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58화 (59/200)

32장: 발악

내가 매튜에게 보낸 신호의 뜻은 간단했다.

저항하지 말라는 것.

매튜는 두말없이 이를 따랐다.

모두에게 저항하지 말 것을 지시했고, 그대로 순순히 포박당했으며, 다 같이 영주성으로 압송됐다.

그러고는 얌전히 영주성 지하 감옥에 수감됐다.

이 또한 다 같이 사이좋게 말이다.

여기까지가 어제저녁 야영 준비를 하다 말고 우리가 겪은 일이었다.

그리고 현재는 이 일을 겪은 때로부터 하룻밤이 지난 시점.

즉, 회귀 전 인생까지 통틀어 생애 처음으로 감옥에서의 하루를 보내게 된 것이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라이 경?”

“그럭저럭. 매튜 너는?”

“저도요. 감옥이나 야영이나 잠자리는 거기서 거기 아닐까 했는데, 이제 확실히 알겠어요. 야영이 훨씬 나아요.”

다만, 생애 첫 경험이라고 해서 밤을 꼴딱 새우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늘어지게 한숨 잔 뒤 방금 막 일어난 참이었다.

비단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매튜도 마찬가지였으며, 저편에서는 크로나가 기지개를 쫙 켜며 잠에 취했던 육체와 정신을 일깨우는 중이었다.

일행의 리더인 두 인물이 모두 이렇듯 태평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당연히 전체적인 분위기 또한 여기에 맞춰졌다.

다 같이 감옥에 갇힌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긴장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말 딱 예측한 그대로 됐네요. 그래도 이렇게 무리한 짓을 할까 싶기는 했는데.”

매튜의 말마따나 모두 예측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저항 없이 순순히 압송당해 줬던 것도 그런 연유였다.

“드로카 그로자 자체가 그런 사람이라고 하셨어. 야망이 작지 않은 사람이라고.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안 하면 안 했지, 중간에 애매하게 멈추지는 않을 거라고 말이야.”

“역시, 라이 경과 가까이 지내시는 분들답네요. 왕녀님도, 사네 공자님도.”

단, 내가 한 예측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나는 드로카라는 인물과 그로자 영지에 대해 유의미한 정보를 지니고 있지 못했다.

내가 지닌 정보라고 해 봐야 그로자 영지가 우리의 중요한 거래 파트너라는 점 정도.

유의미한 정보의 제공자는 레나였다.

나아가 이 정보를 바탕으로 상황에 대한 예측과 대응 방안을 내놓은 것 역시 내가 아니었다.

레나와 사네가 머리를 맞대고 시뮬레이션을 돌린 끝에 도출해 낸 결과물이었다.

실크로 상단이 곡물 매입을 완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크리스토퍼 측에서 그냥 보내려 하지 않을 터.

마침 라인하트 영지로 가기 위해서는 그로자 영지를 거쳐야 했다.

더욱이 드로카는 이미 야망의 심지에 불을 붙인 상태였다.

다소 무리한 측면이 있다 해도 밀어붙이려 할 것이 분명했다.

적당한 장소에 적합한 행동대장까지 갖춰진 상황.

상단을 그냥 보내지 않기에 딱 알맞은 조건인 것이다.

여기까지가 두 사람의 예측이었고, 예측대로 드로카는 상행을 저지하고 나섰다.

그리고 이 지점부터는 두 사람이 내놓은 대응 방안이 펼쳐졌다.

아무런 저항 없이 순순히 압송되어 온 것이 그 시작점.

사실 따지고 보면 대단한 예측과 대응 방안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드로카에 대한 정보를 지니고 있다면 누구라도 도출 가능한 내용이었으니까.

결국, 한 끗 차이였다.

한 끗 차이가 흐름을 결정짓는 키포인트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 한 끗에 해당하는 정보가 없었다.

그렇기에 키포인트를 스스로 도출해 내지 못한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제는 그 포인트를 꼭 내가 짚어 낼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확실하고 완벽하게 짚어 줄 사람들이 내 곁에 벌써 둘이나 있었다.

“그렇게 따지면 매튜, 네가 나랑 제일 가까이 지내잖아. 일종의 자기 자랑 같은 건가?”

“아니, 꼭 그렇다기보다는요…….”

잠시 계산에 착오가 있었다.

둘이 아니라 셋이었다.

쑥스러워하는 매튜도 결코 빼먹어서는 안 됐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반격만을 남겨 둔 이 상황 자체가 전부 매튜의 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라인하트 영지의 최대 약점이었던 곡물 부족 문제.

애초에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반격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 준 장본인이 바로 매튜.

따라서 현재까지의 흐름에 있어 최고의 포인트는 매튜가 짚어 냈다고 봐야 했다.

어쨌든 내 옆에는 이렇듯 부족한 부분을 채우다 못해 넘치게 해 줄 사람들이 셋이나 있었다.

나는 이들이 깔아 준 판 위에서 거침없이 날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매튜, 이제 호칭 원래대로 해도 돼.”

“아, 이제 움직이시려고요, 공자님?”

“그래야지. 찬 바닥에 굳이 오래 앉아 있을 이유는 없으니까.”

이번 상행에서도 역시 나는 정체를 숨겨 왔다.

적들을 덫에 걸려들게 하기 위함이었다.

상행에 내가 포함된 사실을 알았다면 절대 걸려들지 않았을 터.

하여 매튜 역시 나를 ‘라이 경’이라고 불러 왔고, 그 결과 덫이 제대로 작동한 참이었다.

그렇다면 더는 숨길 필요가 없었다.

지금부터는 내 사람들이 만들어 준 판 위에서 대놓고 날뛸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쿵! 쿵!

“간수.”

쿵! 쿵! 쿵!

“간수, 여기 좀 보지.”

시작은 간수를 부르는 일부터였다.

날뛰든 반격을 하든 일단 여길 나가서 드로카를 만나는 것이 우선이니 말이다.

“죄수 새끼 주제에 약을 처먹었나, 뭐? 여기 좀 보지? 내가 네 친구로 보이냐?”

부르는 일쯤은 별거 아니었다.

철창 몇 번 두드리니 금세 다가오는 간수.

물론 상당히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관심 없었다.

그의 말마따나 내가 그와 친구는 아니었으니까.

하여 거리낌 없이 용건을 밝혔다.

“가서 드로카 그로자에게 전하도록. 지금 좀 만나고 싶다고.”

“하, 이 미친놈이 이제는 우리 공자님 존함까지 함부로……. 아주, 죽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구나. 그래, 누구라고 전해 줄까? 공자님께는 못가도, 묘비명 정도에는 닿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라이오넬 라인하트. 그렇게 전하면 알아들을 거다.”

알아들을 수밖에 없었다.

현시점에서 드로카에게는 가장 듣기 싫은, 악몽과도 같은 이름일 테니.

한데, 드로카만이 아니었다.

“라이오넬 라인하트……? 설마 라인하트 자작가의 그 둘째 공자를 말하는 건가?”

내가 확실히 유명세를 떨치기는 떨친 모양이었다.

일개 옥졸조차 곧바로 알아듣는 것을 보면.

끄덕.

“그 공자가 지금 어디 있다는 거지? 밖에서 우리 공자님을 기다리고 있다는 건가?”

다만, 쉬이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철창 너머에 갇힌 채 그와 대화 나누고 있는 사람이 바로 라이오넬 라인하트라는 사실을.

“아니, 여기서.”

“……그러니까, 네가 그 바르코스 요새의 영웅이자, 트윈 슬레이어다? 지금 그 안에 갇혀서 나한테 얘기나 전해 달라고 구걸하는 네가?”

그러더니 끝내 처음의 태도를 되찾았다.

그저 죽고 싶어 환장한 미친놈 보듯 나를 대하는 태도 말이다.

“개소리도 정도껏 해야 들어주든 말든 할 거 아냐! 네가 트윈 슬레이어면 난 드래곤 슬레이어겠다, 이 미친 새끼야. 헛소리 그만 지껄이고 구석에 잠자코 처박혀 있어!”

충분히 이해는 됐다.

정황이 이러하다면 나였다 해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을 터.

그러나 이해는 어디까지나 이해일 뿐, 수용의 의미를 내포하지는 못했다.

더는 쓸데없는 말씨름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한 번만 더 지껄이면 그때는 진짜…….”

덥석.

그래서 잡았다.

그리고 힘을 가했다.

끼기기긱~!

“어어……?”

그리하여 간수의 당혹성을 불러일으켰다.

맨손으로 철창을 엿가락처럼 구부러뜨림으로써.

“다녀오세요, 공자님.”

매튜는 한술 더 떴다.

벌어진 철창 사이로 몸을 빼낸 나에게 태연하게 인사까지 건네는 그였다.

“…….”

당연하게도 간수는 이 일련의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입을 쩍 벌린 채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뿐.

“뭐 하지, 드래곤 슬레이어? 드로카 그로자에게 안내 안 하나?”

그런 간수를 앞세우며 천천히 나아갔다.

제대로 덫에 걸린, 하지만 꿈에도 모르고 있을 드로카를 향해서.

* * *

“일을 너무 크게 벌렸습니다, 드로카 선배.”

자칭 드래곤 슬레이어의 안내에 따라 곧장 드로카를 찾아갔다.

때마침 영주 집무실에서 아버지와 대화 중이던 드로카.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잠시 말문을 잃은 그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순간, 그에게 나는 절대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존재일 테니까.

그와 대화 중이던 영주, 콜루가네의 반응은 더 드라마틱했다.

내 이름을 듣고는 안색이 완전히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한바탕 당황과 기겁의 시간이 휩쓸고 간 뒤에야 장이 마련되었다.

나와 그로자 부자가 함께하는 3자 대화의 장이었다.

“네가 정체만 숨기지 않았어도 일이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거다. 그 저의를 명백히 밝혀라.”

그래도 장이 열리기 전까지 잠깐의 시간 동안 멘탈을 부여잡으려 노력한 모양이었다.

말문은 되찾은 드로카였다.

나아가 얼굴에는 철판까지 깔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내 탓으로 돌려 보고자 하는 것이다.

“별 뜻은 없었습니다. 안에 있으면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싶었던 것뿐이니까. 또, 내 사람들한테 무슨 해코지라도 하는 건 아닌지 감시할 필요도 있었고.”

“우리 자작가를 뭘로 보고 그런…….”

“확실한 증거도 없이 무작정 구속부터 하고 본 가문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을 애처로운 몸부림에 불과했다.

근거도 부족할뿐더러, 어차피 지금 중요한 부분은 저의 같은 것이 아니었다.

사건이 초래한 결과, 그래서 결국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가 중요했다.

“또, 이유 따위가 뭐가 됐든 간에 결론은 간단합니다. 영지 귀족인 내가 정당한 사유도 없이 강제로 구속당했어요. 그로자 영지는 이에 대해 제대로 된 해명과 보상을 해야 할 겁니다.”

“우린 네놈이 쳐 놓은 덫에 걸려든 것뿐이다. 말했다시피 네놈이 정체만 밝혔…….”

“애초에 무고한 상단을 건드리지 않았으면 될 일. 그리고 어차피 답도 안 나올 얘기로 시간 낭비하지 맙시다. 나는 라인하트를 대표해서 해명과 보상을 요구했습니다. 그로자 또한 이에 대해 가문 차원의 입장을 밝혀 주기 바랍니다.”

이 자리에서 답이 도출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저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고 각자의 명분을 쌓아 가는 자리일 뿐.

따라서 잘잘못에 대해 따지고 논쟁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난 그런 의미 없는 시간 낭비를 원치 않았고 말이다.

“보상이라면 어느 정도 수준을 원하는 건가? 그걸 알아야 우리도 답을 줄 수 있을 듯한데.”

그러자 여태껏 침묵에 잠겨 있던 콜루가네가 입을 열었다.

여전히 질려 있는 얼굴로 내가 원하는 보상의 수준을 되묻는 그.

이런 콜루가네의 눈빛에는 조마조마함이 깃든 상태였다.

아무래도 아직 희망 비슷한 것이 약간은 남아 있는 모양.

하지만 이마저도 곧 철저하게 깨부숴질 수밖에 없었다.

“우선 압수했던 곡물 및 부산물의 대금과 지금까지 벌어진 사태에 대한 사죄금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해 향후 10년간 곡물 무상 제공 및 10년 이후 라인하트의 거래 요청 시 거절 불가 조건을 명문화하고자 합니다.”

“……!!”

“미친!!!”

콜루가네는 사색이 됐고, 드로카는 대놓고 욕설을 내뱉었다.

전자의 금전적 보상이야 당연한 부분이니 크게 문제 될 것 없었다.

문제는 그다음, 곡물 관련 요구에 있었다.

내가 건넨 요구는 분명 선을 넘었다.

그로자 영지를 사실상 라인하트의 속지로 만드는 조건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1왕자 편에 서서 우리를 건드렸을 때, 이 정도는 각오했던 것 아니었습니까?”

“그렇다 해도 정도라는 게 있는 거다. 넌 지금 정도를 완전히 넘어섰어!”

“그 말, 그로자는 라인하트의 요구를 거절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지! 그딴 조건은 누구도 받아들이지 못해.”

다만, 이미 밝혔다시피 답이 도출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저 라인하트는 요구를 했고, 그로자는 이를 거절했다는 사실 하나면 충분했다.

애초에 이 사실 하나를 얻기 위해 만든 자리라고 봐도 무방했으니까.

“뜻은 잘 알겠습니다. 하면 이 건은 라인하트 영지로 돌아가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하겠습니다. 동의합니까?”

“어차피 이제까지 제 놈 맘대로 지껄여 놓고서 동의는 무슨…….”

“알겠습니다. 그럼 동의한 것으로 알고, 이만 상단과 함께 라인하트 영지로 가 보겠습니다. 가서 오늘 대화 나눈 내용들 공식 문서로 보내 드리죠.”

“네놈 따위가 가든 말든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신경 안 써. 하지만 나머지는 아니야.”

그리고 이 지점에서부터였다.

이 지점에서부터 드로카가 최후의 발악을 시작했다.

“너는 보내더라도 상단과 곡물은 안 돼. 그것들에 대한 혐의는 아직 풀리지 않았어.”

“내가 함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혐의는 풀렸을 텐데요?”

“그건 네놈 입장일 뿐이고, 난 아니야. 난 아직 의심을 거두지 못했고, 따라서 절대 보낼 수 없어.”

나는 몰라도 매튜와 상단은 끝까지 붙잡아 두겠다는 것이다.

특히 문제의 핵심인 곡물만큼은 절대적으로.

드로카 입장에서 고려하면 그럴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는 했다.

상단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순간, 그리하여 라인하트 영지의 곡물 부족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그로자의 상황은 극도로 암울해질 테니 말이다.

“이건 동의를 구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통보하는 거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도리안!”

그리하여 사태를 극단으로 치닫게 만드는 드로카였다.

그의 부름에 따라 영주 집무실로 병력이 쏟아져 들어왔다.

밖에서 대기 중이던 병력이었다.

이들은 들어오자마자 무기를 빼 들고는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통보한다. 갈 거면 네놈 혼자 가라. 나머지는 꿈도 꾸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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