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41화 (42/200)

21장: 청산

심장에 두 번째 서클이 완성된 후, 밖으로 뿜어져 나오던 뇌전의 힘이 눈에 띄게 줄어 갔다.

넘치던 힘이 심장의 두 서클과 완성 직전의 라이트닝 마법으로 갈무리되어 가는 것이다.

덕분에 센트럼의 두 서클은 더할 나위 없이 크고 굵직했으며, 라이트닝은 최소 3서클짜리로 보일 만큼 강력했다.

이렇게 센트럼의 격상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여기까지만으로도 눈부신 발전이라고 할 법했다.

단숨에 2서클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한 것으로도 모자라, 캐스팅되는 마법의 위력 자체가 평균치를 월등히 뛰어넘었다.

비록 뇌전 마법에 한정되는 위력이기는 하나, 오히려 그래서 더 특별했다.

무아지경에 빠져 있는 센트럼이 깨어난다면 기쁨의 눈물을 줄줄 흘릴 만큼은 되고도 남았다.

바로 이 시점이었다.

이 시점이 내가 센트럼을 집어먹으며 품었던 결심을 이행할 타이밍이었다.

벌어진 잠재력의 균열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더 뿜어져 나올 여력이 분명히 존재했다.

하나, 그럴 만한 유인이 주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센트럼이 캐스팅 중인 라이트닝의 한계 때문이었다.

아무리 서클을 뛰어넘는 위력을 지녔다 한들 라이트닝은 본질적으로 2서클 마법.

이 마법이 필요로 하는 서클의 최대 개수는 결국 2개뿐이었다.

시전자로부터 그 이상을 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인 것이다.

이로 인해 미처 끌어내지 못한 여분의 잠재력은 캐스팅 종료와 함께 다시 잠들려 하고 있었다.

사아아~

이 지점에서 내 정령력이 개입했다.

파지지지지직.

잠들어 가던 잠재력을 흔들어 다시 일깨웠다.

그리고 아직 닫히지 않은 균열로 빠르게 밀어 올렸다.

적어도 한번 깨어났던 부분만큼은 억울하게 아무것도 못 해 보고 묻히는 일이 없도록.

쿠르르릉.

그리하여 스러져 가던 뇌전의 폭풍은 다시 한번 활동을 시작했다.

조금 전의 그것보다 한층 더 강화된 힘으로.

더욱더 격해진 마나 흐름과 함께.

그렇게 센트럼의 심장에 또 하나의 원을 그려갔다.

이번에도 역시나 크고 굵직하며 강력한 놈으로 말이다.

그리고.

꽈르릉!!

끝내 완성시켰다.

3서클이라는 아름다운 세 번째 원을.

나아가 더는 라이트닝이라는 이름만으로 가둬 둘 수 없는 한 줄기의 끔찍한 벼락을.

* * *

“어이 센트럼.”

기드가 기숙사로 향하는 센트럼을 불렀다.

그러자 센트럼이 우뚝 멈춰 섰고, 그사이 조나스와 티안이 센트럼을 둘러쌌다.

“우리 이틀 전에 못다 한 얘기가 있지 않나? 하려다 못 한 것도 좀 있고. 마저 해야 하지 않겠어?”

오늘도 역시나 구석진 장소.

물론 이틀 전과 달리 지나다니는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마법 학부 생도 한둘씩은 존재했다.

하지만 모두 못 본 척하고 그냥 지나갈 뿐이었다.

워낙 익숙한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기드들이 센트럼을 괴롭히는 건 일상이나 마찬가지.

근래 살짝 뜸했다고는 해도, 또다시 이러는 것이 특별한 상황으로 비칠 리 없었다.

따라서 다들 그러려니 하며 가던 길 쭉 가는 것이다.

“…….”

기드의 부름에 대한 센트럼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평소와 마찬가지로 우뚝 멈춰섰다.

그러고는 기드들이 자신을 둘러쌀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아주 얌전하게.

덕분에 오늘도 역시나 이렇게 사람 하나 가지고 놀기 딱 좋은 환경이 조성됐다.

이제 늘 해 오던 대로 마음껏 재미있는 놀이를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기드에게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있었다.

아무리 카르사노가 뒤를 봐준다고는 하나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지 귀족을 건드리는 일이었다.

영지 귀족의 직속 수하나 다름없어진 센트럼을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꺼림칙한데, 그 귀족을 직접 모욕하기까지 해야 했다.

그것도 트윈 슬레이어라 불리며 한창 상한가를 치고 있는 라이오넬 라인하트를.

불안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게 비정상.

하여 하루의 텀을 두었다.

확인을 위해서였다.

혹시라도 라이오넬이 직접 보복을 가해 오지는 않을지에 대한.

그리고 확인을 마쳤다.

라이오넬은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모욕죄를 물을 작정이라면 뜸 들이지 않고 곧바로 했을 터.

굳이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물론 센트럼이 아직 고자질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기는 했다.

하나, 이 경우도 상관없었다.

처음에 하지 못했다는 건 앞으로도 쭉 하지 못하리라는 의미였으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부담 없이 센트럼을 가지고 놀 수 있었다.

그래서 이틀이 지난 오늘, 센트럼을 재차 둘러싼 것이다.

애매하게 끊겼던 놀이를 다시 즐겁게 이어 가기 위해.

“어라? 센트럼, 너 뭐냐?”

그런데 이런 기드의 예상과 의도에서 어긋나는 부분이 발견됐다.

센트럼이 부름에 멈춰선 뒤, 기드가 그를 정면으로 마주한 시점에 발견된 어긋남이었다.

“그 눈 뭐야? 설마 지금 꼬나보는 건가? 네가, 나를?”

바로 센트럼의 눈이었다.

똑바로 기드를 향하는 센트럼의 시선.

거기 담겨 있는 빛이 지금까지의 그것과는 천지차이였다.

여태껏 센트럼의 눈빛으로부터 기드가 느낀 바는 극도의 찌질함뿐이었다.

공포와 두려움, 불안함, 극심한 떨림 등등 인생 낙오자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것들 말이다.

한데 지금 이 순간 기드가 느끼는 바는 정반대였다.

공포와 두러움이 아닌 순수한 분노, 불안함·떨림과는 거리가 먼 여유와 안정감 등 기존의 센트럼에게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종류의 빛들.

기드를 향하는 센트럼의 시선에는 이런 빛들이 그득하게 담겨있었다.

“이거 너무 어이가 없으려니 오히려 웃음이 나오네. 와, 살다 보니까 나한테 이런 날도 다 오는구나.”

물론, 이런 눈빛에 기드가 겁을 집어먹거나 경계심 같은 것을 품을 리 만무했다.

다른 놈도 아니고 찌질의 극치, 센트럼이었다.

심지어 바로 이틀 전까지 두려움에 덜덜 떨며 아무것도 못 하던 그 머저리 말이다.

달라진 눈빛에 염려를 품어야 할 이유?

쥐똥만큼도 없었다.

고작 이틀이었다.

현실이 무슨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드라마틱한 반전 같은 게 고작 이틀 만에 생길 리 없는 것이다.

대신 자극만 받았다.

어이없고 황당하다 못해 헛웃음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자극을.

“그래도 우리 머저리 센트럼이 자기 주제 파악만큼은 기가 막히게 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상실했네? 머저리 낙오자로도 모자라 아예 지진아가 돼 버렸어.”

“입 닥쳐, 기드.”

“뭐?”

“그 입 닥치라고. 썩은 내가 진동을 하니까.”

“얼씨구? 하아…….”

그러나 자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반항적인 눈빛에 이어 직접적인 망언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제는 헛웃음조차 사치였다.

기드는 말문 자체를 잃었다.

황당함과 분노가 극에 달하다 보니 제대로 표현조차 힘든 지경에 이른 것이다.

비단 기드만이 아니었다.

나머지 두 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기드 못지않게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만, 센트럼을 직접 마주 보고 선 기드보다는 그래도 좀 나은 모양이었다.

기드처럼 말문 자체를 잃지는 않았고, 대신 이 상황에 대한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다.

“기드,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센트럼 이 머저리 자식, 개념 자체를 완전히 상실했어. 귀족 뒤를 졸졸 따라다니더니 제 놈이 진짜 뭐라도 되는 줄 착각하는 모양이야.”

조나스였다.

그가 입조차 열리지 않는 기드의 현재 심경을 그대로 대변해 주었다.

“근데 이 머저리 새끼야, 이틀 전에 기드가 해 준 말은 그새 홀랑 다 까먹었냐? 네가 졸졸 따르는 그 공자, 쥐뿔도 없다니까? 칭호는 남이 세운 공 날름한 것뿐인 데다, 가문도 북부 시골 촌구석에 처박혀 있다고. 아무리 대가리가 비었어도 이 정도 얘기해줬으면 알아들을 때도 됐잖아?”

확인까지 마친 뒤였다.

더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하여 거침없이 라이오넬에 대한 모욕을 늘어놓는 조나스였다.

누구 하나 눈치를 본다거나 조나스를 말리지도 않았다.

이렇게 어이없는 상황만 펼쳐지지 않았다면 어차피 기드가 했을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 아니면 그건가? 요즘 웬 하녀 하나랑 시시덕거리는 것 같더니만, 꼴에 저도 남자라 이거지. 더러운 년이랑 붙어먹으면서…….”

“스트렝스.”

우우웅~

“어엉?”

퍼걱!!!

그래서였다.

어쩌면 기드가 받았을지도 모를 타격을 조나스가 대신 받은 것은.

부지불식간에 휘둘러진 센트럼의 주먹이 조나스의 안면을 강타했다.

스트렝스 마법의 힘이 잔뜩 실린 채로.

콰당.

조나스가 비명조차 내뱉지 못하고는 그대로 넘어갔다.

한방에 정신을 잃은 것이다.

굳이 불러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완전히 주저앉아 버린 코뼈와 뿜어져 나오는 피 분수는 보는 사람의 정신조차 아득하게 만들 지경이었으니까.

“……!!!”

이로 인해 기드는 또다시 말문을 잃고야 말았다.

단, 이번에는 황당함과 분노가 원인이 아니었다.

불신이었다.

지금 그의 눈 앞에 펼쳐진 현실에 대한 불신, 그리고 부정.

파직, 파직.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쓰러진 조나스.

조나스에게 피 분수와 코뼈 함몰, 그리고 졸도를 선사한 센트럼.

그런 센트럼의 형형하게 빛나는 분노어린 눈빛.

마지막으로 이 분노를 대변하듯 그의 주먹 주위로 튀는 정체 모를 스파크까지.

기드로서는 도통 이해되지 않는 것,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경악조차 허용되지 않는 작금의 이 상황은.

* * *

“아카데미 내에서 허용되지 않은 마나 사용은 명백한 규정 위반이다. 경우에 따라 즉시 퇴학도 가능한 사안이야. 이 점에 대해서는 이의 없겠지?”

“이의 없습니다. 규정이 그러니까요.”

카르사노 바이퍼가 나에게 확인을 거쳤고, 이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의 말에는 틀린 구석이 없었다.

아카데미 내에서는 생도 간 임의적인 대련이 금지돼 있었다.

특히 마나를 활용하는 상황에 있어서는 더더욱 철저했다.

마나가 오용될 시 폐인이 되는 것은 예삿일이요, 죽음에 이르는 경우 역시 허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자리, 센트럼과 기드 패거리 간 폭행 사건에 대해 논의하는 이 자리의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상당히 엄중했다.

아카데미 내에서 대련도 아닌 폭력이, 그것도 마나까지 한가득 실린 채로 가해진 것이다.

무겁게 다뤄지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다면 이 규정에 따라 생도 센트럼을 즉시 퇴학시키는 데에도 딱히 이견은 없겠군. 규정에 따르는 일이니 말이야.”

원칙적으로는 카르사노의 주장이 맞았다.

센트럼에게 가격당한 조나스라는 놈의 상태는 심각했다.

빠른 치료 덕분에 생명이나 운신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나, 얼굴에 평생의 천형을 안고 살게 됐다.

코뼈가 완전히 박살 나 폭삭 주저앉은 것이다.

치료사의 소견에 따르면 다시 세우는 건 꿈도 꿀 수 없다고 한다.

이 정도면 거의 살인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앞으로 남들 앞에서 얼굴은 드러낼 생각조차 못 할 터.

한 인격의 미래를 무참히 짓밟아 버린 꼴이었다.

이 정도면 퇴학이 아닌 구속과 수감을 논의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원칙적으로는.

“그럴 리가요. 예외적인 경우이지 않습니까? 그 생도들이 먼저 제게 범한 모욕죄를 빼먹어서는 안 되지요.”

그러나 세상 어느 곳이나 다 그러하듯, 원칙에는 늘 예외가 존재했다.

아카데미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예외가 존재하며, 이 폭력 사건이 그 예외에 해당했다.

조금도 복잡할 것 없었다.

에펜시아 대륙에서 예외란 언제나 귀족과 관련돼 있으며, 이 사건에도 바로 그 귀족이 얽혀 있었으니까.

라인하트 자작가, 그리고 자작가의 둘째 공자인 나, 라이오넬 라인하트 말이다.

기드 패거리는 나와 내 가문을 모욕했다.

센트럼은 패거리의 이런 만행을 참지 못하고 정의를 구현한 것이다.

완벽한 예외 조항에 해당하며, 따라서 아무런 죄가 없다.

이것이 사건에 대한 센트럼의 주장이자 나의 변론이었다.

물론 기드 패거리는 죽어도 그런 적 없다고 딱 잡아떼는 중이었지만.

“무엇보다, 의미 없는 언쟁이나 벌이자고 절 부른 건 아니지 않습니까? 괜한 시간 낭비 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어차피 양측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서로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교차점은 도출될 수 없었다.

말로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니었다.

나도 알고 카르사노도 아는 사실.

“역시 기사 쪽답게 단순하군. 좋아, 단도직입적으로 가지. 당사자들 간 마법 대결. 이의 있나?”

그렇다면 질질 끌 것 없었다.

정해진 답은 하나뿐이었으니까.

기나긴 전통을 자랑하는 에펜시아 대륙의 대표적인 갈등 해결법, 결투를 통한 결백의 증명뿐이었다.

당연히 나 또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의 없습니다.”

“그래? 의외인데? 난 어느 정도 이의가 있을 줄 알았거든.”

다만 이 간단명료한 해결책을 가지고도 카르사노는 그냥 넘어가려 하지 않았다.

대놓고 수작을 부렸다.

“그렇지 않나? 당사자란 기드를 포함한 세 명 모두를 지칭하는 것이니 말이야. 설마, 이제 와 몰랐다고 잡아떼는 천박한 짓거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센트럼 혼자서 기드 패거리 전부를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당한 근거를 갖춘 수작이었다.

제3자 눈에는 나와 센트럼이 외통수에 걸려들었다고 보일 만큼.

“설마요,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의 없습니다. 이대로 진행하죠.”

물론 그렇지 않았다.

센트럼 혼자서 기드 패거리 모두를 상대하는 상황?

오히려 바라던 바였다.

그래야 센트럼의 트라우마를 찌꺼기 하나 남기지 않고 전부 들어낼 수 있을 테니까.

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역으로 카르사노가 찝찝함을 느낄 시간조차 주지 않기 위해 냉큼.

이리하여 작은 이벤트가 마련되었다.

완벽히 내 사람이 된 센트럼의 비상을 알릴, 그런 자그마한 이벤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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