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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49화 (50/200)

25장: 사네의 변화(2)

슈아악~

타악!

“흐읍!”

“눈으로 좇으려고 하지 마. 말했잖아, 환검을 눈으로 구별하는 건 진짜 고수들의 영역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감으로 잡아야 해.”

끄덕.

라이오넬의 지적에 사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곧바로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았다.

호흡을 내뱉는 용도 외에 입은 열지도 않았다.

지적이 아니꼬워서?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

대답으로 낭비할 그 짧은 시간조차 아까웠기 때문이다.

지난 3개월, 사네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그가 경험한 신세계란 바로 훈련에 따라 향상되는 실력의 체감.

혹자는 피식하고 비웃을지도 몰랐다.

아마 대부분이 그럴 터였다.

훈련에 따라 실력이 향상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였으니까.

고작 이런 일에 신세계라는 표현은 심한 과장 혹은 비약이라고밖에 여길 수 없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과장도 아니고, 비약은 더더욱 아니었다.

적어도 사네에게는 그랬다.

그에게만큼은 이것이 신세계가 분명했다.

훈련한 만큼 실력이 향상되는 일은 사네에게 정말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간 별의별 훈련을 다 해 봤다.

몸을 혹사하는 방식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면으로 부딪쳤고, 죽을 것 같아도 이를 악물고 버텨 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저 몸만 축날 뿐, 실력은 제대로 늘지를 않았다.

그래서 깔끔하게 포기한 참이었다.

검은 본인의 길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런데, 분명 그랬는데 이렇듯 이변이 펼쳐지고 있었다.

훈련에 따른 실력 향상을 체감 중인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사네 본인이.

라이오넬의 지도를 받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겔포이와의 대결을 준비코자 라이오넬과 훈련을 시작한 3개월 전부터 이변이 펼쳐졌다.

그렇다고 라이오넬의 훈련법이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그간 사네가 해 온 훈련을 기준으로 본다면 특별은커녕 일반적인 수준에도 간당간당했다.

지극히 평범했다.

기본적인 체력 훈련과 기초 검술의 반복 수련, 그리고 겔포이의 검을 흉내(?) 내는 라이오넬과의 대련.

이게 전부였다.

훈련의 양 자체가 꽤 많은 편이기는 하지만, 구역질 날 수준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굳이 특이한 점을 하나 꼽자면, 훈련 때마다 항상 라이오넬이 옆에 붙어 있다는 것 정도?

라이오넬은 단순한 체력 훈련을 반복하는 시간에조차 사네 옆에서 그를 지켜봤다.

물론 어디까지나 억지로 꼽았을 때의 이야기.

그냥 붙어서 지켜보는 게 다였다.

고작 이런 걸 특별하다고 한다면 세상에 평범한 훈련은 존재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래서 더 신기한 일이었다.

별의별 짓을 다 해도 안 늘던 실력이 이런 평범 그 자체인 훈련에 늘고 있으니 말이다.

덕분에 살면서 처음으로 약간이지만 훈련에 재미라는 것도 느껴본 사네였다.

비록 검 자체가 좋아졌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적어도 이번 대결에 희망을 품어 볼 만큼은 될 것도 같았다.

하여 사네는 대답할 시간조차 아끼며 대련을 이어 갔다.

그렇게 또다시 라이오넬이 뿌리는 검격을 막아 내던 중이었다.

차앙~

“엇?”

사네가 저도 모르게 검을 놓치고 말았다.

라이오넬의 검에 실린 힘 때문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진작에 놓치고도 남았을 터.

힘 빠진 그의 손이 원인이었다.

집중하느라 인지 못 했지만, 주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손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이에 사네는 손을 두어 번 털고는 다시 검을 주워 들려 했다.

당연히 대련을 계속하기 위함이었다.

“자, 오전 훈련은 여기까지.”

그러나 라이오넬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이대로 오전 훈련의 종료를 선언했다.

“난 괜찮아, 라이. 더 할 수 있어.”

“이만하면 충분해. 사네 너한테 지나친 수련은 오히려 독이야. 지금은 휴식이 필요한 타이밍이니까, 얼른 가서 밥부터 먹어. 이러다가 점심시간 다 끝나겠다.”

“정말 괜찮은…….”

꼬르륵.

그리고 라이오넬의 판단이 옳았다.

정직한 사네의 배꼽시계가 그 증거.

“봤지? 너 안 괜찮으니까 얼른 식당으로 가. 가서 먼저 먹고 있어. 난 브로든 교수님한테 잠깐 들렀다 갈 테니까.”

그렇게 오늘의 오전 훈련이 마무리됐고, 사네는 라이오넬의 권유에 따라 먼저 식당으로 향했다.

원래라면 방에서 하녀가 챙겨다 주는 음식을 먹었을 터.

하지만 훈련을 시작한 뒤로는 직접 식당으로 가 식사를 해결해 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감당 불가능한 수준이었으니까.

달그락달그락.

와구와구.

우물우물 쩝쩝.

사네의 폭풍 같은 숟가락질과 무자비한 저작 활동, 그리고 이에 따라 게 눈 감추듯 사라져가는 막대한 양의 음식물들.

하녀 홀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것들뿐이었다.

그렇기에 사네는 오늘도 식당으로 향한 것이고, 무지막지한 섭취 활동을 펼쳐 가는 중이었다.

불과 5분 전에 뱉었던 괜찮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동시에 평소 입이 짧던 사네라고는 연상 자체가 불가능할 지경으로.

* * *

“하, 이거야…….”

르로이가 제 눈을 의심했다.

그의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어떤 광경 때문이었다.

사네였다.

그의 이복동생이자 가문의 수치인 사네가 황당한 짓거리를 벌이는 중이었다.

“너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달그락달그락.

와구와구.

르로이로서는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그가 멸시하는 머저리라지만, 그래도 십수 년을 봐 온 만큼 기본적인 습성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니, 사실 꽤 깊은 부분까지 꿰고 있었다.

비록 서자라지만 핏줄만큼은 분명한 자작가의 그것.

주제넘은 짓거리는 꿈도 꾸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르로이가 알던 사네에게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모습이었다.

마치 아귀처럼 음식을 입 안에 마구 쓸어 담는 이런 무지막지한 모습은.

사네는 원래 식습관만으로도 가문에서 온갖 구박을 이끌어 내던 놈이었다.

지나치게 짧고 깨작거리는 입이 아버지인 발터우스 자작의 심기를 적잖이 건드려왔다.

검을 쥐는 놈이 새침데기처럼 꼴 보기 싫게 먹는다고 말이다.

따라서 현재 이런 걸신들린 듯한 모습은 사네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아무리 태생이 태생이라지만, 가문을 욕 먹이는 것에도 정도가 있다. 아랫것들도 다 보는 곳에서 이게 무슨…….”

쩝쩝쩝.

한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울리지 않는 모습은 무식한 음식 섭취에서 그치지 않았다.

르로이를 대하는 태도 또한 그러했다.

“……너, 지금 내 말을 듣고 있기는 한 거냐?”

끄덕.

우물우물.

분명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사네는 손과 입을 쉬지 않았다.

르로이의 지적과 질책에도 불구하고 이 미친 짓거리를 멈출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는 것이다.

건방지기가 하늘을 찔렀다.

아카데미 입학 전까지만 해도 십수 년을 르로이의 장난감으로 지내온 사네였다.

그런 사네에게 이런 행태는 어울리지 않는 수준을 넘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것이었다.

르로이 입장에서는 분노가 차오르다 못해 실소로 새어 나올 지경이었다.

“제대로 실성했구나.”

턱!

당연히 참지 않았다.

생도회와 라이오넬 사이에 맺어진 불가침의 약속이 있기는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무시했다.

이런 순간에조차 참고 넘어가 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발터우스 자작가의 장남이나 후계자로서 가문의 위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 나서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적어도 르로이의 판단은 그러했다.

그리고 이 판단에 따라 사네의 오른팔 손목을 움켜쥐었다.

스튜를 향한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던 바로 그 손이었다.

이에 사네의 걸신들린 듯한 섭취 행위도 자연스레 중단됐다.

꽈아악.

당연히 르로이는 이 정도에서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라이오넬 그 건방진 놈과 붙어 다니더니 덩달아 제 주제까지 상실한 사네였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적절한 교육이 필요했다.

제 주제를 되찾아 주기 위한 엄한 훈계 말이다.

그 일환으로 움켜쥔 손목에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눈에 심히 거슬리던 저놈의 숟가락부터 떨어뜨려 놓을 작정이었다.

“그만하시죠.”

그런데 이상했다.

진작에 들리고도 남았어야 할 쇳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그만하라는 사네의 육성이 들려왔다.

이건 예상과 많이 다른 전개였다.

숟가락 떨어지는 소리는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사네의 신음 정도는 전해져야 했다.

그가 알던 사네는 이 정도 힘조차 견디지 못하는 약골 중의 약골이었으니까.

살짝 무거워지기는 했을지언정 이렇듯 담담한 목소리가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꽈아아악!

하여 르로이도 계획을 수정했다.

원래는 적정선의 힘에서 가벼운 훈계만 하고 재빨리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비록 라이오넬의 부재를 알고 온 것이라지만, 놈이 언제 다른 볼일을 마치고 등장할지 불확실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얘기가 달라졌다.

여기서 애매하게 그만뒀다가는 여러모로 체면만 구기는 상황이 됐다.

식당에 잔뜩 몰린 구경꾼들에게도, 그리고 건방지게 힘을 주며 버티는 중인 사네에게도.

“형님, 이제 그만…….”

우웅~

“크읍!”

그렇기에 예정해 두었던 적정선의 기준 역시 대폭 상향 조정했다.

순수한 완력을 넘어 본격적으로 마나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사네도 슬슬 힘에 겨워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고통 어린 신음을 흘리며 얼굴을 있는 대로 찌푸려 갔다.

이로써 양자 간의 우열관계는 여전함이 확인됐다.

확실하게 르로이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

그럼에도 르로이의 표정은 마냥 밝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이 상황 때문이었다.

우열관계는 확실하다 하나 그 세부적인 격차가 문제였다.

르로이는 비록 최하급이기는 해도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일반적인 소드 유저들과는 그 격이 다른 것이다.

더구나 사네는 일반적인 소드 유저조차도 되지 못했다.

애매하게 발을 걸쳐서는 소드 유저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드 비기너인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였다.

불과 석 달 전까지만 해도 분명 그랬다.

겔포이 드레이크의 동의까지 확보한 객관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확고했던 판단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중이었다.

우우웅~

르로이가 투입한 마나는 이미 소드 유저 하급의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하급을 넘어 중급의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사네의 반응으로 보건대 어쩌면 중급까지 버텨 낼지도 몰랐다.

이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당장 크리스토퍼 왕자와 라이오넬의 승부는 물론이거니와, 장차 발터우스 영지의 후계 구도에 걸림돌이 될지도 모르는 문제였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가능한 한 확인코자 했다.

사네의 현재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생도회와 르로이 본인에게 위협이 될만한 수준인지 등을.

방법은 간단했다.

여기서 중급 이상의 마나를 투입하기만 하면 되는 일.

우우우우웅~

르로이는 결심과 함께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러고는 곧장 쏟아부었다.

사네를 굴복시킴과 동시에 놈의 경지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터억~

꾸우욱!

“커흑!!”

그러나 실패했다.

굴복이고 파악이고, 무엇 하나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고통으로 가득 찬 비명부터가 사네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르로이 본인의 비명이었다.

꽉 잡힌 어깨를 타고 흘러온 극심한 고통이 그의 신음을 유발한 것이다.

“그, 그만! 그만!!”

당연히 사네는 아니었다.

놈은 이 극심한 고통의 진원지가 될 수 없었다.

사네는 분명 르로이의 힘을 버거워하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이런 대역전극을 벌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르로이에게 참지 못할 고통을 선사 중인 어깨 위의 손.

이것이 뻗어 나온 방향 또한 그 증거였다.

정면이 아닌 후면에서 뻗어 나와 르로이의 어깨를 쥐고 있었다.

즉, 흉수는 르로이의 등 뒤에 서 있다는 의미.

“오랜만이야, 선배님.”

굳이 고개 돌려 확인할 필요조차 없었다.

흉수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익숙했으니까.

르로이에게는 어쩌면 평생 잊지 못할 목소리일지도 몰랐다.

“얼굴 한번 보기가 진짜 하늘의 별 따기였는데, 어떻게 이런 곳에서 다 보게 되네. 어쨌든 반가워, 선배님.”

라이오넬 라인하트.

잊지 못할 목소리의 주인이자, 현재 르로이가 겪는 고통의 진원지인 동시에, 이 모든 상황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바로 그놈이었다.

* * *

“수정이 필요하다고?”

“그렇습니다, 왕자님. 승부의 방식이나 조건에 변화를 줘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크리스토퍼의 반문에 클리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수정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물론 그 대상은 라이오넬과 벌이기로 한 대결이었다.

“르로이가 사네를 슬쩍 건드려 봤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어째 불안한 모양입니다.”

클리앙이 르로이와 사네, 라이오넬 간에 있었던 해프닝을 크리스토퍼에게 보고했다.

여기에 해프닝 끝에 르로이가 내린 판단과 그에 대한 염려까지 더해졌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센트럼 때와 같은 불상사가 다시 한번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 그렇다면 확실하게 보험을 들어 두는 편이 낫겠지. 한데, 그걸 놈이 수락하겠어?”

“일단 제가 한번 만나 보겠습니다. 만나서 직접 얘기를 나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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