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 마법과 검술과 학문 연구회
“저 사람 2학년 선배 아니야? 왜 여기 있지?”
“너 몰라? 저 선배가 센트럼이잖아.”
“아, 센트럼이면 그 유명한 선배 말하는 거 맞지?”
“그래, 그 선배. 솔직히 선배라고 부르기도 좀 민망하지만.”
올해로 슈라우드 왕도 아카데미 마법 학부 2학년인 생도 센트럼.
그가 자신을 향한 1학년 후배들의 수군거림을 애써 모른 척하며 책상 위로 몸을 한껏 수그렸다.
창피함과 부끄러움을 감추고자 교재에 집중하는 척이라도 하려는 것이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진짜 감추어질 리 만무했다.
오히려 그를 향하는 수군거림만 더 커져갈 뿐.
당연히 교재의 글자가 눈에 들어올 리도 없었다.
집중은커녕 의미 없는 뒤적임만을 반복 중이었다.
그렇다고 수군거리는 후배들을 향해 한 소리 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여기서 센트럼이 어떻게 목소리를 키운단 말인가?
2학년씩이나 돼서 1학년 신입생들과 수업을 같이 듣는 주제에.
그가 지금 수강을 위해 대기 중인 마법 입문은 그런 수업이었다.
1학년 신입생들조차 학기 초에 가볍게 이수 가능할 정도로 기초 중의 기초를 가르치는 수업.
그런 걸 2학년인 센트럼이 재수강하려는 것이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연히 센트럼 또한 이러고 싶지 않았다.
그도 눈이 있고 귀가 있었다.
어딘가 비틀려 있는 변태도 아닐진대, 손가락질과 수군거림을 일부러 의도할 리 없지 않은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런 창피함을 감내하고도 남을 만큼 센트럼은 매우 간절했다.
마법 실력이 정체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즉, 현재 그의 실력은 아카데미 입학 당시와 비교해 쥐똥만큼도 나아진 바가 없는 것이다.
물론 마법은 지고한 깨달음의 학문.
다음 단계로의 깨달음을 얻지 못해 좌절하고 절망하는 마법사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들에게 고작 1년의 정체기를 가지고 심각한 고민이라고 씨부렸다가는 자칫 생매장당할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센트럼은 그런 마법사들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다.
센트럼의 정체기는 좌절과 절망에 익숙해진 마법사들조차 혀를 내두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1서클 비기너 단계에서의 정체라면 그럴 만했다.
누구라도 기함을 금치 못할 좌절 요인이라고 할만했다.
아무리 깨달음의 학문이니 뭐니 해도 정도라는 것이 있다.
기초 중의 기초를 익히는 데까지 지고한 깨달음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1서클 비기너부터 마스터까지의 단계가 그러했다.
솔직히 깨달음 같은 거 개뿔도 필요치 않았다.
그냥 기본 공식만 암기하고 시현하면 그만.
차라리 1서클 비기너가 되는 과정이 수천, 수만 배는 어려웠다.
자연의 마나를 느끼고 그것을 기반으로 서클을 형성해 내야 했기 때문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
그리고 이때의 고난과 역경을 보듬어 주듯 1서클 마스터까지는 숨만 쉬어도 도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센트럼처럼 1서클 비기너에서의 1년 정체는 도무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재능 부족으로 심장에 서클 자체를 만들지 못하는 편이 더 상식에 부합하는 일이었으니까.
따라서 센트럼의 정체는 누구라도 탄식을 금치 못할 케이스라고 할 수 있었다.
이렇듯 상관없는 제3자조차 안타까움에 고개를 저을 지경이라면, 당사자는?
당연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창피하고 부끄러웠으며, 비참하고 참담했다.
이 좌절과 절망감은 도저히 말로 표현이 불가능했다.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센트럼은 청운의 꿈에 부푼 꿈과 희망 가득한 소년이었다.
10살의 나이에 뜬금없이 벼락에 직격당한 뒤부터 마나라는 것을 느끼고, 14살의 나이에 떠돌이 용병 마법사의 인도로 심장에 서클을 형성할 때까지만 해도, 그리고 1서클을 인정받아 아카데미에 입학했을 당시까지만 해도 분명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그 청운의 꿈이 산산 조각나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아니, 이미 산산조각 났다고 봐야 할지도 몰랐다.
그 파편들을 센트럼 본인이 미련하게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
동기들은 모두가 1서클 마스터에 도달한 지 오래였다.
개중에는 벌써 2서클에 오른 이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센트럼만 제자리걸음 중이었다.
아무리 해도 늘지를 않았다.
불, 물, 바람 등의 원소를 구현해 내기는 하는데, 동기들의 그것과 비교하면 처참할 정도로 미약했다.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다시 점검할 요량으로 입문 수업에 들어온 참이었다.
후배들 앞에서 죽고 싶을 정도로 창피한 심경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센트럼은 그 이상으로 절박했다.
하여 이 참담한 심경을 푹 숙인 고개로 어떻게든 숨겨 가며 후배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버티는 중이었다.
“어어?”
“뭐야?”
“왜 여기에?”
“이 수업 들으러 오신 거야?”
그때였다.
신입 생도들의 수군거림이 갑자기 배로 증폭됐다.
이제는 아예 대놓고 씹고 뜯을 모양.
물론 그렇다고 해서 딱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저 스스로의 무력함만 더 크게 느껴질 뿐.
그래서 몸을 더욱더 수그렸다.
아예 책상 아예 엎드렸다고 봐야 할 수준까지.
이 상태로 수업 시작 때까지 어떻게든 버틸 작정이었다.
톡톡.
“……??”
그러나 이마저도 센트럼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엎드린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는 어떤 손길 때문이었다.
이에 센트럼은 수그렸던 고개를 다시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손길의 주인과 시선을 마주하게 됐다.
“……!!!”
그리고 대경했다.
손길의 주인이 센트럼도 아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는 현재 아카데미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었으니까.
오죽하면 남 신경 쓸 처지가 못 되는 센트럼조차 호기심에 먼발치서 얼굴을 구경했을 정도.
동시에 이 교실에 있을 이유가 없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것도 센트럼 앞에 서서 그의 어깨를 두드릴 이유는 더더욱.
“옆자리 빈 것 같은데, 내가 앉아도 되지?”
한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 인물이 아예 센트럼의 옆자리에 앉고자 했다.
센트럼의 허락까지 구해가면서.
“아…… 아! 예, 예! 됩니다!”
사실 허락 같은 건 애초에 구할 필요조차 없었다.
센트럼 따위가 뭐라고 이 인물, 이 고귀한 분의 착석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겠는가?
이 사람이 앉고자 마음먹으면 그냥 앉는 것이다.
설사 센트럼이 자리에서 쫓겨난다 해도 누구 하나 의문이나 불만을 제기하지 않을 터.
심지어 센트럼 본인조차도.
“고마워.”
그럼에도 이 사람은 그렇게 했다.
나아가 감사 인사까지 전해 왔다.
그러고는 자꾸만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이어 갔다.
“너 이름이 뭐야?”
무려 관심을 표한 것이다.
신입 생도들에게조차 무시당하는, 하찮기 짝이 없는 그에게.
“세, 센, 센트럼입니다.”
“센트럼? 네 이름이 정말 센트럼이라고?”
“아…… 예, 예!”
센트럼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볼이라고 꼬집어 봐야 알 것 같은 이 상황에.
그리고 이름을 듣자마자 한층 더 심유해진 고귀한 분의 진하디진한 눈빛에.
* * *
“센트럼? 네 이름이 정말 센트럼이라고?”
“아…… 예, 예!”
솔직히 이래도 되나 싶었다.
베로카 때도 그렇고, 이렇게 날로 집어먹기만 해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잠시 잠깐 뇌리를 스쳤다.
마법 입문 수업을 듣고자 교실에 들어서던 참이었다.
내 시간표를 보고는 사네가 궁금증을 느꼈던 바로 그 수업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군들 내가 마법 수업을 들으리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아카데미 도착 전까지는 나 자신조차도 상상 못 하던 일인데.
그러나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고, 오늘 첫 수업을 듣고자 여기까지 왔다.
절차상의 문제는 없었다.
영지 귀족 생도들은 원칙적으로 어떤 수업이든 원한다면 수강 가능했으니까.
물론 생도들은 물론이고 교수까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은 감내해야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마법 입문 수업 교실에 들어서던 때였다.
그때 내 모든 관심을 단번에 사로잡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어떤 사람, 그리고 그가 품고 있는 잠재력이었다.
베로카 때처럼 전혀 의도치 않은 상황에 완벽한 우연의 일치로 내 눈에 걸려든 것이다.
다만 베로카와는 좀 달랐다.
이번에 나를 붙잡은 것은 베로카와 같은 잠재력의 압도적인 크기가 아니었다.
마법사 중에서 꽤 큰 편에 속하기는 하지만, 베로카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대신 그 성질이 특이했다.
잠재력 전체가 이상하리만치 한 원소에 몰려있었다.
그 반대급부로 다른 쪽은 아예 젬병이 됐을 정도.
이런 특이 케이스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
그래서 곧장 다가갔다.
엎드려 있는 것을 불러일으키고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이름을 물었다.
이 또한 무슨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친해지려면 일단 이름부터 아는 게 우선이니 물었을 뿐이었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아, 내가 너무 빤히 쳐다봤나? 미안. 별거 아니야. 그냥 좀 재미있어서.”
그런데 아니었다.
교실에 들어서던 그때처럼 내가 이름을 물은 행위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됐다.
밝혀진 이름 덕분이었다.
센트럼.
나는 이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이 부분 역시 베로카와 달랐다.
회귀 전, 나는 베로카의 이름을 들어 보지 못했다.
아마도 잠재력 개발의 기회를 만나지 못해 그대로 썩혀 버린 것일 터.
이름을 바꾸고 활동한 것이 아니라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반면, 지금 눈앞에 있는 센트럼의 이름은 몇 차례 들어 봤다.
뇌전의 마법사라는 칭호와 함께.
뇌전 계열에 특화된 마법으로 왕국 마법계에서 주목받던 인물이었다.
‘이래서 그런 소문이 돌았던 건가.’
그리고 내가 센트럼에 대해 들은 것은 이름과 칭호만이 아니었다.
센트럼의 과거에 대한 소문도 한 줄 들었다.
그가 아카데미 시절을 상당히 불우하게 보냈다는 소문이었다.
물론 왜,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낸 것인지 등은 전혀 알지 못했다.
사실 이 한 줄마저도 센트럼이 아카데미에서 나와 같은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 덕에 우연히 듣게 된 것이었을 뿐이니까.
내가 센트럼에 대해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보니 왜 그랬던 것인지 알 만했다.
또 어떻게 보냈을지도 대충 짐작이 갔다.
아마도 뇌전 계열 마법을 쓸 수 있는 2서클에 올라서기 전까지는 이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였다.
어쩌면 이 불우한 시절 때문일지도 몰랐다.
센트럼이 마법계의 추앙이 아닌 주목을 받는 수준에서 그친 것은.
지금 나에게 느껴지는 센트럼의 잠재력은 그 이상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날로 집어 먹기만 해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 따위 이미 고이 접어 날려 보낸 지 오래였다.
집어 먹되 내가 더 크게 키워 내면 그만이니까.
“센트럼, 수업 끝나고 같이 좀 가자. 나랑 같이 갈 데가 있어.”
* * *
“그러니까 네 말은 신규 동아리를 하나 만들자는 거지?”
사네가 물었고, 나는 이에 대해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차피 너도 르로이 때문에 핑곗거리가 하나는 필요하잖아. 그 핑계가 나랑 연관된 거면 효과도 확실하겠지.”
르로이는 아카데미에서조차 수시로 사네를 불러냈다.
목적이야 빤했다.
사네의 시간을 빼앗고 괴롭히기 위함.
따라서 사네에게는 이 부름에 대항할 수 있는 방패가 필요했다.
동아리 활동이 바빠 응하기 어렵다는 핑계가 나름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물론 일반 동아리로는 어림도 없겠지만, 나와 관련된 동아리, 내가 장으로 있는 동아리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터.
르로이가 나를 극도로 피해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한 게 있다 보니 마주치기조차 싫은 듯했다.
따라서 나를 중심으로 하는 신규 동아리 창설은 사네에게도 득이 된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이렇게 셋이서?”
“센트럼 이 녀석한테도 동아리가 절실해 보이더라고. 그래서 데리고 왔어. 지금 있는 곳은 여러모로 잘 안 맞는 모양이야.”
“예, 예…….”
그리고 한 명이 더 있었다.
바로 두 귀족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센트럼.
내가 만들 동아리에 들이기 위해 수업이 끝나자마자 녀석을 데리고 온 참이었다.
일반 생도들에게 동아리 활동은 아카데미 생활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연말 동아리 경연 때문.
동아리 경연은 생도들이 스스로를 뽐낼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다.
단순히 이성에게 매력이나 뽐내는 그런 하찮은 자리가 아니었다.
미래의 고용주들에게 고용인으로서의 가치와 유능함을 각인시킬 수 있는, 한마디로 미래가 걸린 자리였다.
허투루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센트럼에게 역시 마찬가지.
동아리 창설은 녀석에게도 여러모로 득이 된다고 봐야 했다.
“혹시 별로야?”
“그럴 리가. 네가 데리고 왔다면 괜찮은 녀석이겠지. 다만 조합이 너무 이상하잖아. 분야가 완전히 제각각인데, 무얼로 동아리를 만들려고?”
마법과 검술, 그리고 정치·행정 등의 일반 학문.
주력 분야가 천차만별인 사람들끼리 모였다.
그렇다고 따로 겹치는 관심 분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동아리 형성에 필요한 공통분모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쉽게 가려고. 다 아우르자. 마법, 검술, 학문 전부.”
하지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었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는 대로 두면 그만.
대신 외연을 확장해 버리면 되는 일이었다.
모든 분야를 한 방에 아우를 수 있도록.
“이름은 음, 이거 어때? 마법과 검술과 학문 연구회. 줄여서 ‘마검학연’.”
“…….”
깊은 정적이 흘렀다.
반응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해졌다.
센트럼조차 장난하는 거 아니냐고 묻는 눈빛을 보내오는 중이었으니까.
하나, 그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길게 이어질 것도 아니고, 내가 있는 3년간만 존속할 동아리에 불과했다.
따라서 이름 같은 것에 굳이 정성을 들일 이유가 없었다.
나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동아리가 길게 존속할 수 있겠느냐고.
절대, 절대 불가능하다고.
“그리고 한 가지 더. 정식 동아리원까지는 아니고 그냥 우리를 서포트하는 형식으로 한 명 더 추가할까 하거든. 너희 생각은 어때?”
이렇게 슈라우드 왕도 아카데미의 동아리, ‘마법과 검술과 학문 연구회’가 만들어졌다.
대충, 정말 대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