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데파이 스토스(2)
“어떻게 안 것이냐?”
“어떻게 알았는지는 설명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냥 느껴진 그대로를 말씀드렸을 뿐이니까요.”
자리에 앉자마자 다짜고짜 질문을 던져 오는 데파이.
의구심 가득한 그의 질문에 내가 줄 수 있는 답은 하나뿐이었다.
그저 느껴졌을 뿐이라는 것.
“지금까지 그 누구도, 심지어 대장장이 중 숙련됐다는 놈들조차 너처럼 명확하게 짚어 내지는 못했다. 그런데 나더러 지금 네 말을 믿으라는 것이냐?”
“글쎄요, 그리 말씀하시면 저도 더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저는 있는 그대로를 전부 말씀드렸으니까요. 그에 대한 증명은 이미 밖에서 차고 넘칠 만큼 거쳤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부족하십니까?”
“으음…….”
이런 나의 답변에 데파이는 이렇다 할 반박을 가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이미 내가 뱉은 말에 대한 증명을 마친 뒤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데파이의 손으로 직접,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현재 우리가 앉아 있는 곳은 집의 안쪽, 데파이가 숙식을 해결하는 방으로 추정되는 공간이었다.
병장기가 잡동사니처럼 널브러져 있던 입구 부근의 로비와는 구별되는, 한층 더 사적인 공간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여기 들어와 앉기까지의 결과는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데파이의 시험이라는 관문을 통과함으로써 획득한 일종의 보상이라고 봐야 했다.
지금으로부터 10분여 전, 내가 던진 감상평은 확실히 데파이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널브러져 있던 병장기들에는 안타깝게도 하자가 존재하며, 따라서 내가 쓸 만한 무기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적나라한 감상평 말이다.
일단 이 자체만으로도 데파이 입장에서는 나름 신선했을 터.
이곳에 찾아와 알려 주기도 전에 먼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는 처음부터 데파이의 정체를 충분히 인지한 상태라는 의미.
즉, 그가 대륙 전체에서 손꼽히는 대장장이라는 점을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인 것이다.
한데, 이런 데파이를 앞에 두고 그가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병장기에 하자 따위를 운운한다?
미치지 않고야 입에 담기 어려운 언사였다.
적어도 그의 무기 한 점이라도 구걸해 보고자 찾아온 이라면 더더욱.
그리고, 오히려 그렇기에 내 감상평은 데파이의 눈길을 확 잡아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로서는 겪어 본 적 없는 신선한 경험이었을 테니까.
단, 이 신선함은 양날의 검이기도 했다.
관심을 끄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이게 다여서는 안 됐다.
만약 다음이 없다면, 그건 되려 심각한 역효과를 초래할 터.
그나마 널브러진 수작들 중 하나라도 얻어 갈 기회를 제 발로 차 버리는 것이다.
더구나 이 수작은 여기서나 수작이지, 밖으로 나가면 명작 중의 명작.
안타까움이 배가 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데파이 역시 당연히 다음을 요구했다.
심지어 굉장히 철저했다.
그는 쓸데없는 말씨름 따위로 여지를 주지 않았다.
내 감상평을 듣자마자 툭 하고 물건을 하나 던졌다.
그 물건이란 바닥에 깔린 병장기 중 하나.
의도는 명확했다.
증명해 보라는 것이다.
내가 과연 하자 따위를 운운할 자격을 갖추었는지 아닌지를.
초고난도의 시험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대륙급 명장 앞에서 무기의 완성도를 논하는 일이었다.
수십 년을 수련한 대장장이들조차 식은땀을 흘릴 것이 분명한 그런 상황.
“부족하다면 더 시험해 보셔도 상관없습니다. 저로서는 어렵지 않은 일이니까요.”
그러나 적어도 내게는 아니었다.
나로서는 식은땀을 흘릴 이유도, 부담감에 짓눌릴 이유도 없었다.
정령력을 통해 느껴지는 바를 그대로 말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데파이의 눈앞에서 그가 만든 무기들을 대상으로 이미 수차례 그 효용성을 뽐내기도 했고 말이다.
제작자조차 어림짐작하는 수준에 불과한 무기의 하자를 마치 눈으로 본 것처럼 툭툭 짚어 냈다.
상황이 이러하니 아무리 거장이라 한들 반박이 불가한 것이다.
이쯤 되면 시험의 난이도고 뭐고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만점 통과는 따 놓은 당상이었으니까.
“…….”
결국 데파이의 눈에 서렸던 의구심은 그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야 서로를 제대로 마주 보고 대화 나눌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셈.
그러나 데파이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나만 남겨 둔 채 자리를 떠 버렸다.
주인 없는 방 안에 손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상황.
그러나 당황한다거나 몸을 일으켜 그의 뒤를 따라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자리를 떴다 해도 그는 여전히 내 범위 안에 있었으니까.
어떤 비밀 공간 같은 곳을 뒤적이는 그의 기척이 또렷이 전해져 왔다.
무언가를 찾는 모양새.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머지않아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웬 기다란 상자 하나와 함께.
“이것도 한번 봐 보거라.”
등장과 동시에 내 앞으로 내밀어진 상자.
그 안에 든 것은 일견 평범해 보이는 검 한 자루였다.
그 어떤 장식 하나 없이 오로지 검신과 검자루로만 이루어진 담백 그 자체의 롱소드.
외양만 따지면 오히려 밖에 널브러져 있는 병장기들보다 못해 보일 지경이었다.
“혹시 이것도 시험입니까?”
절레절레.
물론 그럴 리 만무했다.
이 검은 밖에 널브러진 것들과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검이 받는 대접부터가 그러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짐짝 취급은 벗어나 있었다.
객관적으로 귀한 대접이라고는 보기 어려우나, 최소한 일반적인 병장기 대우 정도는 됐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것들과 비교하면, 나무상자는 최고급 궁전이라고 할 만했으니까.
무엇보다 데파이의 눈빛이 달랐다.
검을 바라보는 것은 물론이고, 나를 향하는 눈빛까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권태로움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시험이 아니라는 점 역시 분명했다.
비단 저어지는 그의 고개 때문만이 아니었다.
데파이의 표정은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간의 어떤 결핍 같은 것이 나를 통해 채워질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
“알겠습니다. 그럼.”
자연스레 나 또한 긴장했다.
거장인 데파이의 기대가 선명하게 실린 검이었다.
그런 검이 평범할 리 있겠는가?
물론 밖에서 본 것들에도 평범하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았지만, 이 검은 아예 그 급이 다를 터.
어쩌면 회귀 전후를 통틀어 최고의 보물을 손에 쥐어 보는 순간일지도 몰랐다.
아니, 데파이의 반응으로 보건대 확실했다.
그렇기에 나 또한 팽팽한 김장감을 유지한 채로 데파이가 건넨 검을 집어 들었다.
“……!!”
들자마자 깨달았다.
확신은 현실이 됐다.
데파이의 선명한 기대는 물론이고, 이에 부응한 나의 긴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도저히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완벽하네요.”
집는 순간 느껴졌다.
이 검은 중심과 균형이 완벽했다.
밖에 널린 병장기들은 분명 훌륭한 완성도를 자랑했었다.
단, 어디까지나 이 검을 직접 쥐어 보기 전까지의 감상.
쥐어 본 지금은 완전히 뒤집혔다.
그것들은 훌륭하지 않았다.
이 검과 비교하면 완성도니, 훌륭하니 하는 표현을 가져다 붙이는 것 자체가 민망했다.
이 검에는 흠잡을 구석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집어 드는 순간부터 느꼈지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점점 더 진해졌다.
“이렇게 완벽하게 어우러진 검은 정말 처음 봅니다. 이런 게 가능한 거였군요.”
아름다웠다.
정령력으로 사물의 본질을 확인할 수 있게 되고부터 내 심미적인 기준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기준이 단순히 외양에 머물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 내부를 보게 되었다.
그렇기에 어떤 사물이 나에게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 검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홀린 듯 음미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다른 것들에서는 느껴 보지 못할 감각이고 충격일 테니까.
그래서 다시 한번 천천히 훑어 올라갔다.
검자루를 시작으로 검신까지, 다시 검신에서 검첨까지.
정령력으로 세포 단위까지 완벽하게 음미하고자 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음??”
“왜 그러지? 무슨 문제라도 느껴지는 것이냐?”
“잠시, 잠시만 시간을.”
그 때문이었다.
어쩐지 이질감 같은 부분이 느껴진 것은.
해부하듯 세세하게 훑고 올라가다 보니 감각에 걸려드는 부분이 있었다.
다만 확신은 불가했다.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일지도 몰랐다.
다소 집중력이 흐트러진 지금은 다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데파이의 개입도 제지했다.
일단은 재차 확인이 최우선이었다.
그렇게 다시금 거슬러 올라갔다.
검자루를 시작으로 검신의 면과 날을 거쳐 그 위로.
해부에 해부를 거듭했다.
그리고.
“여기.”
결국은 찾아냈다.
극도로 미세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없을 법한 작은 이질감을.
“검첨 말이냐?”
“예, 이 지점에서 이질감이 느껴집니다. 너무 작아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기는 하지만.”
검의 끝, 검첨 부분이었다.
이곳에 이질감이 존재했다.
다만, 이미 밝혔다시피 티끌만도 못한 수준이었다.
이것이 검 전체의 중심을 어지럽힌다거나 균형을 비트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곳에 존재할 뿐이었다.
완벽의 순간에 존재하는 티끌.
완성을 해치지는 않지만, 완전무결로의 마지막 한 걸음은 끝내 내딛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고로 이 검은 완벽에 한없이 가까울지언정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현실이었다.
“그런데…… 이미 짐작하고 계셨나 보군요.”
그리고 어쩐지 이 현실을 데파이 또한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완벽하지 않다는 진단에도 불구하고, 데파이는 오히려 시원섭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허탈함과 후련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글쎄, 짐작이라기보다는 왠지 모를 찝찝함을 느꼈다고 해야겠지. 적어도 내 손으로는 이보다 완벽한 검을 만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만들어 놓고도 도저히 흠을 찾을 수 없었으니까.”
“한데요?”
“하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속 깊이 납득이 되질 않았다. 어쩐지 꺼림칙함을 지울 수가 없었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그런 부분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조차 끝내 짚어 내지 못했지만.”
확실히 최고의 대장장이다웠다.
본질을 간파하는 정령력으로도 억지로 끄집어내다시피 한 흠이었다.
그런 것을 오로지 본능만으로 느끼고 있던 것이다.
데파이 본인이 빚어낸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대단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랬던 것이 오늘 이렇게 해소되는구나. 이런 애송이 덕분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만, 어쨌든 감사는 표해야겠지. 고맙다, 애송이.”
“라이오넬입니다. 라이라고 불러 주시면 더 좋고요.”
“그래, 라이. 고맙다. 진심이다.”
물론 내 공 역시 마찬가지.
과정이 어떠하든 결국 데파이의 찝찝함을 해소해 준 이가 나라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었다.
데파이는 이 점을 쿨하게 인정했고, 덕분에 나와 그 사이의 거리를 한껏 줄일 수 있었다.
나아가 좀 더 내밀한 영역을 건드려 보는 것도 가능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티끌을 제거하든 아니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든 하셔야죠. 걸리던 부분도 결국 찾아냈으니까요.”
걸리는 부분을 찾아냈다.
그렇다면 이제는 해결할 차례.
하지만 이 차례에서 오히려 나에게 걸리는 부분이 생겼다.
내가 흠을 짚어 주었을 때, 데파이의 표정에서 보인 반응은 후련함만이 아니었다.
그 전에 허탈함이 먼저 표출됐었다.
그리고 이 허탈함에 대해 따로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그 짐작을 확인코자 던진 질문이었다.
“말하지 않았느냐? 나로서는 이보다 완벽한 검을 만들지 못한다고. 내 실력은 벽에 막혀 정체된 지 이미 오래다.”
짐작이 맞았다.
데파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능력의 한계를 자인한 것이다.
지금 이 검에 손을 댈 수도, 그렇다고 이 이상 가는 검을 다시 처음부터 만들어 낼 수도 없다고.
시작도 해 보기 전에 말이다.
“그러시군요.”
단, 이것을 그의 나약함으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특히 나 같은 검사라면 그래서도 안 됐다.
깨지지 않는 벽이 가져다주는 절망감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소드 마스터라는 철옹성 앞에서 주저앉는 검사들이 대륙에 널리고 널렸다.
그리고 적어도 같은 검사라면, 그런 이들의 의지와 노력을 비난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누구보다 간절하게 바랐고, 절실하게 노력했다.
단지 그 절실함에 걸맞은 운이 뒷받침되지 못했을 뿐.
소드 마스터의 경지조차 이러했다.
그런데 어찌 그 이상의 경지 앞에서 주저앉은 이에게 비난을 가할 수 있겠는가?
데파이가 그러했다.
대장장이로서 그의 경지를 검에 비유하자면, 최소한 소드 마스터는 넘어섰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현재는 그랜드 마스터의 벽 앞에서 주저앉은 상태.
이런 그를 나약하다 치부하는 건 주제를 넘어도 한참 넘은 짓이었다.
단지 그에게 역시 운이 따라 주지 않았을 뿐이다.
“알겠습니다. 하면 이 검은 제게 주시기 바랍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그래서 이 완벽에 한없이 가까운 검을 내가 가지고자 했다.
물론 처음 본 순간부터 노리기는 했다.
나에게 이보다 어울리는 검은 따로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다만, 이처럼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야 당장 데파이와 같이 어이없다는 반응만 불러일으킬 테니 말이다.
확실히 데파이 입장에서는 뚱딴지같은 전개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날로 먹겠다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이 검에 걸맞은 대가를 지불하겠습니다.”
그러나 아니었다.
황당하고 어이없는 요구가 결코 아니었다.
데파이에게 운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직후부터 그렇게 됐다.
“그리고 확신합니다. 데파이 님께서 굉장히 흡족해하시리라는 것을요.”
내가 대가로 지불할 것이 바로 이 운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벽을 깨부숴 줄지도 모르는, 그리하여 데파이를 더 높은 경지로 이끌어 줄지도 모르는 천고의 기연 말이다.
어차피 내게는 정령석 채굴 과정에서 얻은 부수적인 소득에 불과했다.
그런 것을 내주고 완벽에 가까운 검을 얻는다면, 이보다 남는 장사가 또 없을 터.
미소가 절로 지어질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