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24화 (25/200)

13장: 시작점

“형, 나 당분간 성 밖에서 개인적인 수련 좀 할 거야.”

매튜를 떠나보낸 직후, 이드리스의 집무실로 찾아갔다.

그리고 이드리스에게 앞으로의 내 계획을 알렸다.

밝힌 대로 당분간 개인 수련을, 그것도 연무장이 아닌 성 밖에서 진행할 작정이었다.

“개인 수련이야 좋다만, 왜 그걸 굳이 성 밖에서? 안에서 하는 게 더 낫지 않아? 에릭스 경께 이런저런 조언도 받을 수 있을 테고.”

“에릭스 경께는 이미 대강 말씀드렸는데, 지금 내 몸에 자리 잡은 마나는 진짜 내 거라고 보기 힘들어. 트윈한테서 흡수한 마나라 거칠고 통제가 잘 안 되거든. 그래서 정제 작업이 필요해.”

“여전히 그 경위는 오리무중인 것이냐?”

함께 자리하고 있던 에릭스가 질문을 던져 왔다.

마나의 흡수 경위에 대한 물음이었다.

몬스터의 마나를 인간이 흡수한다는 건 어디서도 전해 들은 바 없는 괴사였기 때문이다.

“새로 얻은 감각과 관련돼 있으리라는 추측 말고는 따로 짐작 가는 바가 없네요. 이번에 수련을 하면서 같이 궁리해 볼 생각입니다.”

“음, 이해는 잘 안 되지만 일단 그렇다 치고, 왜 꼭 성 밖이어야 하는 건데? 마나 정제 작업이라면 더더욱 안전한 장소에서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보통이라면 그럴 텐데, 상황이 워낙 특수해서. 트윈에게서 강탈해 온 거라 그런지 숲속에서 운용할 때 훨씬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더라고. 그래서 그래.”

에릭스의 질문에도 그렇고 이드리스의 그것에도 제대로 된 답변은 줄 수 없었다.

나도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뿐더러, 제대로 된 답변을 위해서는 회귀부터 설명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고, 또 그럴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전례 없는 상황이니만큼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흐음, 그래 뭐 알겠어. 그럼 널 호위할 병력을 꾸려서 붙여 주마.”

“아니, 호위는 필요 없어. 거추장스러워.”

“숲속에서 수련할 거라며? 그럼 안전을 위해서라도 당연히 호위가 붙어야지.”

“좀 많이 유난스러운 수련이 될 거라 호위는 오히려 방해만 돼. 무엇보다 영지 내에 있으면서 내가 누구의 보호를 받아야 할 처지도 아니고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형 동생이 그래도 명색이 트윈 슬레이어야. 형이 안심하고 믿을 만큼은 충분히 돼. 안 그렇습니까, 에릭스 경?”

내가 원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개인 수련이었다.

아무도 내 수련을 보지 못하는, 그래서 비밀유지가 가능한 그런 수련.

그리고 이를 위한 설득 작업 또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트윈 슬레이어라는 타이틀 덕분이었다.

왕국 어디서든 먹어 주는 타이틀 보유자의 영지 내 안전 문제를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였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에릭스 역시 내 의견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이드리스 또한 나의 성 밖 개인 수련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시작점으로 가기 위한 사전 작업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여기에 추가적인 양념을 살짝만 더 쳐 주면 금상첨화.

“고마워, 형. 그리고 말했다시피 내 수련이 약간, 아니 사실 좀 많이 특이할 거야. 일반적인 수련과 궤를 달리할 수밖에 없어서 그러는 거니까, 이상해 보이더라도 그냥 그러려니 해 줘. 다 필요해서 하는 것이겠거니 하고. 부탁할게.”

“대체 뭔 짓을 얼마나 거창하게 하려고……?”

살짝 떨떠름한 기색을 내비치는 이드리스.

난 그런 그에게 안심하라는 의미의 환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물론 그다지 먹혀든 것 같지는 않아 보였지만 말이다.

* * *

라인하트 영지 내에는 오래전부터 사람의 발길이 뜸한 장소가 있었다.

이 장소의 명칭은 굴타르 산.

라인하트 영지 서부에 우뚝 솟아있는 이 산은 영지 전체로 따져 봤을 때 나름 적지 않은 면적을 차지했다.

그럼에도 사람의 발길은 굉장히 뜸한 곳이었다.

영지민들은 정말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이곳에 나무조차 하러 오지 않았다.

위험한 몬스터나 산짐승 때문은 아니었다.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음에도 이곳은 특이하게 짐승조차 그리 많지 않았다.

음침하달까?

혹은 어둡다고 해야 할까?

산 전체의 분위기가 극도로 서늘하고 어두침침한 것이 원인이었다.

종종 귀신 같은 부정한 존재를 목격했다는 소문도 심심찮게 돌았다.

오죽하면 굴타르 산이라는 정식 명칭보다 귀신 산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릴 정도.

그래서 발길이 뜸했다.

나도 이런 보통의 영지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회귀의 그 날 전까지 이곳에 발을 들인 적이 없었다.

부정하다고 일컬어지는 장소에 굳이 발을 들일 필요도 없었거니와, 검에 미쳐 사느라 그럴 정신도 없었다.

회귀 전, 이곳에 광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더라면 영지민들도, 나도, 그리고 비극도 찾아오지 않았을 그런 장소였다.

“여기 있구나.”

나는 현재 그런 굴타르 산 한복판에 서 있는 상태였다.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빛이 거의 들어오지 못하는 곳, 그래서 어둡고 음침하기 짝이 없는 귀신 산의 한 중턱에 말이다.

당연히 길 또한 나 있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서 있는 산 중턱의 이곳까지 이르는 데에 어떠한 헤맴이나 망설임도 없었다.

길은 물론이고 특별한 표식이나 안내 같은 것 역시 전무함에도 그러했다.

나에게는 확실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모든 것의 시작점이.

“정령석.”

바로 정령석이었다.

영지를 박살 낸 비극의 원흉이자 나를 지금 여기까지 오게 만든 모든 일의 매개체.

나는 그런 정령석을 찾아 이곳에 온 것이다.

이곳에 묻혀 있는 정령석의 존재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더욱 그러했다.

어두운 무언가가 나를 강력하게 잡아당겼다.

“그래, 어디 그 면상 한번 제대로 보자.”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원천임에도 나는 이것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다.

불, 물, 바람, 대지 따위의 평범한 –정령석에 평범하다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정령석과는 사뭇 다른 힘을 내뿜는다는 점, 그런 특별한 신외지물이 하필이면 우리 영지, 그것도 굴타르 산에서 발견됐다는 점 외에는.

회귀 직전 이것을 놓고 제국 실력자와 사투를 벌이기도 했지만, 온전히 두 눈에 담은 것은 죽기 직전의 단 한 순간뿐이었다.

그마저도 내 손으로 산산조각 내 버렸고 말이다.

따라서 앞으로 펼쳐질 만남이 사실상 첫 대면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스릉~

그렇게 복잡한 감정을 한가득 안은 채로 검을 빼 들었다.

구우우웅~

스악~

콰광!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휘둘렀다.

현재 뿜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오러를 실어서.

지금부터 정령석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갈 작정이었다.

비극의 원흉이자 모든 것의 시작점을 마주하기 위해.

단, 혼자서 나아가야 했다.

혹시라도 알려졌다가는 회귀 전처럼 무슨 사달이 날지 몰랐으니까.

한데 이 정령석이라는 놈은 부끄럼이 많았다.

산 안쪽에 고이 묻혀 그 모습을 꽁꽁 감추고 있는 상태.

놈을 만나기 위해서는 산을 파내고 들어가야 했다.

즉, 나 혼자서 찾아가야만 하는데 하필이면 산 한복판에 깊숙이 묻혀 있는 것이다.

평범하거나 만만한 작업이라고는 할 수 없는 상황.

그렇다면 나 또한 평범하지 않은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내 손에는 그 방법이란 것이 쥐어져 있었다.

바로 검.

오러를 잔뜩 머금은 검이 나만의 특별한 방법이었다.

검으로 미친 듯이 부수고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을 터.

시간도 꽤 잡아먹을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당분간 내가 외적으로 신경 써야 할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또, 어차피 트윈의 마나를 정제해 내 것으로 만들기도 해야 했다.

즉, 시간과 당위성 모두 알맞게 갖춰진 조건인 것이다.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곧 가마. 조금만 기다려라.”

* * *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건지, 에휴.”

에일린이 못마땅한 기색으로 혀를 찼다.

절레절레 저어지는 고개도 함께였다.

이에 이드리스가 제 동생을 달래 주었다.

“네 말대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이상한 짓들이 라이 녀석한테는 득이 되는 모양이야.”

라이오넬 때문이었다.

최근 라이오넬의 행적이 에일린을 고개 젓게 만든 것이다.

다만 진짜로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에릭스 경도 그냥 아무 간섭 없이 지켜보고만 계시잖아. 라이 녀석 정기신이 안정되어 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라고 하시더라. 그러니까 에일린 너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그러려니 해.”

에릭스의 보증이 있었다.

비록 라이오넬의 정확한 실력은 파악이 안 되지만 빠른 속도로 발전 중인 것만큼은 분명하다는 것.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에릭스의 보증이니만큼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오빠 말이 맞는 건 아는데, 그래도 좀 많이 이상하잖아. 수련만 하고 왔다 하면 흙투성이가 돼 있지를 않나, 갑자기 광부들을 찾아가서 채굴 기술을 배웠다지를 않나, 나무를 한 짐 해서 다닌다는 얘기까지 들려오잖아. 그런 지가 벌써 1년이야. 뭘 하는 건지 물어도 대충 얼버무리기나 하고.”

그러나 에일린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지난 1년간 라이오넬이 보여 온 행적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수련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검사의 수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광부나 나무꾼의 작업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아무리 일반적인 수련과 궤를 달리할 거라고 미리 언질을 받았다지만, 이건 다른 정도가 아니었다.

그냥 수련 말고 딴짓을 한다고 보는 게 더 적합할 지경이었다.

“아니, 사실 그런 것들이야 모른 척해 줄 수 있어. 라이 오빠가 언제는 안 이상했던 적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이제는 자제 좀 시켜야 할 때인 것 같지 않아? 언제까지 수련을 빙자한 이상한 짓만 하게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라이 오빠도 이제 슬슬 왕도로 갈 때가 돼 가는데.”

“음, 그렇긴 하지…….”

이어지는 에일린의 지적에 이드리스도 고개를 주억였다.

늘 그렇듯 에일린의 말에는 틀린 구석이 없었으니까.

라이오넬도 이제 18살이었다.

즉, 왕도로 갈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하면 이제는 수련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이상한 행동들을 그만두고 정상인의 범주로 돌아와야 할 때.

괜히 에일린이 혀를 차고, 이드리스가 말끝을 흐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가족들을 근심케 하는 라이오넬은 지금 어디서 뭘 하는 것일까?

에일린이 제 오빠의 이상한 짓거리들을 걱정하는 그 시간.

“하아…… 겨우 찾았네.”

라이오넬은 웬 돌덩이 비스무리한 것 하나를 손에 쥐고 있었다.

아주 징하다는 듯 길고도 깊은 한숨을 내뱉으면서 말이다.

* * *

처음만 해도 난 자신만만했다.

정령석이 나를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었다.

따라서 그 위치를 헷갈리지 않고 특정하는 것이 가능했다.

감을 따라 그냥 일직선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

길어야 두어 달?

정령석을 찾기까지의 최초 예상 시간은 딱 그 정도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내 자신감은 오만이었고, 예상은 오판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오러라는 비기가 이 일을 함에 있어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도구라는 점은 분명했다.

그 어떤 암석도 오러 앞에서는 비루한 흙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순식간에 푹푹 파내어질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도구라 해도 그것을 쥔 장인의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하는 법.

채굴이라는 것이 어디 단순히 파내기만 잘한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던가?

파낸 굴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하는 작업 역시 필수 요소였다.

그리고 난 이 필수 요소를 간과했다.

그냥 오러만 믿고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파고 들어간 것이다.

그러다가 한 번 그대로 생매장당할 뻔하기까지 했다.

오만과 오판의 대가를 목숨으로 치를 뻔한 꼴.

하여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뒤 곧장 광산으로 찾아갔다.

내가 오만했음을 깨닫고 고수들에게 가르침을 청하기 위함이었다.

다행히 라인하트 영지는 광산업이 활성화된 곳.

광부들로부터 채굴의 기초지식을 배우는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나하나 다시 시작했다.

땅을 파고, 지지대로 받치고, 이 지지대 마련을 위해 나무를 베어오고, 다시 땅을 파고…….

그렇게 1인 노가다를 뛴 시간이 어언 1년.

정말 징하고 징그러운 시간이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오늘, 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정령석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더는 어떠한 방해나 장애물 없이 온전히 그것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끽해야 이 사람 주먹만 한, 새까만 돌덩이 같은 것이 대체 뭐라고 그 끔찍한 비극과 사건들을 초래했단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복잡하던 감정이 정령석을 직접 손에 쥐고 나니 한층 더 미묘해졌다.

지난 1년간의 채굴 작업까지 더해지니 더더욱.

그래서 한참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의 시작점이 된 이 작고 새까만 정령석을.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을 손에 쥐고 바라보기만 하던 나는 이윽고 결심을 내렸다.

그리고 그 결심을 곧장 행동으로 옮겼다.

꿀걱.

삼킨 것이다.

정령석을.

나의 목구멍으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