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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46화 (47/200)

23장: 수작질

캉! 캉! 카앙~

사네가 그를 향해 쉼 없이 짓쳐 드는 검격을 필사적으로 막고 또 막았다.

벌써 30초 넘게 숨조차 들이쉬지 못하고 있는 상태.

당연히 미칠 듯이 숨이 가빠 왔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참아야 했다.

만약 그러지 못하고 숨을 들이쉬었다가는 산소 부족 이상 가는 고통이 그를 엄습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이다.

“후읍~”

퍼억~!

“커헉!!!”

사정 따위 조금도 봐주지 않는 검격이 사네의 팔뚝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뼈가 부러질 것만 같은 고통이 팔뚝을 타고 뇌리까지 순식간에 전달됐다.

심지어 한번이 아니었다.

퍽! 퍽! 퍽!

챙강~

상반신 전체를 아우르는 타격이 계속됐고, 결국 사네는 검을 놓치고 말았다.

그러고는 무릎을 꿇은 채로 고통 어린 신음과 기침을 뱉어 냈다.

“쯧쯧, 몇 수나 됐다고 벌써 퍼질러지는 건지. 하여간에 귀족의 수치야 수치. 명색이 검을 쥔다는 놈이 툭하면 내팽개치는 꼬락서니하고는.”

하지만 이런 사네의 고통 따위, 상대는 눈곱만큼도 배려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러운 입으로 육체적 고통에 정신적 고통까지 더해 주고자 할 뿐이었다.

대놓고 멸시하며 사네를 깔보는 눈빛은 덤이었다.

“쿨럭, 쿨럭. 후우~”

단, 사네 또한 이런 부분에 추가적인 타격을 입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기존의 고통을 최대한 빨리 수습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사실 타격을 입는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었다.

당연했다.

상대가 상대 나름이었으니까.

상대는 이런 저급함과 저열함이 르로이 못지않게 잘 어울리는 놈, 바로 겔포이 드레이크였다.

놈이 수업 중 대련을 빙자하여 수련용 철검으로 사실상의 구타를 가해 오는 중인 것이다.

“5초 준다. 그 안에 검 쥐고 다시 일어나. 아무리 껍데기뿐이라 해도 체면이 있지, 귀족씩이나 돼서 무릎 꿇은 채로 얻어맞는 건 너무 치욕스럽잖아?”

“크읍!”

사네가 젖먹던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바닥에 떨어뜨렸던 검도 주워 들었다.

물론 그의 체면을 걱정해 주는 겔포이의 배려 따위에 감명을 받아서일 리 만무했다.

애초에 이따위 것이 배려일 리도 없지 않은가?

정말 사네를 배려할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이런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았을 터.

검술 수업 때마다 이렇듯 대련을 빙자한 구타를 일삼는 상황 말이다.

일주일 전부터였다.

지금과 같은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은.

사네는 브로든의 수업 말고도 검술 수업을 하나 더 듣고 있었다.

당연히 스스로 원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가문의 눈치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노릇.

그리하여 로이 드로그난 교수의 강의를 수강했다.

그런데 일주일 전부터 이 강의의 수업 방식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찾아왔다.

수업 내 대련의 비중이 대폭 늘어난 것이다.

더불어 사네의 대련 상대가 겔포이로 고정됐다.

이유는 그럴듯했다.

일반 생도들에게는 영지 귀족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영지 귀족인 사네와 겔포이를 고정적으로 매칭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네가 바보도 아니고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겔포이, 그리고 놈의 배후인 생도회에서 손 쓴 결과라는 사실을.

대놓고 깔보는 겔포이의 비릿한 미소는 물론이고, 이쪽은 애써 외면하는 교수의 어색한 태도 역시 명백한 증거였다.

이 모든 흐름이 한눈에 일목요연하게 파악될 지경.

그만큼 노골적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이렇다 할 타개책이 없었다.

일단 지금 이 순간부터 어떻게든 넘기고 봐야 했다.

슈악~

카앙!

다시금 짓쳐 들기 시작한 겔포이의 무자비한 검격부터 말이다.

물론 현격한 실력 차로 인해 머지않아 조금 전과 같은 그림이 반복되겠지만.

* * *

“얘기해 봐, 사네. 요즘 무슨 일 있는 거지?”

“아니야, 별일 없어.”

“별일 없기는? 지금 네 몸 상태는 절대 별일 없는 몸 상태일 수가 없어.”

말한 대로였다.

얼굴은 멀쩡하다지만, 현재 사네의 몸 상태는 심히 좋지 못했다.

옷으로 가려진 부분은 타박상으로 그득할 것이 분명했다.

검사인, 그것도 소드마스터인 내가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할 리 없었다.

사실 알아챈 지는 좀 됐다.

그럼에도 일부러 지켜봤다.

사네는 센트럼과 달랐다.

자아 자체가 불안정했던 센트럼과 달리 사네는 자아가 선명하고 또렷했다.

함부로 개입하기보다는 먼저 얘기해 줄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옳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더는 아니었다.

멘탈은 여전히 탄탄하나 몸이 위태로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더는 기다리지 않고 직접 물은 것이다.

“르로이야?”

“아냐, 요즘 늘 동아리 방에 같이 있었잖아. 그 인간이야 계속 날 불러내고 싶겠지만, 그럴 시간 자체를 안 줬어.”

“그럼 어떻게 된 건데? 1왕자 쪽 수작이라는 건 짐작 가지만, 구체적인 부분은 네가 얘기를 해 줘야 알 수 있어. 혼자 감당하려고 대충 얼버무리지 마. 어차피 나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지금 그럴 상태 아니야. 이러다가 너 골병 들어.”

기왕 내친걸음이었다.

진상을 밝힐 수밖에 없도록 강하게 재촉했고, 이윽고 사네도 입을 열었다.

“……겔포이야. 놈이 검술 수업 시간에 수작을 부리고 있어.”

그리하여 확실히 파악할 수 있었다.

크리스토퍼와 생도회가 수작질의 방향을 어느 쪽으로 잡았는지에 대해서.

내가 아닌 내 주변, 내 사람들을 건드리는 방향이었다.

센트럼을 건드렸던 때와 비슷했다.

내 사람에 대한 노골적인 괴롭힘.

하지만 동시에 천지 차이였다.

구체적인 방식과 그 효과 면에서.

“너도 알겠지만, 이건 크게 키우면 절대 안 되는 일이야. 기드 패거리 때와는 달라. 이런 저열한 짓거리에 직접 나선 놈이 무려 겔포이니까.”

수작질의 실행자가 바뀌었다.

언제 버려도 상관없는 평민에서 생도회의 일원인 영지 귀족으로.

심지어 그저 그런 가문 출신도 아니었다.

중앙 정계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드레이크 백작가 출신, 겔포이였다.

실행자 하나 바뀐 것일 뿐이지만, 결과적으로 그 무게감과 효과는 차원이 달라졌다.

“그리고 이 정도는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야. 가문에서도 르로이 그 인간한테 심심찮게 당하던 짓거리니까. 중요한 건 저쪽에 빌미를 주지 않는 거야. 알지, 라이?”

당연히 대응 방식 역시 달라야 했다.

기드 패거리 때와 같은 단순한 처리는 불가능했다.

겔포이가 직접 나선 이상 더는 개인 대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장에야 그리 보일지 몰라도 결국 가문이 얽혀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내가 겔포이에게 달려가 복수한다고 가정해 보면 간단했다.

하면 놈은 가문 차원에서 공식적인 항의를 해 올 것이다.

천덕꾸러기 신세인 사네와는 조건부터가 다르니 분명히 그리 나올 터.

이 문제가 커지다 보면 자칫 영지전까지 비화될지도 몰랐다.

명분이야 충분하니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물론 드레이크 백작가가 무서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

백작가쯤이야 나 혼자서도 수월하게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하나, 문제는 드레이크 백작가가 아니었다.

그 뒤였다.

그 뒤에 크리스토퍼와 나로움 후작가가 있었다.

생도회가 연관된 일이라는 명분으로 개입할 것이 분명했다.

곡물은 놓고 가라고 르로이를 몰아붙이던 때와는 달랐다.

사실상 1왕자를 비롯하여 동부 전체와 싸우는 판이 펼쳐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알아.”

당연히 알았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단, 그렇다고 하여 이대로 외면할 수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럼 사네, 이렇게 해 보는 건 어때?”

외면하면 할수록 수작질의 정도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초장부터 곧바로 대응해야 했다.

하여 내가 떠올린 대응책을 사네에게 풀어놓았다.

내 판단에는 상당한 실효성을 갖춘 대응책이었다.

그리고 이 방안의 구체화 및 실행에는 사네가 필수적이었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게 무모한 짓이야.”

한데, 내 방안을 접한 사네의 반응은 좋지 못했다.

좋지 못한 정도가 아니었다.

아연실색하고 있었다.

가능성 자체는 완전히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1왕자 쪽에서 원하는 거야 불 보듯 뻔하잖아. 어떻게든 널 굴복시키겠다는 건데, 네가 말한 방법은 그냥 처음부터 무릎 꿇고 시작하겠다는 얘기밖에 안 돼. 시간 조금 끄는 것 말고는 아무 의미도 없는 짓이라고.”

“왜? 나는 충분히 할 만하다고 보는데.”

“왜긴 무슨 왜야? 전혀 할 만하지 않아. 가능성 제로라고!”

사네의 극렬한 반응도 이해는 됐다.

오히려 이렇게 반응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하나,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이 방안에서 충분한 가능성을 포착한 상태였다.

“그렇게까지 강하게 부정하는 건 내가 좀 섭섭하지. 내 눈 못 믿어? 이미 보여 줄 만큼은 보여 줬다고 생각하는데.”

“…….”

내 반박에 대해서는 순간 사네도 대꾸하지 못했다.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적절해서 명시적인 반박이 불가할 만큼 완벽한 선례가.

그것도 사네가 눈만 돌리면 언제든 볼 수 있을 만큼 아주 가까운 곳에.

“아무리 그래도 라이, 이건 너무 무모해. 차라리 여유를 좀 두고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게…….”

달칵.

그때, 사네의 항변이 중간에 끊겼다.

동아리 방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두 사람 때문이었다.

“베로카……?”

특히 그중에서도 입가가 터지고 뺨이 뻘겋게 달아오른 상태의 베로카.

그런 베로카가 나와 사네 모두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 * *

“죄송합니다, 공자님.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베로카는 거듭 사과했다.

그런 그녀의 자세 또한 공손하기 그지없었다.

“죄송하다고 말로만 하면 다인가?”

하지만 소용없었다.

상대는 말뿐인 사과에 불과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직접 손을 썼다.

후웅~

찰싹!!

베로카의 뺨을 때린 것이다.

그것도 약간이지만 마나가 실린 손바닥으로.

이로 인해 단 한 방에 입술이 터지고 말았다.

당연히 뺨 또한 손자국을 따라 빨갛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B22

그럼에도 베로카는 신음조차 내뱉지 못했다.

뜬금없는 폭력에 반박하기는커녕 재빨리 자세를 바로 한 뒤 다시금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공손하기 그지없는 사죄의 말과 함께.

그녀가 이렇게 입술까지 터지고도 변명 한마디 못할 만큼 큰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

베로카가 그런 실수나 잘못을 저지를 만큼 덜렁거리는 성격도 아닐뿐더러, 이 상황에는 그럴 요소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베로카는 그저 동아리 방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을 뿐이다.

그녀가 한 일이라고는 귀족을 발견하고 재빨리 구석으로 물러난 것, 그리고 90도에 가깝게 허리를 접은 것밖에 없었다.

흠 잡힐 만한 거리는 추호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데, 그럼에도 흠이 잡혔다.

“그래, 감히 주제도 모르고 눈을 치켜떴으니 죽을죄라면 죽을죄지.”

감히 하녀 주제에 눈을 치켜뜨고 자신을 노려봤다는 것.

이것이 뜬금없이 베로카에게 다가와서는 추궁과 함께 뺨을 때린 이유였다.

아예 근거가 없지는 않았다.

아주 잠깐에 불과하지만, 베로카가 귀족의 얼굴을 스치듯 살펴본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다만, 이는 하녀로서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얼굴도 확인하지 않고 어떻게 상대의 정체를 파악한단 말인가?

베로카가 재빨리 한 구석으로 물러나 길을 터 주고 공손하게 인사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귀족의 정체를 멀리서부터 파악한 덕분이었다.

그럼에도 눈앞의 귀족은 이 당연한 행동에서 흠을 잡아낸 것이고 말이다.

“죽을죄를 지었다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도 불만 없겠지?”

“…….”

억지였다.

심각한 억지였다.

두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베로카는 단연코 눈을 치켜뜬 적이 없었다.

오히려 평상시보다 배는 몸가짐에 신경을 썼다.

그녀가 확인한 상대의 정체 때문이었다.

지금 그녀를 향해 다시금 손을 추켜올리는 귀족의 이름은 카르사노 바이퍼.

바이퍼 백작가의 장남이자 생도회 사람인 동시에 그녀가 모시는 라이오넬의 적이었다.

돌아가는 사정에 대해서는 그녀도 라이오넬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상대가 카르사노임을 확인하자마자 극도의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노린 것일 터.

거듭된 사죄에도 불구하고 카르사노의 손은 추켜올려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우웅~

그렇게 잔뜩 당겨진 손에는 이번에도 마나가 실려있었다.

첫 번째보다 늘어난 양의 마나가.

훙~

그런 무자비한 손바닥이 재차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잔뜩 부풀어 올라 있는 베로카의 뺨을 향해서 한 번 더.

이번에는 단순히 입술 좀 터지고 마는 선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를 각오한 베로카가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쯤 해 두시죠.”

우뚝!

카르사노의 손바닥은 끝까지 뻗어 나오지 못했다.

목표지점에 도달하지 못한 채 중간에 멈춰 선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개입한 제3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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