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장: 스승과 제자들
슈라우드 마탑의 마법사 막시무스 슈러그혼 남작.
49살의 나이에 벌써 5서클 마스터에 도달한 그는 마탑 내에서 아주아주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현재 슈라우드 왕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6서클.
이 초월자의 경지에 오를 것으로 기대되는 사실상 유일한 인재였기 때문이다.
마탑 내 5서클 마법사들이 전부 70대 중·후반에 접어든 점을 고려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막시무스는 마탑은 물론이고 왕국 내에서도 그 중요도가 상당한 인물이었다.
“흐음…….”
한데, 현재 이런 막시무스의 심기가 그리 편치 못했다.
매우 귀찮았기 때문이다.
우선은 현 상황 자체가 그러했다.
원래라면 지금쯤 그는 연구실에 콕 박혀 연구 삼매경에 빠져 있어야 했다.
그런데 연구실은커녕 마탑에서도 쫓겨나 왕도 아카데미를 어슬렁거리는 중이었다.
사형인 마탑주의 권력 남용 때문이었다.
마탑주가 그를 강제로 끄집어 내 이곳 아카데미로 보낸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자를 만들어 오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마탑은 기본적으로 소속 마법사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해 주었다.
원하는 만큼 양껏 연구 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이런 마탑에서도 단 한 가지만큼은 마법사들을 철저하게 옭아맸다.
그 한 가지란 바로 제자 양성.
나이 50이 되기 전에 적어도 한 명의 제자는 반드시 들여야 했다.
여기에 60이 되기 전에 한 명을 더 추가하여 최소 두 명 이상.
이것이 마탑에서 마법사들에게 강제하는 바였으며, 아예 규정으로 못 박아 두기까지 했다.
비단 슈라우드 마탑만이 아니었다.
요구 숫자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륙 모든 마탑이 이 규정을 절대적으로 강조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법사들이 제자 양성은 뒷전이고 개인 연구에만 심취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심히 안타깝게도 막시무스는 올해 49살이었다.
이에 마탑주는 엄포를 놓았다.
만약 올해도 제자를 못 들이면 연구지원비를 몽땅 끊어 버릴 거라고.
사제고 뭐고 얄짤 없다고.
그러고는 막시무스를 강제로 이곳 아카데미에 보냈다.
동아리 경연이라도 보면서 어떻게든 제자를 물색해 보라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막시무스의 심기가 불편한 첫 번째 이유였다.
그렇지 않은가?
그라고 해서 제자를 키우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막시무스 또한 뛰어난 제자를 키워 내고 싶다는 마음을 분명 가지고 있었다.
그의 스승님께서 막시무스 본인을 이토록 훌륭하게 키워 내신 것처럼 말이다.
단지, 눈에 차는 제자 감이 나타나지 않았을 뿐.
하나같이 모자란 놈들 밖에 안 보이니 그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당장 눈앞에서 1년간의 성과물이랍시고 시연 중인 마법들만 봐도 그랬다.
독창성이나 번뜩임 같은 건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원래 있던 마법들을 재탕해 놓고는 말로만 번지르르하게 꾸며 놓은 것들이 전부였다.
무슨 기사나 행정가도 아니고 명색이 마법사라는 녀석들이 말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뽑아가 숫자만 채울 수도 없었다.
마탑은 제자 육성에 있어 굉장히 엄격했다.
어설픈 꼼수는 통하지 않았다.
한번 데리고 가면 스승으로서 끝까지 책임을 져야만 했다.
한마디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막시무스로서도 답답할 따름이었다.
“남작님, 혹시 4서클의 부노 구리드 마법사와 친분이 있으신지요?”
“약간은.”
“그 마법사가 저희 바이퍼 가문과 연이 좀 깊은데, 그로부터 남작님 말씀을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왕국 마법계를 이끌어 가는 천재 중의 천재시라고 입이 마르도록 …….”
그렇지 않아도 불편한 심기였다.
그런데 이 불편함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켜주는 놈까지 옆에 붙어 있었다.
바이퍼 백작가의 카르사노 바이퍼라는 놈이었다.
바이퍼 가문은 막시무스도 들어 봤다.
아무리 바깥 일에 관심 두지 않는 그라지만, 아티팩트 판매 대행 권한을 가장 크게 쥔 곳 정도는 알았으니까.
하지만, 몰랐던 점도 있었다.
바로 이 백작가의 장남이라는 놈이 그를 심히 귀찮게 하리라는 사실.
조금 전부터 옆에 달라붙어서는 시답잖은 얘기나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이러는 목적이야 빤했다.
막시무스의 눈에 들고자 하는 것이었다.
바이퍼 가문 사람이니만큼 막시무스의 외유 이유를 모를 리 없을 테니까.
“그래서 늘 안타까웠습니다. 남작님 같은 분께서 제대로 된 후원자와 연결되지 못하고 계시다는 현실이 저로서는…….”
그러나 어림도 없었다.
백작가의 가주 자리를 포기할 만큼 마법에 미친 놈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데리고 가 봤자 가문 일에 신경 쓰느라 마법 연구는 뒷전일 것이 분명했다.
물론 이런 성향이나 조건 따위를 다 무시할 만큼 특출난 무언가를 지녔다면 얘기는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카르사노는 평범했다.
처음 막시무스를 찾아왔을 때 시연했던 파이어볼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일반적인 그것보다 크고 강력한 본인의 특제 파이어볼이라며 자신 있게 선보였다.
하나, 막시무스의 눈에는 별거 없었다.
그냥 마나 조금 더 욱여넣어서 크기와 위력을 쥐똥만큼 올린 것에 불과했다.
남들도 다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어린 나이에 도달한 3서클의 경지?
그건 여기서나 통했다.
마탑 내에서는 수두룩하게 널리고 널린 이력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상의 무언가, 혹은 특별함이 필요했다.
물론 카르사노에게는 전무했지만.
즉, 재능 면에서도 가차 없이 탈락인 것이다.
자연스레 카르사노에 대한 막시무스의 반응도 시큰둥해졌다.
그러자 이를 눈치챘는지 재능과 실력 이외의 요소로 어필하는 카르사노였다.
이 짓거리가 막시무스의 귀찮음과 불편함을 점점 키워 가는 중이었고 말이다.
“이봐, 카르사노 공자.”
“예, 남작님.”
하여 막시무스는 일단 그 헛짓거리부터 멎게 했다.
그러고는 대놓고 면박을 줄 작정이었다.
시끄러우니 이제 그 입 좀 다물라고.
또, 더 이상 귀찮게 굴지 말고 그만 좀 가라고.
“쓰잘데기없는 소리 그만…….”
파직, 파직, 파지지지직.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의 귀를 사로잡는 웬 특이한 소리 때문이었다.
이에 막시무스의 시선 또한 소리의 진원지로 향했다.
그리고 그 결과, 면박 계획은 전면 중단되고 말았다.
도저히 묻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고, 저거에 대해서나 말해 보지. 저긴 어느 동아리지?”
“예?”
“저기 말이야, 저기. 시꺼먼 재가 흩날리는 곳. 아, 마침 다시 시연하려는 모양이군.”
소리가 범상치 않아 얼른 고개를 돌렸건만, 이미 시연이 끝난 뒤였다.
그런데 다행히 재시연이 예정돼 있던 모양.
웬 하녀 하나가 양손 가득 나뭇잎을 움켜쥐었다.
그 옆에서는 평범해 보이는 생도가 마법을 준비 중이었다.
행동으로 보건대 조금 전 그 뇌전 소리를 유발한 장본인일 터.
당연히 모든 관심을 생도에게 집중시킬 수밖에 없었다.
촤라락~
“응?”
그런데 이상했다.
생도의 마법 시전에 집중하느라 그가 잘못 느낀 것일까?
나뭇잎들을 흩뿌리는 하녀에게서 마나의 유동이 느껴졌다.
실제로 공중에 흩뿌려진 나뭇잎들 또한 한 장 한 장 떼어 놓기라도 한 것처럼 쫙 펼쳐진 상태였고 말이다.
지직. 지지직.
다만, 이 부분에 사로 잡혀 있을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흩뿌려진 나뭇잎들이 본격적인 낙하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 시점에 맞춰 생도도 마법 준비를 완료했기 때문이다.
의문은 잠시 접어 두고 본편에 집중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파직, 파직, 파직, 파지지지직.
실제로 생도의 마법은 굉장히 특별했다.
형태를 보아하니 마력탄을 난사하는 것 같은데, 이 탄 하나하나에 뇌전이 실려 있었다.
시꺼멓게 타서는 재가 된 나뭇잎들이 그 증거.
심지어 정확도까지 엄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