다.
정령력으로 안착하려는 브루노의 오른발을 잡아당겼다.
움찔.
그리 세게 잡아당긴 것은 아니었다.
그저 브루노가 약간 움찔할 정도가 다였다.
“헛……!”
그거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찰나 간의 틀어짐.
이것만으로도 밸런스는 완전히 붕괴됐다.
이에 당황한 기색을 넘어 아예 당혹성까지 내뱉는 브루노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타이밍에 밸런스 붕괴란, 곧 완벽한 기회를 의미했으니까.
여전히 그와 검을 맞대고 있는 나에게 말이다.
까각.
브루노의 검을 무겁게 찍어 눌러 가던 여정.
그런 여정의 방향을 완전히 틀었다.
칼자루 끝에 부착된 폼멜이 브루노의 머리 쪽으로 향하도록.
화악~
퍼걱!!!
그러고는 정통으로 가격했다.
브루노의 관자놀이를.
“컥……!!”
뭉툭한 쇳덩이에 인체의 급소를 무방비로 가격당한 상황.
인간이라면 정신이 날아가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털썩.
아무리 소드마스터라 해도 예외는 되지 못했다.
브루노는 단 한 방에 의식을 잃었고, 그대로 썩은 통나무처럼 쓰러지는 장면을 연출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일련의 상황과 장면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뿐이었다.
…….
무려 소드마스터 간의 대결이었다.
백이면 백, 장시간의 피 튀기는 혈전을 예상할 수밖에 없는 그런 초월자들 간의 대결 말이다.
그런 것이 이토록 단시간 내에, 핏방울 하나 튀기지 않은 채로 허무하게, 그리고 일방적으로 끝나 버릴 것이라고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을 터.
제가 본 광경을 쉽사리 믿지 못함이 당연했다.
그것이 무거운 침묵의 형태로 도출되고 있었다.
이 대결을 관람한 모두에게서,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그럼 다녀와서 봅시다, 크리스토퍼 왕자.”
그러나 정작 이 말도 안 되는 광경을 써낸 당사자는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중이었다.
딱히 감흥을 느낄 만한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런 결과를 설계하고 시작한 대결이었으니까.
저벅저벅.
그렇기에 아무렇지 않게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길 뿐이었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를 향해서.
히끅, 히끅.
왕자 같지도 않은 한심한 인간의 딸꾹질만을 등 뒤에 남겨 놓은 채로 말이다.
* * *
확실했다.
브루노 다스가 처음이자 마지막 장애물이었다.
저택 안 곳곳에 배치된 기사들은 이렇다 할 걸림돌조차 되지 못했다.
무모하게 달려들었다가 하나같이 정신을 잃고 고꾸라질 뿐이었다.
그렇게 도달한 오늘의 최종 목적지.
달칵.
마지막 남은 기사까지 기절시킨 뒤, 그곳의 문을 열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레나, 그리고 황태자 아이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