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장: 대륙 최연소
“흠, 이해가 안 되네…….”
나는 내가 적어 냈던 답안지와 그 위에 적힌 성적을 보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적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그래플 스트라우스가 타박을 해 왔다.
“왜 이해가 안 돼? 딱 봐도 되는구만.”
“난 분명 교과서에 있는 거랑 교수님이 알려 주신 내용을 그대로 써냈거든? 그런데 이 성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한다는 거야?”
이에 내가 쓴 전술학 답안지를 그래플에게 들이밀었다.
맨 위 내 이름 옆에 70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는 답안지.
100점 만점에 70점.
평균에도 못 미치는 평범 이하의 성적이었다.
나는 이 점수를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였고 말이다.
물론 전술학 기말 평가의 점수가 어떠하든 나한테는 별 영향이 없었다.
제국 황도 아카데미 역시 슈라우드 왕도 아카데미와 마찬가지였다.
영지 귀족 출신에게는 이렇다 할 제약이나 강제성을 부여하지 않았다.
어떤 수업이든 들을 수 있고, 그 수업의 학기 말 평가를 쳐도 그만, 치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더구나 나는 교류 생도인 동시에 검사이기까지 했다.
그래플과 함께 다니다 보니 얼떨결에 듣게 된 전술학 수업.
그런 수업의 시험 점수 좀 안 좋다고 해서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나 스스로 살짝 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얼떨결에 듣게 된 수업이라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들었다.
그리고 굳이 안 쳐도 되는 시험까지 쳤다.
한데, 점수가 생각했던 것만큼 나오지 않은 것이다.
분명 나한테 특별히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그렇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깔끔한 기분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라이, 이 친구야. 누가 검사 아니랄까 봐 이렇게 고지식해? 교과서랑 수업 내용대로만 답을 쓰면 어떤 전술학 교수님이 옳다구나 하고 좋은 점수를 주겠어? 교수님이 수업 시간 내내 말씀하셨잖아, 전술학은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으음…….”
“그런 생물을 대하는 사람이 이렇게 죽은 답안을 써내면서 좋은 점수를 바라면, 그거야말로 도둑놈 심보지. 솔직히 이 점수도 교수님이 후하게 주신 거야. 나였으면 60점도 안 줘.”
반면, 그래플은 생각이 달랐다.
그는 내 답안지에 대해 신랄한 평가를 이어 갔다.
“그런가?”
“당연히 그렇지. 당장 이 문제만 해도 봐. 농성 상황에서 수비 측인 우리의 병력이 공격 측의 1/3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어떤…….”
그리고 나는 이에 대해 어떠한 반박도 가하지 못했다.
그래플 앞에는 100점짜리 답안지가 떡하니 놓여 있었으니까.
그곳에는 답안의 전술적 가치에 대한 교수의 개인적 견해까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더구나 이어지는 그의 세세한 설명 또한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중이었다.
상황이 이러한데 반박을 가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아무리 수비 측이 유리하다지만 그래도 3배라는 병력 차이는 그리 간단하게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게…….”
“잠깐만.”
그렇게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한창 내 점수를 받아들여 가던 때였다.
“어디 이해 안 되는 부분 있어?”
“그런 게 아니라, 잠깐만.”
샤라락~
“……!!!”
바람이 느껴졌다.
동시에 나를 재촉하는 것 역시도.
바람이 나를 재촉한다?
그렇다면 내가 취할 행동은 한 가지뿐이었다.
쿠당탕~!
쾅!!
강의실을 박차고 나왔다.
그 과정에서 문이 박살 났지만, 당장 그따위에 신경 쓸 겨를 같은 건 없었다.
파앗!!
“라이……!!!”
곧바로 몸을 날렸다.
등 뒤로 그래플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납득시킬 여유 또한 없었다.
지금은 일단 움직일 때였다.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샤라라락~
그런 나를 바람이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주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아인의 정령이었다.
일전에 아인에게 부탁했던 바가 바로 이것이었다.
바람의 정령을 레나에게 붙여 달라는 것.
아인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레나의 활동 범위는 황도 아카데미 내로 한정돼 있으며, 그마저도 단순 관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종일 붙여 놓는다 해도 힘의 소모는 크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인은 내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또, 완벽하게 이행해 주었다.
덕분에 내가 함께해 주지 못하는 동안에도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이 안배가 빛을 발했다.
바람의 속삭임 덕분에 레나에게 변고가 생겼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더불어 그 인도에 따라 지체 없이 현장으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단, 여유가 넘치는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레나에게 무슨 비극이 펼쳐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
최단 시간 내에 레나에게 도달해야만 했다.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기 전에 말이다.
따라서 주위 시선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력으로 바람의 인도를 따를 뿐이었다.
샤락~
그리하여 일차적으로 도달한 곳은 아카데미 학장실.
바람은 분명 학장실 안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면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어차피 안쪽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상황.
콰직!
잠긴 문고리를 그대로 부쉈다.
학장실이고 뭐고 지금은 신경 쓸 계제가 아니었다.
오늘 내가 최종적으로 부딪칠 상대는 황태자 아이단이 될 터.
학장실 기물파손쯤이야 사소한 해프닝 축에도 끼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단숨에 학장실로 들어섰다.
…….
역시나 비어 있는 내부.
육안으로만 봐서는 레나가 어디로 끌려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비서실 쪽을 제외하면 이곳은 밀실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스릉~
하지만 강의실을 박차고 나온 직후부터 내 행동은 지극히 일관적이었다.
그 어떤 망설임도, 거리낌도 드러내지 않았다.
지금이라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거침없이 여정을 빼 들었다.
슈아악~
그러고는 휘둘렀다.
정령이 가리키는 바로 그곳, 학장실 한쪽 벽을 가득 메운 책장을 향해.
쿠과광!!
베거나 가르지 않았다.
그냥 책장 자체를 통째로 박살 냈다.
그리하여 민낯을 훤히 드러내게 된 비밀 통로.
그곳을 향해 잠시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내가 이처럼 서두르는 이유.
그것은 또렷이 남아 있는 회귀 전의 기억 때문이었다.
회귀 전, 레나가 왕국에 복귀한 직후부터 소문 한 가지가 떠돌았다.
레나와 황태자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었다.
사절단의 일원으로 제국에 가 있는 동안 연인 관계가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소문에서 그치지 않았다.
실제로 곧장 제국과의 혼담이 논의됐고, 일사천리에 진행됐다.
레나가 황태자의 네 번째 부인이 된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소문에는 악의적인 루머가 섞여 있었다.
레나가 이미 황태자와 잠자리를 가졌다는 그런 루머.
이것이 소문과 함께 사교계에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마치 누가 일부러 퍼뜨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당연히 일국의 왕녀인 레나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왕실이 떨이하듯 제국에 레나를 넘긴 것도 아마 이 루머 때문이었을 터.
물론 나는 이런 것 따위를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검술 경지를 끌어 올리기도 바빠 죽겠는데, 사실 확인도 안 되는 루머 따위, 내가 알 게 뭐란 말인가?
그렇기에 루머를 알기 전이나 후나 내 행동은 달라지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아마 이런 점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절단에서 돌아온 뒤, 레나의 방문이 부쩍 잦아졌던 것은.
레나는 왕국 복귀 이후 수시로 브로든과 나를 찾아왔다.
그러고는 내가 브로든에게 지도받고 훈련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곤 했다.
나의 이기적인 무관심이 오히려 레나에게는 어떤 도피처 같은 것 아니었을까?
정치 쪽이라면 아예 신물을 내는 브로든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었고 말이다.
어찌 됐든 이런 레나의 방문은 그녀가 황태자비로 다시 제국에 가기 전까지 계속됐다.
비단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물리적 거리로 인해 더 이상 방문은 안 될지언정 그녀의 관심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20년도 더 지난 시점에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 준 것이다.
그녀에 대해 그저 무관심했을 뿐인 나를 위해서.
그래서였다.
이번에는 무관심하지 않을 것이다.
레나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할 작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
모조리 부술 것이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콰과광!!
그렇게 통로 끝의 문마저 완전히 박살 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다.
“응? 뭐야?”
“경계 태세!”
“왕자님을 경호하라!”
동시에 일련의 광경을 눈에 담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는 크리스토퍼와 다급히 경계 태세에 들어가는 기사들.
이것만이 아니었다.
포박된 채 주저앉아 있는 인원도 시야에 들어왔다.
시녀 하나와 기사 둘.
모두 눈에 익은 이들이었다.
“라, 라이오넬 공자님!!!”
마찬가지였다.
포박된 이들 역시 나를 알아봤다.
클로렐라라는 이름을 가진 레나의 시녀가 나를 불렀다.
반가움, 다급함, 절박함 따위의 감정을 가득 담아서.
“왕녀님께서 저 저택 안에 계세요!!”
굳이 시녀의 말이 아니어도 짐작할 수 있었다.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정원 가운데 위치한 저 저택 안에 레나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황태자 아이단과 함께.
그렇다면 이제 저곳으로 들어갈 차례였다.
“네놈이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지?”
단, 그 전에 처리해야 할 놈이 있었다.
“물었다. 여기는 어떻게 온 것이냐?”
“크리스토퍼 왕자.”
“뭐라고? 왕자?”
바로 크리스토퍼.
놈과 놈의 주위에 늘어선 기사들을 우선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네놈이 이제는 진정으로 미친 모양이구나. 감히 일개 자작가 차남 따위가 왕자인 나에게 존칭을 생략해?”
“입 좀 다물어 주시겠습니까? 왕자 같지도 않은 인간이랑 입씨름할 시간 같은 거 없으니까.”
“뭐……?”
오래된 생각이었다.
크리스토퍼가 왕자 같지도 않은 한심한 놈이라는 생각은.
이 사건이 기점이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크리스토퍼의 한심함은 절정을 향해 달려가게 된다.
크리스토퍼는 제 동생을 함정에 빠뜨린 뒤, 본인의 이익을 위해 팔아먹었다.
이것만으로도 지탄받기 충분하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이해는 해 볼 수 있었다.
평소 레나와의 관계도 그렇고, 원래 정치라는 게 그만큼 더러운 것이니까.
하지만 이다음부터가 문제였다.
이런 더러운 짓을 벌였으면, 최소한 그에 따른 이익만큼은 확실하게 챙겨야 했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냥 망나니짓을 벌인 것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크리스토퍼는 그냥 망나니였다.
이득?
제국으로부터 당장 이득처럼 보이는 것들 몇 가지를 챙기기는 한다.
그러나 동시에 반드시 지양해야만 할 것을 함께 가지게 된다.
바로 미움과 갈등.
정확히는 오브리가 국왕의 미움, 그리고 그와의 갈등이었다.
레나는 오브리가 국왕이 각별하게 여기는 딸이었다.
한데, 그런 딸을 명색이 오빠라는 놈이 똥통에 빠뜨렸다.
나아가 헐값으로 팔아먹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아비로서 미움을 품는 것이 당연한 상황.
비단 아비와 딸로서의 관계가 아니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명목적으로야 몰라도, 크리스토퍼는 실질적으로 국왕의 권한을 침범한 셈이었다.
이에 대한 갈등이 생기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귀족권이 강하다 하나, 그래도 국왕은 국왕.
그간 존재감이 별로 없어 간과한 것일 뿐, 후계자 선정에 있어 영향력을 지녔다는 점만큼은 분명했다.
그 결과, 이때부터 슈라우드 왕국 후계 구도에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여기에 제국이 끼어들면서 바람은 태풍으로 진화하게 되는 것이고 말이다.
“이 미친놈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입 좀 다물라고.”
그래도 지금까지 이 생각을 대놓고 드러낸 적은 없었다.
현실적인 귀찮음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러지 않아도 됐다.
내가 드러낸 솔직한 생각 이상의 충격을 선사할 작정이었으니까.
구우우웅~
여정 위로 오러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확실한 신호였다.
나는 무조건 저택으로 들어갈 것이며, 이를 위해 1왕자와 전투도 불사하겠다는 신호.
구우, 구웅, 구우웅~
이에 1왕자 측 기사들도 즉각적인 대응에 나섰다.
일제히 오러를 피워 올린 것이다.
얼굴에 긴장한 기색들이 역력했다.
내 실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일 터.
그렇다고 포기한 모양새는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극도의 긴장과 함께 필사의 각오들을 엿보이고 있었다.
나를 어떻게든 막아 보겠다는 작정인 것이다.
쿠구구우웅~
한데, 난 이 각오들을 받아 줄 생각이 없었다.
여기서 이들과 드잡이질 하는 시간 자체가 아까웠으니까.
그래서 더는 끌지 않았다.
끌지 않고 드러냈다.
쿠구구우우~
지잉!!!
각오 자체를 꺾어 버리는 압도적인 격차를.
그리고 선사했다.
앞서 드러냈던 솔직한 생각 이상의 충격까지도.
“말도 안 돼…….”
그렇게 공식적으로 선포되었다.
슈라우드 왕국 세 번째이자 대륙 최연소 소드마스터의 존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