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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72화 (73/200)

39장: 황태자의 노림수(2)

“전하께서 이토록 신경 써 주신다는 점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만, 굳이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을 듯하오. 어차피 차기 국왕은 내가 될 것이니.”

“물론 그리될 겁니다. 그렇고 말고요. 다만, 3왕자와 서부가 걸리적거리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들도 마냥 작은 세력은 아닌지라 순순히 양보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자칫 내전까지 번질 수도 있는 일이지요.”

“그렇긴 하지만…….”

마냥 아니라고 부정할 수만은 없는 부분이었다.

세력과 정통성 면에서 크리스토퍼와 동부가 앞서는 것은 분명했다.

따라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크리스토퍼가 국왕이 될 터.

하지만 그 과정에서 3왕자와 서부에 양보해야 할 것들이 적지 않았다.

내전으로 갈 작정이 아니라면 말이다.

“또, 라이오넬 라인하트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놈이 소드마스터가 된 후 왕자님의 반대편에 서는 장면을. 정말 많이 골치 아파지실 겁니다. 그리고 지금 추세로 보면 소드마스터는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겠지요.”

“으음, 라이오넬 라인하트…….”

갑자기 툭 튀어나온 라이오넬도 문제였다.

그와 크리스토퍼는 명백한 적대 관계.

만약 그런 라이오넬이 소드마스터가 된다면 저울추가 뒤집힐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현재로서 라이오넬과 3왕자 사이에 특별한 관계는 없다지만, 앞으로의 일은 모르는 법.

둘 다 크리스토퍼를 공통의 적으로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황태자 전하의 적극적인 지원 한 방이면 깔끔하게 해결됩니다. 제깟 놈들이 아무리 날뛰어 봤자, 전하의 힘 앞에서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니 말입니다.”

“…….”

제안을 접한 크리스토퍼가 침묵에 잠시 침묵에 잠겼다.

제국과 황태자의 손을 잡는 것.

3왕자와 서부, 그리고 라이오넬까지 단번에 찍어 누를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제국의 힘은 이런 것들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강대했으니까.

그렇기에 크리스토퍼가 곧장 거절하지 못하고 침묵에 잠긴 것이다.

집안싸움에 외세를 끌어들이는 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고민하실 필요 있겠습니까? 그 대가로 왕자님께 슈라우드의 국익에 해가 되는 일을 요구하는 것도 아닌 것을요.”

그리고 황태자는 예상했다.

크리스토퍼는 끝내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황태자가 파악한 크리스토퍼는 지닌 바 능력에 비해 욕심이 과한 인물이었다.

정치적 양보 같은 것을 염두에 둘 만한 위인이 못됐다.

이미 국왕은 본인이라고 저 스스로 확정 짓고 있는 이상 더더욱.

“그저 왕녀 하나 제국으로 시집보내는 일에 불과합니다. 그거 하나면 슈라우드 왕국을 온전히 왕자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심지어 뭐 대단한 것을 대가로 요구하는 바도 아니었다.

고작해야 레나 하나였다.

그렇지 않아도 눈엣가시 같은 그녀를 치워 버리는 일인 것이다.

그것도 크리스토퍼 본인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이오?”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크리스토퍼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금세 정리를 끝내고 제안을 받아들이는 그였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분명 최고의 선택을 내리신 것입니다.”

분명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단, 그 방향이 크리스토퍼를 향하지는 않겠지만.

황태자는 레나에게 이성으로서의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그녀를 황태자비로 삼으려는 계획에 분명 영향을 미쳤다.

하나,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영향에 불과했다.

황태자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그가 잘하고, 또 즐겨 하는 일을 하는 것.

내부의 갈등 유발과 이를 통한 갉아먹기 말이다.

고작 레나 하나가 아니었다.

당장은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레나는 갈등의 서막으로 작용할 예정이었다.

이 갈등을 시작으로 크리스토퍼는 서서히 궁지에 몰릴 것이며, 그리하여 더더욱 황태자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럼 우선 왕자님께서 …….”

* * *

저녁 시간이 가까워진 늦은 오후.

레나는 아카데미 복도를 다소 잰걸음으로 가로질렀다.

수업이 끝나고 막 교실을 나오던 그녀에게 찾아온 한 사람과 그가 들고 온 메시지 때문이었다.

찾아온 사람은 크리스토퍼의 시종, 메시지는 지금 당장 아카데미 학장실로 오라는 것이었다.

하여 레나는 곧장 그 시종을 따라나섰다.

그런 그녀의 뒤로는 시녀 하나와 호위기사 둘, 이렇게 셋이 전부였다.

아카데미 내부이니만큼 굳이 많은 인원을 데리고 다니지 않았던 것이다.

이윽고 학장실에 도착했고, 문을 열고 들어서니 크리스토퍼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레나는 그제야 영문을 물을 수 있게 됐다.

“무슨 일이야? 왕궁에서 급한 전언을 보내왔다니?”

이것이 레나가 부름에 곧바로 응한 이유였다.

슈라우드 왕궁에서 레나와 크리스토퍼에게 급히 보내온 전언이 있다는 것.

사안이 꽤 큰 모양이었다.

아카데미 학장실로 부른 것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나도 아직 모른다. 네가 오면 같이 전해 주겠다고만 했으니까. 다만, 통신이 아니라 직접 전령까지 보낸 걸 보면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거겠지.”

“그래서, 전령은 어디 있는 건데?”

한데, 크리스토퍼가 말하는 그 전령은 보이지 않았다.

레나도 안면이 익은 크리스토퍼의 시종과 호위 기사들뿐이었다.

이상하게 여긴 레나가 전령의 위치를 물었지만, 크리스토퍼는 답을 주지 않았다.

대답 없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갑자기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학장실 한쪽 벽에 설치된 책장을 향해 가는 크리스토퍼.

그러고는 그곳에서 책을 한 권 빼 들었다.

그러자.

쿠르릉~

책장이 저절로 움직이며 웬 비밀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크리스토퍼도 닫았던 입을 재차 열었다.

“따라와라. 이 통로 너머에 있다.”

“슈라우드에서 온 전령이……?”

“비밀 유지를 위해 제국에 특별히 부탁해서 은밀한 장소를 빌려 두었다고 하더군. 전령은 먼저 가서 기다리는 중이다.”

그런데 그 입을 통해 뱉어진 말이 어째 이상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왕궁에서 보낸 게 맞긴 한 거야?”

“맞으니까, 그냥 따라오면 된다.”

“이상하잖아. 급한 내용을 비밀스럽게 전해야 한다면서 전달 장소는 제국에게 빌린다고? 이게 지금 말이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해?”

왕궁에서 보낸 전령이 맞는지가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아니, 애초에 전령을 보내기는 한 것인지부터 따져 볼 필요가 있었다.

“솔직히 못 믿겠어. 왕궁에서 전령이 온 게 맞다면, 그냥 여기로 데리고 와. 어차피 제국에게 빌린 장소라면 여기나 저기 통로 너머나 다를 게 없으니까.”

“쯧, 하여간에 입 하나는 쓸데없이 잘도 조잘대는구나. 따라오라면 그냥 따라올 것이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그걸 지금…….”

“됐다. 애초에 네가 말로 해서 들을 녀석도 아니지. 나도 더는 말로 안 한다.”

더는 따져 보지 않아도 됐다.

제대로 따져 보기도 전에 답이 도출됐으니까.

크리스토퍼에게 뭔가 꿍꿍이속이 있는 상황.

그것이 곧바로 행동으로 드러났다.

짝.

박수를 크게 한 번 치는 크리스토퍼.

벌컥.

우르르.

이에 학장실과 연결된 학장 비서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옴과 동시에 레나와 일행을 포위하는 그들이었다.

“뭐 하는 짓이야?”

“그냥 순순히 따라와. 아랫것들 다치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스릉.

“와, 왕녀님…….”

당연히 항의는 소용없었다.

약간의 항의조차 즉각적인 위협으로 되돌아왔다.

시녀와 호위 기사들의 목에 칼이 겨눠진 것이다.

“…….”

레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크리스토퍼의 뒤를 따라 순순히 통로로 들어가는 것.

설령 반항한다 해도 시녀와 호위 기사들에게 상해를 입히는 것일 뿐, 끌려간다는 결과 자체는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결국,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통로에 발을 들이게 된 레나였다.

포박당한 상태의 시녀와 호위 기사들도 함께.

쿠르릉~ 쿵.

그런 일행의 등 뒤로 출입구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완벽하게 빼도 박도 못 하는 상황.

사태파악을 위해 무슨 일을 벌이는 건지 크리스토퍼에게 수차례 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침묵뿐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레나 또한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저 침묵한 채로 묵묵히 걷는 수밖에.

그렇게 무거운 침묵 속에서 15분가량 걸었을까?

이윽고 통로의 끝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웬 잘 가꿔진 정원과 우뚝 솟은 저택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일행은 둘로 갈라졌다.

물론 이 또한 강제임은 당연했다.

저택 안으로 입장 가능한 사람은 크리스토퍼와 레나뿐이었다.

나머지는 정원에 우두커니 남겨지게 됐다.

“이제는 말해 줄 때도 되지 않았어? 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거야?”

저택 안으로 들어선 레나가 다시 한번 꿍꿍이를 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답을 주는 크리스토퍼였다.

“너에게 특별히 기회를 주려는 거다. 기껏해야 왕녀에 불과한 네가 왕국의 안녕과 번영에 이바지할 기회.”

하지만 이 답변 역시 뜬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했다.

이것만으로는 대략적인 짐작조차 어려웠다.

“그러니까, 그 기회라는 게 대체 어떤 건지 알려 달라고. 뭔지 알아야 그걸 잡아서 왕국에 이바지하든 말든 할 거 아니야.”

“넌 뭘 하려 들 필요 없다. 그냥 조신하게, 왕녀답게 순종적으로 따르기만 하면 돼.”

더구나 이마저도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크리스토퍼는 레나의 시도를 가볍게 뭉개 버릴 뿐이었다.

이래서야 레나가 뭘 해 볼 수 있는 게 없었다.

물리적인 탈출은 꿈도 꿔 보지 못했다.

저택 안에도 기사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중 몇은 이미 레나의 양옆과 뒤에 달라붙은 상태였고 말이다.

“다 왔다.”

주어진 시간조차 턱없이 부족했다.

꽤 넓은 저택임에도 불구하고 3층까지 순식간이었다.

그리하여 크리스토퍼의 최종 목적지로 추정되는 곳에 끝내 도달하고야 말았다.

3층에 위치한 커다란 방문 앞이었다.

“크리스토퍼 왕자님과 셀레스티나 왕녀님 당도하셨습니다.”

그러자 문 앞에 대기 중이던 기사가 안에 두 사람의 도착을 알렸다.

그러고는 안으로부터의 답변은 기다리지 않은 채 곧바로 문을 열었다.

이에 크리스토퍼가 먼저 안으로 발을 들였고, 레나 또한 그 뒤를 따랐다.

사방에서 가해지는 무언의 압박 때문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파악하게 됐다.

크리스토퍼가 품은 꿍꿍이의 실체를.

“고생했소, 크리스토퍼 왕자.”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황태자 전하. 로만 제국과 슈라우드 왕국의 관계가 더할 나위 없이 돈독해지는 일이지 않습니까? 왕국의 1왕자로서 한없이 기쁜 마음으로 수행했을 따름입니다.”

아이단 황태자였다.

방안에서 두 사람을 맞이해 주는 인물의 정체는.

이 일련의 사태를 꾸민 진정한 실체 역시도.

크리스토퍼는 그저 아이단이 세운 계획의 장기 말에 불과할 뿐이었다.

“전하의 존엄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모자란 녀석입니다. 그래도 부디 좋은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그 사실이 레나가 뭐라 채 입도 떼기 전에 밝혀졌다.

아이단에게 마지막 인사말만을 남긴 채 몸을 돌리는 크리스토퍼였다.

그런 그의 표정은 본인이 할 일을 모두 끝마쳤을 때의 홀가분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고는 그 상태 그대로 휑하니 방을 나가 버렸다.

레나에게는 일언반구조차 남기지 않은 채로.

“앉으시오, 왕녀.”

그렇게 정체 모를 장소에 아이단과 단둘만 남게 된 레나.

이런 그녀에게 아이단이 자리를 권했다.

어쩐지 불길해 보이는 옅은 미소와 함께.

“아니, 이제 나도 그대를 레나라고 부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군.”

움찔.

절로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미소였다.

레나가 이곳까지 오게 된 과정, 크리스토퍼의 마지막 표정, 아이단과 둘만 남겨진 현 상황 등 많은 것들이 곁들어진 그런 미소였으니까.

그리고 이 본능적인 경직의 와중에 레나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정확히는 그것도, 한 가지도 아니었다.

한 명의 사람이었다.

‘라이…….’

라이오넬 라인하트.

오직 그 한 사람뿐이었다.

* * *

그 시각, 황도 아카데미 내 전술학 강의실.

쿠당탕~!

쾅!!

갑작스레 소란이 일더니 순식간에 강의실 문이 터져 나갔다.

말 그대로였다.

문이 안쪽에서부터 산산 조각나며 파편으로 비산한 것이다.

동시에 웬 사람 형체 하나를 뱉어 냈다.

파앗!!

물론 그마저도 눈 깜박할 새에 사라져 버렸지만.

“라이……!!!”

등 뒤에 그를 부르는 누군가의 외침만을 남겨 놓은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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