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31화 (32/200)

16장: 데파이 스토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아카데미 앞까지 모셔다드려야 할 것 같은데…….”

“됐어, 매튜. 예정에 없던 일까지 생겨서 더 바빠졌을 거 아냐?”

실크로 상단 왕도 지부.

그곳에서 나와 매튜는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즉, 무사히 왕도에 도착한 것이다.

“그러니까 더더욱이요. 공자님 덕분에 저희 상단은 물론이고 저 개인적으로도 막대한 이득을 보게 됐잖아요. 이런 데 감사를 표하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혼자 보내드릴 수 있겠어요? 여기서 아카데미까지 그리 먼 거리도 아니고, 그냥 제가 모실 수 있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이번 왕도 행에서 실크로 상단이 얻은 이익은 상당했다.

최소 200골드, 왕도에서 잘만 팔면 300골드 이상도 받아낼 수 있는 몬스터 부산물에, 발터우스 상단이 운송 중이던 발터우스 영지의 곡물 전부까지.

원래 실크로 상단이 운송 중이던 물품들의 수십 배 이상 가는 소득이 생긴 것이다.

그것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가외 소득으로.

한마디로 횡재한 것.

비단 실크로 상단만이 아니었다.

매튜 개인적으로도 상당한 호재라고 할 수 있었다.

어린 나이이기는 하지만 라인하트 영지의 후광과 본인의 실력을 기반으로 상단 내에서 빠르게 자리 잡은 매튜였다.

그런 녀석에게 이번 왕도 행으로 엄청난 실적이 더해지게 됐다.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 준 격.

이 실적을 바탕으로 잘만 하면 한 상행을 책임지는 행수의 자리에 오를지도 모른다고 한다.

고작 15살의 나이에 말이다.

다른 이도 아니고 매튜의 계산이니만큼 확률은 매우 높았다.

또 매튜 정도 되는 녀석이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도 없었다.

아마 다음 상행을 같이할 때는 행수로서 나를 맞이할 터.

매튜라면 충분히 기대해도 좋았다.

“너와 실크로 상단이 성장하는 게 라인하트 영지를 위하고, 결국은 나를 위하는 거야. 그러니까 나 배웅할 시간도 아껴서 네 일에 매진해. 내가 진짜 바라는 건 그거니까.”

그래서인지 매튜는 헤어질 때가 되어 적잖은 아쉬움을 표하고 있었다.

왕도 도착 직후 아카데미가 아닌 실크로 상단 왕도 지부로 직행했다.

내 고집 때문이었고,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매튜도 이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나에 대한 배웅 전에 상행이 먼저 해산하게 됐다.

지부 도착 직후, 상단 직원들은 어마어마한 양의 추가 업무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고, 용병들은 흡족한 수준의 추가 보수와 함께 임무 완수 보고를 위해 곧장 용병 길드로 떠났다.

이 과정에서 크로나와 용병대원들이 나에게 무한한 감사와 경외의 시선을 보내오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매튜의 마음에는 차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를 아카데미까지 홀로 보내게 됐다는 사실이.

매튜 본인의 배웅조차 내가 거절하고 있으니 더더욱.

그래서인지 내 말에는 일절 토 달지 않던 녀석이 눈에 띄게 아쉬움과 섭섭함을 표하는 중이었다.

“아, 그리고 네게 따로 부탁할 게 있어, 매튜.”

“부탁이요? 어떤 거요? 말씀만 하세요.”

“실크로 상단은 아직 곡물 거래는 크게 취급 안 하고 있지?”

“예, 아무래도 규모가 충분치 못했으니까요.”

“그럼 네가 이번 기회를 잘 살려서 곡물 거래 부분을 키워 가 줬으면 해. 너도 알지? 우리 영지의 약점이 곡물 수급에 있다는 거.”

그런 매튜가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도록 새로운 미션을 건네주었다.

라인하트 영지의 취약점인 곡물과 관련된 미션이었다.

라인하트 영지는 주 수익원이 광산업에 있었다.

여기에 농사까지 잘된다면 영지 발전이 참 손쉬웠을 터.

그러나 지난 십수 년의 제자리걸음에서 알 수 있듯, 빈약한 농업 생산력으로 인해 식량 자급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여 부족한 식량은 근처 영지들, 특히 그로자 영지와 타스파 영지 등과의 거래를 통해 수급해 왔다.

문제는 주변 영지들 역시 자급 가능한 수준을 살짝 넘길 뿐, 결코 곡창지대라고 부를 수 없다는 점.

작황이 조금만 좋지 않아도 라인하트 영지에는 심각한 타격으로 작용했다.

즉, 영지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서는 식량 수급선 확대 및 다변화가 필수적인 상황.

매튜와 실크로 상단이 그 역할을 해 줄 필요가 있었다.

마침 발터우스 상단에서 얻은 곡물 덕분에 적절한 기회가 마련된 참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럼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안 그래도 그 부분은 따로 염두에 두고 있었거든요. 어차피 상단이 본격적으로 커가기 위해서는 곡물 거래 확대가 필수적이기도 하고요.”

다만 매튜에게는 따로 언급이 필요치 않은 미션이었다.

이런 일은 매튜가 나보다 훨씬 전문가였다.

녀석은 내가 말을 꺼내기 전부터 이미 이런저런 구상들을 짜 둔 것으로 보였다.

매튜라면 얼마든지 믿고 맡겨 둘 수 있었다.

“그래, 믿고 있으마. 그럼 난 이만 갈게.”

“하아, 정말 혼자 가시려는 거죠?”

“응, 그러니까 너도 얼른 가서 일해. 그리고 난 아카데미로 가기 전에 따로 들러야 할 데가 있어.”

마지막까지 아쉬움을 표하는 매튜.

그런 녀석에게 미션 말고 또 다른 이유를 제시해 주었다.

그리고 이건 단순한 핑계가 아니었다.

정말 따로 갈 곳이 있었다.

“이 왕도에서요?”

나의 왕도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라 알고 있는 매튜.

녀석으로서는 당연히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매튜에게 답해 주었다.

“이제는 좀 제대로 된 녀석이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이야.”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검을 톡톡 두드리면서.

* * *

회귀 이래, 나는 새로운 감각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사람들의 부정적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매튜의 엄청난 재능을 캐치할 수 있었다.

또, 몬스터 감지와 회피 능력이 생겼으며, 이를 통해 트윈을 죽이고 놈의 정수를 흡수할 수 있었다.

이렇듯 새로운 감각은 나에게 수많은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새로운 감각이 가져다준 것 중 그렇지 못한 것이 딱 한 가지 있었다.

바로 검.

검에 관한 부분은 결코 나에게 이롭게 작용했다고 볼 수 없었다.

검의 균형 때문이었다.

회귀 직후부터 검을 쥘 때마다 느껴 왔다.

쥐는 검마다 균형이 어긋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것이 그간 검을 전개하는 데에 은근히 거슬리는 요소로 작용해 왔다.

물론 내 실력 발휘 자체를 방해한다거나 힘을 제한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소드 마스터로서의 깨달음을 십분 활용하지 못했을 터.

실질적인 문제를 유발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거슬리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왠지 더 효율적으로 힘을 전달하고 검을 전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틀어진 균형으로 인해 그러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적잖이 신경 쓰이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새로운 감각의 정체가 밝혀진 뒤, 즉 어둠의 정령석을 섭취한 뒤 완전히 또렷해졌다.

쥐는 검마다 균형이 어긋나 있다는 감각은 틀리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정령력 활용이 가능해진 뒤에는 눈에 보일 듯 선명하게 느껴졌다.

검마다 중심과 균형이 약간씩 틀어져 있다는 사실이.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틀어져 있는지까지도.

나름 숙련된 대장장이의 작품이라는 것도 쥐어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그 정도가 덜하기는 해도, 결국 어긋남은 느껴졌다.

정령석 섭취 전에는 긴가민가했던 부분도 이제는 확실하게 짚어 낼 수 있었다.

불편했다.

검의 활용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불편함만큼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현재 내가 왕도 외곽의 한 허름한 집에 들어서 있는 것도 이 불편함의 연장 선상에 있었다.

이곳에 어쩌면 나의 불편함을 해소해 줄지도 모르는 특별한 인물이 기거 중이었기 때문이다.

“계십니까?”

사람을 불러 보았으나 이렇다 할 답변은 없었다.

집 밖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불러 보았으나 마찬가지였기에, 어쩔 수 없이 일단 안으로 들어온 참이었다.

어차피 오늘 보고 가지 못하면 앞으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니었다.

주인의 존재를 분명히 감지할 수 있었다.

단지 그가 내 부름에 응답하지 않는 것일 뿐.

그렇다면 주인이 응답해 주기를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이미 발을 들인 상황임에도 명시적인 방문 거부는 없는바, 달리 문제 될 부분은 없어 보였다.

시간이 얼마가 걸릴지도 상관없었다.

이곳에는 얼마든지 시간을 때울 만한 거리들이 넘쳐흘렀으니까.

쓸 만한 검을 구하고자 내디딘 걸음이었다.

그런 내가 각종 병장기로 가득 찬 이곳에서 지루함을 느낄 턱이 있겠는가?

더구나 흥미를 끄는 특이점까지 존재했다.

수많은 병장기가 마치 쓸모없는 짐짝이라도 되는 양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는 점.

그리고, 그렇기에 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어차피 짐짝 취급받는 물건들, 좀 뒤적거리고 살펴본다고 해서 주인의 화를 돋울 것 같지는 않았다.

절그럭.

그렇게 주인의 응답을 기다리는 겸 하여 바닥에 널브러진 검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장난 아니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검이 지닌 중심과 균형 면에서 지금까지 쥐어 본 그 어떤 것들보다 훌륭했다.

틀어짐과 어긋남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만하면 정령석 섭취 전에는 느끼지 못했을 수준.

그만큼 완성도 면에서 뛰어났다.

“이런 걸 이렇게 아무렇게나……?”

이 검은 도저히 이런 짐짝 취급을 받을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밖으로 나가면 명장의 작품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훌륭한 완성도를 자랑했다.

“…….”

그러나 나는 이내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검을 내려놓고 다른 병장기들을 차례차례 확인해 가면서부터였다.

이곳에 널브러진 병장기 중 처음 본 검에 비해 떨어진다고 볼 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미세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하나하나가 작품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것들뿐이었다.

따라서 처음 본 검은 이곳에서 결코 특별하다고 할 수 없었다.

널리고 널린 병장기 중 하나일 뿐.

이 안으로 한정해 놓고 보면 쓸모없는 짐짝 취급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될 지경이랄까?

물론 객관적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았지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렇게 넋을 놓고 병장기들을 살펴보던 중이었다.

저벅저벅.

안쪽에서부터 이곳으로 향하는 주인의 기척이 잡혔다.

드디어 기다리던 응답이 전해져 온 것이다.

“데파이 스토스 님이십니까?”

이내 모습을 드러낸 한 노인.

외양만 놓고 보면 평범했다.

머리와 수염이 하얗게 셌다기보다는 바랬다는 표현이 어울렸으며, 피부 또한 쭈글쭈글하고 여기저기 검버섯이 핀 평범한 외양의 늙은이.

그러나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얼핏 이 평범해 보이는 노인이 내가 찾던 바로 그 인물이라는 것을.

노인의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본질, 매튜에 버금가거나 혹은 그 이상인 것이 느껴지는 중이었으니까.

그런데 어찌 몰라볼 수 있겠는가?

해서 나는 대답조차 않고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 그를 향해 인사를 이어 갔다.

“처음 뵙겠습니다. 북부 라인하트 자작가의 차남, 라이오넬 라인하트라고 합니다. 우선 이렇게 불쑥 찾아뵙게 된 점 사과드립니다.”

끄덕.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그저 고개만 한번 끄덕이고 마는 노인, 데파이 스토스였다.

그리고 어쩌면 이는 심각한 무례일 수 있었다.

방금 라인하트 자작가의 둘째라는 내 출신을 명확히 밝힌 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형제들 자체가 귀족치고는 신분이나 허례허식을 많이 따지지 않는 편이기는 했다.

나 또한 회귀를 통해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고 말이다.

하지만 정도는 지켰다.

내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면 모를까, 명확히 드러낸 상태에서까지 무례를 못 본 척하지는 않았다.

그건 가문을 욕보이는 일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데파이 스토스 님의 명성을 접하고 찾아뵙게 됐습니다. 제가 쓸 검을 한 자루 구하고 싶어서요.”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왜?

데파이는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널브러진 수준급 병장기들, 그의 내부에서 폭발적으로 꿈틀거리는 본질이 가리키듯 데파이는 명장이었다.

단순히 명장이라는 단어로 다 담을 수 없는 최고의 대장장이, 슈라우드 왕국이 유일하게 제국에 뒤처지지 않는다고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장인.

오죽하면 전대 국왕이 대장장이에게 이례적으로 스토스라는 성과 준남작 작위를 내려 주었을 정도였다.

이렇듯 외지고 허름한 장소에서 추레한 모습으로 지낸다 한들 결코 무시당할 인물이 아닌 것이다.

껍데기가 어떠하든 그 본질은 바뀌지 않았으니까.

이 껍데기의 추레함마저도 데파이 본인의 의지와 고집에 기인한 것이었고 말이다.

귀찮고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전부 마다한 데파이였다.

그는 은퇴와 함께 최대한 잊히기를 바랐다.

물론 현실적 제약이 있기에 왕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바람대로 왕국 주요 인사를 제외하고는 그의 거처도, 생김새도 알지 못하는 상황.

나 역시 전생에 소드 마스터에 오르지 못했다면, 그리고 당시가 데파이의 사후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그의 거처를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당연히 일견 무례한 듯 보이는 그의 태도에 불만을 품을 리 없었다.

이는 무례라기보다 거장의 위엄이라고 보는 편이 옳았으니까.

“날 알고 온 것이라면 굳이 확인도 필요 없겠지. 거기 있는 물건 중 마음에 드는 것으로 대충 하나 집어 가도록.”

동시에 거장은 권태로웠다.

귀찮은 기색, 무관심한 태도가 역력했다.

그의 눈에 난 이곳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병장기들만도 못한 것처럼 보이는 듯했다.

그렇다면 일단은 권태로운 그의 눈빛을 나에게 붙잡아 둘 필요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여기서 본 것들만으로도 눈이 절로 뜨이는 기분이었습니다. 정말 훌륭한 작품들이더군요.”

단, 그럴듯하게 꾸며 낸 이야기로는 안 됐다.

어설픈 사탕발림이나 감언이설 따위로는 거장의 기준을 통과할 수 없었다.

“다만, 정말 훌륭한 작품들이기는 한데…….”

물론 거짓은 아니었다.

여기 널브러져 있는 병장기들이 수준급 작품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테니까.

단, 진실을 전부 말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왜?

난 분명히 느끼고 있었으니까.

“안타깝게도 조금씩 하자들을 품고 있었습니다. 어쩐지 실패작 같다고 해야 할까요? 여기에는 제가 쓸 만한 검이 없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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