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장: 청산(3)
부르르르.
라이트닝에 맞아 쓰러진 채로 경련 중인 기드.
그래도 2학년 생도 중 손꼽히는 인재임은 확실했다.
헤이스트 마법을 활용하여 가까스로 직격은 피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는 것은 결국 피하지 못했지만.
“…….”
센트럼은 그런 기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당연한 결과였다.
기드는 센트럼을 2서클로 착각하고 있었고, 센트럼은 그 착각의 허를 제대로 찔렀으니 말이다.
사실 센트럼이 기드 입장이라도 마찬가지 착각을 했을 것이다.
센트럼조차 본인이 2서클을 건너뛰고 단번에 3서클로 직행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며, 솔직히 아직도 이게 꿈은 아닌지 문득 겁이 날 정도였으니까.
어찌 됐든 대결은 이미 종료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 볼 것도 없이 명확한 센트럼의 완승이었다.
“후우…….”
경련하는 기드를 내려다보며 이 사실을 확인한 센트럼.
이에 그가 긴 한숨을 내뱉었다.
완승에 따른 안도의 한숨?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결과에 대한 의심 같은 건 터럭만큼도 품지 않았다.
승리는 이미 기정사실이었다.
따라서 안도의 한숨을 내뱉을 이유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은 승리 이후에 대한 어떤 망설임을 내포하는 그런 한숨이었다.
지금부터 센트럼이 벌일 행동에 대한 약간의 주저함이라고 봐도 좋았다.
이런 복잡한 심경에 그가 살짝 고개를 돌렸다.
기껏해야 세 명의 배석자가 전부인 관람석을 향해서.
끄덕.
그곳에는 센트럼의 정신적 지주가 자리하고 있었다.
센트럼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준 그의 구원자, 라이오넬.
그런 라이오넬이 센트럼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더할 나위 없는 확신을 담아서.
“라이트닝.”
덕분에 센트럼도 마음을 확고하게 굳힐 수 있었다.
대결 시작 전, 라이오넬은 말했다.
지옥 같던 센트럼의 과거, 그 원흉인 기드에 대한 미움과 두려움 등의 온갖 감정, 그리고 여기서 기인한 모든 트라우마.
이것들을 오늘 이 자리에서 모조리 청산하라고.
한 치의 미련도 남기지 말고 깔끔하게.
나아가 어설픈 마무리 따위 과감하게 배제하라고 말이다.
완벽한 청산을 위해서는 뿌리까지 뽑아 버리는 깔끔한 마무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라이오넬의 조언이었다.
조언의 형태를 띠고 있을지언정 센트럼에게 그것은 절대명령이나 다름없었다.
하여 더는 어설픈 고민 따위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곧장 메모라이즈 해 둔 두 번째 라이트닝을 꺼내 들었다.
쿠르르릉.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직격당한다면 기드는 폐인이 될 가능성이 컸다.
재수 없으면 죽음에 이를지도 몰랐다.
몸통이 아닌 다리를 타격할 예정이고, 또 아카데미 의료 시설이 있는 만큼 그럴 확률은 낮다지만, 어쨌든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센트럼에게 더는 망설임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끔찍했던 과거에 대한 청산 의지와 확고한 각오만이 존재할 뿐.
꽈르릉!!
끝내 센트럼의 손에서 한 줄기 벼락이 쏘아져 나갔다.
그것은 눈 깜박할 사이에 기드를 직격했고, 그렇게 센트럼의 과거와 모든 트라우마가 깔끔하게 정리됐다.
* * *
베로카는 마검학연 동아리 방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매일 정각 동아리 방으로 향하는 것은 이미 그녀의 일상이 된 지 오래.
그곳에서 베로카는 그녀의 현재와 미래를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었다.
타인에 종속되는 시녀로서가 아닌, 오롯이 스스로 빛을 발하는 주체적인 마법사로서.
그렇기에 동아리 방으로 향하는 이 길이 베로카에게는 항상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오늘은 이 설레는 길을 평소보다 한 시간가량 늦게 걷는 중이었다.
오늘은 동아리의 또 다른 구성원에게 매우 중요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베로카와 마찬가지로 마검학연을 통해 인생이 180도 달라진 동아리원, 센트럼.
지금쯤 아카데미 마법 연무장에서 그의 대결이 한창일 터였다.
이로 인해 오늘 모임 시간이 뒤로 밀렸고, 베로카 또한 다소 늦은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하지만 베로카는 조금도 못마땅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다 기분이 좋았다.
센트럼은 이제 그녀에게도 중요한 사람이었다.
같은 동아리의 구성원인 동시에 베로카에게 마법의 기초를 전수해 준 선생님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언제나 그녀 마음속의 1순위인 라이오넬이 특별히 챙기는 사람이었다.
그런 센트럼이 과거를 청산하는 날인데 모임 시간 조금 뒤로 밀렸다 하여 불만이 생길 리 만무했다.
그리고 오늘은 냉각된 센트럼과의 관계를 해소할 날이기도 했다.
사실 그녀가 해소해 준다는 표현이 옳았다.
센트럼이 기드 패거리 앞에서 입 다물었던 그 날 이후, 그는 극도로 베로카의 눈치를 살피며 지내 왔으니까.
대놓고 면박을 주지는 않았지만, 베로카 역시 다소 냉랭하게 그를 대했고 말이다.
하나, 오늘은 센트럼이 암울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날.
그런 만큼 그와의 관계 역시 다시 써 내려갈 작정이었다.
이렇게 여러 긍정적 감정을 품은 채 가벼운 발걸음을 내디뎌 가던 베로카였다.
“하여간에 베로카 그년, 진짜 낯짝도 두꺼워. 어쩜 그리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있어?”
그런 그녀의 발걸음을 붙잡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녀들이 주로 드나드는 세탁실 쪽이었다.
더불어 그 목소리 또한 베로카의 귀에 익숙했다.
해서 그녀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이어지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제 입으로 분명 그랬잖아. 자기는 귀족들 몸으로 꼬실 생각 쥐똥만큼도 없다고. 그건 인생 불행해지는 지름길이라나 뭐라나 잘난 척 떠들어 대면서.”
“맞아, 그년 그거 분명히 그랬어.”
“그런데 지금 그년 하는 꼴을 좀 봐. 귀족 공자한테 아주 그냥 푹 빠져서 칠렐레팔렐레 헤실거리고 다니잖아.”
하녀 도로시였다.
아카데미 동료 하녀인 도로시가 베로카의 뒷담화를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녀와 친한 무리는 그 뒷담화에 연신 맞장구를 치는 중이었고 말이다.
“참나, 그리 헤프게 가랑이 벌려 댈 거였으면 고상한 척이라도 하지 말던가. 꼴에 고고한 척, 똑똑한 척은 다 해 놓고서 하는 짓거리는 창녀가 따로 없어.”
“그러니까. 아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밤마다 나가더라니까? 더러운 년.”
매일 밤 이어지는 베로카의 행적에 관한 뒷담화였다.
라이오넬의 방에 최대한 조용히 드나들었다지만, 출입이 매일 반복되니 결국 소문나고 만 것이다.
당연히 그 내용은 깨끗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사자인 베로카조차 처음에는 잔뜩 오해를 품었을 정도니까.
물론 꿀밤 두 방에 모두 풀리기는 했지만.
하지만 진실을 모르는 저들로서는 오해를 확대·재생산해가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베로카는 이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이 없었다.
자연스레 뒤따를 수밖에 없는 오해였으며, 진실을 밝히지 않는 한 풀기도 어려웠다.
설령 밝힌다 해도 믿어 줄지도 의문이었고.
무엇보다 도로시의 질투와 시기는 베로카도 어느 정도 받아 줄 용의가 있었다.
그녀가 라이오넬 전담 경쟁에서 베로카에게 밀려 탈락한 최후의 일인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귀족 하나 잘 물어 팔자를 뜯어고칠 생각으로 가득한 하녀이기도 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약간의 안쓰러움도 느끼는 만큼 베로카는 이대로 눈감아주려 했다.
해서 실제로 멈췄던 발걸음도 재차 내디디던 참이었다.
“그 공자라는 귀족도 그래.”
분명 그리하려 했다.
뒤이어지는 도로시의 뒷담화 대상 변경만 아니었다면.
“어디 뒤틀어진 변태 아니고서야 무슨 그런 못생긴 년을 밤마다 불러 대? 아무래도 진짜 변태거나 어디 하나 이상 있는 게 분명해.”
베로카 본인은 얼마든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도 좋았다.
어느 정도는 선을 넘더라도 용인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라이오넬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
그 무엇 하나 절대 그냥 넘어가 줄 수 없었다.
발톱에 낀 때만큼의 선 넘음이나 극히 미약한 헛소리라고 해도 말이다.
할 수만 있다면 대륙 끝까지라도 쫓아가 그 입을 요절 낼 작정이었다.
라이오넬은 베로카에게 그런 존재였다.
그녀 인생의 우선순위에서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지극히 소중한 존재.
도로시는 방금 감히 그런 존재에 대해 함부로 입을 놀린 것이다.
하여, 들어 올려졌던 발바닥을 가만히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우우웅~
그러고는 심장에 자리 잡은 한 개의 고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자리 잡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 겨우 사흘 정도.
하나, 이 사실만으로도 사네와 센트럼은 쩍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라는 것이다.
라이오넬은 그래도 예상했다는 듯 살짝 덤덤한 반응이었지만, 매일 그를 시중드는 베로카는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눈부신 성장에 라이오넬조차 한 번씩 감탄을 금치 못한다는 사실을.
특히 베로카가 보이는 섬세한 마나 컨트롤 능력에는 더더욱.
“듣자 하니 생도회 귀족님들하고 사이도 안 좋고 평판도 별로라고 하던데, 이게 다 그래서…….”
구우우웅~
도로시의 헛소리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고리의 회전은 점점 더 맹렬해졌다.
완성되어 가는 마법, 쌓여 가는 베로카의 분노와 함께.
이윽고.
“스트렝스.”
마법이 완성됐다.
1서클의 스트렝스 마법.
베로카는 그것을 자신의 몸에 둘렀다.
저벅저벅.
그러고는 멈췄던 걸음을 다시금 천천히 옮겼다.
동아리 방이 아닌 세탁실 안쪽을 향해.
도로시와 그 무리의 천박한 입이 끊임없이 더러운 오물을 뱉어 내는 곳으로.
“어? 베로카? 네가 왜 여기에……?”
“그러지 말았어야지.”
“무슨……?”
“나로 끝내고, 감히 그분까지 입에 담지는 말았어야지.”
퍼걱!!!
그렇게 시작되었다.
베로카로부터 행해지는 일방적이고도 처절한 구타의 향연이.
도로시와 하녀들의 코피가 새하얀 빨래에 새빨간 얼룩을 수놓을 때까지.
지금 이 시각, 청산은 연무장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카데미 내 높으신 분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세탁실 안, 마찬가지로 누구 하나 관심 갖지 않을 아래 것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지는 중이었다.
지금은 극소수를 제외하고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그러나 그 누구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할 예정인 한 하녀에 의해서.
* * *
“그렇게 해서 드레이크 백작가의 장남 겔포이 드레이크에게 임시로 부장을 맡겼습니다. 회장이신 왕자님의 공식 임명이 필요합니다.”
클리앙 나로움이 누군가에게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생도회의 부회장이자 나로움 후작가의 후계자인 그를 이렇듯 보고자의 위치에 세울 수 있는 인물은 왕국 내에 몇 안 됐다.
특히 보고 내용을 생도회 업무로 한정시킨다면 단 한 명뿐이었다.
갓 당도한 아카데미 3년 차의 생도회장이자, 본업은 슈라우드 왕국 계승 서열 1위의 1왕자, 크리스토퍼 레너드 슈라우드 말이다.
왕실 일정 때문에 개학 후 두 달가량 지난 뒤에야 아카데미로 온 그에게 클리앙이 그간의 일들을 보고 중인 것이다.
“뭐, 그런 거야 클리앙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했겠지.”
다만, 크리스토퍼가 애초에 이런 걸 일일이 챙기는 성격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일은 사실상 그의 최측근인 클리앙이 도맡아 처리해 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무엇보다 현재 크리스토퍼의 관심은 다른 쪽으로 쏠린 상태였다.
“이쯤 했으면 생도회 관련 업무는 끝난 것 같은데, 이제 라이오넬 라인하트에 대해서 얘기해봐. 특이한 녀석이라고?”
크리스토퍼의 관심이 쏠린 대상은 라이오넬이었다.
그에 관해서는 할 얘기가 꽤 되기에 일부러 뒤로 몰아 놓은 참이었다.
그리고 다른 보고가 얼추 마무리된 만큼 이제는 본격적으로 라이오넬에 대해 이야기 나눌 차례였다.
“예, 확실히 특이합니다. 영지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생도회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간의 행적들로 보면 우리와 명백히 거리를 두려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얼핏 듣자 하니 마법 수업도 들었다며? 검사 아니었나?”
“검사 맞습니다. 아카데미에서는 아직 검 쓰는 모습을 보인 적 없지만, 바르코스 요새에서의 행적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왕자님께서 들으신 부분도 사실입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마법 입문 수업을 수강했습니다. 다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진짜 특이한 녀석이네. 그럼 검술 쪽은? 검술 수업은 따로 안 듣고?”
“듣기는 합니다만, 하나뿐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가 브로든 프라우닉스의 수업입니다. 종종 그의 연구실로 직접 찾아간다고도 하더군요.”
“브로든 그 시건방진 인간이랑 가까이 지낸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