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26화 (27/200)

14장: 증명과 확인, 실험(2)

“정말 공자님 정체 안 밝히시려고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숨긴다, 뭐 이런 건 아니지만 굳이 나서서 밝히지는 않으려고. 여러모로 귀찮아질 테니까. 어차피 기사라고 얘기해 뒀으니 크게 불편할 일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하긴 공자님 명성이 왕국 전체적으로도 그렇지만, 특히 이곳 북부에서는 정말 굉장하더라고요. 알겠습니다. 혹여라도 불편하신 부분 생기지 않도록 제가 더 신경 쓸게요.”

나를 보며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당차게 답하는 매튜.

귀여운 동시에 믿음직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이랄까?

고작 1년 만에 눈부시게 성장한 녀석이었다.

난 대견함을 가득 담아 그런 매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말이다.

매튜는 빠른 속도로,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재능을 꽃피워 가고 있었다.

이드리스가 몬스터 부산물로 벌어들인 돈 일부를 재투자하면서 사실상 라인하트 영지의 전속 상단 같은 역할을 하게 된 실크로 상단.

매튜는 그런 실크로 상단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벌써 중간 관리자급으로 올라선 상태였다.

계산과 거래에 대한 탁월한 재능이 고작 15살의 나이에 이를 가능케 해 준 것이다.

물론 우리 영지의 투자가 영향을 미친 부분도 적지 않기는 하지만.

어쨌든 나는 현재 실크로 상단과 매튜의 덕을 보는 중이었다.

실크로 상단의 상행에 꼽사리 끼어 왕도로 향하는 것.

이것이 검술 실력 외적인 부분에 대해 내가 미리 생각해 둔 바이기도 했다.

“그래, 고맙다. 그러니까 이제 너도 공자님 말고 라이 경이라고 불러야겠지?”

“예, 공자…… 아니, 라이 경.”

출발 전 계획해둔 대로 이번 기회에 여러 가지를 확인하고 실험해 볼 작정이었다.

그래야 내 실력과 한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현재 내가 지닌 힘은 두 가지로 구분 가능했다.

검술과 정령력이 바로 그 두 가지.

다만, 이 중에서 검술이야 굳이 파악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이미 완벽하게 인지하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예전과 같은 경험과 경지의 부조화도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에릭스에게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불러일으킨 그대로였다.

난 현재 소드마스터였다.

검술에 있어 초월의 경지라 일컬어지는 진정한 실력자의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트윈으로부터 흡수한 마나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든 덕분이었다.

따라서 더는 괴리나 제약 같은 것이 나를 묶어 두지 못했다.

단, 이 사실을 대외적으로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라인하트 영지는 이제 막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시점.

지나친 관심의 집중은 자칫 독이 될 수 있었다.

아직은 좀 더 내실을 다져야 할 시기라고 판단했다.

내 경지를 알게 된 이드리스와 에릭스 역시 이에 동의했다.

그리하여 슈라우드 왕국이 보유하게 된 세 번째 소드마스터의 존재는 당분간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 예정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게 중요한 건 검술의 경지가 아니었다.

내게 시급한 것, 그래서 확인하고 실험해 봐야 할 대상은 바로 두 번째 힘, 정령력이었다.

이번에 정령석 섭취를 통해 새로이 얻게 된 바로 그 힘 말이다.

일단 섭취와 그간의 관조를 통해 우선적으로 확인된 부분이 있었다.

가장 먼저 섭취한 정령석의 종류.

내가 지니게 된 새로운 힘은 어둠이었다.

굳이 부연설명조차 필요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암흑 그 자체.

즉, 나는 어둠의 정령석을 섭취한 것이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하던 바이기는 했다.

회귀 직전, 내가 정령석을 파괴하던 순간부터 시작해서 그 종류를 추정케 하는 정황이 여러 차례 포착됐기 때문이다.

제국이 일개 영지에 그런 수작을 벌였다는 점 역시 이 정황의 일부라고 할 수 있었다.

개연성은 충분했다.

불, 물, 바람, 대지 등 4원소 정령석과 달리 어둠의 정령석은 대륙 전체를 통틀어 발견된 사례가 없었으니까.

라인하트 영지가 최초였다.

그렇기에 제국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 것이다.

그리고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섭취자인 내가 보증할 수 있었다.

어둠의 정령석은 특별했다.

비록 다른 정령석을 섭취해 본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확신 가능했다.

어둠의 정령력은 귀동냥으로 종종 들어 온 여타 정령력들과 그 궤를 달리했다.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다는 것, 이것이 가장 큰 차이였다.

듣기로는 여타 정령석의 경우 섭취 직후부터 해당 원소를 가시적으로 발현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이 물리력을 지니고 있음은 당연하고 말이다.

한데 어둠은 그렇지 않았다.

보이는 것도, 잡히는 것도 없었다.

진짜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이해도 부족으로 내가 발현하지 못하는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여타 정령석 섭취 직후와 다른 양태를 보인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대신 보이지 않는 힘을 다룰 수 있었다.

그중 가장 직관적이고 이해가 쉬운 것이 바로 인력과 중력.

어둠의 힘을 발휘하여 끌어당기고 찍어 누르는 것이 가능했다.

어둠의 정령력을 전투에 활용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기도 했다.

분명 불로 태우거나 바람으로 찢는 등의 직접적인 타격은 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힘이야말로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힘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나의 모태가 되는 라인하트 검법과 환상적으로 어우러졌다.

라인하트 검법은 무게를 다루는 것이 핵심이자 요체.

그림이 단번에 그려졌다.

상대의 중심을 흩트린 상태에서 끌어당기거나 찍어 누른다면?

적어도 나에게 이보다 더 적합한 전투법은 존재하기 어려웠다.

물론 이게 끝일 리 없었다.

고작 여기서 끝이었다면 수작을 벌인 제국도, 거기에 당한 우리 영지도, 그리고 1년간 그 고생을 한 나도 모두 억울할 터.

어둠이 내게 건네준 힘은 더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인력과 중력보다 이쪽이 더 근원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 힘이란 것이 무려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었으니까.

본질을 파악한다.

이것만으로는 의미가 모호하고 설명이 어려웠다.

다만 이 중 일부나마 단번에 이해시켜 줄 수 있는 아주 좋은 예시가 존재했다.

그것도 바로 눈앞에.

매튜였다.

첫 만남에서 쉼 없이 내 본능을 자극했던 매튜의 특별한 무언가.

그동안은 이 무언가의 존재만을 느꼈을 뿐, 그 정체를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랬던 것을 정령석 섭취 후 완벽하게 깨달았다.

무언가란 바로 매튜가 지닌 잠재력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극히 일부의 파편에 불과하던 내 정령력조차 도저히 캐치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들었던 엄청난 수준의 잠재력.

그런 것이 매튜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령석을 섭취한 지금은 확신할 수 있었다.

에일린이 정확했다.

매튜의 길은 확실히 상단에 있었다.

상인으로서의 잠재력이 너무나도 막대한지라 도저히 다른 길은 떠올릴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어쨌든 이런 매튜의 예시에서 알 수 있듯이 어둠의 힘으로 대상의 잠재력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나아가 단순히 잠재력만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본질이 아닌 잠재력 파악으로 능력을 명확히 정의했을 터.

이 외에도 더 있었다.

대상의 무게중심이 손에 잡힐 듯 확실하게 느껴졌다.

물론 이전에도 검법의 특징 덕에 느끼기는 했지만, 그때와는 확연한 차이가 존재했다.

이전이 말 그대로 두리뭉실하게 느끼는 수준이었다면, 현재는 눈으로 본다 해도 좋을 정도로 완벽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대상의 감정, 특히 부정적 감정을 명확하게 캐치 가능했다.

정령석을 섭취하기 전부터 감각으로서 막연하게 느껴 왔던 부분이 완전히 또렷해진 것이다.

잘만 하면 이 캐치한 감정을 내 의지로 자극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을 만큼.

여기까지가 그간의 관조를 통해 대략적으로나마 확인한 어둠의 힘이었다.

그러나 확인해야 할 것들은 아직도 한참이나 더 남았다.

당장 트윈의 힘을 흡수한 일만 해도 그러했다.

어둠의 정령력과 관련된 것은 분명한데, 여전히 어떤 식으로 작용한 것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또, 이미 확인한 힘들도 여기서 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 이상의 경지가 존재하는 것이 분명했다.

단지 내 이해도가 거기에 미치지 못한 것일 뿐.

더불어 몬스터와 관련된 부분도 남아 있었다.

이 또한 어느 정도는 파악해 둔 상태.

다만 여기에는 일련의 추가적인 작업이 요구됐다.

일종의 실험 같은 거랄까?

“고블린! 고블린이 나타났다!!”

순조롭던 상행에 뜬금없는 걸림돌이 등장했다.

몬스터라는 걸림돌.

물론 아예 말이 되지 않는 등장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상행 중에 몬스터와 조우하는 일쯤은 비일비재하며, 이에 대비하고자 용병을 고용하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여기에? 아직 가도 위잖아?”

“몰라. 뭐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들어 왔나 보지. 일단 전투 준비부터 해.”

문제는 저들끼리 떠드는 용병들의 대화 내용에 있었다.

상행이 아직 가도 위를 지나고 있다는 점.

따라서 몬스터가 출현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지역이라는 점 말이다.

확실히 가도 위에서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는 일은 극히 드문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다.

“진짜 되는구나.”

그리고 한 가지 더.

상인과 용병들은 꿈에도 몰랐다.

이 드문 경우가 결코 우연히 발생한 사고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 * *

“음…….”

크로나 용병대의 대장 크로나.

대원들과 함께 실크로 상단의 슈라우드 왕도행 호위 임무를 맡은 그는 현재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는 중이었다.

이번 상행은 영 석연치 않은 점들로 완전히 도배돼 있었기 때문이다.

용병으로서 산전수전 다 겪었으며, 소드 유저 이상만 받을 수 있는 B급 용병패 보유자인 그조차 이해하기 힘들 만큼 이상한 것들로 말이다.

첫 번째, 몬스터의 습격이 지나치게 잦았다.

아니, 지나치다는 표현조차 부족했다.

지랄 맞게 잦았다.

슈라우드 왕국 북부는 카르가디아 산맥과 인접해 있는 곳이니만큼 다른 지역보다 몬스터 출현 빈도가 높은 편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정도라는 것이 있었다.

아무리 슈라우드 왕국 북부라 해도 한 상행 전체에서 너덧 번이면 충분히 많은 편.

지금처럼 매일같이 발생하는 몬스터와의 조우 및 전투는 정도를 넘어도 한참 전에 넘어섰다.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물론 몬스터와의 잦은 전투가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고블린 따위의 소형 몬스터들은 용병대 입장에서 오히려 반가웠다.

처리가 그리 어렵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행이 끝나고 부산물 관련해서 추가 대금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일종의 가외 소득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나, 문제는 소형 몬스터 못지않게 놀이나 오크 따위의 중형 몬스터도 심심찮게 나타난다는 점이었다.

부산물 측면에서는 당연히 소형보다 중형이 낫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득이라고는 보기 힘들었다.

보통은 이것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피해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쩌다 한 번씩이면 몰라도 이렇게 매일 같은 출현은 도저히 반가울 수가 없었다.

원래라면 쉬지 않고 욕지거리가 치밀어 올랐을 것이 분명했다.

“으음…….”

그런데 안 그랬다.

욕지거리는커녕 갸웃거리는 고개의 각도만 더 커질 뿐이었다.

석연치 않은 점 두 번째가 그 이유.

출현하는 몬스터들의 상태가 영 이상했다.

위축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

무엇 때문인지 잔뜩 겁을 집어먹고는 타고난 포악성을 채 절반도 드러내지 못하기 일쑤였다.

덕분에 몬스터 처리가 떨어진 이삭줍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수월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

특히 이런 경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강해졌다.

이제는 아예 겁을 집어먹다 못해 줄행랑쳐 버리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다른 몬스터도 아니고 호전성의 끝판왕 격인 오크가 말이다.

그렇다고 상행이 무슨 군대급의 규모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 해서 기껏해야 30명가량.

그중 전투 인원인 크로나 용병대의 숫자는 10명에 불과했다.

한데 이런 소규모 행렬을 상대로 오크가 줄행랑을 친 것이다.

크로나는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크르르르.”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크로나는 의심스러운 제 눈을 비빔과 동시에 석연치 않은 점 세 번째를 떠올렸다.

크로나 본인이 완전히 겁을 상실했다는 점, 그것이 바로 세 번째였다.

“대장, 나 너무 겁에 질려서 머리가 훼까닥 한 건가?”

크로나만이 아니었다.

그의 오른팔이자 부대장인 샤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내가 칼 밥 먹은 세월이 15년이라지만, 눈앞에서 오우거를 보고도 이렇게 멀쩡하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비단 크로나와 샤키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용병대원 모두가 샤키의 말에 고개를 주억이고 있었다.

오우거의 출현은 지금까지의 그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실크로 상단과 크로나 용병대 전원이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멸하게 생겼다.

상행 자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상하게 하나도 안 심각했다.

크로나도, 샤키도, 용병대원들도, 심지어 평범한 상인들까지도.

모두가 숲의 제왕이자 재앙인 오우거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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