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22화 (23/200)

12장: 일단락(2)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제발 좀 조심하라고 신신당부 드렸죠? 근데 아주 그냥 맛있게도 씹어 드셨네요. 제가 얼마나 걱정할지 따위는 관심도 없으셨나 봅니다?”

다이너의 잔소리 폭격이 쏟아졌다.

내가 깨어나고 정신 좀 차렸다 싶은 순간부터 시작된 폭격이었다.

나를 비롯해 정찰대 전원이 기절해 있는 사이, 디카프리 델로나 후작이 우리를 옮겨 주었다고 한다.

덕분에 이렇게 요새에서 무사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다이너 녀석의 잔소리도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를 이송한 직후 델로나 후작이 다시 남부로 떠나는 바람에 감사를 전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추후라도 꼭 직접 찾아가 인사할 생각이었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이 잔소리부터 해결해야 했다.

녀석의 잔소리 따위 어차피 별 영향은 없지만, 길어지다 보니 좀 귀찮은 건 사실이었다.

“정말 날 걱정한 게 맞긴 한 거지? 에일린한테 혼날 걸 걱정한 게 아니라?”

“지금 그걸 말이라고……! 그래요, 제가 아가씨께 혼날까 봐 걱정했습니다. 이제 만족하십니까?”

피식 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다이너 녀석은 확실히 놀리는 맛이 있었다.

반응이 너무 좋았으니까.

왠지 에일린이 어떤 심정으로 다이너를 조련하는 것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다만 나의 숙련도는 에일린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관계로 길게 이어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했다.

“농담이야, 농담. 그리고 나 정말 괜찮아. 치료사도 그랬다며? 내 몸 상태 완전히 팔팔하다고.”

“……그렇지 않아도 궁금한 참이었습니다. 아버지 말씀대로라면 공자님께서 이리 멀쩡하신 게 도저히 말이 되지 않으니까요. 대체 아버지께서 기절하신 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충분히 궁금증을 가질 만한 부분이었다.

에릭스를 비롯하여 제프너와 게인까지, 정찰대원 모두 중상은 아니더라도 적잖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오직 나만 제외하고 말이다.

이들과 달리 나는 멀쩡해도 너무 멀쩡했다.

정황상 마지막까지 남아 트윈을 처치한 장본인은 분명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따라서 과정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뭐, 그냥 운이 좀 좋았어. 지난번에 얻은 감각하고 관련돼 있기는 한데, 일단은 그렇게만 알아 둬. 나중에 기회 되면 설명해 줄 테니까.”

그러나 운이 좋았다는 것 말고는 당장 내가 해 줄 수 있는 설명이 없었다.

제대로 납득시키려면 회귀부터 이야기를 풀어 가야 하는데, 그건 지나치게 복잡했다.

애초에 믿어 줄지도 의문이었고.

“알겠습니다.”

또, 어차피 다이너가 이런 것으로 길게 물고 늘어질 녀석도 아니었다.

굳이 복잡하게 갈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다이너를 납득 아닌 납득 시킨 뒤, 잠시 내 몸 상태를 관조했다.

다이너에게 댄 핑계는 사실 핑계가 아니었다.

정말로 운이 좋았으니까.

현재 내 상태가 그러했다.

난 트윈을 처치할 힘을 얻기 위해 분명 마나 하트를 깨뜨렸었다.

많은 것을 각오하고 행한 결심이었으며, 트윈을 처치한 직후에는 실제로 힘의 소실까지 경험했다.

담길 그릇을 상실한 마나가 산산이 흩어지는 과정을 생생한 라이브로 지켜본 것이다.

각오하고 행한 일임에도 그 상실감은 이루 다 말로 표현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막힌 반전이 펼쳐졌다.

감각과 본능의 인도에 따라 트윈의 심장 부근에 손을 가져다 댔고, 그 결과 놈의 힘이 내게 전이된 것이다.

좀 더 정확히는 내가 놈의 힘을 빨아들였다.

게걸스럽게, 한 톨의 남김도 없이.

깨진 마나 하트?

흡수한 트윈의 힘을 제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재건했다.

훨씬 더 크고 튼튼한 그릇으로.

절대적인 마나량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흡수가 끝난 시점에 내가 지니게 된 체내 마나의 총량은 거의 회귀 전의 그것에 다다랐다.

즉, 소드마스터 수준에 근접한 마나량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다만, 이것이 내가 현재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마나를 온전한 내 것이라고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당장 마나 하트에 담겨 있는 마나량은 전체의 20% 정도에 불과했다.

나머지 80%가량은 몸 전체에 흩어져 있는 상태였다.

이것들에는 여전히 트윈의 기운과 색채가 짙었으며, 자유자재로 꺼내 쓰기 위해서는 정제와 길들이는 과정이 필요했다.

진짜 경지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예정인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만으로도 내게는 천고의 기연이 따로 없었다.

마나 하트를 깬다는 것은 아예 검 자체를 놓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하여 난 이번 생에 검을 놓기로 결심했고, 그것을 이행했다.

실제로 손에서 검을 한 번 놓은 것이다.

평생을 검사로 살아온 나였다.

아무리 내 사람을 지키기 위한 결정이었다지만, 그 상실감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상실감이 막 끓는 점에 도달한 그 시점에 생각지도 못했던 기적이 일어났다.

마나 하트가 재건됐고, 놓았던 검이 채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것을 다시 쥘 수 있게 됐다.

이런 게 기연이 아니면 대체 뭐가 기연이란 말인가?

더욱이 난 이미 한 번 소드마스터에 올랐던 몸.

그 경험이 온전한 채로 절대적인 마나량까지 갖추게 됐다.

필요한 것은 정제에 필요한 약간의 시간, 오로지 그뿐.

대상을 나로 한정한다면 이보다 완벽한 기연은 존재가 불가했다.

다만 한 가지, 이 과정을 재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아무리 궁리해 봐도 작동 메커니즘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또다시 마나 하트를 깨뜨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물론 당장은 필요치도 않았다.

현재 내 경지의 한계는 소드마스터.

경지 이상의 욕심을 부리는 것은 스스로를 망치는 길일 뿐이었다.

과욕을 자제하고 알맞은 속도로 나아갈 생각이다.

여기까지가 관조를 통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데 바비랑 레몬드는? 어째 녀석들이 안 보이네?”

“완전군장 구보 중입니다. 공자님 명령이라면서 바비가 아주 철저하게 관리하더라고요.”

바비와 레몬드가 안 보여 물었더니 내 명령을 이행 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확실히 바비에게 맡기길 잘했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특히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잘하고 있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레몬드 만큼은 내가 깨어났다는 거 당분간 모르게 해. 왠지 녀석이 알게 되면 굉장히 시끄러워질 것 같으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바깥은 지금 정찰대 얘기뿐이에요. 아주 떠들썩한데, 그중에서도 공자님에 관해서는 특히 더합니다.”

“나? 왜?”

“뭐, 기본적으로 제프너 자작님과 게인 남작님께서 모든 공을 공자님과 아버지께 돌린 이유가 크기는 한데…… 대충 짐작 가실 텐데요? 이 사실이 어떻게 동네방네 시끄럽게 전파됐을지는.”

“……레몬드.”

역시나 예상은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한시도 입을 쉬지 못하는 레몬드, 그 입 싼 녀석이 문제였다.

“그러니까 더더욱 레몬드한테는 알리지…….”

“다이너 경, 공자님 깨어나셨습니까? 치료사는 분명 멀쩡하다고 했는데 왜 아직도…… 어?”

모든 문제라는 것들이 그렇듯, 의도대로 흘러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안타깝게도 지금 역시 그 드문 경우에 들지 못했고 말이다.

막사 문을 휙 열어젖히며 레몬드가 입장했다.

“어라?”

“그래, 레몬드. 나 깨어났어. 그러니까 일단 진정하고 앉아서 먼저 얘기를…….”

“깨어나셨다! 라이오넬 공자님께서 깨어나셨다!! 트윈 슬레이어께서 깨어나셨다!!!”

하나, 입장과 동시에 퇴장했다.

잡고 말고 할 새도 없었다.

순식간에 막사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으니까.

요새가 떠나갈 듯한 고함과 함께.

“…….”

깨어난 직후에도 티끌 하나 없이 맑기만 했던 머리.

청정 지역이었던 그곳에 지끈거리는 두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 * *

“왜 이렇게 빨리 가나? 좀 더 있다가 가면 좋을 텐데.”

깨어난 지 열흘도 되지 않아 나와 라인하트 영지군은 복귀 준비를 마쳤다.

몬스터 웨이브가 끝난 상황.

하면 우리의 복귀 지역은 당연히 집인 라인하트 영지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모든 채비를 마치고 막 요새를 떠나려는 우리.

그런 우리, 그중에서도 특히 나를 향해 제프너가 진한 아쉬움을 표했다.

예의상 던지는 빈말이 아니었다.

그가 정말로 아쉬워한다는 것은 깊고도 깊은 그의 눈빛이 보증해 주었다.

“왜긴요, 자작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그러게 왜 굳이 안 해도 되는 말씀까지 하셔서는…….”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도망치듯 재빨리 길을 나서는 데에는 제프너의 공이 상당했다.

깨어난 직후부터 내 막사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온갖 사람들이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어디 영지의 귀족, 어느 기사단의 기사, 무슨 상단의 상인까지, 그 인원만큼이나 종류 또한 다양했다.

특히 몬스터 부산물 거래와 관련해서 눈에 불을 켠 상인들의 방문은 거의 시간 단위로 이어졌다.

도무지 맘 놓고 쉴 시간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피해 막사 밖으로 나가기도 어려웠다.

나가면 그 즉시 날 알아본 병사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으니까.

요새 내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운신 자체가 극도로 제한된 이곳에 더는 머물고 싶어도 머물 수가 없었다.

애초에 제프너와 게인이 모든 공을 나와 에릭스에게 돌리지 않았더라면 스포트라이트가 이 정도까지 일방적으로 쏠리지는 않았을 터.

따라서 라인하트 영지군이, 특히 내가 도망치듯 영지로 복귀하는 데에는 제프너가 상당한 지분을 차지한다고 봐야 했다.

내 타박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없는 말 지어낸 것도 아닌데, 뭘. 난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밝혔을 뿐이야. 자작씩이나 돼서 거짓부렁을 뱉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암, 그렇고말고.”

물론 제프너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지만.

“그건 저 녀석 말이 맞네. 어차피 다른 영지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데 필요하기도 했고.”

심지어 함께 배웅 중이던 바르코스 후작까지 제프너를 거들고 나섰다.

이렇게 된 이상 그저 나 혼자 절레절레 고개 젓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정말로 추가 보상은 필요 없나? 공식적으로야 다른 영지들 눈치도 봐야 하니 어렵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얼마든 해 줄 수 있네.”

바르코스 후작 역시 나를 이대로 보내기는 아쉬운 모양이었다.

그는 뭔가를 자꾸만 내 손에 쥐여 주려 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정말 더 바랄 만한 게 없습니다. 각하께서 해 주신 배려 덕분에 충분히 얻을 만큼 얻었으니까요.”

“트윈에 대한 권리까지 우리에게 양보해 놓고 충분하긴 뭐가 충분한가? 분명 왕창 뜯어 가겠다고 그렇게 엄포를 놓고서는, 이제 와 이리 소박하게 나오니, 이거야 원.”

트윈 헤드 오우거에 대한 권리는 일찌감치 바르코스 후작에게 양도한 참이었다.

트윈의 사체는 초미의 관심사가 된 지 이미 오래였다.

곳곳에서 눈에 불을 켜고 시장에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상황.

보물이나 다름없는 이것을 갖기에는 라인하트 자작가의 역량이 충분치 못했다.

괜한 욕심 부리다 체하느니 처음부터 깔끔하게 포기하는 편이 바람직했다.

대신 우리가 가져갈 부산물의 양 증대는 물론이고, 사체 손질 과정에 후작가의 지원까지 약속받았으니, 라인하트 입장에서는 크게 손해 볼 것 없는 거래였다.

물론 바르코스 후작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듯했지만 말이다.

“정 마음에 걸리시거든 일단 킵해 두는 걸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나중에라도 떠오르면 그때 요청드리겠습니다.”

“좋네, 꼭 그렇게 하게. 나와 우리 후작가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뭐가 됐든 있는 힘을 다해 들어줄 테니.”

덕분에 바르코스 후작가의 암묵적인 지지까지 얻어 낼 수 있었다.

이 지지가 어떻게 쓰일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언젠가 큰 힘이 되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돌이켜 보면 내 사람들의 목숨을 지켜 낸 것부터, 영지의 미래를 밝혀 줄 막대한 몬스터 부산물과 바르코스 후작가의 지지, 그리고 내 개인적인 성취까지, 정말 많은 것들을 지키고 얻어 가는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이 바르코스 부자의 배웅을 끝으로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공자, 아까부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말이지.”

다만 제프너가 품은 어떤 의문으로 인해 그것이 살짝 연장됐다.

“어떤 게 말씀이십니까?”

“저기 저 친구, 아까부터 왜 저러고 있는 건가? 보는 내가 다 아프고 힘들 지경이야.”

“아,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입을 싸게 놀린 대가를 받는 중일 뿐이니까요.”

“그래도 그렇지, 군장을 두 개나 차고 벌써 10분 넘게 저러고 있는 건 좀 심한 것 같은데.”

입을 싸게 놀린 것, 그리하여 나를 극도로 피곤하게 만든 것에 대한 벌을 받는 중인 레몬드.

그런 그를 보고 품은 의문이었다.

군장 두 개를 멘 채로 마보 자세를, 그것도 10분 넘게 취하는 건 기사라 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데 그것을 일반 병사가 하고 있으니 당연히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노릇.

“대체 무슨 입을 얼마나 싸게 놀렸길래…… 아!!”

그러나 제프너의 의문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내가 알려 주기도 전에 스스로 답을 찾아 의문을 해결해 버린 것이다.

“혹시 저 병사가 레몬드인가 하는 그 친구인가?”

“……어떻게 아신 겁니까?”

“알지, 그럼 어떻게 모르나? 바르코스 요새의 영웅이자 트윈 슬레이어 라이오넬 라인하트 공자를 바로 옆에서 모시는 최측근 중의 최측근 십인장 레몬드 아닌가? 그 목소리가 병사 막사를 넘어 내 귀에까지 들려올 만큼 쩌렁쩌렁했는데, 모른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이 또한 싸디싼 레몬드의 입 덕분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보다는 저 친구 공이 더 큰 거 아닌가? 내가 원인 제공을 했다지만, 그걸 널리 퍼뜨린 건 어디까지 저 친구 입으로 보이는데?”

“…….”

제프너의 의문으로 인해 연장된 그 약간의 시간이 방금 한 인간의 운명을 결정이었다.

입 싼 놈에게 가해지는 징벌의 수준과 시간.

그것이 끝없는 확장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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