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44화 (45/200)

22장: 두 사람과의 첫 대면

크리스토퍼는 브로든을 싫어했다.

감히 1왕자인 본인에게조차 제대로 예의를 갖추지 않는다는 점이 그 이유.

그럼에도 실력 때문에 건드리지 못하니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이 외에도 독자적으로 이상한 동아리 하나 만들어서 활동 중인데, 그 구성원도 중구난방이라 목적이 파악되지 않습니다.”

“종잡기 어려운 놈이라 이거지? 그래서, 우리에게 포섭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우리와 명백히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특히 며칠 전 대리전 성격으로 펼쳐진 마법 대결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손속에 전혀 사정을 두지 않고 마무리로 확인사살까지 하더군요.”

나흘 전 펼쳐졌던 센트럼과 기드 패거리의 마법 대결.

대결의 결과는 일방적이었다.

그리고 처참했다.

기드 패거리 전체가 완전히 박살 났다.

강제 성형을 당한 앞의 두 놈도 두 놈이지만, 마지막 주자인 기드가 특히 심각했다.

조나스와 티안이 얼굴을 잃었다면, 기드는 그의 모든 걸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라이트닝 직격으로 쌓아 둔 서클을 잃고 완전히 폐인이 됐다.

마법사로서의 미래가 아예 끝장나 버린 것이다.

물론 대결을 기획한 카르사노나 허락한 클리앙이 기드의 박살 난 미래 따위에 관심을 둘 리 만무했다.

중요한 것은 대결의 결과가 지니는 의미였다.

이 대결은 대리전 혹은 전초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각각 센트럼과 기드 패거리를 앞세운 라이오넬과 생도회의 첫 번째 충돌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의미를 지닌 대결에서 라이오넬은 마침표를 찍었다.

기드를 재기 불능으로 짓뭉갠 것.

이는 생도회에 대한 그의 입장을 명백히 드러내는 확실한 마침표라고 할 수 있었다.

“쯧, 그럼 실력은 어느 정도로 추정되는데? 케인하고 비교하면 어떻겠어?”

“소드 익스퍼트 중급 정도로 보입니다. 아무리 높게 잡아도 중상급 이상은 안 될 테니, 케인에게는 미치지 못할 겁니다.”

크리스토퍼가 회장으로 있는 생도회에 중간은 없었다.

아카데미 내에서 그들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면 오로지 적일 뿐.

한데 라이오넬은 포섭 확률이 현저히 낮았고,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적이 될 경우를 고려해야 했다.

이 고려의 기준점이 되는 것은 케인 타리우드.

고작 20살의 나이에 소드 익스퍼트 상급에 다다른 현 아카데미 최강이자, 아카데미의 역대급 재능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인재였다.

동시에 두말할 필요 없는 크리스토퍼의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케인과 라이오넬의 비교에서 클리앙은 케인의 확실한 우위를 점치고 있었다.

“응? 칭호가 트윈 슬레이어잖아. 그런데 중급 밖에 안 된다고?”

“여러 정황상 그 칭호는 상당히 부풀려진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바르코스 후작은 라인하트 영지에 부채를 지니고 있었을 겁니다. 전대 영주의 전사에도 북부 사정 때문에 충분한 보상을 해 주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라이오넬을 밀어주고 그 짐을 덜고자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 왕자님께서도 아시다시피 르로이의 증언도 있습니다.”

“그거야 르로이에게 몇 번 듣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질투가 섞인 거 아니었어?”

“저도 그렇게 판단하고 크게 신빙성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요새로 직접 사람을 보내 확인해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더군요.”

클리앙이 르로이의 증언과 실제 탐문 결과를 크리스토퍼에게 대조해 주었다.

르로이는 라이오넬이 주제로 떠오를 때마다 강력히 주장했다.

라이오넬의 전공은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단순 주장만이 아니었다.

당시 그가 옆에서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바를 근거로 첨부했다.

르로이가 목격한 바에 따르면, 라이오넬은 기본적인 마나량이 충분치 못했다.

그는 성벽 위에서 몬스터를 곧바로 죽이지 않고 밀어서 떨어뜨리기만 했는데, 이 행동이 다른 기사들처럼 오러를 마음대로 발산하지 못해서 내놓은 궁여지책이라는 것이다.

또, 요새에서 오우거를 죽인 것 역시 그 혼자만의 공이 아니었다.

라이오넬의 부하 기사가 함께였으며, 무엇보다 병사들이 적중시킨 발리스터 두 발의 영향이 지대했다.

발리스터를 맞고 약해진 오우거를 라이오넬이 마무리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당시 오우거의 공격을 막는 과정에서 버거워하는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기도 했고 말이다.

이를 바탕으로 르로이가 추정한 라이오넬의 실력은 잘해야 소드 익스퍼트 중급.

어쩌면 그보다 낮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르로이의 주장이었다.

물론 클리앙도 이 주장을 크게 믿지는 않았었다.

한데 이번에 직접 조사한 결과, 주장은 사실일 가능성이 상당해졌다.

르로이가 내세웠던 근거들이 뉘앙스는 180도 다를지언정 바르코스 병사들의 입을 통해 대부분 입증됐기 때문이다.

적어도 몬스터를 밀어서 떨어뜨렸다는 점, 오러 발산이 그리 잦지 않았다는 점, 오우거를 혼자 죽인 것이 아니라는 점 등은 분명한 팩트였다.

“단순한 르로이의 질투와 시기는 아니다?”

“그렇습니다. 오히려 더 객관적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르로이는 라이오넬을 덮어 놓고 영웅으로 추앙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렇단 말이지…….”

대조 결과는 이러했고, 르로이의 주장은 자연스레 신빙성을 확보했다.

더욱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라인하트 자작가의 기사단장 에릭스 브란부르트에 대해서는 왕자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알아. 소드 익스퍼트 상급에, 라이오넬과 함께 트윈 슬레이어로 불리는 그 기사.”

“예, 그 기사입니다. 그 기사가 실제로는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작년 겨울 몬스터 웨이브에서 분명히 상급 이상의 모습을 보였다는군요.”

“그러니까 트윈 사냥의 진짜 공은 그 기사단장에게 있다는 건가? 라인하트 자작가를 띄우고자 일부러 라이오넬을 더 부각시키는 것이고?”

“정황상 그렇습니다.”

라이오넬의 명성이 오르면 오를수록 라인하트 자작가는 더 큰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단적인 예로 라이오넬의 혼인을 들 수 있었다.

가문 입장에서는 차남인 그의 이름값을 높여 유력 가문에 비싸게 팔아먹는 것이 가능했다.

이미 장남인 이드리스가 영주에 오른 상태겠다, 후계 구도 문제로 복잡해질 것도 없고 말이다.

“하긴, 등장부터가 너무 뜬금없기는 했지.”

“확실히 석연치 않았습니다. 그만한 실력자가 아무런 전조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튀어나온다는 게 말이 되지 않지요. 용병이나 평민 기사 출신도 아니고, 영지 귀족이라면 더더욱. 어쩌면 르로이 말대로 중급도 많이 쳐준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로써 크리스토퍼도 라이오넬의 실력을 짐작할 수 있게 됐다.

소드 익스퍼트 중급 정도.

이 수준을 크게 뛰어넘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18살이라는 나이를 고려하면 이 수준만으로도 역대급 천재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와 생도회의 손에는 그 상위의 생도가 존재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행보에 있어 거리낄 이유가 없었다.

“좋아. 어쨌든 그 녀석 데리고 와 봐. 어차피 앞으로 종종 마주칠 듯한데, 한번 확실하게 정리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 * *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회귀와 함께 내 성격이 많이 달라진 이유를.

회귀 직전 나를 덮쳤던 어둠의 정령력이 원인이었다.

감정과 깊이 연관된 이 힘이 내 성격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특히 정령석을 직접 섭취한 뒤로는 그 경향이 한층 더 강화됐고 말이다.

그래서였다.

이런 부탁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은.

“어떠세요, 저희 동아리 지도교수?”

“그러니까, 내가 왜?”

내 부탁에 삐딱한 반응을 보이는 브로든.

그러나 특별할 것 없었다.

이미 두어 차례 경험해 본 반응이었으니까.

단, 이에 대한 내 대응은 조금 달랐다.

이전까지와 달리 오늘은 혼자가 아니었다.

“교수님께서 도와주시면 학구열에 불타는 이 친구들이 더 양질의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센트럼과 베로카가 함께였다.

수업 중인 사네를 제외한 마검학연 구성원 모두가 브로든 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동아리에 영지 귀족 출신만 둘이라며? 그 정도면 너희가 좀 알아서 하라고.”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처지가 좀 평범치 못합니다. 사네를 보세요. 가문과 형이라는 작자에게 골고루 구박당하는 천덕꾸러기 서자 신세입니다. 가문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턱이 없죠.”

물론 자리에 없다 한들 가져다 쓰지 않을 리 없었다.

어차피 동아리원 모두를 들이댈 생각이었다.

“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네보다야 조금 낫다지만, 그래 봤자 형에게 빌붙어 사는 무일푼 차남에 불과해요. 그런 주제에 영지민들의 피 같은 세금을 어떻게 제 개인적인 용도로 낭비할 수 있겠습니까? 영지를 위해 쓰는 것만으로도 한참 모자란데.”

과장이 가미되기는 했지만 내 처지 역시 근거로 보태졌다.

여기까지가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동아리의 현실에 대한 호소.

그렇다면 다음은 브로든의 약점을 정면으로 공략할 차례였다.

“또, 여기 센트럼, 지난 1년 내내 따돌림당하기 일쑤이던 안타까운 생도입니다. 그런 친구가 최근에 깨달음을 얻어 스퍼트 좀 내보려고 하는데, 동아리에서 지원해 줄 돈이 없네요.”

배움에 목마른 이에게 약한 브로든의 성격.

이 부분이 바로 공략 포인트였다.

“그리고 이 아이, 하녀 생활로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우리 베로카. 이 아이가 늦은 나이에 발견한 천부적인 재능을 제대로 꽃피워 보지도 못하게 생겼습니다. 공부할 돈이 모자라서.”

최후의 일격은 베로카였다.

학습 환경이 극도로 열악한 하녀라는 신분, 이것은 브로든의 약점 공략에 있어 최적의 요소라고 할 수 있었다.

더욱이 베로카는 영리하고 눈치가 빨랐다.

내가 날린 일격에 맞춰 촉촉하고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브로든을 빤히 응시 중인 그녀였다.

“크흠…….”

역시나 효과가 있었다.

브로든의 동공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어색한 헛기침은 덤이었다.

지도교수의 존재는 아카데미 내 동아리에 있어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했다.

지도교수 등재 여부에 따라 아카데미의 공식적인 지원 수준이 확 달라졌기 때문이다.

동아리 방의 크기, 연말 경연에서의 특전 등 여러 가지 혜택 차이가 있으나,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돈.

아카데미에서 지급하는 동아리 활동 지원금이 배 이상 차이 났다.

나와 사네에게는 별 상관없지만, 마법사인 센트럼과 베로카에게는 제법 도움 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브로든을 타깃으로 삼았다.

일반적으로 동아리 하나씩 맡고 있는 다른 교수들과 달리 프리한 그를 우리 동아리의 지도교수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흠흠, 아무리 그래도 안 돼. 귀찮아.”

그러나 이번 시도 역시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잠시간의 흔들림을 재빨리 수습한 뒤 고개를 가로젓는 브로든이었다.

“떠맡는 게 싫어서 여자고 친구고 다 버리고 여기서 혼자 궁상떠는 나한테 뭘 맡아 달라? 동아리? 아서라 아서.”

브로든의 성향 때문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고생으로 인해 무언가에 대한 책임이나 부담 따위라면 학을 뗐다.

약점 공략이 효과를 봤다고는 해도, 고작 한두 번으로 될 일은 아니었다.

“교수님, 그렇게 딱 잘라 거절하지 마시고 한번 곰곰이 생각해 주세요.”

“곰곰이 생각이고 뭐고가 어디 있어? 그냥 아서라니까 그러네.”

“흐음, 알겠습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대신 앞으로도 사네나 이 친구들이랑 같이 종종 찾아뵐 거니까 문전박대는 하지 말아 주세요.”

물론 나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여 서두를 생각이 없었다.

또 그래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애초에 브로든을 동아리 지도교수로 모시는 일이 필수불가결의 선결과제는 아니었으니까.

브로든에게 밝힌 그가 필요한 이유에는 과장이 섞여 있었다.

확실히 동아리 사정이 넉넉하다고는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또 궁핍하다고 볼 수도 없었다.

정 필요하다면 미래에 대한 투자 명목으로 이드리스에게 받아다 쓰면 그만이었다.

사네와 센트럼, 그리고 베로카는 그럴 만한 가치를 충분하다 못해 넘치도록 지닌 인재들이었으니까.

설령 영지의 세금을 끌어다 이들에게 쓴다 해도 결코 낭비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꺼리는 브로든에게 지도교수 제안을 이어 가는 데에는 돈 이외의 이유가 존재했다.

어떤 인물과의 연결고리였다.

나를 이곳 아카데미로 오게 만든 전부라 해도 무방한 인물과의 자연스러운 연결고리.

회귀 전에는 검이 그 역할을 했다.

검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자 브로든을 자주 찾아왔고, 덕분에 그 인물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었다.

하나, 이제 검은 그 역할을 해 주지 못하는 상황.

동아리 지도교수로 그 자리를 대신할 계획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브로든이 정말 지도교수가 되어 준다면 금상첨화였고 말이다.

“찾아오긴 뭘 찾아와? 문전박대해 버릴 거니까 찾아오지…….”

똑똑똑.

브로든의 거절을 중간에서 끊는 노크 소리.

그리고 활짝 열리는 연구실의 문.

그와 함께 들려오는 반가움 한가득 실린 하이톤의 목소리.

“나 왔어요, 브로든. 오랜만이에요.”

“오셨습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레나 왕녀님.”

비아트릭스 셀레스티나 슈라우드.

레나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올해 19살의 슈라우드 왕국 1왕녀.

아카데미 2년 차로서 왕실 일정의 종료와 함께 아카데미로 복귀한 참이었다.

그러고는 곧장 절친한 사이인 브로든에게 그녀의 복귀를 알리러 온 것이다.

“그런데 웬일로 여기가 북적거리네요? 굳이 브로든을 찾아오는 사람이 저 말고도 또 있을 줄은 몰랐는데.”

“아, 그게 그러니까 여기 라이오넬 라인하트라는 녀석이…….”

그렇게 브로든의 상황 토로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우리와 레나 사이에 짧은 인사가 오갔음은 물론이고 말이다.

잠시 후, 브로든의 토로가 대강 마무리됐고, 이에 레나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런 레나의 눈빛에는 흥미와 호기심 같은 것이 짙게 서려 있었다.

“해 줘요, 브로든. 얼마나 고마워요, 브로든 성격 별난 거 빤히 알면서 이렇게 찾아와 준다는 게? 다 지나간 첫사랑이나 곱씹으면서 청승 떠는 건 이제 그만하고, 정말 독거노인 되기 전에 제자들이 내민 손 냉큼 잡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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