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결판(3)
“크르르?”
그런 내가 재미있었는지 트윈이 다시금 나에게로 몸을 틀었다.
그러고는 제 놈의 왼손 엄지손가락을 내 머리 위로 가져다 댔다.
인간이 개미를 손가락으로 짓뭉개려 할 때의 모양새랄까?
트윈이 취한 자세가 딱 그랬다.
나를 이대로 짓뭉개며 가지고 놀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
그리 어색할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개미와 인간만큼은 아니지만, 트윈의 엄지손가락 하나가 내 머리 이상 가는 크기와 굵기를 자랑했다.
더구나 나는 방금 놈의 주먹질에 만신창이가 된 참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나를 걸레짝으로 만든 당사자가 그걸 모를 리 만무했다.
따라서 이렇듯 장난스럽게 나를 대한다 해도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놈에게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찢거나 터뜨려 버릴 수 있는 장난감에 불과했으니까.
지잉~
슈각!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그러했다.
내 머리를 장난스럽게 찍어 누르던 놈의 엄지, 그리고 그 엄지가 달린 왼손 전체가 단번에 팔뚝에서 분리되기 전까지는.
“크라?”
너무 순식간에 발생한 일이라 그런지 곧바로 인식이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현 상황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자신의 왼손이.
물론 아주 늦지는 않았다.
“크롸롸롸라라라!!!”
상황을 인지한 트윈이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댔다.
비현실적인 광경과 해일처럼 밀려오는 고통에 대한 절규 같은 것들이 비명을 타고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그래도 오늘 여러 차례 느꼈다시피 트윈의 학습능력은 몬스터 치고 상당한 편이었다.
발목을 베였을 때보다 훨씬 당황스러울 법함에도 불구하고 그때보다 훨씬 빠른 치환 속도를 보였다.
잘려 나간 손목으로부터 전해지는 극심한 고통을 곧장 나를 향한 분노의 광기로 치환한 것이다.
광기 어린 괴성과 함께 쏟아지는 무차별적 오른손 몽둥이 난타가 그 방증이었다.
콰과광! 쿠광! 쿠과과광!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굉음을 선사하는 미친 몽둥이찜질.
힘도 속도도 수준이 완전히 달랐다.
만약 놈이 처음부터 이런 괴력을 발휘했다면, 나나 에릭스가 활약 자체를 할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압도적인 위력이었다.
“…….”
트윈에게는 안타깝게도 위력의 발휘가 지나치게 늦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아무리 세고 빠르고 압도적이면 뭐 하겠는가?
이제는 땅거죽조차 패치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
무심하게 들어 올려진 내 검에 모조리 튕겨 나갈 뿐이었다.
나는 물론이고 주변에 어떠한 일말의 영향조차 미치지 못한 채로 말이다.
그렇기에 더 이상은 무의미했다.
여기서 더 끄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
슈각!
하여 더는 기다려 주지 않았다.
이만하면 광기는 원 없이 뿜어냈을 터.
뿜어낼 만큼 뿜어냈다면 이제는 그 자리에 새로운 감정을 채워 줄 차례였다.
어쩌면 새로 채워질 감정 또한 놈에게는 생소한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 생소할 것이 분명했다.
태생부터 황제인 놈이 대관절 언제 어떻게 느껴 봤겠는가?
공포라는 감정을.
그랬다.
지금부터 놈에게 가득 채워 줄 새로운 감정이란 바로 공포였다.
첫 스텝은 트윈의 왼 발목이었다.
오늘 전투 내내 우리를 희망 고문에 시달리게 했던 그것.
문제의 그것을 잘라 버렸다.
다소 허무하리만치 빠르고 간단하게.
쿠구궁~!
왼손에 이어 왼발까지 잘려 나가자 중심을 잃고 넘어진 트윈.
“크롸라라라!!”
고통에 찬 놈의 신음 역시 부록처럼 따라왔다.
그러나 아직 내가 원하는 감정을 온전하게 담고 있는 비명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이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관계로 추가적인 작업을 이어 갔다.
두 번째는 오른발.
슈각!
“크라라라라……!”
그러고 나니 조금은 마음에 드는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은 부족했다.
이 정도로는 그득 채워 줬다고 보기 힘들었다.
그냥 살짝 심어 준 정도?
저벅저벅.
하여 다음 작업 부분으로 걸음을 옮겼다.
놈이 내게서 몸을 틀어 에릭스를 향해 가던 그때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리고.
슈각!
사지의 마지막 남은 하나마저 베어 냈다.
그렇게 오늘 우리를 징그럽게도 괴롭혔던 통나무 몽둥이가 놈의 오른팔과 함께 바닥에 널브러졌다.
“크라라라…….”
이제야 좀 만족스러웠다.
고통의 비명조차 제대로 쏟아 내지 못하는 트윈.
오른팔까지 잘려 나가고 나니 놈의 초점은 더 이상 고통에 맞춰져 있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고통을 압도하는 그것, 바로 공포에 맞춰져 있었다.
이만하면 슬슬 마무리를 지어 줘도 괜찮을 법했다.
저벅저벅.
해서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최종 마무리 지점을 향해서.
그리고 이번 걸음에는 보보마다 라인하트 검법의 묘리를 실었다.
한 걸음 한 걸음에 엄청난 중량을 가미한 것이다.
무지막지한 트윈조차 꼼짝 못 하고 내 발밑에 깔아뭉개질 수밖에 없도록.
왜?
최종 마무리 지점까지 가는 길을 흔들림 없이 편안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크륵. 크륵. 크륵. 크륵.”
그렇게 내 발걸음에 맞춰 잔뜩 짓눌린 트윈의 신음이 새어 나오기를 수차례.
의도했던 대로 더할 나위 없는 안락함을 영위하며 마무리 지점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그곳에 역수로 쥔 검을 내리꽂기 시작했다.
꽁꽁 숨겨진 최종 목표지, 트윈의 심장을 향해서.
푸가각~
물론 심장을 향하는 길이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트윈의 질긴 가죽과 바위처럼 단단한 근육, 그리고 자연적으로 놈을 보호하는 마나까지.
발목조차 단번에 가르지 못해 고생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심장에 이르는 길은 한층 더 지난한 것이 당연했다.
지잉!
스르륵~
그런데 그 당연한 것이 모조리 뒤집혔다.
내 검이 오우거의 육신을 마치 푸딩인 양 부드럽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것도 서서히, 굉장히 느린 속도로, 아주 자연스럽게.
내 검 위로 어두운 동시에 찬란한 또 하나의 검, 오러 블레이드가 솟아난 직후부터였다.
모든 것을 찢어발기는 이 파괴자 앞에서 트윈의 육신은 녹아 흐르는 아이스크림과 다를 바 없었다.
가죽과 근육은 물론이고 심지어 마나조차 그 어떤 방해도 하지 못했다.
그저 오러 블레이드 앞에 홍해 갈라지듯 트윈의 심장으로 향하는 길을 내어 줄 뿐이었다.
“크르륵. 크르르르…….”
이에 대한 트윈의 반응은 완벽했다.
놈은 가득 채워진 공포에 질리다 못해 그것을 밖으로 질질 흘리고 있었다.
심장을 향해 점점 더 깊숙이 꽂혀 들어가는 검과 그것을 행하는 나를 번갈아 바라보는 놈의 눈.
그 눈에는 전에 없던 것들이 철철 흘러넘치는 중이었다.
두려움, 공포, 간절함, 처절함, 갈구, 애원 등등.
도저히 트윈의 그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감정들뿐이었다.
마치 놈이 안타깝고 애처로운 희생양이라도 된 것 같은 모양새.
지이잉!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간 놈이 심심풀이로 가지고 논 생명체가 대체 몇이고 장난삼아 저지른 살육이 얼마란 말인가?
생존 본능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행위였다 해도 감안이 어려울 지경인데, 하물며 트윈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무엇보다 놈은 나로 하여금 너무 큰 것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내 사람들을 지켜 가는 데에 있어 가장 커다란 무기를 내 손으로 놓게끔 만든 것이다.
동정이나 연민?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였다.
최후의 최후까지 공포에 질려 덜덜 떨면서 서서히 죽어 가는 것.
놈에게 허락된 최후란 오로지 이것뿐이었다.
푸욱!
이윽고 내 검이 트윈의 심장에 도달했다.
그리고 파고들었다.
단, 거기까지였다.
그 이상의 무언가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오러 블레이드가 심장을 파고든 뒤였다.
이 지점부터는 트윈 헤드 오우거가 아니라 설사 트윈 헤드 트롤이라 해도 회생이 불가능했다.
놈에게 남겨진 미래라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죽어 가는 과정뿐이었다.
“크르르륵. 크르르르륵…….”
트윈은 그 과정을 충실히 따랐다.
공포에 질려 고개 젓고 신음하며 애원하던 놈의 반응은 서서히 잠잠해져 갔다.
처음만 해도 세차기 그지없던 놈의 현실 부정적 반응들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하나둘 자취를 감춰간 것이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
마지막까지 굴러가던 트윈의 눈알마저 그 움직임을 멈췄다.
부릅뜬 놈의 눈동자에서 초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이로써 슈라우드 왕국 북부를 강타했던 모든 비극의 원흉, 트윈 헤드 오우거가 죽음을 맞이했다.
원래라면 북부 전체에, 특히 라인하트 영지에 더욱 깊게 새겼어야 할 비극의 상흔을 채 반의반도 새기지 못한 상태로.
“후우…….”
털썩.
다만 아예 아무것도 새기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의 흐름과는 달리 나라는 상흔이 남아 버렸으니까.
어쩌면 이것이 내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비극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래서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빠른 속도로 흩어져 가는 힘은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아득하게 몰아가고 있었다.
앞으로 내 사람들을 어떻게 지켜 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걱정 같은 것들로.
당장 내가 오우거의 사체 위, 그것도 방금 내 손으로 정지시킨 심장의 바로 위에 주저앉았느니 하는 것들은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사아아~
“음?”
그런데 그 덕분이었다.
멈춰 버린 트윈의 심장을 기점으로 흩어져 가는 무언가가 내 감각에 곧바로 걸려든 것은.
아마 트윈을 죽이자마자 내려갔다면 바로 알아채기 어려웠을 만큼 시나브로 흩어지는 중이었다.
사아아아~
확실했다.
트윈이 지닌 기운의 총량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회귀를 통해 얻은 새로운 감각이 아니었다면 캐치조차 못 했을 것이 분명했다.
흩어져 가는 무언가를 단순한 마나로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분명 마나가 주축을 이루고 있기는 했다.
한데 그 마나가 도저히 자연적인 그것이라고 보기 힘들 만큼 어둡고 칙칙하며 음습했다.
뭐랄까, 어둠에 속한 몬스터의 본질이 짙게 느껴지는 어떤 것?
도저히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불가해하며 불확실했다.
“왜……?”
다만 이 불투명하고 모호하기 짝이 없는 상황 속에서도 확실한 것이 한 가지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이 미지의 기운에 대한 나의 태도.
왜일까?
분명 어둡고 칙칙하며 음습했다.
이 기운을 느낀다면 누구라도 대번에 얼굴을 찌푸리며 멀리할 만큼 말이다.
그럼에도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얼굴을 찌푸리며 멀리하기는커녕 되려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졌다.
더 깊숙이 느껴 보고 싶어졌다.
본능이 자꾸만 나를 기운에게로 이끌었다.
도저히 참아 낼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처억.
결국, 난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기운이 새어 나오는 트윈의 심장 어림에 손을 가져다 댄 것.
본능의 이끌림을 그대로 따른 결과였다.
왜 그런 것인지, 왜 그래야 하는 건지 이성적으로는 납득이 안 됐다.
하지만 그냥 했다.
왠지 꼭 그래야 할 것만 같아서.
화아아악~
그때부터였다.
서서히, 시나브로 흩어져 가던 기운의 움직임이 갑자기 광폭해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고 그것이 트윈의 가슴팍과 연결된 내 손을 타고 일제히 나에게로 넘어오기 시작한 것은.
단순히 심장의 기운만이 아니었다.
트윈의 전신에 퍼져 있던 기운들이 모조리 나에게 쏟아져 들어왔다.
콰과과과과~
정신이 없었다.
애초에 차릴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이 막대한 기운을 받아들이는 일, 그리고 휘돌리며 제어하는 일만으로도 혼미해지는 중이었으니까.
자칫 한순간이라도 삐끗했다가는 넘쳐나는 기운이 내 몸을 폭사시켜 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 그럴 것이 분명했다.
정체 모를 기운에 손댄 죄로 비명횡사하지 않기 위해서는 여기에 내 전부를 걸어야 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필사적으로 받아들이고 휘돌리며 나에게 복종시켜 갔다.
하지만 미지의 기운은 그 양이 너무 많았다.
아직 영글지 못한 내 육신으로는 전부를 의지하에 둘 수 없었다.
하여 그런 것들은 일단 전신에 퍼뜨려 두었다.
비록 내 의지에 따르지는 않을지언정 적어도 지금 당장 한데 뭉쳐 사고 치는 일은 없도록.
이 과정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대체 얼마의 시간이 흐른 것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끝없이 밀려오는 힘의 쓰나미 속에서 필사적으로 살아남기에 바빴으니까.
뚝.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던 해일이 끝내 그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해일이 중단되는 그 순간, 간신히 버텨 오던 내 의식 역시 뚝 하고 끊어져 버렸다.
그러고는 깊은 어둠이 가져다주는 안락함과 포근함 속으로 침잠해 들어갈 뿐이었다.