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여정과 입성
“이게 대체……. 이런걸 어디서 난 것이냐?”
예상은 들어맞았다.
사정없이 흔들리는 데파이의 동공이 그 방증.
내가 건넨 광석들이 원인이었다.
“역시 데파이 님도 처음 보시는 모양이군요. 저희 라인하트 영지에 굴타르 산이라고, 어둡고 음습한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우연한 기회에 발견하게 됐습니다.”
어둠의 정령석 채굴 과정에서 얻게 된 부수적인 소득이 바로 이 광석들이었다.
채굴 당시 정령석 인근에 함께 묻혀 있었다.
그런 것을 정령석 섭취 후 일부 채굴해 와 이렇게 데파이에게 대가로 건넨 것이다.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감도 잡히지 않는군……. 네게는 이 광석의 중심도 느껴지는 것일 테고?”
“예, 느껴집니다. 그런데 확실히 제게도 다른 것들과는 느껴지는 방식이 다릅니다. 왠지 어두운 장막 같은 것이 중심을 덮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아마 그 장막이 데파이 님의 감각을 차단하는 것인 듯합니다.”
그런 듯한 게 아니라 그랬다.
내가 장막 같다고 에둘러 표현한 것은 사실 어둠의 힘이었다.
이 힘이 광석을 둘러싸고는 데파이의 감각이 접근하는 것을 차단 중이었다.
데파이 정도 되면 광석을 쥐는 것만으로도 대략적인 성분 파악이 가능했다.
최고라 인정받는 장인에게 그 정도쯤이야 숨 쉬듯 자연스럽고 간단한 일.
한데, 그런 데파이조차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어둠은 그만큼 두껍고 촘촘했다.
동시에, 그렇기에 데파이의 관심을 확실하게 잡아끌 수 있었다.
최고의 대장장이인 그가 처음 접하는 듣도 보도 못한 광석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하면 이제 이 관심을 욕구로 바꿔 줄 차례였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불타오르는 탐구욕 같은 것으로 말이다.
새로운 경지에 대한 희망까지 심어 준다면 금상첨화.
“그리고, 보다 보니 이런 것도 가능하더군요.”
데파이에게 건넨 광석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어둠을 살짝 걷어 낸 뒤 다시 데파이에게 쥐여 주었다.
그러자 데파이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물들어갔다.
“이제 좀 느껴지시죠?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불확실하지만, 제 감각으로 그 장막을 일부 걷어 낼 수 있었습니다. 이걸 연구하고 제련하다 보면 새로운 길을 발견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둠의 촘촘한 그물망을 약간 벌려 놓았다.
흐릿하기는 해도 데파이가 느낄 수 있을 수준까지.
그럼으로써 데파이의 탐구욕을 자극했다.
또, 이를 통해 사물의 중심과 균형을 파악하는 훈련도 가능했다.
“물론 제한이 있기는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막이 다시 촘촘해지더군요.”
다만 무한정은 아니었다.
어둠의 정령석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 광석 자체에 어둠을 흡수하고 저장하는 능력이 있었다.
즉,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보충된 어둠이 다시금 본질을 가리는 것이다.
“이 광석을 제대로 연구하려거든 네 도움이 필수적이라는 거로구나.”
“아마도요. 다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침 제가 올해부터 아카데미에 다니니까요. 데파이 님께서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도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특성은 나에게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다.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대장장이가 바로 데파이였다.
무려 그런 인물과 친밀한 관계를 쌓게 해 줄 매개체인 것이다.
친분을 공고히 하는 데에 얼굴을 자주 맞대는 것보다 확실한 방안은 또 없으니 말이다.
단, 이 매개체의 실질적인 작용에는 전제조건이 필요했다.
바로 거래의 수락.
먼저 내가 제시한 거래를 데파이가 받아들여야만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조건이 그리 발목을 잡아챌 것 같지는 않아 보였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은 들르거라.”
“그 말씀은?”
“그 검은 지금부터 네 것이다. 직접 쓰든 아니면 어디에다 팔아먹든 라이, 네 녀석이 알아서 하거라.”
장인의 혼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데파이의 시선은 이미 광석에 고정돼 있었다.
열망으로 이글거리는 두 눈과 함께.
광석을 보였던 그때, 내가 어둠을 살짝 걷어 냈던 그 순간부터 이미 거래는 성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데파이에게 생애 역작이니 뭐니 해도 결국 과거의 유물 따위는 철저히 관심 밖이었다.
나 역시 그러했다.
특이한 광석이기는 해도 어차피 당장 내게는 신기한 이물에 지나지 않았다.
한없이 완벽에 가까운, 그리하여 내 마음에 쏙 든 검에는 결코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양 당사자 모두 흡족하기 그지없는 결과.
거래는 이렇게 나와 데파이 모두에게 최상의 결과만을 남긴 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 * *
데파이의 집에서 ‘여정’을 들고 나왔다.
당초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엄청난 소득이었다.
흑광석―어둠의 정령력으로 물든 광석에 내가 임의로 붙인 명칭―을 들고 이곳에 방문할 때 분명 어느 정도 기대를 품고 있기는 했다.
흑광석이라면 데파이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으니까.
그런데 실제 상황은 이런 내 적잖은 기대조차 한참을 초월했다.
속된 말로 아다리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흑광석은 데파이의 현재 처지와 융합하여 그의 열정과 탐구욕을 활활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나는 그 대가로 한없이 완벽에 가까운 검을 얻게 됐고 말이다.
흡족함이 가득 채워지다 못해 넘쳐 흐를 지경.
그래서 이를 탄력 삼아 곧바로 검에 이름을 붙여 주었다.
원래 검에는 따로 이름이 없었다.
성공작인지 실패작인지를 데파이조차 가늠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것이 오늘에서야 명확해졌다.
데파이 입장에서 이 검은 실패작이었다.
완벽에 도달하는 데에는 끝내 실패하고 말았으니까.
해서 그는 다른 실패작들과 마찬가지로 이름을 붙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검은 이미 정당한 거래를 통해 내 것이 된 뒤였다.
더구나 데파이 입으로 직접 내가 쓰든 어디에다 팔아먹든 알아서 하라고 언급까지 한 상황.
따라서 검에 이름을 부여할지 말지, 그리고 부여한다면 어떤 이름을 부여할지 등은 명백한 내 소관이었고, 나는 곧장 소관에 따른 정당한 권리를 행사했다.
그리하여 검에 붙여진 이름이 바로 ‘여정’.
완벽으로 가기 위한 여정에 있는 검이라는 뜻이었다.
비단 제작자인 데파이에게만이 아니었다.
새로운 주인이 된 나에게 역시 이 검은 그런 의미였다.
돌이켜 보면 후회로 점철된 전생.
이것을 바꿔 갈 작정이었다.
내 사람들을 위해 완벽하게.
그 여정을 이 ‘여정’과 함께 할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동반자, 여정을 품고 아카데미로 향했다.
길은 익숙했다.
오랜만이지만 한때는 3년이나 제집처럼 드나들었던 곳이니 당연했다.
덕분에 아카데미 입구로 나아가는 내 발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멈춰라.”
하지만 타인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경비병이었다.
아카데미 제1 정문을 지키는 경비병이 나를 불러세웠다.
“혹시 신입생인가?”
“아……!”
그리고 그제야 나는 내 실수를 깨달았다.
너무 익숙하고 당연하다 보니 저지른 실수였다.
지금 내 복장 상태로 이곳에 와서는 안 됐다.
하면 경비병은 나를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영지 귀족님들만 드나들 수 있는 출입구다. 서쪽에 출입구가 따로 마련돼 있으니 거기를 이용하도록.”
내 깨달음이 경비병에게는 촌뜨기 신입 생도의 어벙함으로 읽힌 듯했다.
지금 내 상태라면 그리 오해할 만했다.
라인하트 영지를 떠나며 흑광석을 챙기느라 나머지 짐을 최소화했다.
더구나 시중들 하인까지 떼어 놓고 왔으니, 현재 내 외양은 거울을 보지 않아도 훤했다.
왕도까지 오는 동안 몇 벌 되지도 않는 옷을, 심지어 제대로 빨지도 못한 채로 돌려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귀족의 옷은 기본 재질부터 다르다고 하나, 그것도 어느 정도껏이었다.
관리 않고 입다 보면 결국 헤지고 꾀죄죄해지는 건 마찬가지.
“어허! 얼른 가라니까. 괜히 여기서 어물쩍거리다가 귀족님들 눈에라도 띄면 경을 치게 된다.”
“아무래도 오해가 좀 있는 듯한데…….”
“오해는 무슨 오해! 대충 봐도 한눈에 알겠구만.”
설상가상, 경비병도 약간 성격이 급한 편이었다.
그는 이미 나를 얼뜨기 신입생으로 확정 지어 버린 상태.
내 말은 들어 볼 생각도 않고 어떻게든 빨리 보내는 데에만 집중하는 그였다.
다만, 이걸로 내 기분이 상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경비병의 이런 다급한 태도가 이해 안 되는 바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글쎄 빨리 좀 가라니…… 헙!”
그때였다.
내게 손을 휘휘 내젓던 경비병이 무언가를 보고는 갑자기 헛숨을 들이켰다.
긴장이 역력한 기색.
그러더니 아예 물리력을 동원했다.
대놓고 나를 밀치기 시작한 것이다.
“뭐, 뭐야? 기사 학부 신입인가? 뭐가 됐든 고집 그만 부리고 빨리 가란 말이다. 제발 좀 가라고!”
물론 내가 밀려날 리 만무했다.
내 의지가 아닌 한 경비병의 힘으로 나를 밀쳐내는 건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한 일.
그리고 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대신 경비병이 왜 이렇게 다급해졌는지는 짐작이 갔고, 이해해 줄 수도 있었다.
다만, 그 이유 때문이라면 나는 더더욱 물러날 필요가 없었다.
“아카데미 꼬락서니 참 볼만하군. 시정잡배 따위 하나 조용히 처리 못 하는 지경이라니, 쯧.”
내 등 뒤에서 웬 싸가지 없는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귀족의 권위의식에 찌들 대로 찌든 목소리.
동시에 내가 잘 아는 목소리이기도 했다.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나 다름없는 이의 아니꼬운 목소리를.
“별일 아닙니다, 발터우스 공자님. 신입 생도가 길을 잘못 들어 알려 주는 중이었습니다. 정말 별거 아니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르로이 발터우스였다.
그의 등장이 경비병을 다급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제1 정문을 담당하는 경비병들의 기본 소양은 출입자들의 용모와 신상명세를 숙지하는 일이었다.
이곳에 드나드는 귀족들의 얼굴을 미리 알아보고 출입에 있어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고난도의 임무는 아니었다.
어차피 1 정문으로 드나드는 건 영지 귀족뿐이었고, 그들은 소수였으니까.
그렇기에 이 경비병도 르로이의 얼굴을 곧장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그의 저급한 권위의식까지도.
그래서 이렇게 당황하는 것일 터.
“어떻게 신경 쓰지 말라는 거지? 이렇게 떠들썩한데 말이야.”
경을 치게 된다는 경비병의 경고는 괜한 것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르로이의 눈에 띈 이상 경고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만큼 르로이의 성격은 더럽고 무자비했다.
“어디 얼굴이나 한번 볼까? 대체 얼마나 멍청한 놈이기에 아카데미 생도씩이나 돼서 길을…… 어??”
“안녕, 선배님?”
단, 저보다 낮거나 약한 사람 한정이었다.
강한 사람에게는 지극히 온순하고 자비로웠다.
“……라이오넬 라인하트.”
“그래, 선배님.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여기서 또 보네?”
예를 들면 나 같은 사람 말이다.
내 앞에서 르로이는 한 마리 온순한 양이나 다름없었다.
“마침 잘됐다. 번거로운 확인절차 거칠 필요 없이 같이 들어가면 되겠네.”
아무래도 르로이와는 궁합이 좋은 모양이었다.
운때가 잘 맞았다.
원래라면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가문의 인장을 지니고 있기는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지금 내 꼴이 영지 귀족이라기에는 너무 추레했기 때문이다.
나를 보필하는 일행이라도 있었으면 모르되, 그것도 아니었다.
아마 확인부터 통과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됐을 것이다.
한데, 그런 귀찮은 것들이 르로이의 등장으로 한 방에 해결됐다.
르로이가 직접 내 이름까지 읊어 준 마당에 그깟 절차 따위가 무슨 대수겠는가?
이쯤 되면 프리 패스가 허용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덕분에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봐도 나는 르로이가 밉지 않았다.
“음? 먼저 가는 거야, 선배님?”
“…….”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입장에 불과했다.
르로이는 내가 찢어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울 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쌩하니 들어가 버리는 냉랭함에서 그 마음을 일부나마 엿볼 수 있었다.
꾸벅.
르로이가 성큼성큼 멀어져가는 바람에 사네와의 시간도 조금 더 뒤로 밀리게 됐다.
일단은 서로 간 눈인사와 목례로 대신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크게 아쉬워할 만한 부분은 아니었다.
어차피 사네와 함께 할 시간이야 이제부터 차고 넘칠 테니까.
또, 약간의 아쉬움쯤이야 이미 르로이가 해 준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상쇄 가능했다.
“그럼 내 신분은 증명됐겠지? 혹시 확인 절차가 필요한가?”
“……아닙니다, 공자님. 그냥 들어가시면 됩니다. 몰라뵌 점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뭘 또 사죄씩이나. 대신 앞으로 잘 부탁한다. 그럼 수고하도록.”
이렇듯 르로이 덕분에 괜한 시간 낭비 없이 아카데미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카데미 안에 발을 들이는 순간이었다.
첫발을 내디딤과 동시에 이런저런 감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모두 나의 첫 아카데미 생활과 관련된 것들.
이제 와 되짚어 보면 후회와 한탄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두 번째.
첫 번째와는 많은 부분에서 달라질 것이다.
아예 180도 뒤집힐 것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더는 후회와 한탄으로 점철되는 일이 없도록 내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 갈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