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장: 구출 작전(2)
휘잉~
툭.
다만 통신구의 비행은 그리 길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공중을 가로질러 날았고, 머지않아 종착지에 도달했다.
그 종착지란 당연히 한 곳뿐.
내 손 말고 통신구가 안착할 만한 곳은 존재할 수 없었다.
당연했다.
애초에 내 손이 불러들인 녀석이었으니까.
“……?”
한데, 내 손이 불러들인 것은 통신구만이 아니었다.
한 가지를 더 불러들였다.
아니, 끌어모았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그 대상이 바로 11쌍의 시선이었기 때문이다.
방금 벌어진 기현상에 대한 의문 어린 11쌍의 시선들.
그리고.
쩌저저적~ 콰창~!
이 의문에 곧바로 느낌표를 더했다.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쏠린 그 순간, 통신구를 박살 낸 것이다.
내 손안에서, 산산조각으로.
일종의 선언이기도 했다.
침입에 대한 보고는 허용할 수 없었다.
그 시기와 내용 모두 내가 정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뭐였지? 마법인가?”
이윽고 고드 경이라 불리는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기사가 입을 열었다.
방금 그의 눈앞에서 일어난 기현상에 대해 파악하고자 하는 것.
“아닙니다. 분명 마력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하면 방금 그건 대체……?”
물론 그게 가능할 리 없었다.
마법사의 말마따나 마력은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오러는 더더욱 아니었으니까.
‘마법이라…….’
어쩌면 고드라는 기사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방금 저들이 목격한, 그리고 지금부터 직접 몸으로 겪게 될 현상은 마법보다 더 마법 같은 힘에 기인한 것이니 말이다.
사아아아~
머지않아 위에서도 이상한 낌새를 알아챌 터.
더는 지체할 시간도 이유도 없었다.
하여 곧바로 마법보다 더 마법 같은 힘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퍼뜨렸다.
남은 황태자의 주구 11명을 모두 그 안에 담을 수 있도록.
쿠구구구궁~!
그러고는 일제히 찍어 눌렀다.
짙고도 묵직한 어둠의 힘으로.
* * *
“죽어!!!”
슈아악~!
황태자의 기사라고는 둘밖에 남지 않은 상황.
그중 하나의 목을 베어 버리는 순간, 등 뒤에서 참격이 날아왔다.
찰나의 빈틈을 노린 회심의 일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위력 또한 상당했다.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오러가 실린 검은 웬만해서는 경시가 어려웠다.
차앙~!
문제는 내가 그 웬만하지 않은 경우에 속한다는 점이었다.
고드라는 성의 기사가 날린 일격쯤은 이미 계산 범위 내에 있었다.
심지어 중력의 방해까지 받으며 휘둘러진 검이었다.
그런 일격을 막는 것쯤은 식은 수프 먹기보다도 쉬운 일.
결국, 상급 기사의 검은 허무하게 막히고 말았다.
그것도 사람 팔뚝 길이에 불과한 짧은 단검에.
끼기긱~
그리고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단검이 사선으로 대치 중인 검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검신의 2/3 지점에 도달했을 즈음, 대략 기사의 왼쪽 어깨 부근에 도달했을 즈음이었다.
까가가각~
여기서부터는 수직으로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
왼쪽 어깨를 지나 그 아래 위치한 한 지점을 향해.
“크으읍~!”
당연히 기사는 막고자 안간힘을 썼다.
단검이 노리는 부위가 너무나도 명확했기 때문이다.
막지 못할 시 즉사 또한 면치 못했다.
하여 죽을 힘을 다해 찍어 누르는 단검을 밀어 올렸다.
까가가가각~ 푹!
하지만 절대적으로 역부족이었다.
단검은 결국 기사의 왼쪽 가슴에 박혀 들었다.
그러고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전진을 이어 갔다.
그 안에서 박동 중인 심장을 향해.
이윽고,
“이건…… 커흑, 이건 말도 안…… 끄헉!!”
단검이 그 목표 지점에 닿았다.
동시에 무참히 갈라 놓았다.
심장의 한 가운데를.
분노, 증오, 두려움, 의아함, 억울함 등 갖가지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섞인 기사의 읊조림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너, 넌 대체 누구…….”
기사는 결국 마지막 의문마저 끝내 다 뱉어 내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리고 이 기사가 끝이었다.
상급 기사의 죽음을 끝으로 정리가 마무리됐다.
루난 상단 지하에는 더 이상 황태자의 주구가 남아 있지 않았다.
현재 지하 3층에 널브러져 있는 11구의 시체가 마지막 주구들이었으니까.
이 정리의 과정에서 라인하트 검법은 최대한 사용을 자제했다.
그 깨달음까지 묻어 둔 것은 아니지만, 명시적으로 드러날 만한 초식들은 완전히 배제했다.
혹시 모를 흔적조차 남기지 않기 위함이었다.
끝까지 단검만을 무기로 쓴 것도 그런 연유.
물론 과한 조심성일지도 몰랐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더 컸다.
당장 제국에 라인하트 검법의 흔적을 알아챌 만한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렇기에 정말 여의치 않았다면 망설임 없이 사용했을 것이다.
혹시 모를 흔적에 신경 쓰느라 임무 자체를 망치는 건 둘도 없는 바보짓이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여의치 않기는커녕 오히려 여유가 넘쳤다.
따라서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회귀를 통해 얻은 또 하나의 강력한 무기, 마법보다 더 마법 같은 힘, 정령력 덕분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주구들 처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더욱이 오늘은 정령력으로 여러 가지 실전 경험도 쌓을 수 있었다.
그동안은 비밀 유지를 위해 꽁꽁 숨겨왔던 방식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어차피 이 안에서 있었던 일을 밖으로 퍼 나를 입은 존재하지 않을 터.
하여 망설임 없이 힘을 발휘했고,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방금 사용한 중력장이었다.
어둠의 정령력을 퍼뜨린 뒤, 그 영역 내에 있는 것들을 일제히 찍어 누르는 방식.
나는 이 방식에 중력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효과는 만족스러웠다.
권역 내에 들어와 있는 적들에게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적들의 움직임을 눈에 띄게 둔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유효 범위는 반경 10m가량.
물론 제한은 있었다.
이 자체로 익스퍼트급 기사들을 죽이거나 심각한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
또, 소드 익스퍼트 중급 이상에게는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오늘의 실전을 통해 확인된 사실들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해결책 또한 간단하게 도출됐다.
더할 나위 없이 명료했다.
정령력의 경지를 끌어 올리면 되는 것이다.
이보다 간단명료할 수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이것이 가장 어려운 해결책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주어진 길만큼은 확실했다.
어떤 장애물이 앞에 놓여 있든 그저 우직하게 밀고 나가면 그만이었다.
어찌 됐든 정령력 덕분에 신속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상황.
이제는 흔적까지 최소화해 가며 여기로 내려온 목적을 달성할 차례였다.
더는 남아 있는 황태자의 주구도 없겠다,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렇게 도달한 지하 3층의 끝에서 마지막 철문을 열어젖혔다.
그리하여 이윽고 눈에 담았다.
오늘 작전의 최종 목표, 하이엘프 아인한드라를.
그는 갖가지 족쇄와 구속구 따위를 주렁주렁 매단 채로 빈틈없이 결박된 상태였다.
이것만으로도 자력 탈출은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
물론 이게 다일 리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정신적 구속 역시 함께였다.
탈출은 아예 꿈조차 꾸지 못하게 만들어 둔 것이다.
그렇기에 일단은 아인한드라의 정신부터 되돌려 놓을 필요가 있었다.
지금부터 진행될 본격적인 탈출 과정에서 그를 둘러업고 가는 건 지나치게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게 그의 정신을 깨우는 일은 땅 짚고 헤엄치기나 다름없었다.
사아아~
어둠의 정령력을 일으켜 아인한드라를 둘러쌌다.
이거면 충분했다.
더 이상의 조치는 필요치 않았다.
그로부터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그때 그 인간이군.”
“그래, 아인한드라. 라이오넬 라인하트라고 한다.”
아인한드라가 정신을 차렸다.
나와 그 사이에 두 번째 대면이 성사된 것이다.
아인한드라 역시 이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국어를 할 줄 아는 건가?”
“할 줄 안다. 일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습득이 필수였으니까. 그래서 익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아인한드라에게는 하이엘프로서 겨울바람 일족을 지키고 이끌 의무가 있었다.
그렇기에 제국어를 익힌 그였다.
인간의 시대에 엘프로서 생존하고자 한다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 바람직한 이유는 아니지만, 어찌 됐든 덕분에 대화는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그러면 일이 좀 쉬워지겠네. 안 그래도 의사 전달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
“아인한드라, 난 널 구하러 왔어. 여기서 널 데리고 나갈 거야.”
하여 내 목적 또한 곧바로 밝힐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오늘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구출 대상인 아인한드라가 내 목적에 동의해 주지 않는다면 이후의 진행이 상당히 곤란해질 터.
내 계획은 단순히 그를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는 것에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인 그대가 날 구할 이유가 있나?”
“이유라…….”
“아니면 제국의 다른 인간들처럼 그대 또한 나를 이용하기 위함인가?”
처음부터 쉬울 거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인간이라면 학을 뗐을 것이 분명한 아인한드라였다.
엘프족이 지난 100년간 겪어 온 수난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당장 아인한드라 본인의 처지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인간을 증오하고 저주하기에 말이다.
그리고 나 또한 인간이었다.
아인한드라 입장에서는 어차피 제국 놈들과 별다를 바 없는 증오스러운 존재.
그런 존재가 뜬금없이 나타나서는 구해 주겠다고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솔직히 내가 그의 입장이라면 믿음은커녕 쌍욕을 퍼부었을지도 몰랐다.
“당연히 제국 놈들이나 다른 인간들처럼은 아니야. 그들처럼 너를 내 소유물로 삼으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단지, 이용의 목적이 아예 없다고는 말 못 하겠네.”
그렇기에 우선 내 솔직한 마음부터 밝혔다.
전해질 확률은 매우 낮지만, 어쨌든 설득의 시작은 진심을 내보이는 것부터였으니까.
진심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믿음 또한 얻기 어려운 법이었다.
“네 실력이 탐나는 것도 있고, 앞으로 내가 펼쳐 갈 싸움에 네가 큰 도움이 되리라고 여기는 것도 있거든. 구체적으로 따져 보면 이 외에도 더 많을 거고.”
아인한드라가 지닌 실력과 잠재력, 특수성 등을 고려하면, 그는 언젠가 나에게 커다란 도움이 될 만한 존재였다.
이런 것들에 대한 고려는 구출을 결심하는 과정에 분명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순수하게 정말 솔직한 내 마음은 그냥 그러고 싶어서라는 거야. 너랑 시선을 교환하고 나니까 왠지 모르게 꼭 그러고 싶어졌어.”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직감이었다.
경매장에서 그를 처음 봤을 때 제대로 눈에 담고 싶어졌고, 제대로 눈에 담고 나니 구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렇게 구하러 왔다.
한마디로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른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 믿어 달라는 건 아니야. 그거야말로 사기나 다름없지. 그러니까 일단은 나랑 같이 여기서 나가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렇다고 준비한 바가 이게 다는 아니었다.
내가 댄 솔직한 이유는 당연히 믿지 못할 터.
아인한드라를 설득할 수 있는 기술적인 근거들은 따로 준비해 왔다.
일단 이곳에서 나가는 것이 그에게 유리하다는 점, 나간 뒤에 그에게 어떤 식으로 믿음을 심어 주겠다는 점 등등 나름 치밀한 근거를 마련해 온 것이다.
“나간 뒤에는 너에게…….”
“믿는다.”
“응? 뭐라고……?”
“믿는다고 했다.”
한데, 그런 나름의 준비들이 순식간에 전부 쓸모없어졌다.
믿는다는 아인한드라의 한마디에 의해서.
“…대체 뭘 보고? 내가 그렇게 믿음직하게 생긴 인간이었나?”
“난 인간은 믿지 않는다. 단지 지금 네가 말한 이유를 믿는다는 것이다. 이유를 말하는 동안, 너에게서는 조금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아무래도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사실인 모양이었다.
하이엘프는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눈을 가졌다는 이야기.
그저 뜬소문이나 과장이라고 여겼다.
또, 설령 사실이라 해도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진위를 가리는 것과 믿음은 다른 영역의 문제.
이런 상황에서까지 증오스러운 인간의 말을 쉬이 믿어 줄 리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과 판단이 완전히 빗나갔다.
이야기는 사실이었으며, 아인한드라는 이런 상황에서조차 내 말을 믿고 있었다.
“…그래. 뭐가 됐든 이 부분도 고민할 필요 없어졌네.”
반대로 그가 나에게 거짓을 늘어놓는 것일 가능성도 매우 낮았다.
그에게 진실의 눈이 있다면, 나에게는 어둠의 정령력이 있었으니까.
나를 믿는다고 말하는 아인한드라의 감정은 무척이나 잔잔했고 말이다.
“이렇게 된 이상 굳이 더 끌 것도 없지. 잠깐 기다려. 바로 끊어 줄 테니까.”
하여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쥐고 있던 단검에 오러를 불어넣었다.
아인한드라를 결박 중인 족쇄와 구속구들을 끊어 버리기 위함이었다.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제국 인간들 말로는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그들이 곧바로 알아챌 수 있다고 한다.”
“당연히 그렇겠지. 딱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아티팩트들인데, 고작 경보 기능 하나 없을 리가 있나.”
그런 나를 아인한드라가 만류했다.
그를 구속하고 있는 것들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실제로 한눈에 보기에도 최고급 티가 줄줄 흐르는 그런 아티팩트들이었다.
아마도 끊는 순간 상당히 시끄러워질 터.
“근데 상관없어.”
하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이 검을 휘둘렀다.
슈각!
쩔그렁~!
“지금쯤이면 시간 다 됐을 거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